소설리스트

후작가의 망령재림-49화 (49/268)

< 13. 어린 왕자 또다시 [3] >

“시엔. 덥지 않나요?”

“그럼 여름이 덥지 춥겠습니까?”

“더운 건 알고 있단 말이군요.”

세필리아의 눈매는 원래 사납기 짝이 없었다. 그 인상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그러니 세상 이리 무서운 표정이 있을까.

“헌데 여기를 오셨군요? 이유라도?”

시엔이 대답했다.

“연인 사이가 함께 거니는 장소에 대해 여러 자문을 구해 종합해 보았으나, 그 선정에는 큰 기준이 없었습니다.”

“허면?”

“그러니 어떤 볼거리가 있나 생각하여 온 것입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있······군요.”

“내 이러한 연애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세필리아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해가 조금 떨어진 참이었다.

아예 더워 버티지 못할 수준도 아니다.

더위를 피해 오침을 취하던 공사 인부들도, 이제는 자리를 잡고 돌을 나르고 땅을 엎었다.

“그나저나 시엔. 이 계절에 도로 공사라. 어디로 통하는 길이지요?”

“어디론가 통할 겁니다. 아마도.”

“제게 숨겨야 할 성질의 것인가요?”

“아닙니다. 세피. 그냥 짓는 겁니다. 저들이 본디 빈민굴의 쓰레기장에서 뒹굴던 치들이라.”

“어쩐지, 인부치곤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이들이 끼어 있다 싶더라니. 다만 빈민치곤 꽤 건장한 이들이네요. 가려 뽑았나요?”

“그럴 리가요. 강제 노역입니다. 대신 잘 먹이고 몸을 적당히 움직이니 다들 저리된 겁니다.”

“큰 공사를 통한 빈민 구제 사업인가요? 금화가 그리 넘쳐나던가요?”

“대륙에서 가장 귀한 나무가 어디의 것인지 세피도 아시잖습니까.”

“넘쳐나는군요. 하지만 시엔. 공사가 끝나면 어쩔 생각이죠? 저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계속 공사를 할 셈인가요? 영지를 도로로 채울 생각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짓는 것이란 계속 쓰지 않으면 망가져 제 기능을 못하니 도로 역시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꾸려 계속해서 가꾸어 나가야겠지요.”

“말은 되는군요.”

세필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맞잡은 손이 축축하니 전부 다 땀이었다.

한풀 꺾였다 해도 이 계절에 서로 살을 맞대니 땀이 흐를 수밖에.

“저들을 굳이 먹여 살릴 이유가 있던가요?”

“어찌되었건 제 영민이 아닙니까.”

“흐음.”

세필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시엔이 움찔했다. 공주는 제 인상에 대해 자각할 필요가 있다.

“저들을 써 도로를 가꾼다 하셨지요?”

“도로 관리원이라 이름 붙여 쓸 생각입니다.”

“도로 관리원이라. 허나 길이 어디로 통하지 않으니 오가는 이가 적고. 그렇다면 짐승이며 도적, 마물이 나타날 수도 있을 거에요. 맞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가병이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결국, 스스로 제 몸을 지켜야겠네. 무장해야 할 거예요. 그렇죠?”

“맨몸으로 위험한 곳에 나서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맙소사. 당신.”

세필리아가 입을 벌렸다.

“당신은 너무 가셨습니다. 시엔으로 하죠.”

세필리아가 인상을 구겼다. 시엔이 먼 곳에 신기한 것을 발견한 척을 했다. 세필리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시엔. 사병을 꾸릴 생각이군요.”

“사병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왕국의 법이 지엄한데 어찌 병사를 함부로 늘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명령을 받아 영지 내를 돌아다니며 치안을 관리하는 무장 집단을 바로 병사라고 해요.”

“말은 포장하기 나름이라더니. 세피가 그리 말하니 무척 곤란합니다. 도로 관리원이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나오시겠다?”

“아니면 제가 굳이 세피를 이리 모실 이유가 있겠습니까? 불순한 의도라면 꽁꽁 숨겨두었을 겁니다.”

“그야 어머님이 밀어주고 계시는데 내가 알아챈다 해서 다를 것이 없으니. 젠장. 시엔. 당신 진짜 유능하군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나한텐 칭찬 아니에요. 어쩜 사람이 알면 알수록 별로야. 세상에 누가 이런 데에 연인을 데려오고. 또 얼마나 똑똑한가 굳이 시험해 보고 그러나요?”

“나름 고심한 겁니다만.”

세필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더 고심하세요.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3점 정도 드릴 수 있겠네요.”

“10점 만점입니까?”

“100점 기준이죠. 낙제점이에요. 시엔.”

세필리아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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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델피르와 엘딘이 사이좋게 방문을 두드렸다.

왕자는 퍽 피곤한 안색이었다.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선생들이 여기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어.”

“과연.”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공감했다.

시엔 역시 한때 왕자였던 이다. 왕자의 배움은 온종일 매달려 쉼이 없다.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그래서 신비주의자의 사원이 참 좋았다. 명상이랍시고 앉아있는 시간이 근질근질하니 심심해 괴로울 정도였으니.

“요즘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시엔.”

“사는 건 누구나 힘든 겁니다. 왕자님.”

“아냐. 내가 봤을 때 안 힘든 사람도 있어. 아바마마라던가.”

“폐하께서도 나름의 고충이 있으실 겁니다만.”

“아니야. 난 아바마마가 뭘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니깐. 맨날 후궁들이랑 놀고 계시는 거야. 어마마마께서 매일 바쁘시고.”

그러고 보니 세필리아 역시 비슷한 말을 했었다. 둘부터는 필연이니. 확실히 국왕의 업무에 대해 의문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언젠간 왕자님께서도 왕위에 오르실 것이 아닙니까. 그때 실컷 노시지요.”

“하지만 그럼 일은 누가 해?”

“지금도 폐하께서 그리하신다 안 하셨습니까?”

“그야 어마마마가 계시니까. 나한테는 카라렐인데. 카라렐은 좀 멍청하니까 왕국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슈드릴 영애 말씀이십니까?”

“응. 어마마마께서. 카라렐하고 혼인하래.”

시엔이 엘딘을 바라보았다.

엘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델피르가 작년에 열셋이었다. 즉, 올해 아직 어린 열네 살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광증이 있어 사람을 겪지 못해 그 정신은 더 어리다 할 터였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나이를 먹는 법이 아니던가. 제 혼자 방에 틀어박혀선 계속 아이로 남는다.

그러니 어린 왕자가 사랑을 알고 또 연인이 무엇인지, 혼인이 무엇인지 이해는 하는 것일까.

시엔이 물었다.

“왕자님께선 괜찮으십니까?”

“카라렐? 난 좋아. 카라렐은 눈도 웃거든.”

“눈도 웃는다? 그게 무슨 뜻이신지?”

“음. 그러니까. 다들 내 앞에서 웃는 얼굴을 하는데. 음. 입만 웃고 눈은 그대로인데, 음, 설명이 어려운걸. 어쨌든 막 그러니까 더 징그럽고, 조금, 그러니까 아주 쪼오금 무섭기도 하고. 음. 아냐. 무서운 건 취소.”

과연. 그런 건가. 시엔이 감탄했다.

왕자는 어렸으나 벌써 눈이 터, 거짓으로 웃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가렸다.

“취소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훌륭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선생은 왕은 가장 용기 있는 자라고 했어. 그러려면 신하가 무서우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용기지요. 두려워하고 경계하시되, 속으로 참아,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것이 용기입니다.”

“응! 알겠어.”

왕자가 대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서 엘딘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뭔가를 꾸미는 듯한, 거슬리는 그런 표정이었다.

왕자 앞에서 엘딘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엔이 화제를 돌렸다.

“흠. 그나저나 슈드릴 영애는 눈도 웃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응! 그런 이가 몇 없거든. 어마마마나 엘딘 경. 그리고 시엔이야.”

시엔이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히 꼽혀야 할 인물이 없는 탓이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음. 몇 명 더 있긴 한데. 샤피 누님은 좀······. 웃어주기는 하는데, 그. 좀, 무섭지······.”

“그건 알 것 같군요.”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몇 명 있는데, 춤 선생이랑, 역사 선생이랑 그리고 또······”

왕자의 명단에 끝내 국왕이 포함되지 않았다. 세 공주 중 세필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둘 역시 마찬가지.

하기사.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리라. 후작만 해도 뺨을 후려치던 그 첫 만남에선 그저 경멸이 담긴 시선을 뿌리지 않았던가.

가족이라 하여 매양 서로 좋아 행복할 수는 없으리라. 세상 천개 만개의 가정이 저마다 사연이 다른 법이었다.

그러니 광증에 걸렸다 하여 틀어박힌 왕자에게야.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엘딘 경에게 듣기로 사람 말을 알아듣는 신기한 오리가 있다던데.”

“이런. 아쉽게도 지금은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산책? 산책도 다녀? 오리가?”

“제 발이 달렸으니 못 갈 것도 없지요. 다만 워낙에 짧아 불편하니 다른 다리가 돕고 있는데. 워낙에 제멋대로라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으으. 내 기대했는데.”

왕자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때였다.

똑똑. 마침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방 주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벌컥 열어 안으로 들이닥쳤다.

긴 귀와 머리카락에 붙은 잎사귀들.

엘프 대사 비설이었다.

비설이 소중하게 껴안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흰 털이 우아하고 노란 부리가 선명한 오리 한 마리였다.

비설이 시엔과 엘딘, 그리고 델피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내 입을 열어 물었다.

“누구?”

델피르가 한발 빨랐다.

“엘프다! 오오, 엘프구나!”

“응. 인간의 어린 아이야.”

“난 어린애가 아니야!”

비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가 아냐? 그럼 늙었어? 늙은 인간으로 보이진 않는데.”

“어? 음. 늙은 건 아닌데······.”

“그럼 아이 맞잖아.”

“어······. 음······.”

델피르가 버벅거렸다.

아이 특유의 치기가 있었다.

제가 아이임을 부정하는 것이 가장 기본. 그리고 심화 과정이 묘한 승부욕이었다.

제가 밀렸다고 생각한 델피르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무엄하다! 난 왕자야!”

“왕자? 이상한 이름인걸. 그거 직책, 직위? 이름으로도 써? 인간 이름은 다 이상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상해. 난 비설이야. 얘는 세올.”

비설이 오리를 내밀며 말했다.

꽥. 리치가 오리 울음소리를 냈다.

델피르가 가슴을 쳤다.

“아니, 내 이름은 델피르야. 델피르 프린 페벨룬!”

“그래. 델피르.”

“그러니까 무엄하다니까!”

“왜?”

“난 왕자니까!”

“그런데?”

“나한테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돼!”

“왜?”

“내가 왕자라니까!”

비설이 생각에 잠겼다. 눈썹을 모아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어 고운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아오! 답답해!”

델피르가 제 가슴을 두드렸다.

시엔이 엘딘을 살폈다. 이쯤에서 중재할 만도 한데, 그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왕자님. 비설은 엘프입니다. 인간의 예의를 강요하셔서는 안 될 일이지요.”

“음. 그치만······.”

“엘프의 화법은 인간과 다릅니다. 비설은 엘프의 왕에게도 저리 대하니까요.”

“그런 거야?”

“우리는 왕이 없어.”

“한별 말이야. 인간으로 따지면 그렇다는 거지.”

“좋아. 납득.”

비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델피르가 다시 말문을 텄다.

“좋아. 비설. 그, 네가 안고 있는 오리가 말을 알아듣는다는 바로 그 오리인가?”

“얘는 세올.”

“세올이라. 사람 같은 이름이구나. 정말로 말을 알아듣나?”

“응.”

“내가 안아봐도 될까?”

“세올이 좋다면. 어떻게 해?”

비설이 오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오리가 푸드덕 날아 왕자에게 향했다. 어린 왕자가 얼떨결에 제 품으로 향하는 오리를 끌어안았다.

오리가 웃는다고 하면 미친 소리와 같으리라. 하지만 시엔은 어쩐지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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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기록 일지. 그 둘.」

세필리아 공주가 낙제점을 부여함에 따라, 표본 수집 – 결과 도출 – 계획 수립, 이 과정에 무언가 크나큰 오류가 있다 말할 수 있겠다.

가장 유력한 것은 날씨 요인이다.

더위로 인해 땀이 많이 흘렀다. 피부는 끈적하고, 신체 접촉은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요인에서, 모든 연인들이 여름에 서로 즐겁게 지낼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니 이 또한 오류이리라.

애초에 질문에 오류가 있었다.

연인들이 만나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다.

연인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였으며, 또한 어떤 행동이 연인을 기쁘게 하였는지를 구하여야 했음이다.

그러나 베른닐은 두건의 경우를 보아 결국 연인을 기쁘게 만드는 데에 실패하였음으로, 표본 집단에서 제외하도록 한다.

해서 다른 이의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

카라렐 슈드릴은 왕자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모양이며, 둘이 항상 붙어 다니니 신뢰할 수 있는 조언을 들을 수 있으리라.

“음. 왕자님을 위해 제가 해드리는 것이요?”

카라렐이 대답했다.

“이전에 발작을 일으키실 때는 꼭 안아드리는 것이 전부였답니다. 아. 공자님께는 감사드리고 있어요.”

“별말씀을요. 그래서, 지금은 왕자님을 위해 무언가 하고 계십니까?”

“음. 뭐가 있을까요? 아. 스튜에 당근이 들어가면 몰래 으깨놓아 감춰드리거나. 당근이라면 아주 질색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또 잘 눌러 감추면 모르고 잘 드시니 못 드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편식이 워낙 심하세요.”

식사 시중을 든다는 말이었다.

그 외엔 침구를 정리하고, 왕자의 옷을 다리며 구두를 닦고, 방을 청소한다거나.

간혹 선생들이 내어 준 숙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곤 한다고.

물론 숙제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고민하는 척만 하고 결국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고.

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여인인지.

왕비가 사람 보는 눈은 대단하다 하겠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특수한 상황이며, 세필리아 공주와의 연인 행세를 위해서는 결론적으로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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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기록 일지. 그 셋.」

「엘프 생태 관찰기. 그 넷.」

엘프의 도시에서의 경험으로, 많은 엘프 연인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비설은 베른닐과 마찬가지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표본 집단에 속한다.

그러나 비설의 일견 멍청해 보이는 언행은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별개로 성인 엘프로서의 소양이 충분하며, 종족 간의 사랑이 보편적인 이야기꾼들의 소재가 아니던가.

이를 통해 종족 간의 차이와 문화 속에서도 사랑이 하나로 일치할 가능성이 있었다.

“연인이랑?”

“그래. 연인과 함께.”

“음. 같이 노래하고. 산책하고.”

“노래라. 그러고 보면 함께 노래하는 엘프가 많긴 했지. 무슨 의미라도 있나?”

“즐겁잖아.”

“연인과 노래하는 게 즐거운 건가?”

“음.”

비설이 잠시 생각했다.

“아니. 그냥 노래가 즐겁잖아. 그런데 인간은 노래 부르기를 창피해하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가끔 인간들이 작게 노래하는데, 내가 보고 있으면 깜짝 놀라서 안 그런 척을 해.”

“흠. 개인차가 있다고 하자.”

“인간은 복잡하네.”

“됐고. 산책이라. 주로 어디서 무얼 하는데?”

“나무를 보러 가거나. 아니면 호수도 보고. 꽃밭에도 가나 봐.”

“전부 숲 아니야?”

“맞아.”

“그 외엔?”

비설이 보기 드문 표정을 했다.

어이없음이 담긴 그런 시선에, 시엔이 이내 제 잘못을 알아차렸다.

엘프가 숲이 아니면 대체 어디를 가겠는가. 비설이 여기 와 있는 것이 대단히 특이한 일임에야.

“······내가 멍청한 질문을 했네.”

“맞아.”

“그래서, 딱히 연인을 위해 뭔가 하는 일은 같은 건?”

“몰라.”

“모른다고?”

“응. 몰라.”

“왜?”

“연인이 없었어.”

“왜?”

“시엔, 나빠.”

“······미안하다.”

이러한 이유로, 「연애 기록 일지. 그 셋.」 항목을 「엘프 생태 관찰기. 그 넷.」으로 분류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세피, 그러니까 세필리아 공주님과 연인 행세를 하기로 했거든. 연인 같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그런데 왜?”

“그게 조금 복잡한데, 사정이 말야······”

비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안 궁금해.”

“그럼?”

“왜 시엔이 고민을 해?”

“뭐?”

“인간은 연인이 되면 사내가 여인에게 무언가를 해 줘야 하는 거야? 왜?”

“음?”

시엔이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비설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기껏 이리 고생하면서 짠 계획에 낙제점이나 줄 줄을 알지. 저는 그냥 하자는 대로 따라와 또 굳이 점수를 매기겠다니.

다음 산책은 세필리아 공주가 계획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냉철한 이성으로 점수를 매겨 주리라.

< 13. 어린 왕자 또다시 [3] > 끝

ⓒ Lab.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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