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말괄량이 길들이기 [6] >
“우리 뷔아가 그리 저돌적일지는 몰랐네?”
“뭐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사내를 쓰러뜨리면 못 써. 입장 바꿔 생각해봐. 뷔아가 그렇게 당하면 기분이 좋겠어?”
“무슨 개소리야?”
“흐흐.”
수히는 그저 음흉하게 웃을 뿐이다. 뷔아의 이마에 골이 깊게 파였다.
“무슨 돼먹지 못한 생각 하는진 모르겠는데, 그런 거 아냐.”
“그런 거 아니긴.”
“아! 아니래두!”
뷔아가 소리를 빽 질렀다.
수히의 눈이 동그랗다. 이내 무언가를 눈치챈 양 표정이 굳어간다. 뷔아를 바라보는 눈빛에 측은함이 가득 담겼다.
수히가 무어라 말할 듯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없이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침묵이 한창이다.
문득 뷔아가 말을 걸어왔다.
“······나 말야. 혹시 못생긴 거 아니지?”
“뭐?”
“나 못생긴 거 아니냐구.”
수히가 눈을 깜박거렸다.
입이 더럽기는 해도 사리엔 밝은 성녀였다. 상스러운 소리야 벌써 몇 년을 들어왔으니 익숙하여 굳이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상스러운 소리가 아니라 이상한 소리다. 수히가 뷔아의 이마를 짚었다.
“어디 아파?”
“아니. 그런 거 아닌데.”
“그럼 나 놀리는 거지?”
“그게 아니라. 나 성녀잖아.”
“그게 왜?”
“날 때부터 성녀였으니까 다들 그냥 예쁘다 예쁘다 하는 거 아냐? 성력이 없으면 나 같은 건 그냥 입에 걸레나 문 성질머리 나쁜 계집애······”
“누가 너보고 입에 걸레를 물었다고 하는데! 어떤 놈이야? 누가 주제도 모르고 성녀님께 그딴 폭언을 해! 내 당장 성기사들을 데려다가······!”
뷔아가 수히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아. 나구나. 수히가 급히 태세를 전환했다.
“아이고, 오구오구. 우리 성녀님. 그게 걱쩡이셨쪄요? 아이고 이뿌다.”
“아. 씨. 나 진지하거든?”
“나도 빈말 안 해. 뷔아가 못생긴 거라면, 이 세상에 인간이란 호칭이 없었을걸. 아마 두꺼비 사촌이나 말린 오징어쯤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그게 뭐야.”
뷔아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수히가 한숨 놓았다.
“왜? 공자가 너보고 못생겼데?”
“······역겨운 면상이라던데.”
“공자가 장님이 아님에야. 에이, 당황해서 한 소리가 아냐? 그렇게 덮쳤으니 갑자기 겁이 더럭 난 거겠지.”
“······토했어.”
“뭐?”
“내 얼굴 보고 토했다구!”
수히가 눈을 깜박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말인가 말이 아닌가? 그게 말이 되나?
“뭔가 오해가 있었겠지. 그럼.”
“그런 걸까?”
“그럼. 우리 뷔아 얼굴만은 대륙 제일이야.”
“하지만. 모르겠어. 결국, 명예 성직도 못 내리고 돌아왔는걸.”
“아마 지금쯤 후회막심이지 않을까?”
“그런 걸까?”
“그런 걸 거야.”
“음······”
똑똑. 때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사제 하나가 신전에 손님이 찾아오셨다 알리니, 바로 시엔 티란디스라 알렸다.
뷔아와 수히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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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성기사단의 행진이 도시를 가로질렀다.
은빛 갑옷이 오전의 햇살에 번쩍거리고, 푸른 휘장을 두른 채 모두가 한 사람처럼 같이 움직이니 착착 발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다.
검이 아니라 제식을 수련했던가.
교회의 체면을 위한 만들어진 출정식이나, 의식을 찾은 영민들이 보기엔 성스럽기 그지없는 천신의 군대다. 새삼 기도를 올리는 자가 부지기수니.
그렇게 군대가 도시를 떠나 행진한다.
이윽고 베인울프 수해가 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숲이 아니라 수해. 나무의 바다라 괜히 불리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뻗어 하늘을 가리니 사시사철 어두운 곳이라. 키 큰 것들은 그러하나 땅에 붙은 것들도 유난하기 그지없어 관목을 이루고 수풀을 이뤄 빈 곳이 없다.
그러니 괜히 인간의 미답지로 남은 곳이 아니다.
마른 땅이 반절이요, 나머진 여울이나 질척한 늪이라 움직이기 쉽지 않고, 숲 거머리는 나무 위에서 늘 아래 움직이는 것을 노린다.
온갖 벌레가 들끓고 해로운 짐승도 그 안에 가득하니 평범한 이는 들어가 하루를 못 버틸 마경 중의 마경이라.
그러나 숫자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성기사들이 두 열로 길게 늘어섰다.
앞선 자들의 손엔 투박한 벌목도가 들렸다.
관목 따위를 베어내는 도구에 신성이 깃든다. 한 번 휘두르면 억센 줄기며 잔가지들이 우수수 베어져 나갔다.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하여 더디긴 하나 수해 안쪽으로 계속해서 진군해 들어간다.
“으음. 음.”
벌목대장 아븐 케이즈가 불편한 듯 계속 가래를 삼켰다. 시엔이 바라보자 고개를 숙이지만, 석연치 않은 표정이 역력하다.
“왜 그러죠? 증상이 올라오나요?”
“어. 그런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아븐이 한숨을 푹 내쉬곤 목소리를 낮췄다.
“성기사분들께서 고생을 하고 계시니 할 소리는 아닙니다요. 하지만 숲이 다 상하고 있으니 나무꾼이 보기에 속이 편하진 않습니다.”
“숲이 상해요?”
“나무라는 것이 생각보다 예민하고, 어.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파헤치면 영 좋지 못한 것인데. 어, 음. 설명해 드리긴 어려운데 그게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죠. 상황이 상황이니.”
“맞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나 들어가야 하죠?”
“이 속도면 이틀은 들어가야 할 겁니다.”
“그렇게 깊이요?”
아븐이 그렇다 대답했다.
닳고 닳은 벌목대장이야 수해 안을 짚어 돌아다니니 깊숙한 곳까지 살피곤 했다.
벌목감을 찾는 것도 있지만, 흔적을 보아 해로운 짐승이나 마물이 발을 들인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때였다.
“트롤이다!”
“대형을 갖춰!”
크아아! 성난 포효가 메아리친다. 우측 멀지 않은 곳이다. 성기사들의 지휘가 목에서 목을 타고 이어지고, 순식간에 짝지어 대형을 갖췄다.
트롤의 키는 사람의 세 배이나, 팔다리는 사람만큼이나 얇아 기괴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힘이 세 쉽게 사람의 팔다리를 잡아 뜯으며, 피부는 돌처럼 단단하니 창칼이 잘 듣지 않았다.
시엔이 성기사들을 지켜보았다.
트롤을 보았으나 당황하는 모습이 없다.
세 명이 방패를 이어 좌우로 받친다. 방패 위로 하얀 서광이 비치니 신성을 능히 다루는 이들이다.
트롤이 곤봉을 내리친다. 쾅!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둘레가 허리통만 한 곤봉을 막아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다.
“개창!”
“개창!”
“개창!”
그사이 달려온 성기사들이 손을 치들었다. 건틀릿 위로 흰 빛무리가 뭉쳐 창의 형상을 이룬다.
“투창!”
대장의 외침에 빛의 창들이 트롤에게 날았다. 수해의 싸움은 만만치 않다. 트롤이 나무 사이로 날뛴다. 창들이 나무에 박혔다. 일부는 트롤의 배와 어깨로 파고든다. 고통스러운 괴성이 터진다.
엄호해!
한 성기사가 검을 쥐고 달려든다. 세 명의 성기사가 방패를 펼친 채 우측에 따라붙는다.
트롤이 또 곤봉을 내리친다. 쾅! 방패가 공격을 막아낸다. 방패잡이들이 좌우로 몸을 날렸다. 그 사이로 검을 든 성기사가 돌진했다.
빛이 서린 검이 트롤의 발목을 베었다. 뼈째 잘린 발목에 트롤이 펄쩍 뛰었다. 자리에 트롤의 거대한 발이 남았다. 대단한 실력.
트롤이 등을 돌렸다.
한쪽 발목이 없어도 뒤뚱뒤뚱 도망을 친다.
투창! 지휘가 이어졌다.
트롤의 등을 창들이 쫓았다. 개중 하나가 뒷목에 박히자 트롤이 쓰러진다. 쿠웅! 육중한 무게에 땅이 울렸다.
“히얍!”
기합과 함께 긴 머리가 휘날린다. 뛰어올라 거목을 차고, 또 거목을 차 성녀가 날았다. 트롤의 머리를 향해 뚝 떨어져 내라며, 손에 찬 흉악한 건틀릿을 아래로 향한다.
파삭. 깨어지는 소리. 트롤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머리를 잃었으니 어찌 사랴. 이내 축 늘어지며 숨이 끊어진다.
“어때요? 대단하지요?”
수히인가 하는 주교가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그렇군요. 성기사 분들께서 용맹이 대단합니다.”
시엔이 순순히 긍정했다. 트롤을 이리 쉬이 해치우다니 보통 훈련된 이들이 아니다.
좋은 일이다.
라프라크가 부정 세계의 마수라 하나 생태 밑바닥에 있는 놈이다. 한 놈은 약하니 숫자로 덤빈다.
하지만 신성을 자유로 다루는 성기사가, 그것도 실전에 능해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이만큼이면 위험할 것이 아니다.
“아뇨. 저희 성녀님 말이에요.”
“네?”
“교단의 수도승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실력자이세요.”
“아. 뭐. 그렇군요,”
시엔이 영혼 없이 대답했다.
성녀 성자의 신체 능력이야 인간을 초월한 것이니 당연히 무예를 익혀 뛰어날 수밖에. 그러니 굳이 대단할 건 아니다.
시엔이 다른 이를 가리켰다.
트롤의 발목을 단숨에 베어낸 성기사다.
“저 분께선?”
“라이벵 경 말씀이시군요? 교단에서도 대단히 존경받는 분이시랍니다. 소드마스터와 견주어 밀리지 않을 실력자이시기도 하구요.”
교단의 사람이니 당연히 그리 말하리라.
하지만 시엔의 생각은 달랐다.
신성을 다루니 오러를 깨우칠 수 없다. 그렇다면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소드 마스터와는 견줄 수가 없으니.
소드 마스터는 무인보다는 마법사에 가까운 이들이다. 본인의 생각은 다를 테지만, 적어도 마법사들은 그렇게 여겼다.
오러는 누군가에게 빌린 것이 아닌, 순수한 인간 의지의 산물이다. 마법사도 신관도 모두 빌려온 힘이나, 소드 마스터만이 오로지 제 의지로 힘을 만든다.
소드 마스터들이 저들이 믿고 행하는 검술이란, 사실 현상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던가. 개인이 검술이라 믿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법칙을 비트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천 년 전. 제국의 칠검왕이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가 있었다.
한 자루의 검을 휘둘러 일곱의 검초가 날아드는 이였다. 그중 허상이 없어 전부가 실재하니 그게 검술이랴? 마법이지.
검위공만 해도 그렇다.
심검이라 하여 마음에 검을 세워, 무기를 들지 않고 무기를 든 것이라 적의 심령을 베어낸다 하는 허무맹랑한 것을 검술이라 내세우지 않는가.
그런데 그걸 진짜로 할 수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러니 마법사는 오러를 깨칠 수 없다.
그것이 본디 불가능한 일임을 이미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기사 역시 마찬가지.
제 모든 것이 천신에게 나온 것이라 인간이 기적을 부릴 수 없다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후 수색은 조심히 이루어졌다.
해가 지기 전에 숲을 빠져 나와 야영하고, 서광이 비치면 수색지를 개척하며 수색을 이어나간다.
그러니 수색은 더디기 짝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수색을 할 시간이 적어진다.
이미 개척된 곳을 급히 가로질러, 울창한 곳을 벌목도로 베어낸다. 그도 일주일이 지나자 수색지까지 가고 오는 데에 반나절이었으니까.
교단의 주교들이 조바심을 냈다.
“이대로라면 곤란합니다. 성기사단 세 개가 나섰는데, 아직까지 성과가 없어요! 성과가!”
“수색 방침이 문제 아닐까요? 이제는 거의 수색 속도가 나지 않고 있잖습니까?”
“수해에서 야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역시, 그게 나을까요? 라이벵 경, 어떻습니까?”
광휘단, 모인 성기사단 중 가장 상위의 것이니 그 단장인 라이벵이 현 성기사들의 대장이라.
“너무 위험합니다.”
라이벵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직 신종이라 하는 마물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여 모르니 만전을 기하는 중입니다.”
“허어. 라이벵 경. 교단은 언제나 위험에 맞섰어요.”
“마물 퇴치를 통한 대륙 정화 역시 천신님께서 내리신 사명이 아닙니까.”
라이벵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독실하고 선량한 이는 욕심이 없다. 백성이 웃는 모습만으로 세상 다 가져 행복하니 굳이 제 직위를 올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단의 높은 이라 하면 절반은 이런 치들이다.
“역병이 시작된 것이 초봄인데, 이제 곧 여름이에요. 대륙의 이목이 여기에 다 몰렸는데, 교단이 나서 정리하지 못하니 천신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불경한 일입니까.”
“허허. 허나 그분께서 내리신 귀한 삶을 위험에 처하도록 하는 것도 불경 아닙니까.”
“지금까지 어땠습니까? 누구 한 명 조금이라도 다친 이가 있습니까? 이럴진대 이러고 있으면 겁이 많다 비웃지 않겠습니까!”
덕 높은 신관들이 그에 맞서나, 또한 그러한 이들은 대개 양보하고 물러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니 결국, 그 결과는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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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건만 수색이 멈출 기색이 없다. 새로 짐을 든 자들이 있어 보아하니 식량과 천막 따위다.
야영을 하려는 것이다.
‘이거 좋지 않은데.’
시엔이 그리 생각했다.
누군가 노리고 벌인 일이라면?
작정한 그 결과가 어떠한가.
역병은 독하여 오래도록 봉쇄가 진행 중이다. 교단에서 이만큼이나 신관을 보낼 정도로 중한 사건이다.
그러니 그 범인은 보통 영리한 자가 아니리라.
적이 약이 개발될 것이나 예상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작전이란 항상 최악을 보고 짜는 것이 아닌가.
적이 이미 예상했다면? 성기사단의 수색이 벌어질 거라 예상했다면? 이만한 규모의 성기사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을까.
“라이벵 경. 오늘은 야영하는 겁니까?”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도련님께선 위험하니 저녁 식사를 조달하는 보급 인편에 돌아가심이 어떠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만.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하다 하여 고통받는 이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빨리 역병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곧 봉헌입니다······.”
그러면서도 말미에 힘이 없다.
그러니 시엔이 대충 까닭을 눈치챘다.
교단이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니. 아니, 굳이 교단이라 할까. 사람이란 또다시 천 년이 지나도 이대로일 것이니.
결국, 수해의 밤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원래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이니 밤에는 오죽하랴. 달빛은 미약하여 해에 비할 것이 아니니, 사방에 빛이라곤 없어 보이는 것이 없다.
그나마 횃불이 사위를 밝히나 범위가 좁다.
겨우 야영지 주변이나 조금 비출 뿐이니 성기사들이 돌아가며 경계를 섰다.
그리고 밤이 깊었을 때였다.
“신종 마물이라. 그런 게 있긴 할까?”
“몰라. 잘못 본 걸 수도 있겠지. 우리야 그렇지만 신민들이 마물을 보면 겁을 먹잖아?”
성기사 둘이 한 조로 번을 서고 있었다.
입으로는 잡담을 나누나 눈은 매섭게 주변을 훑는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횃불 따라 넘실거리는 가까운 나무둥치 너머 새카만 어둠뿐이라.
“겉으로 보기엔 귀여운 놈이라고 했는데. 어디 한 번 구경이나 했으면 좋겠는데? 귀여운 마물이라니. 그게 말이 돼?”
“그게 토끼를 닮았다고 했었나?”
“어. 맞아. 토끼.”
“쉿.”
성기사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동료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복슬복슬한 짐승 한 마리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가 길어 뒤로 쳐지고, 어둠 속 옅게 빛나는 둥근 눈은 잘 익은 살굿빛이다. 확실히 귀엽다 할 것이다.
“토끼가 저리 생겼던가?”
“몰라. 구이만 봤지 산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어, 온다. 온다.”
복슬한 것이 깡충깡충 뛰어 다가온다. 인간을 보고 꺼리지 않으니 겁도 없다고 하겠다.
오히려 성기사들이 긴장했다.
하찮은 것을 보고도 긴장을 풀지 않으니 그 훈련이 헛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비할 수 있었다.
깡충 뛰어 품으로 안기려는 듯싶더니, 몸체가 위아래로 쩍 갈라졌다. 시커먼 입안 가득 싯누런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딜!”
성기사가 검을 내질렀다. 푹, 마물이 검에 꿰어 매달렸다. 팔다리를 바동거리나 꿰인 몸에 별수 없이 숨이 끊어진다.
“윽. 이게 대체 뭐야?”
“나 보고하고 올 테니까. 잠깐 지키고 있어 봐.”
“야. 잠깐. 잠깐.”
성기사가 마물을 꿴 검을 쥐고 가려는 것을 동료가 붙든다. 왜 그러냐 성기사가 몸을 돌린다.
붙잡은 이가 손을 들어 손가락을 뻗었다. 기사의 시선이 그를 쫓아 수해의 어둠 속에 닿았다.
어둠 속, 옅게 빛을 내는 눈동자가 떠오른다. 두 개가 한 쌍으로 하나, 둘, 셋, 넷, 계속해서 어둠 속에 존재를 드러낸다.
세지 않아도 수백에 이르는 눈동자들이다.
“젠장!”
성기사가 호각을 들어 힘차게 불었다.
삐이익! 삐이익!
적습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밤을 깨웠다.
< 11. 말괄량이 길들이기 [6] > 끝
ⓒ Lab.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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