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616화 (602/621)
  • 616. 진위(眞僞) (1)

    한빈이 웃자 장자명이 식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맹충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백독지회에 모인 문파가 몇이지요? 그리고 진짜일지 가짜일지 모르는 사매 일행도 있죠. 과연 누가 넣었을까요? 그리고 우리에게만 넣었을까요?”

    “그럼 빨리 알려야…….”

    “누구한테요?”

    “그야, 문주님께 알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과연 문주님은 진짜일까요?”

    “네?”

    장자명이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가능성이었다.

    만약에 그의 사부가 가짜라면 이곳 자체가 함정이라는 말이었다.

    장자명은 미간을 좁히며 한빈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사숙인 독호가 의심이 많고 백독문의 제자들도 의심이 많다고 소문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중 한빈보다 의심이 많은 이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 한빈이 웃었다.

    “농담이니 그렇게 정색하지는 마시죠, 장 의원.”

    “아, 농담 같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요.”

    “믿으십시오.”

    “아니, 제가 언제 팽 공자를 안 믿는다고 했습니까?”

    “제 말은 장 의원의 사부님, 즉 백주천 문주를 믿으라는 얘기입니다.”

    “아.”

    장자명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빈이 이렇게 말하니 자신이 졸지에 사부를 의심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적혈맹호대는 식사 준비를 마쳤다.

    긴장한 상태에서 풍겨 오는 음식 냄새.

    장자명은 모든 상황이 조화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있던 장자명이 눈을 크게 떴다.

    “팽 공자, 밖에 있는 사매가 가짜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주방의 책임자가 바로 사매입니다. 맹충을 쌀가마니에 풀어놓을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밥이 익으면서 맹충도 죽겠죠. 음식을 통해 감염시키려면 밥과 찬이 다 된 후에 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주방을 관리하는 사매밖에 없습니다.”

    “흠,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군요.”

    “뭐, 주방이 아니어도 이곳으로 이동하는 도중 맹충을 풀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 이제 식사하시죠.”

    한빈은 결코 단언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여지를 남겨 놓고 대화를 진행시켰다.

    대화를 나누던 한빈이 뒤를 돌아봤다.

    한빈이 씩 웃으며 심미호를 가리켰다.

    모두가 한빈을 따라 심미호를 바라봤다.

    시선이 모이자 심미호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바싹 들었다.

    자신 있다는 표정의 심미호.

    대부분의 임무에서 심미호가 적혈맹호대를 거둬 먹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운현에서도 그랬고 사천당가에서 지하 통로를 파면서도 식사는 심미호의 담당이었다.

    이쯤 되니 심미호는 하북팽가를 떠나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중원의 숙수들 중 중간 이상은 갈 자신이 있었으며, 광부 중에서도 밥값 이상은 할 것 같았다.

    물론 이 부분에서 심미호가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심미호는 중간 이상이 아니라 고수의 경지에 이르렀다.

    중원의 어떤 광부가 곡괭이에 강기를 두를 수 있을까?

    중언의 어떤 숙수가 국자에 진기를 흘려보낼 생각을 할까?

    심미호 덕분에 한빈 일행은 무사히, 아니 그 전보다 더 흡족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한빈이 팽혁빈을 바라봤다.

    “이제는 변장을 지우셔도 상관없습니다, 형님.”

    “내게 변장을 하라고 부탁할 때는 언제고…….”

    “아무래도 여기에 꽤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불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백 문주가 다시 오면 뭐라 할 것이냐? 아우야.”

    “청운사신께서는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하죠. 청운사신은 강호에서 바람과 같다고 소문난 인물이 아닙니까? 뭐, 그렇다고 치죠.”

    “그것참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하하.”

    팽혁빈이 피식 웃자 한빈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이무명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한빈이 그를 보며 웃었다.

    “이 호위도 이제 변복은 벗어 던져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겁니까?”

    “저도 그래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그래도 되죠. 청운사신이 바람처럼 사라졌는데 적룡대협이 그냥 남아 있는 것도 우습지 않겠습니까? 당분간은 편안히 쉬세요.”

    “휴식을 취할 장소치고는 조금…….”

    “아까 장 의원이 말했듯이 이곳은 완벽한 요새입니다. 누가 와도 무력으로 이곳을 열지 못합니다.”

    한빈이 여유 있게 웃자 이무명이 그제야 변복을 벗어 던졌다.

    붉은 도포를 벗자 평소 그가 입던 백색의 무복이 드러났다.

    변복을 벗어 던진 이무명과 팽혁빈을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바라봤다.

    청운사신과 적룡대협이 허물을 벗자 젊은 두 고수로 변한 것.

    그들을 바라보던 심미호가 웃었다.

    “두 분이 한꺼번에 환골탈태하셨네요. 이 정도면 무림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하네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시름을 잊은 듯 웃음을 토해 냈다.

    * * *

    이틀 뒤.

    귀빈실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식사가 오지 않았다.

    백독문에서 주는 식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맹충이 음식에 숨어 있다는 것을 파악한 후 알아서 해결하고 있는 중.

    문제는 귀빈실을 호위하던 무사들까지 사라졌다는 점이다.

    호위라고 하기보다는 감시라고 해야 옳지만, 어쨌든 급격한 상항의 변화를 말해 주고 있었다.

    모두가 웅성대고 있을 때였다.

    설화가 한빈 앞에 나타났다.

    천장의 대들보 위에서 내려온 설화를 본 장자명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쳤다.

    “아이쿠, 설화야.”

    “죄송해요, 장 의원 아저씨. 일단 공자님께 보고부터…….”

    설화는 재빨리 한빈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위쪽 옆쪽에 감시하던 무사들까지 떠난 것 같아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요, 공자님.”

    “흠, 수고했다. 이제야 편히 준비할 수 있겠구나.”

    말을 마친 한빈은 조용히 용린검법의 심화편을 바라봤다.

    용린검법 심화편의 구결은 이제 한계까지 차올랐다.

    시간에 지나도 차오르지 않았던 지(智)의 구결도 지금은 한계까지 회복한 상태였다.

    덕분에 한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가 맑았다.

    한빈은 잠시 눈을 감고 앞으로의 계획을 펼쳤다.

    눈치 싸움은 끝났고 이제는 상대가 어금니를 드러낼 때가 가까워졌다.

    한빈은 바둑의 수를 생각하듯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머릿속에 그려 봤다.

    한빈과 적.

    둘 중 하나는 이번 판에서 돌을 던져야 할 것이었다.

    먼저 돌을 던지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일까?

    묘한 상황에 장자명은 가슴을 두드렸다.

    이곳에 남아 있는 자신의 사매는 안전을 위해서 수혈을 점혈했다.

    덕분에 식사 때만 빼고는 계속 자고 있다.

    먹고 자고 하는 생활 속에 장자명의 사매인 백리연은 완벽하게 외모를 회복했다.

    어찌 보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잠시 사매의 상태를 확인한 장자명은 조심스럽게 밖과 연결된 작은 통로를 열었다.

    밖을 확인하는 장자명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쌓여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장자명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한빈과 적혈맹호대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저, 저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팽 공자.”

    장자명의 다급한 목소리에 한빈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장 의원.”

    “일단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휘적휘적 걸었다.

    장자명이 속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쳤다.

    “좀 빨리 오십시오. 아무래도 밖에 일이 생긴 듯싶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랑 무슨 상관입니까?”

    “백독문이 잘못되면 우리는 어떻게 나갑니까? 제 사문이라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팽 공자.”

    장자명은 다급하게 밖을 가리켰다.

    밖을 본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밖이 왜요?”

    “저거 보십시오. 저거 미독 문도희 아닙니까?”

    “복장으로 봐서는 분명하군요.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요?”

    “저기 보십시오. 검을 잡은 모습이 꼭 지팡이를 짚은 모습과 같지 있지 않습니까?”

    “지팡이라…….”

    “거기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음, 시작됐군요.”

    “시작이라니…….”

    “장 의원도 맹충의 증세는 알고 있겠죠? 맹충에 당하면 저렇게 됩니다. 눈이 빠질 것 같아서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죠.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진물이 나오죠.”

    “팽 공자님.”

    “네, 말씀하시죠. 장 의원.”

    “팽 공자는 다른 이들이 당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지난번에 장 의원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백독문에서는 맹충을 다루지 않는다고요. 그럼 당연히 백독문이 아닌 다른 이가 맹충을 풀었겠죠.”

    “그런데 왜 삼독문의 문도희 대협이…….”

    “칼에 눈이 없듯 독에 눈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저기 보니 모두가 당한 건 아닌 듯싶군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뒤쪽에 오는 이는 지팡이가 없지 않습니까? 눈도 감지 않았고요.”

    문도희의 뒤쪽에는 백색 무복의 무사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백색 무복의 무사들은 문도희의 옆을 지나쳤다.

    그들은 백독문의 무사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나오더니 문도희를 부축했다.

    문도희에게 백독문의 무사가 귓속말을 전했다.

    그 모습은 사뭇 정중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사의 부축을 받고 돌아갔다.

    나머지 무사들은 귀빈실이 있는 전각을 향해 달려왔다.

    그들을 바라보던 한빈이 고개를 돌렸다.

    한빈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심미호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한빈이 심미호에게 말했다.

    “부대주, 준비는 됐겠지?”

    “네,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 시진 동안 눈 뜬 맹인이 된다.”

    “존명.”

    포권한 심미호가 각 잡힌 동작으로 돌아섰다.

    그러고는 적혈맹호대 대원들의 앞에 섰다.

    “주군의 말씀대로 우리는 지금부터 맹인이 된다. 실시!”

    “존명!”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작게 복창했다.

    그들은 조용히 품에서 하얀 띠를 꺼냈다.

    그 띠로 그들은 눈을 가렸다.

    조금 이상한 것은 그 띠가 그렇게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떤 띠는 갈색 얼룩이 져 있었고 어떤 것은 붉은색 점이 군데군데 물들어 있었다.

    이제 그들은 영락없는 맹인이 되었다.

    얼굴만 본다면 지저분한 안대 덕분인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안대를 찬 그들은 허리에 있는 도를 들었다.

    그들은 도를 지팡이 삼고 허리를 살짝 숙였다.

    얼마 전까지 도를 드는 것만으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적혈맹호대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도조차 병기가 아닌 지팡이로 보였다.

    영락없는 맹인의 행태를 한 적혈맹호대의 몇몇은 끙끙 앓는 소리를 했다.

    그들의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장자명이었다.

    장자명이 황당한 듯 한빈을 바라봤다.

    “이게 무엇입니까?”

    “장 의원 것은 여기 있습니다.”

    한빈이 안대를 내밀자 장자명이 반사적으로 받았다.

    안대를 받은 장자명은 어쩔 줄 몰랐다.

    그 모습에 한빈이 직접 장자명의 눈을 가려 줬다.

    “대체…….”

    “장 의원, 어릴 적 이런 놀이 해 보셨죠? 술래는 눈을 감고 잠시 있는 겁니다. 그리고 눈을 뜬 후에는 다른 친구들을 쫓는 겁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중 누가 유리하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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