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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600화 (586/621)

600. 예상 가능한 변고 (5)

매듭의 수로 고위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체계는 개방 혹은 다른 문파와 흡사했다.

하지만 백경의 무사는 매듭뿐 아니라 매듭의 색으로도 그 소속과 직위가 구분된다.

그 매듭은 조그마한 뿔피리에 묶여 있었다.

한 토끼 가면의 무사는 삐져나오려는 뿔피리를 소중하게 갈무리했다.

이 매듭 한 개조차도 백경에 입문하고 삼 년이 지난 후에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청색 매듭이 끝은 아니었다.

청색 띠의 매듭 여섯 개가 다 차면 붉은 매듭을 받게 된다.

붉은 매듭을 다 채우고 나서야 백색의 매듭을 받게 된다.

백색의 매듭을 받아야 조장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토끼 가면의 무사는 허리의 청색 매듭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청색 매듭을 다 채우는 것도 언제 가능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토끼 가면의 무사는 허리춤에 감춘 청색 매듭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검집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이름은 자청이었다.

자청은 이번 임무를 위해 파견된 무리 중에서는 막내였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기감을 높여 봐도 주변에서는 조금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쯤 되니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게 착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자청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주변에서 느껴진 기척 때문이다.

고개를 힐끔 돌려 보니 그곳에서는 동료가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지?”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혼잣말을 뇌까린 것이다.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서 적을 찾고 있기에 동료가 근처에 올 리 없었다.

그런데 토끼 가면을 쓴 동료가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고 있다.

그때 토끼 가면을 쓴 무사가 답했다.

“북쪽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군. 같이 남쪽을 찾으라는 조장님이 명이네.”

“조장님의 명이라고? 조장님이 언제 그런 명령을 내렸지?”

“방금. 궁금하면 여기에 있는 명령을 확인해 보든지.”

토끼 가면이 서찰 하나를 들었다.

자청은 그 모습에 재빨리 동료에게 다가갔다.

사사-삭.

자청의 경공술도 경지에 오른 듯 보였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동료의 앞에 간 자청이 그의 손을 내밀었다.

동료는 아무렇지 않게 그 서찰을 내밀었다.

서찰을 확인하던 자청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조장의 필체가 아니었다.

거기에 내용이 이상했다.

“……‘속았지’라니? 그게 무슨 말…….”

자청은 말끝을 흐리며 검을 뽑았다.

스릉.

동시에 앞을 베었다.

휙!

백경의 동료 중 저런 수준 낮은 장난을 할 무인은 없었다.

자청의 검은 휑한 허공을 긋고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잘 속네.”

그 목소리에 자청은 검으로 반응했다.

획!

검은 다시 허공을 베었다.

순간 귓가에 파공성이 들려왔다.

팡!

그 소리와 함께 자청은 다섯 걸음 정도 밀렸다.

백경에서 수련한 내공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정신을 잃고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자청은 검을 내밀고 앞을 바라봤다.

“대체 누구냐?”

“그건 비밀이야.”

“비밀이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너희 백경도 정체는 말해 주지 않잖아. 그러니까 나도 비밀이야.”

“우리 백경을 안다고?”

“아니까 이런 가면과 복장을 준비했지.”

상대는 토끼 가면과 흰색 무복을 툭툭 쳤다.

자청은 눈을 가늘게 떴다.

상대는 격장지계를 쓰는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속을 긁어 놓는 저렴한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자청은 이를 악물고 상대를 바라봤다.

흰색 무복에 토끼 가면을 쓰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자신이 속한 백경의 무사인 듯 보였다.

그런데 말하는 걸 보면 적이 분명했다.

자청은 재빨리 허리띠에 숨겨 놓은 조그마한 뿔피리를 찾았다.

물론 상대는 한빈이었다.

한빈은 그들과의 인사를 기습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만남을 통해 한빈이 얻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구결이었다.

한빈은 허탈하게 웃으며 조용히 앞을 바라봤다.

본래 백경의 토끼 가면들이 모여 있을 때는 모두에게 구결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상대를 마주하고 보니 구결을 나타내는 점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전에는 있었는데 막상 보니 구결을 나타내는 점이 사라졌다니?

사라진 구결은 어쩔 수 없는 일. 어떻게 하면 상대의 몸에 구결을 나타나게 할 수 있느냐가 한빈의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기습이었다.

기습해서 상대의 무공 수준을 완벽하게 끌어낼 수 있다면?

구결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습을 했는데도 구결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럿이 모였을 때만 구결이 나타나는 경우는 과연 어떤 상황일까?

한빈은 그 해답이 궁금했다.

한빈은 팔짱을 끼고 상대를 바라봤다.

구결을 획득하지 못한다 해도 상대에게 얻을 것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보였다.

음마혈녀를 통해서 받은 정보는 백경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였다.

백경과 대치한다는 또 다른 세력의 정보는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백경의 규모는 또 어떠한가?

부족 단위의 조직이라는 것까지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전체적인 규모 또한 오리무중이었다.

그만큼 백경은 암중 세력이었다.

오죽하면 십대세가와 구대문파 사이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을까?

화경의 고수가 발에 차이는 조직인데, 중원인들은 그들을 모른다고?

이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그런 조직이 바로 백경이었다.

그런데 백경의 무사에게 정보를 캐낼 수 있을까?

확률은 반반이었다.

정보를 위해서는 치밀한 설계가 필요했다.

고민도 잠시,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자청이 긴장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에 재미있다는 듯 한빈이 외쳤다.

“뒤를 조심하게!”

“뒤에 뭐가…….”

자청은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잠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바로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상대는 거리를 두 걸음가량 좁혔다.

거짓말로 시선을 유인하여 다시 기습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한빈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딱!

“뒤를 조심하래도.”

“안 속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청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다시 아차 싶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상대가 몇 걸음 더 가까이 와 있었다.

자청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다시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놀라 뒤로 물러서는 자청을 향해 한빈이 외쳤다.

“조심해!”

“또 속을 줄 알고……. 악!”

자청은 비명으로 말을 맺었다.

옆구리에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청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구리를 확인했다.

옆구리에는 장침 하나가 박혀 있었다.

순간 자청의 다리가 살짝 풀렸다.

자청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상대가 하나 더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최후의 수단을 써야 했다.

바로 구조 요청이었다.

청색 매듭을 달아 놓은 뿔피리는 딱 두 가지 효용이 있었다.

제대로 불면 구조 요청이지만, 거꾸로 불면 자살 도구도 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뿔피리를 꺼내는 것이 먼저였다.

주춤거리며 뿔피리를 찾던 자청이 눈을 크게 떴다.

허리춤에 잘 숨겨 놓은 뿔피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뒤쪽에 있던 설화가 뿔피리를 잡고 흔들며 외쳤다.

“이거 찾아요? 토끼 가면 언니?”

“대체 누구기에 내 이목을 가리고…….”

“값나가는 물건은 미리 챙겨 놓으라고 우리 공자님이 그러셨거든요.”

설화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한빈이 말했다.

“이제 제압해도 좋다.”

“네, 공자님.”

그 말과 함께 설화의 우혈랑검이 움직였다.

사사-삭.

눈 깜짝할 사이에 자청은 한빈과 설화의 협공에 제압당했다.

꽁꽁 묶인 자청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챙길 거 챙겼으면 죽여. 괜히 일행이 합류하면 골치 아프다.”

한빈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설화가 살짝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공자님, 살려 두면 안 될까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그냥 죽이기에는 우리가 백경의 정보를 잘 모르잖아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공자님이 원하시는 걸 다 찾은 것 같지도 않고요.”

“흠.”

“묘하게 저랑 같은 향기가 나서 그래요, 공자님.”

“살수의 향기가 난다고?”

“살수의 향기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조실부모하고 고생한 듯해서 그래요. 그리고 표정을 잘 보면 뭔가 안돼 보이기도 하고…….”

“그럼 마음대로 해. 잘 보이지 않는 곳에다가 치워 놔.”

“네, 공자님.”

설화가 한빈을 향해 포권하자 옆에서 대화를 듣던 자청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렸다.

파파박.

설화가 땅을 파기 시작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땅을 판 설화는 그곳에 자청을 넣었다.

순간 자청은 머리가 아찔했다.

살려 준다고 해서 상대에게 감복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생매장을 하려는 것이다.

상대는 자청의 의견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흙을 덮었다.

“자, 잠깐.”

“왜 그래요?”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자 자청이 다급하게 외쳤다.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살려 주는 거 맞아요.”

“이렇게 생매장하는 것이 살려 주는 거라고? 이런 악적들아!”

“생매장하는 게 아니라 보관하는 거예요. 귀식대법 정도는 할 줄 알잖아요.”

“귀식대법이라니?”

“흙으로 덮어 놔도 그 정도 무공이면 이틀은 살 수 있잖아요. 지금 여기서 목이 따이는 것보다는 삶의 희망을 이어 나가는 게 좋잖아요.”

“무, 무엇을 원하느냐?”

자청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 정도 소란이면 조장이 들이닥쳐야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주변에 아무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상대가 널찍하게 기막을 펼친 듯했다.

그 정도의 기막을 펼쳤다면 조장보다도 한 수 위가 분명했다.

조장보다도 고수가 어떻게 이런 치사한 방법을…….

자청은 지금 미칠 것 같았다.

처음 뿔피리를 찾았을 때는 목숨을 끊을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

상대가 처리하라고 했을 때만 해도 목숨이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살려 주겠다고 하니,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목숨이 소중해졌다.

이제는 살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신선이 되고 싶은 것도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백경이라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본래의 의도를 까마득하게 잊은 것만 같았다.

까마득하게 잊은 본래의 의도가 이제야 기억났다.

삶의 의지를 찾고 나니 지금 상황이 미칠 것만 같았다.

생매장이라니!

자청은 아무 말 없이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도 더는 흙을 던지지 않고 쪼그려서 자청을 바라봤다.

자청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설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혹시 돈 가진 거 있어요?”

“돈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일단 당과 살 돈을 챙기고 시작하고 싶어요.”

“돈은 풀려나면 주마.”

“얼마나 있는데요?”

“네가 일 년 동안 먹을 당과를 살 수 있을 돈이다. 그러니 풀어 줘라.”

“그럼 돈은 나중에 받고 일단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토끼 가면 언니.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거랑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묻을 거예요.”

“그,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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