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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96화 (582/621)

596. 예상 가능한 변고 (1)

문도희가 가리킨 곳은 장자명과 평혁빈이 있는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문도희의 지목에 장자명이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흠.”

그 모습에 문도희가 피식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 있는 백독문의 장자명 소협이 외부에서 깨달음이라도 얻어 왔는지, 여기 있는 독인들은 일초지적도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장자명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역시 미독 문도희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장난일까?

아니면, 장자명을 도와주려 함일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이 백독문의 앞마당에 중구난방으로 모여 있는 독인들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이런 계획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호승심을 자극해서 상하를 가릴 판을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고전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미간을 좁히며 눈썹을 실룩대던 독인들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짜고짜 장자명을 내세우는 문도희의 발언은 독인들의 호승심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너무 가소로웠다.

이곳에 모인 독인들은 중원에서 독 좀 쓴다는 문파의 대표자들이다.

그런데 백독문의 제자 중 하나가 밖에 나가서 배워 온 독으로 이곳을 평정하겠다는 말이 먹히겠는가?

그것은 호랑이가 모깃소리에 꿈쩍도 안 하는 것과 똑같다.

귀찮고 가소로울 뿐이지 그들의 호승심을 자극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문도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빠지실 분 있으면 손을 들어 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오? 어찌 저런 애송이와 우리가 붙을 수 있다는 말이오.”

적혈문의 문주가 푸른색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며 고개를 갸웃하자, 문도희가 말했다.

“뭐, 백독문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여흥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죠. 장 공자와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중 최고의 독인을 가려 보자는 거죠. 심심하지 않으세요?”

“흠, 그거라면 또 얘기가 다르잖소. 그냥은 재미가 없으니 한번 조건을 걸어 봅시다.”

적혈문주가 입맛을 다시자 문도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 장자명 소협이 어떤 판돈을 걸어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승자는 백독지회 동안 독인들의 수장이 되는 게 어때요?”

“백독지회의 최고 독인을 미리 뽑자는 말이요? 아직 백독문의 독인이 참석도 하지 않았는…….”

“저기 있잖아요, 장자명 소협. 저 사람도 백독문의 제자이니 백독문의 대표라 할 수 있죠. 그리고 대표를 내지 않은 백독문의 잘못이지, 그게 우리 잘못이겠어요?”

“오호,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아홉의 독사와 열 마리의 호랑이와 하룻강아지 한 마리라…….”

적혈문주가 입맛을 다셨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모두는 군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그들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이었다.

“그럼 적혈문에서는 이번 승부에 참가하시는 것으로 알겠어요. 다른 문파들의 의향은 어떤가요? 빠져도 뭐라 안 하겠습니다.”

문도희가 손짓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순간 독인들의 주변으로 대기가 공명했다.

우우웅.

독인들이 장자명을 보며 기세를 피워 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모두가 동시에 피워 내는 기세가 충돌해서 생긴 공명음에, 장자명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때 독인 중 어떤 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내기는 좋지만, 승부는 확실히 합시다. 백독지회에서 겨루던 방식을 그대로 쓰는 것이 어떻습니까?”

말을 마친 자는 뱁새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남해 쪽의 독문인 미송파의 독인이었다.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독공을 겨루는 것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는 해약이 있는 독만을 상대에게 하독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해약의 유무와 관계없이 상대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독은 사용 안 한다는 것이었다.

독술은 그만큼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기 쉽기 때문이다.

상대의 목을 향하는 칼날은 거둬들일 수 있어도, 목구멍을 지나간 독은 거둬들일 수 없는 법.

실수로 상대 문파의 목숨을 앗아 간다면 독인들의 유대 관계도 허물어질 터였다.

이렇게 계속해서 백독지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 많은 모임 중에서 불상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뱁새눈을 번뜩이던 미송파의 독인은 뒷짐을 지고 있다가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에 따라 수하들이 뒤쪽으로 빠졌다.

* * *

승부는 바로 시작되었다.

탁자를 하나 두고 양쪽으로 나란히 선 독인은 상대를 바라봤다.

지금 서 있는 자는 운남은 전사파와 적혈문주였다.

둘은 팔짱을 끼고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자 자신의 앞에 있는 술잔을 들이켰다.

적혈문주가 기분 좋게 웃었다.

“허허, 단장독을 야무지게 섞으셨구려. 이 정도면 안줏감으로는 딱이외다.”

“적혈문의 연혼액도 만만치 않구려. 이 정도의 독은 운남에서는 반찬에 불과하지요. 그럼 두 번째 독을…….”

전사파의 독인은 말을 멈추고 귀를 쫑긋했다.

그 모습에 적혈문주가 물었다.

“왜, 자신이 없으시오?”

“그게 아니라, 어디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소?”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시오?”

“아니, 분명히 비명을 들은 것 같아서 그러오.”

“이 근방에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그러오? 승부에 임하기 싫다면 술잔을 놓고 뒤로 물러서시오.”

“우리끼리만 있으니 더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들은 비명이 정확하다면 분명히 우리 중 하나의 비명일 테니 말입니다.”

“누가 위기에라도 빠졌단 말이오?”

“그건 모르지요. 정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다 비우고 증명하리다.”

말을 마친 전사파의 독인이 술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입술을 닦아 내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가 가 보고 오리다.”

“그러시든가…….”

적혈문주는 상대가 겁을 먹고 물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사파의 독인은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다른 독인들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때였다.

전사파의 독인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악!

그 소리에 독인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그때 적혈문주가 외쳤다.

“아마도 장난일 것 같소만!”

“전사파의 문도들은 귀가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밝지요. 그러지 않고서야 독충이 득실대는 운남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니까요. 아마 아까 들었던 비명도 장난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도희가 앞장섰다.

막 수풀로 들어가려는 순간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금지(禁地)]

문도희의 몸도 자연스럽게 멈췄다.

백독문에서 정해 놓은 금지였다.

저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랐다.

과연 가는 것이 맞을까?

문도희는 마른침을 삼킨 뒤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문파는 다르지만, 독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묶인 식구였다.

다른 문파의 어려움을 지금 모른 척하면 훗날 누가 자신의 문파를 도와주겠는가?

그때 적혈문의 문주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미독, 아무래도 좀 불길하네. 여기서 멈추는 것이…….”

“문주님이 저곳에 있다고 해도 저는 쫓아갔을 겁니다.”

“흠.”

적혈문주는 헛기침만 했다.

불길하지만, 일단 그녀의 말이 맞았다.

문도희는 뭔가 생각났는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장자명이 있었다.

백독문에 오면 장자명을 놀리는 맛에 사는 문도희였다.

문도희가 외쳤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짐을 지키고 있으시오! 오로지 독인들만 따르시오!”

장자명에게 하는 말이었다.

장자명은 백독문의 인물이지만, 그 주변에 있는 정파의 인물은 독에 대해서 문외한이 분명했다.

그들이 금지 안으로 따라온다면?

위험성은 배가될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돌리려던 문도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장자명이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모습이었다.

물론 장자명이 찾는 것은 한빈이었다.

묘한 상황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발생했다.

장자명이 보기에 이것은 작은 조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힘이었다.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는 장자명을 본 문도희는 피식 웃었다.

저리 겁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지운 문도희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가 앞장서자 다른 독인들도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얼마나 갔을까?

다시 비명이 울렸다.

악!

아까보다는 조금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비명이었다.

문도희는 재빨리 경공술을 최대한으로 펼쳤다.

누가 보면 풀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녀는 독인치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였다.

뒤에서 그녀를 따르던 독인들도 감탄을 자아냈다.

수풀 속에서 한참을 달려 들어간 문도희가 외쳤다.

“전사파의 문주가 쓰러져 있어요!”

그녀의 외침에 독인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러게 말이야.”

“그러고 보니 저건 중독 증상이 아닌가?”

독인들의 말대로였다.

전사파의 문주는 얼굴이 파래져서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문도희는 그의 상태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적혈문의 문주를 바라봤다.

“문주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뭐가 말입니까?”

“어떤 독을 쓰셨습니까?”

“미독 대협도 옆에서 듣지 않았습니까? 첫 번째는 연혼액을 넣었고 두 번째는 지음독을 섞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됐습니다. 전사파의 문자가 마신 독은 두 번째 독까지니까요. 그런데 증세가 연혼액이나 지음독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흠.”

“일단 해약부터 주시지요.”

문도희가 손을 내밀자 적혈문의 문주는 환약 한 알을 내밀었다.

환약을 받은 문도희는 재빨리 전사파 문주의 입에 환약을 넣었다.

환약은 그의 입술 사이로 녹아내렸다.

환약을 먹자 핏기를 찾는 듯했지만, 갑자기 전사파 문주가 몸을 들썩였다.

그러더니 피를 뿜어냈다.

“푸웁!”

그가 뿜어낸 피 분수가 주변을 덮었다.

순간 문도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재빨리 가부좌를 틀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독인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것도 잠시, 주변에 있던 독인들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픽. 픽.

마치 수수깡이 쓰러지듯 아무 힘 없이 땅에 뒹구는 독인들.

그나마 독공에 조예가 깊은 이들은 가부좌를 틀고 독기를 몰아내려 애를 썼다.

문도희는 살짝 눈을 떴다.

주변에는 가부좌를 틀고 독기를 막기 위해 애쓰는 독인이 삼분지 일이요.

힘없이 널브러져 있는 독인이 삼분지 이였다.

그때 문도희의 귓가에 적혈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독 대협, 이건 혹시…….”

“진혈독이 맞아요.”

“진혈독이라 함은…….”

“네, 금지된 그 독이죠. 나라에서도 금지했기에 중원의 독문들은 진혈독만은 쓰지 않죠.”

진혈독은 피를 매개로 독을 전염시킨다.

거기에 더해 온몸을 마비시키며 신체를 부패시키는 극독이었다.

그 전염성과 상상도 못 할 증세 때문에 국가에서는 그 독을 제조한 사람 혹은 문파를 반역죄로 다스린다.

덕분에 진혈독은 중원에서 사라진 지 백 년도 넘었다고 전해진다.

“말이 독이지, 그건 전염병이 아니오?”

“그러니 나라에서 금지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아니 대체 누가 진혈독을 백독지회에 가지고 들어온 거죠? 혹시 적혈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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