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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93화 (579/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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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빈은 눈썹을 꿈틀대며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여섯 명의 남녀가 가부좌를 한 채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악취는 그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과는 그들의 상태가 달랐다.

    숨은 쉬지 않지만, 아직은 사람의 윤곽이 남아 있었다.

    즉,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았든 죽었든,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말이었고.

    백독문에서 발생할 사건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단서 그 자체였다.

    일단 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빈은 조심스럽게 그들을 살펴봤다.

    머리카락, 피부, 그리고 악취의 정체 등 모든 것이 단서였다.

    그때 다가온 심미호가 눈앞에 광경을 바라보며 낮은 비명을 흘렸다.

    “헛, 저 시체는 대체 뭔가요?”

    “아직 안 죽었으니까 지레짐작하지 마. 그건 산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시체 썩는 냄새예요.”

    심미호가 코를 막았다.

    그 모습에 한빈이 아래쪽을 가리키며 횃불을 비추었다.

    “여기 봐, 냄새는 여기서 나는 거야. 심 부대주.”

    “대, 대체 이게 뭔가요?”

    “배설물이지, 뭐긴 뭐야!”

    “오물이 왜 저기에?”

    “저게 바로 안 죽었다는 증거지. 소변 냄새로 봐서는 배출한 지 얼마 안 된 게 분명해. 거기에 피부 위로 솟아오른 핏줄 보이지?”

    “네, 보여요. 그건…….”

    “피가 굳지 않았다는 증거지. 모든 게 이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야.”

    “그럼 지금 왜 저러고 있는 거예요? 혹시 점혈을 당한 건가요?”

    “일단 횃불 좀 들고 있어 봐, 심 부대주.”

    “존명.”

    심미호가 횃불을 받아 들자 한빈은 재빨리 그들 중 하나를 보며 코에 손가락을 댔다.

    미세한 호흡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눈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한빈이 손가락을 갖다 대자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상태를 살펴본 한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식대법.”

    “귀식대법이라니요?”

    “이자들은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저건 귀식대법이 아니잖아요.”

    “비슷한 거지. 아마도 우리 말을 듣고 있을걸…….”

    “그런데 왜 눈을 안 뜨는 거죠?”

    “자세히 보면 눈을 뜨고 있어. 사실 눈을 뜨고 있다는 게 문제지.”

    “눈을 뜨고 있는 게 왜 문제라는 거예요?”

    “심 부대주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얼마나 참을 수 있지?”

    “흠, 그건……. 안 해 봐서 모르겠네요, 주군.”

    “보통 사람들이 한 시진에 눈을 천 번 정도 깜빡이지. 무공을 익힌 자라면 보통 십분의 일, 즉 백 번 정도를 깜빡이지. 그런데 장시간 깜빡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돼.”

    한빈은 상대의 눈을 가리켰다.

    심미호는 그자들의 눈을 보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귀, 귀신…….”

    “귀신이 아니야. 무공을 익힌 자들도 장시간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거지.”

    한빈이 가리킨 자의 눈은 시뻘게져 있었다.

    마치 빨간색 염료를 칠해 놓은 것 같았다.

    일반 백성이 눈앞의 광경을 봤다면 아마도 바로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앞에 있는 자의 몰골은 누가 봐도 귀신이 맞았다.

    심미호가 표정을 수습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빨간 눈을 한 것이 눈을 깜빡이지 않아서라는 거죠? 그런데 저렇게 될 때까지 왜 눈을 깜빡이지 않는 거죠?”

    “타의에 의한 귀식대법이지. 즉, 금제에 당한 게 확실해.”

    금제란 행동을 제약하는 수법을 일컫는 총칭이었다.

    심미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들이 누구이기에 이런 감옥에서 금제를 당한 거예요?”

    “흠, 일단…….”

    “말씀하세요, 주군.”

    “잠시 살펴봐야 할 것 같아. 여기에서 성급하게 움직이면 단서가 날아갈 수도 있어. 그러니 횃불 좀 잘 들고 있어, 심 부대주.”

    한빈의 말에 심미호는 눈치껏 횃불을 이리저리 옮겼다.

    심미호는 지금 한빈의 태도에 적잖게 놀랐다.

    자신이라면 이런 상황을 보고 일단 자리부터 피할 터였다.

    그런데 한빈은 마치 이런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이곳에서 단서를 찾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아니, 이 상황을 모두 예견했음이 틀림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심미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녀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수집했는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손 위에 두고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순간 심미호의 손이 살짝 떨렸다.

    흔들리는 횃불.

    횃불이 흔들린 덕분에 한빈의 앞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 어둠이 한빈에게는 행운이었다.

    상대의 관자놀이에서 어둠을 틈타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혈관을 찾은 것이다.

    철저하게 금제를 당해 눈도 깜빡이지 못하는 상태인데, 혈관이 꿈틀거린다?

    생각을 마친 한빈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이 지나자 뒤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사-삭.

    은밀한 발소리에 심미호가 살짝 경계한다.

    그것도 잠시, 심미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설화였다.

    뒤쪽 행렬에 있던 설화가 한빈의 신호에 반응한 것이다.

    설화의 손에는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설화가 반사적으로 보따리를 풀고 지필묵을 정렬했다.

    그 모습에 심미호가 물었다.

    “서, 설마……. 이자들과 계약서를 쓰시려고요?”

    “정신도 없는데 어떻게 계약서를 써?”

    “그럼 대체 뭐 하시려고요?”

    “잠시만 기다려 봐, 심 부대주.”

    말을 마친 한빈은 재빨리 종이 위에 글자를 적어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필휘지로 문장을 적었다.

    한빈은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것을 심미호에게 전했다.

    “심 부대주, 장 의원 좀 데려와. 그리고 여기에 적힌 약재와 치료에 쓸 도구 모두 가져오라고 해.”

    “존명.”

    “횃불은 두고 가.”

    “아, 알겠어요. 주군.”

    설화에게 횃불을 건넨 심미호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빈은 그사이에 죽은 듯 앉아 있는 자의 완맥을 잡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진기를 흘려보냈다.

    좁쌀 한 톨로 안 되는 미세한 양의 내공에, 상대의 관자놀이가 다시 꿈틀했다.

    작은 지렁이 굵기의 물체가 관자놀이에서 사라졌다.

    그러고는 흘러가듯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한빈의 미세한 진기를 알아채고 피한 것 같았다.

    한빈은 이제 확신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횃불을 들고 있던 설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힐끔 옆을 본 한빈이 물었다.

    “혹시 무슨 증상인지 눈치챘느냐?”

    “아니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공자님.”

    “그럼 왜 고개를 끄덕인 거지?”

    “그냥요.”

    “허.”

    한빈이 허탈하게 웃자 설화가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심미호가 장자명을 데리고 왔다.

    그는 관 속에 넣어 놓은 약재를 추린 후, 치료 도구가 든 봇짐을 들고 달려왔다.

    한빈의 앞에 있는 반송장을 본 장자명의 반응은 심미호와 비슷했다.

    “저, 저건 혹시 강시…….”

    “아닙니다. 금제에 걸린 것일 뿐입니다.”

    “무슨 금제이기에 사람이 저렇게 됩니까? 저건 분명히 독은 아닙니다.”

    “네, 독이 아닌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중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흠, 정말 아는 사람이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그럼 안심하고 혈고를 제거하겠습니다.”

    “혈고라니요?”

    “지금 이자들의 상태는 혈고 때문인 게 확실합니다. 아마도 태극검제에게 혈고를 쓴 자들이 범인일 겁니다. 일단 향로부터 준비하시죠.”

    한빈의 말에 장자명이 재빨리 향로를 꺼내 놓았다.

    그러고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약재를 향로 속에 넣었다.

    장자명은 향로에 약재를 털어 넣고는 가부좌를 튼 이들을 바라봤다.

    피골이 상접한 것으로 봐서 그들은 죽기 직전이었다.

    장자명은 그중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니, 저 중에 자신의 사매만 없으면 그만이었다.

    준비를 마친 장자명이 물었다.

    “이걸로 혈고를 제거할 수 있는 겁니까? 팽 공자.”

    “확률은 반반입니다. 혈고의 종류에 따라 제거 방법이 다른 건 장 의원도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장자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빈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보통 의원들은 혈고에 대해서 모른다.

    그런데 한빈은 혈고에 대해서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혈고뿐이 아니었다. 독에 대해서도 백독문 출신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저 나이에 독과 혈고에 대해서 저 정도로 섭렵하기란 쉽지 않다.

    장자명은 한빈에게 홍칠개 말고 다른 스승이 있으리라 추측했다.

    분명히 독과 혈고 등 무림의 음지에 대해서 가르쳐 준 사부가 있을 것이다.

    장자명은 이번 일이 끝나면 꼭 물어보리라 다짐했다.

    그때였다.

    장자명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그곳은 여섯 명의 남녀 중 중앙에 있는 인물이었다.

    머리 길이와 복장으로 봐서는 여인이 분명했다.

    얼굴은 모르는 얼굴인데, 머리 장신구가 유난히 눈에 익었다.

    “……사매?”

    여인의 머리에 있는 장신구는 분명히 장자명이 사매에게 준 선물이었다.

    커다란 꽃 위에 한 쌍의 나비가 뛰노는 모양은 섬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장인이 만든 것이다.

    꽃은 은으로 만들었으며 나비는 금으로 만든 장신구였다.

    저 장신구를 하나 사려고 일 년간 술도 끊었었다.

    자세히 보니 어렴풋이 자신이 알던 사매의 얼굴 윤곽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순간 장자명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부터 사매와 함께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함께 잠자리를 잡으러 갔다가 독물한테 물려 죽을 뻔했던 일.

    장자명이 잘못한 일을 사매가 뒤집어쓰고 독방에 갇혔던 일.

    장자명이 생각하는 사매는 관음보살의 현신과도 같았다.

    외모도 외모지만, 그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사매의 마음씨였다.

    장자명이 사매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향로에 불이 붙었다.

    화르륵.

    솟아오른 불이 꺼진 후 향로에서 약재들이 타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장자명의 머릿속에 한빈이 한 말이 떠올랐다.

    분명 확률은 오 할이라고 했다.

    저기에 있는 사람들이 단순히 사문의 사람들이라면 그 오 할의 확률도 감지덕지했다.

    하지만 저 사람 중 사매가 끼어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 할의 확률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혈고를 잘못된 방법으로 제거하려고 들면 신체 안에서 터진다.

    동시에 오장육부가 녹아내린다.

    이게 오 할의 확률로 일어날 일이었다.

    순간, 장자명은 향로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향로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서였다.

    불을 끄고 다시 정확한 제거 방법을 찾는 것이 맞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장자명의 목덜미를 눌렀다.

    툭!

    동시에 장자명이 석상이 되었다.

    뒤쪽에서 심미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장 의원. 주군이 이번 치료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혈을 제압하라고 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장자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심미호가 아혈까지 제압했기 때문이다.

    그때 한빈이 옆으로 손을 내밀자 설화가 은침 몇 개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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