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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92화 (578/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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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명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한빈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생문이 닫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장 의원.”

    “닫혔어도 원래 생문인 곳과 외부인을 차단하려고 사문으로 만든 곳은 다르지. 오른쪽으로 가세. 그곳은 절대 안 되네.”

    “아닙니다. 여기로 가겠습니다.”

    한빈이 씩 웃으며 가운데 길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장자명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말려야 하나 이대로 두어야 하나를 판단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한빈이 틀린 적이 있었던가?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백독문 출신인 자신에 보기에 한빈이 가리킨 방향은 개작두 아래로 목을 들이미는 것과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겠나?”

    “이쪽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결정할 거면 왜 나에게 안내를 맡긴 건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안전하게 오지 않았습니까?”

    “허.”

    “저를 믿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장 의원님.”

    “내가 언제 안 믿는다고 했나? 허, 사람을 의심하기는…….”

    “그럼 됐습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관을 끌고 있는 심미호가 한 발 물러섰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관 뚜껑을 열었다.

    안쪽을 살피던 한빈은 조심스럽게 물건들을 밖으로 꺼냈다.

    한빈은 관의 바닥에서 쇠붙이를 꺼냈다.

    나무 자루에, 앞쪽에 쇳덩이를 단 물건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곡괭이였다.

    한빈은 그 곡괭이를 심미호에게 건넸다.

    “자, 여기. 심 부대주가 괭이질 좀 해야겠어. 맡겨도 되지?”

    “흠,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맡겨 주세요.”

    심미호가 미소를 피워 냈다.

    이제까지 맡은 임무 중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이 땅굴 파기였다.

    황보세가에서도 그랬고 사천당가에서도 심미호는 땅굴을 파는 일을 맡았었다.

    오죽하면 심미호에게 두더지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심미호는 그 별명을 자랑스러워했다.

    곡괭이질에 매진한 결과, 심미호는 곡괭이에 진기를 실을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도와 곡괭이 중 손에 익은 병장기를 택하라면 곡괭이를 택할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곡괭이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혈맹호대의 부대주가 곡괭이를 들고 다닌다면 강호에 소문이 파다하게 날 것이다.

    심미호뿐 아니라 적혈맹호대까지 놀림감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곡괭이를 만지고 싶어도 못 만졌다.

    심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건네받은 곡괭이를 쓰다듬었다.

    마치 보물을 대하는 듯, 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하북제일의 검도 아니고 하북제일의 도라고도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북제일의 곡괭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다시 곡괭이를 쥔 심미호는 기분 좋게 자루를 빙빙 돌렸다.

    입가에는 미소를 피워 내면서.

    “손에 착착 감기네요.”

    “다행이군. 그거 정철민 어르신한테 특별히 부탁한 거야.”

    “혹시 현철로 만든 거예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심 부대주의 꿈을 펼쳐 봐.”

    “네, 열심히 할게요.”

    심미호는 곡괭이 자루를 잡았다.

    순간 곡괭이가 공명하듯 울기 시작했다.

    우웅. 웅.

    푸른 강기가 곡괭이의 머리에 맺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자명은 아연실색하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곡괭이를 병장기처럼 쓰는 무인은 심미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곡괭이를 건넨 한빈의 의도였다.

    장자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살폈다.

    그것도 잠시, 장자명은 한빈의 옆에 바싹 붙었다.

    “팽 공자,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지나가면서 발굴할 게 있습니다.”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여긴 다른 곳도 아니고 백독곡입니다. 땅을 잘못 팠다가는 우리 목숨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건…….”

    “또 비밀입니까?”

    “비밀은 아니지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물건입니다. 그 상황에 따라 저희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확인이 필요하지요.”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죽을까 봐 두려우십니까?”

    “제가 죽음을……. 네, 두렵지요. 여기까지 왔는데, 사매 얼굴은 보고 싶습니다.”

    장자명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한빈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제가 뭐라 했습니까?”

    “…….”

    장자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진료 때문에 밤낮이 없던 그였다.

    길을 안내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지요. 그걸 우리는 금의환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게 정말이었습니까?”

    장자명이 미간을 좁히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 줄 단서가 보이지 않았다.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를 절대적으로 믿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백독문에 다 와 가는데, 제가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준비를 해야지요.”

    “그 준비가 곡괭이라는 말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팽 공자의 속마음은 읽을 수가 없군요.”

    장자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뒤쪽으로 한 발 물러났다.

    독기가 가득 찬 이곳에서 곡괭이질을 한다는 것은 사실 위험한 행동이다.

    이곳으로 들어선 것이 개작두 아래로 목을 내민 것이라면, 곡괭이질을 하는 것은 스스로 개작두의 손잡이를 내리는 행위였다.

    그때 곡괭이 자루를 꽉 잡은 심미호가 물었다.

    “어딜 팔까요?”

    “저기!”

    말을 마친 한빈이 하얀색 알을 튕겼다.

    백발백중의 묘리가 담겨 있는 초식이었다.

    처음에는 바둑알로 보였는데, 바닥에 닿자 푸석하고 흩어졌다.

    순간 바닥의 검은 점들이 스르르 흩어졌다.

    그것들은 점이 아닌 독물이었다.

    검은색 거머리 같은 것들이 갑자기 흩어지자 흑색 바닥이 드러났다.

    한빈이 뿌린 것은 피독주의 재료로 쓰이는 상아 가루였다.

    심미호는 곡괭이로 아래를 파기 시작했다.

    푹. 푹.

    그녀의 곡괭이질은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몇 번 움직였는데 무릎까지 올 정도의 구덩이를 팠다.

    그때 한빈이 말했다.

    “거기는 그만.”

    “네, 알았어요. 주군.”

    “일단 앞으로 계속 간다.”

    한빈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검은색 바닥을 걸어가는 한빈은 주변을 둘러봤다.

    한빈은 나무와 바위 등 지형지물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한빈이 이렇게 지형지물을 살피며 심미호에게 곡괭이질을 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

    전생에 한빈은 이곳 화련산에 온 적이 있었다.

    화련산에 중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때 발견한 것이 바로 비밀 공간이었다.

    석벽으로 덮인 비밀 공간에서 남녀의 시체를 찾았었다.

    다 썩은 의복 중 일부분과 남은 유골로 짐작건대, 그들은 백독문의 사람들이 분명했다.

    당시에는 백독문이 멸문한 상태이기에 상부에 보고만 하고 넘겼었다.

    그때 비밀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독기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땅바닥이 그대로 드러났었고, 땅바닥 위에 흙들이 바람에 쓸려 날아간 덕분이었다.

    길 한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석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 숨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감금당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유골의 상태로 봐서는 생매장당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만약 그곳에 유골이 없다면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고, 유골이 있다면 백독문 내에서 일이 벌어졌다고 봐야 했다.

    한빈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렇게 수고를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곳의 위치를 정확히 떠올릴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빈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으로는 세 갈래 길 중 가운데 길이었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가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고 보니 전생의 기억 속에서 떠올린 장소의 모습과 비슷한 곳이 너무 많았다.

    몇 번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자 장자명은 초조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밤에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해가 저문 상태에서 이곳에 남아 있다가는 독물들에 녹아내릴 수도 있었다.

    최고의 피독주라고 하는 만독주를 물고 있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을 터였다.

    캄캄한 밤에 검은색 독물들이 공격해 온다면?

    장자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를 흔들던 장자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상황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장자명의 기억으로 이곳은 분명히 사문이었다.

    독진의 사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

    그런데 생각보다 독 기운이 옅었다.

    이 정도면 피독주가 없어도 이곳을 지나칠 수 있을 정도였다.

    사 공자는 이런 상황을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장자명은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때 한빈이 하얀 알맹이를 던졌다.

    역시 백발백중의 수법으로 던진 알맹이는 한빈이 원하는 곳에 정확히 박혔다.

    퍽.

    그곳에 하얀 자국이 남자, 심미호는 그곳으로 달려가 아무렇지 않게 곡괭이로 그곳을 파냈다.

    심미호가 막 곡괭이를 내리쳤을 때였다.

    이전과는 다른 소리가 났다.

    쾅!

    흙에 꽂히는 소리가 아니라 단단한 물체에 닿은 소리였다.

    심미호는 재빨리 곡괭이질을 멈추고 한빈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한빈이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심미호는 조심스럽게 곡괭이로 흙을 긁어냈다.

    회색 석판이 보이자 심미호가 말했다.

    “공자님, 여기 이상한 석판이 있어요.”

    “일단 석판을 들어내 줘.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한빈이 손짓하자 심미호가 석판의 가장자리에 곡괭이를 끼워서 들었다.

    드르륵.

    곡괭이에 석판이 딸려 나왔다.

    석판을 옆으로 옮기고 나자 한빈이 전생에 보았던 비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장자명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백독곡에 이런 공간이…….”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그리고 단단히 마음먹으시죠. 어떤 상황이 와도 놀라지 마십시오, 장 의원.”

    “그게 무슨 말입니까? 팽 공자.”

    “조금 놀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빈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갑작스러운 한빈의 모습에 장자명이 헛숨을 쉬었다.

    “허, 대체 이 아래에 뭐가 있기에……. 이번에도 비밀인가요?”

    “비밀은 아닙니다. 제가 추측하는 것보다는 일단 확인해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시지요, 팽 공자.”

    장자명이 표정을 수습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한빈은 통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전생에 기억하고 있는 비밀 공간은 어른의 걸음걸이로 이십 걸음 정도 되는 크기였다.

    거기에 손을 뻗으면 천장이 닿을 정도.

    한빈은 일단 손을 뻗어 봤다.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았다.

    전생에 왔던 공간이 맞는 것 같았다.

    한빈은 천천히 걸어갔다.

    스무 걸음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꽤 멀게 느껴졌다.

    한빈이 장자명에게 단단히 마음먹으라고 한 이유는 전생에 발견한 유골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 유골 중 하나가 장자명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매라면?

    아마 장자명은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을 터.

    천천히 걸어가던 한빈이 코를 실룩였다.

    묘한 악취 때문이었다.

    순간 한빈은 구걸십팔보를 펼치는 동시에 횃불에 불을 붙였다.

    사사-삭.

    눈 깜짝할 사이에 통로의 끝에 다다른 한빈의 눈이 커졌다.

    “대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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