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82화 (568/621)
  • 582. 갈림길 (2)

    다른 건 몰라도 음식만은 둘을 믿을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로 한빈의 뜻을 알아듣는 설화였지만, 요리에 대한 재능은 젬병이었다.

    그 모습에 심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아도 조호를 딸려 보냈습니다.”

    “잘했어, 심 부대주.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네.”

    “누구 수하인데요.”

    심미호가 입가에 가는 호선을 그렸다.

    그때였다.

    장자명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휴, 역시 팽 공자와 있으면 한 번씩은 죽을 고비를 넘기는군요.”

    “그래도 이번에는 무난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무난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팽 공자도 죽을 뻔하고 저희도 죽을 뻔했습니다. 저놈들의 뿔에 받히기라도 했으면…….”

    장자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웃었다.

    “하하, 잘 끝났으니 다행이지요.”

    “그런데, 아쉽기도 합니다.”

    “아쉽다니요?”

    “독각서우의 뿔 하나만 얻어도 소원이 없겠는데…….”

    장자명이 독각서우가 떠난 자리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표정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자 보따리가 생각난 행인 같은 표정이었다.

    독각서우의 뿔은 부르는 게 값.

    독인뿐 아니라 의원들에게도 꿈의 약재였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독각서우는 정해진 장소에서 죽는다. 그리고 그 장소는 놈들만의 비밀이다.

    코끼리의 어금니인 상아를 발견하려면 그 무덤을 찾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독각서우의 뿔인 독각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덤을 찾지 못하면 발견하기는 불가능했다.

    장자명은 뭐가 그리 아쉬운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뭘 그리 찾으십니까? 장 의원.”

    “떨어진 독각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죠.”

    “그럴 리가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목숨을 건 약초꾼들이 이곳 추룡산맥의 초입에 몰려들었을 겁니다.”

    “팽 공자는 독각서우를 길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놈들이 여기에 선물로 갖다 놨을지 어떻게 압니까?”

    “하하. 제가 운이 좋아서 놈들을 길들인……. 아니 길들인 게 아니라 정확히는 친구가 된 겁니다. 그나마 서로 적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선물을 받을 사이는 아니랍니다.”

    한빈의 말은 반 정도는 진심이었다.

    놈들과 소통한 것은 감언이설의 효과 때문.

    효과가 없어지고 나면 놈들과의 관계가 지금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한빈이 모두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빈도 독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코끼리의 무덤에서 상아를 찾듯.

    한빈은 독각서우의 무덤에서 독각을 채집하기로 했다.

    백년열화초와 함께 이곳에서 가져가야 할 물건이 바로 독각이었다.

    백독곡의 곡주와 협상을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얻어야 할 물건.

    한빈은 이것에 대해 대비를 해 놨었다.

    독각서우와 마주칠 때 한빈은 우두머리에게 추종향을 묻혀 놨었다.

    우두머리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독각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이었다.

    계획은 지금까지 순조로웠기에 한빈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한빈의 표정을 본 장자명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아직 독각을 포기 못 한 것 같았다.

    “쩝, 놈들에게 하나만 부탁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를 너무 높이 평가하시는 게 아닙니까?”

    “독각서우를 길들일, 아니 친구로 삼을 정도면…….”

    장자명이 아쉬운 듯 한빈을 바라봤다.

    하지만 말을 맺지는 못했다.

    한빈이 휘적휘적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뒤쪽에 있던 장자명이 외쳤다.

    “팽 공자, 어딜 가나? 같이 가세!”

    “그럼 따라오시지요.”

    한빈이 손짓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렇지 않게 가는 것 같아도 한빈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한빈이 향한 곳은 우두머리가 남긴 추종향의 흔적을 따라서였다.

    * * *

    같은 시간 백독곡.

    검은 안개를 뚫고 평범한 마차 하나가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평범한 마차와는 달리, 마부석에 앉아 있는 이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마부석에 앉은 이는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입었다.

    주름 한 점 없이 깔끔한 무복은 마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거기에 마부는 얼굴이 쭈글쭈글한 노인이었다.

    검은 무복을 입지 않았다면 신선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복장.

    더 이상한 것은 마부의 표정이었다.

    그는 불안한 듯 연신 눈썹을 꿈틀대면서도 마치 웃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가는 표정이었다.

    검은 안개를 뒤로한 채 달려오던 마차는 거침없이 흙탕물이 가득한 골짜기 사이를 달렸다.

    마차에는 제법 무거운 짐이 실려 있는지 흙탕물 위에 깊은 흔적을 만들어 냈다.

    그 무거운 마차를 끌고 있는 것은 붉은색의 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차는 골짜기와 어울리지 않은 거대한 대문의 앞에서 멈췄다.

    마부는 조용히 현판을 바라봤다.

    검은색의 바탕에 하얀 글씨가 유독 눈에 띄는 현판이었다.

    [백독문(白毒門)]

    이곳이 독공에 있어서는 사천당가와 함께 무림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백독문이었다.

    그 현판을 본 마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부는 마차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대신에 마차에 꽂혀 있던 쇳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대문을 향해서 던졌다.

    평범한 동작에 비해 쇳조각은 가공할 기세를 피워 내며 대문을 향해 날아갔다.

    쇳조각은 급기야 대문의 한가운데에 꽂혔다.

    푹!

    직각으로 꽂힌 쇳조각이 진동음을 내며 떨다가 멈췄다.

    쇳조각은 다름 아닌 호패였다.

    이런 난리가 났는데, 이곳의 주인이 모를 리는 없었다.

    백독문의 대문이 바로 열리고 흰색 무복의 무사들이 뛰어나왔다.

    독인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갈한 복장이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무사가 한 발 앞으로 나오더니 마부를 향해 소리쳤다.

    “뉘시오? 말하지 않는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 밝히지 않는다면?”

    마부가 무사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그 기운이 제법 강렬했는지 우두머리 무사가 허리에 찬 검을 움켜잡았다.

    스륵.

    검집을 살짝 기울인 무사는 언제라도 검을 뽑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때 마부가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곧게 뻗었다.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마부의 기세는 더욱 강렬해졌다.

    이제는 지풍이라도 쏘아 낼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두머리 무사는 그제야 마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알아챘다.

    마부의 손가락은 무사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대문에 꽂힌 호패를 가리킨 것이었다.

    우두머리 무사는 마부를 경계하며 대문에 꽂힌 호패를 살폈다.

    맨손으로 호패를 잡으려던 우두머리 무사는 멈칫하더니, 품에서 은빛이 감도는 장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 호패를 뽑았다.

    호패는 제법 묵직했다.

    묵직함에 살짝 놀라던 우두머리 무사의 눈이 커졌다.

    호패에 적힌 문구 때문이었다.

    [백룡(白龍)]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다.

    머리를 자극하는 것이, 분명히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누굴까.

    우두머리 무사는 백독문의 대사형 조기명이었다.

    그들은 성은 다르지만, 같은 배분에서는 돌림자가 같았다.

    그는 다름 아닌 장자명과 같은 배분에 있는 백독문의 제자였다.

    조기명은 호패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경험으로 따지면, 이곳에서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 이름에 그는 적잖게 당황했다.

    그때 우두머리 무사의 뒤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험.”

    그 소리에 조기명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포권했다.

    “사숙부님,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냐?”

    “이걸 보십시오. 저기 계신 고인이 저희 대문에 이걸 꽂았습니다.”

    조기명이 호패를 내밀었다.

    호패를 받은 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조기명의 사숙으로, 백독문의 문주의 사제였다.

    이름보다는 독호(毒狐)라는 별호가 유명한 독인이었다.

    호랑이 ‘호’가 아닌 여우 ‘호’를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용독술 때문이었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상대를 중독시키는 독인 중 하나였다.

    무작정 상대와 독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분석하고 힘에서 밀린다 싶으면 아예 승부를 포기하는 독인이었다.

    덕분에 그는 독공을 겨루는 자리에서 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의 행동을 얄팍하다고 놀리는 이들도 있었다.

    여우라는 동물보다 그를 표현할 단어는 드물었다.

    물론 독호 자신도 자신의 별호에 만족하고 있었다.

    “어디…….”

    호패를 확인하던 독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호패를 조기명에게 넘긴 후 마부를 향해 깊숙이 포권했다.

    “북해의 고인께서는 어찌 먼 길을 오셨습니까?”

    “자네가 독호라 불리는 이군.”

    “네, 맞습니다. 백룡에서 오신 분이 어찌 저를 아십니까?”

    독호는 상대에게 정중히 물었다.

    그때 옆에 있던 조기명의 표정이 찬물에 들어간 쇳물처럼 굳어졌다.

    백룡의 이름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백룡은 백독문이 개파하기 전 있었던 조직이었다.

    백독문의 시조가 되는 곳이긴 해도 이제까지 교류가 없었던 곳이다.

    그의 사부와 사숙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약 밖에서 백룡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알은척도 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말이다.

    백독문의 문주와 사숙이란 사람들은 괴팍하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리 말한다는 것은 백룡이란 곳이 껄끄럽다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룡에 대해서는 조기명도 아는 바가 없었다.

    사부와 사숙이 그곳의 얘기를 꺼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부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흰 수염이 가늘게 흔들린다.

    묘한 웃음의 끝에 마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여기까지 왔겠는가?”

    “흠.”

    “백룡에서 온 분이라고는 하나 일단 용건은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일단 자네 문파에 있는 물건의 목록을 내놓게!”

    마부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독호도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만약 안 내놓는다면 오늘 나는 백독문을 이곳에서 지울 터이네.”

    마부가 손바닥을 펼쳤다.

    푸른 기운이 손바닥 안에서 일렁였다.

    그 모습에 무사들 모두가 검을 빼어 들었다.

    스릉.

    스릉.

    찬바람이 귓가를 에는 것 같은 서늘함.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졌다.

    그때 독호가 팔을 들어 백독문의 무사들을 저지했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조기명이 눈썹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독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어서 문주님을 불러오거라.”

    “알겠습니다.”

    조기명이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움직임에도 마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마차의 문이 열렸다.

    스륵.

    문이 열리고 백색 무복의 여인이 나왔다.

    솜씨 좋은 석공이 얼음을 깎아 미인상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 독호가 눈을 크게 떴다.

    마부를 보고도 놀라지 않던 독호의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여인은 천천히 독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독호는 한기가 밀려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