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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77화 (563/621)

577. 기연은 구결을 싣고 (3)

거대한 독각서우와 대결을 이어 나간 지 정확히 반 시진이 지났을 때였다.

눈앞에 있는 무소의 천적이 용린검법이라는 것을 한빈은 알았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천급 구결 감(甘)을 획득하셨습니다.]

[……]

[천급 구결 언(言)을 획득하셨습니다.]

연달아 들어오는 구결!

한빈은 놈의 무시무시한 기세를 생각하면 생각할 수 없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용린검법의 허장성세가 높은 확률도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을 펼치면 그중 하나는 적중했다.

덕분에 한빈은 벌써 세 개의 천급 구결을 모았다.

[천급 – 대(大), 이(利), 언(言), 감(甘)]

[알 수 없는 구결 : 삼(三)]

이제 천급 초식 완성까지 남은 구결은 몇 없다.

물론 운이 좋을 경우였다.

만약에 구결의 조각이 맞지 않는다면?

그 후 몇 번을 더 시도해야 하나의 천급 초식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독각서우의 뿔에 황금빛이 흐려졌다.

동시에 구결도 흐려진다.

정확히는 흩어진다고 해야 할까?

마치 선천진기를 다 뽑아 쓰고 쓰러지는 고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급기야는 한빈과 마주했던 독각서우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털썩.

이제는 천급 초식의 완성까지 남은 것은 구결 하나!

한빈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전광석화!’

‘일촉즉발!’

휙!

한빈의 검이 닿기 전에 점은 사라졌다.

“휴, 이런…….”

한빈은 허탈한 눈빛으로 쓰러진 무소를 바라봤다.

무시무시했던 독각서우가 이제는 평범한 무소로 보일 뿐이었다.

무소라는 것이 중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아니었다.

평범한 무소를 본 사람들이라면 위압감을 느끼기 마련.

그런데 지금 쓰러진 놈에게는 그런 위압감 따위는 없었다.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니 애처로운 느낌까지 받았다.

놈은 구결을 아낌없이 퍼 준 영물이었다.

하지만 한빈은 아직 구결에 대한 갈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

물론 측은지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놈이 조금만 버텼다면…….

조금만 버텼다면 조금 더 많은 구결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운만 좋으면 제법 많은 수의 천급 초식도 완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저렇게 쓰러지다니! 휴…….”

한빈은 한숨을 쉬었다.

천급 구결을 취하는 것만으로 저리 쓰러질 줄을 몰랐다.

한빈은 순간 눈을 빛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빈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무공이 있었다.

바로 용린검법 속의 기괴한 초식들이었다.

공격과 방어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공이 담겨 있는 비급이 아니던가?

지금 떠오르는 초식은 바로 하나였다.

한빈은 쓰러진 독각서우의 정면에 섰다.

자세히 보니 검은 뿔도 평범한 무소의 뿔처럼 색이 변해 있었다.

놈은 독을 내공으로 사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기사회생!’

순식간에 공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기사회생으로 타인을 구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중독되어 죽어 가던 청화를 살린 것도 기사회생이었다.

물론 사람이 아니라 영물에게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통할까?

이미 죽었다면 내공만 낭비한 결과가 될 터였다.

아직 기사회생의 초식을 다 펼치지 않았을 때였다.

뒤쪽 동굴 입구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쿠르릉!

소리는 들렸지만, 한빈은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앞에 있는 놈을 치료해서 마지막 구결을 획득하는 것이 한빈의 목표.

지금은 그 목표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이것은 측은지심 같은 것이 아니었다.

구결에 대한 순수한 열망.

만약 쓰러진 독각서우가 한빈의 속마음을 안다면 벌떡 일어나서 뿔을 들이댈 일이었다.

한빈의 행동은 마치 소가 풀을 되새김질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번 계획이 성공한다면 한빈은 소가, 독각서우는 풀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한빈이 이렇게 구결을 갈망하는 이유는 별도로 있었다.

무당산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빈은 천급 초식을 최대한 모을 예정이었다.

천급 초식을 최대한 모아 놓은 상태에서 영웅 대회에 참가한다면?

그 영웅 대회에 참가한 고수 중 몇몇은 천급 구결을 가지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천급 초식 열 개를 다 모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숨어 있는 적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터.

한빈은 독각서우에게 향했던 손을 거뒀다.

기사회생의 초식을 모두 펼쳤다.

이제는 쓰러진 독각서우가 기력을 되찾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때였다.

한빈의 목덜미에서 뜨끈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한빈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순간 한빈의 눈이 커졌다.

눈앞에는 공간이 아예 없었다.

독각서우의 무리가 공간을 모두 채우고 있었다.

몸을 피할 수도 없이 틈을 주지 않고 완벽히 한빈을 포위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수라도 공간이 없으면 초식을 펼칠 수 없는 법.

고수를 묶어 두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간을 장악하는 것이다.

흔히 고수 한 명이 하수 백 명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간이 남을 때의 이야기. 조그만 오두막에서 백 명의 적을 맞이한다고 가정하면 무공의 높고 낮음이 필요 없다.

검을 뺄 공간, 주먹을 내뻗을 공간도 없는데 어떻게 승부가 나겠는가?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럴 정도로 틈이 없었다.

바닥만 채운 것이 아니라 큰 독각서우의 몸 위에 다른 독각서우가 올라타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놈들은 마치 병법이라도 배운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거기에 뒤쪽에서는 계속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쿠쿠 쿵!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니라 무소들이 아래로 뛰어내리는 소리였다.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빈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빽빽한 공간에서는 탈출에 관련된 초식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금선탈각도 무리였다.

어딘가 보이는 공간이 있어야 금선탈각을 펼쳐 빠져나갈 수가 있다.

하나 지금은 시야에 보이는 공간이 없었다.

그때였다.

고개를 돌린 한빈의 뒤통수 뒤로 희미한 콧김 소리가 들려왔다.

크릉.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기사회생은 영물에게도 통했다.

쓰러졌던 독각서우의 우두머리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길흉(吉凶)조차 판단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한빈의 계획에 전혀 없던 것이었다.

* * *

팽혁빈과 현문 그리고 심미호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비록 보름달이 산자락을 비추고 있다지만, 길이 대낮처럼 훤하지는 않았다.

트득. 툭.

나뭇가지가 그들의 얼굴을 긁고 지나갔지만, 누구 하나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독각서우 무리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혈맹호대와 각주들을 뒤쫓던 독각서우가 모조리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곳은 한빈이 이동했던 방향이었다.

현문은 등에 업힌 소군을 바라봤다.

“느껴지는 것이 있더냐?”

“공자님이 위험한 것 같아요.”

“흠.”

현문이 헛숨을 들이켰다.

처음에는 소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장난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소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소군이 한빈이 위험하다고 한 후 살펴보니, 일부 독각서우의 무리가 어디론가 이동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묘했다.

그래서 현문은 봉우리 위에 우뚝 솟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전체적인 상황을 바라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일부 독각서우만이 아니었다.

산 중턱에 퍼져 있던 독각서우의 무리가 미친 듯이 한곳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어떤 놈들은 흥분해서 나무까지 짓밟고 달려갔다.

이전까지 머리를 쓰며 사람을 쫓던 형태와는 전혀 달랐다.

덕분에 지금 추룡산맥 전체가 쿵쾅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뒤를 쫓고 있는 현문의 가슴도 쿵쾅대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한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의 사형인 태극검제를 구하는 일은 수포가 될 것이 불 보듯 훤했다.

물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현문은 드디어 영물들이 떼 지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한 현문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게 어떻게…….”

“현문 어르신, 저곳에 제 아우가 있단 말씀입니까?”

팽혁빈은 자신도 모르게 독각서우의 무리를 가리켰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그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모인 놈들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팽혁빈은 자신도 모르게 도갑을 움켜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트드득.

도갑에 금이 갈 정도로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문이 손을 내밀어 팽혁빈을 제지했다.

“일단 지켜보세.”

“지금이라도 뛰어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닙니까?”

“팽 공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 않나? 그런데 어디로 뛰어든단 말인가?”

현문의 목소리는 제법 침착했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의 사형인 태극검제뿐 아니라 무림을 구해야 할 인재가 바로 한빈이었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그 희망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사실 현문의 마음도 팽혁빈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도 저곳을 비집고 들어가서 한빈을 찾고 싶었다.

물론 현문은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독각서우의 모습이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듯 보이지는 않았다.

도리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다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 놈들을 자극해 봤자 어딘가에서 백년열화초를 채집하고 있을 한빈에게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 현문의 판단이었다.

이윽고 대부분의 독각서우가 사라졌다.

지상에는 몇 마리의 독각서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중앙을 보니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다.

아마도 모든 독각서우가 저곳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저곳에 한빈이?

현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바라봤다.

순간 현문의 눈이 커졌다.

독각서우가 남아서 경계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기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구덩이의 위쪽에는 나중에 밀려 들어간 무소의 꼬리가 살짝 보이고 있었다.

만약 한빈이 저 아래 있다면?

현문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때 참다못한 팽혁빈이 도갑에서 도를 꺼냈다.

그러고는 도갑을 아무렇지 않게 옆에 내팽개쳤다.

풀썩.

제법 큰 소리가 났지만, 남은 독각서우의 무리는 미동조차 안 했다.

놈들은 오로지 구덩이에 어떻게 들어갈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만 같았다.

현문도 이제는 팽혁빈을 말릴 수 없었다.

팽혁빈이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였다.

소군이 나지막이 외쳤다.

“저, 죄송한데요!”

“…….”

팽혁빈이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소군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한 소군의 표정에 팽혁빈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공자님은 안전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여기까지 온 것도 저 때문이잖아요.”

소군이 엄지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팽혁빈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소군의 말을 믿고 독각서우의 무리를 쫓아서 여기에 다다른 것이었다.

팽혁빈은 일단은 소군의 말을 믿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사사-삭.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니 세 명의 각주가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팽혁빈은 잠시 현재 상황을 잊었다.

세 명의 각주들의 걸음걸이가 익숙해서였다.

분명 팽가의 경공술은 아니었다.

“구걸십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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