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75화 (561/621)
  • 575. 기연은 구결을 싣고 (1)

    담천호는 등골에서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쫓아오는 독각서우의 기세도 무서웠지만, 한빈의 예지력에 전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빈이 들었다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냐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한빈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여기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기군의 얼굴도 놀라움에 물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가기군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표정을 수습했다.

    주작각을 맡고 있는 각주다운 표정이었다.

    그는 지체 없이 말을 이었다.

    “일단 악필승 각주를 찾아서 마지막 구결을 얻어야겠습니다.”

    “그럼 어서…….”

    담천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저 멀리서 검은 신형 하나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악필승이었다.

    얼굴을 알아볼 만한 거리가 되자 악필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 아닙니다!”

    “헉, 한 마리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담천호가 눈을 크게 떴다.

    악필승의 뒤쪽에서는 아까 마주했던 놈보다 조금 작은 무소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아앙!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독각서우가 나무를 부러뜨리는 소리였다.

    가기군이 재빨리 악필승에게 외쳤다.

    “빨리 뿔피리를 꺼내십시오!”

    “저는 벌써 썼습니다. 뜻 모를 구결이 적혀 있더군요.”

    악필승은 벌써 팔에 식별 띠를 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가기군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럼 어서 구결을 말씀해 주시죠!”

    “탄탄대로(坦坦大路)입니다.”

    “그럼 탄탄대로, 천우신조, 각자도생이 마지막 구결인 것 같습니다. 일단 자리를 피하며 생각해 보죠!”

    가기군이 모두에게 외쳤다.

    그들은 죽을 둥 살 둥 있는 힘을 다해 자리를 피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세 개의 구결을 조합하기 위해 그들은 뛰면서도 머리를 굴려야 했다.

    한마디로 무아지경, 아니 아수라지경이라고 해야 정확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에 그들은 자신을 가뒀던 한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내공이 아닌 순수한 힘만으로 뛰면서도 자신이 지쳤다는 것조차 못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살고 싶다는 순수한 의지에서 나온 초인적인 힘이었다.

    하루 전의 그들의 모습과 지금의 그들은 전혀 달랐다. 아니, 일각 전의 그들 모습과 지금의 그들은 달라졌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문제는 독각서우가 두 마리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굳이 독각서우라는 영물이 아니어도, 이 정도 숫자의 무소 떼가 들이닥친다면 막을 수 없었다.

    무소의 가죽은 일반 짐승의 가죽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그런데 일반 무소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한 가죽에, 덩치도 몇 배 더 큰 영물이 바로 독각서우였다.

    이제 그들의 다리는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루가 아니라 한 시진도 안 되어서 구걸십팔보의 첫걸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추룡산맥의 산 중턱.

    그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두 신형이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그들은 현문과 팽혁빈이었다.

    팽혁빈은 마른침을 삼키며 발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비해 현문은 침착한 표정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오호, 천고의 기재로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팽혁빈이 불안한 표정으로 묻자 현문이 아래쪽을 가리켰다.

    “저기 보게. 아이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본능적으로 구걸십팔보를 체득하고 있는 게지. 저건 일신우실신 정도가 아니네. 일각마다 경공의 경지가 바뀌고 있음이야.”

    “아무리 그래도 죽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자네는 아우를 못 믿는군.”

    “제 아우를 믿긴 하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위험한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문은 아래를 보며 더욱 안력을 돋구었다.

    잠시 상황을 살피던 그가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많긴 많군. 적혈맹호대까지 동원했는데도 여유가 없는 걸 보면 여기에 얼마나 많은 영물이 사는지 짐작도 안 되는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독각서우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가 추룡산맥의 중턱을 누비고 있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백년열화초를 찾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백년열화초는 한빈이 찾으러 간 상태.

    한빈은 나머지 인원들에게 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현문이 한빈의 부탁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설화가 청화와 함께 당과를 먹고 있었다.

    현문이 설화를 보며 말했다.

    “저쪽에 누군가 쓰러져 있군.”

    “저쪽이요?”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자 현문이 다시 손가락으로 정확한 위치를 가리켰다.

    “북동쪽을 잘 보면…….”

    “네, 확인했어요.”

    고개를 끄덕인 설화가 재빨리 청화를 잡아끌고 달려갔다.

    그때였다.

    소군이 외쳤다.

    “저도 같이 가요!”

    “너는 나중에 조금 더 크면!”

    청화의 외침이 산중에 울렸다.

    설화와 청화는 이번 작전에 있어서 구조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곳에 서식하는 독각서우의 수는 제법 많았다.

    심미호를 비롯한 적혈맹호대는 만독불침은 아니어도 백독불침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들도 지금 독각서우를 유인하고 있었다.

    독각서우의 독이 독하다만, 백독불침의 경지에 이른 심미호와 적혈맹호대를 즉사시킬 수는 없었다.

    그들은 독각서우를 유인할 뿐 아니라 세 명의 각주들을 안 보이게 보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부상자도 생겨났다.

    그 치료를 맡은 것이 바로 청화였다.

    독각서우의 독 정도는 청화가 바로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화의 무공과 경공술이면 몇 마리의 독각서우는 아무렇지 않게 따돌리거나 막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구조대의 임무를 맡은 것이다.

    현문은 여기까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보는 소군의 존재는 다소 의외였다.

    이곳에서 쓸쓸히 있는 소군은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

    팽혁빈도 마른침을 삼키면서 치열한 추격전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군은 경극을 바라보듯 구경하고 있었다.

    저 또래의 아이가 가능한 일인가?

    소군의 표정을 보면 마치 불혹을 넘은 중년 고수를 보는 듯했다.

    열 살에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현문은 안타까웠다.

    그때였다.

    소군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보름달을 확인한 소군이 품에서 조그만 죽통 하나를 꺼냈다.

    그러더니 뚜껑을 따고 그대로 들이마신다.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약을 먹을 때만은 어린아이 같았다.

    현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몸이 안 좋더냐?”

    “이것 때문에 물어보시는 거예요? 할아버지.”

    소군이 죽통을 흔들어 보이자 현문이 말했다.

    “흠, 아무래도 입에 쓴 약 같아서 말이다.”

    “우리 공자님이 말씀하셨는데, 이걸 먹어야지 다 나을 수 있대요.”

    “흠, 그게 무슨 약인지 궁금하구나.”

    “그건……. 저도 몰라요. 헤헤.”

    “뭔지도 모르게 그냥 먹는 것이냐?”

    “공자님을 믿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약에서 혈향이 나는 것 같구나.”

    현문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가 이렇게 자세히 물어보는 이유는 약에서 사람의 혈향이 풍겼기 때문이다.

    다른 이는 못 알아챘지만, 화경의 고수인 현문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현문의 표정을 본 소군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맞아요. 저도 혈향을 맡았어요.”

    “그런데도 의심 없이 약을 먹는 것이냐?”

    “당연하죠. 공자님이 주신 거잖아요.”

    소군의 답변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빈이 소군에게 전한 것은 마령지체의 깨진 단전을 복구하는 약이었다.

    소군의 마령지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천산혈랑의 내단이 필요했다.

    아직 한 마리가 남아 있다면서 잔혈마창이 북쪽으로 향했지만,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그때 한빈이 선택한 것이 바로 소군을 위해서 약을 만드는 일이었다.

    소군이 만든 약 속에는 천산혈랑의 내단과 비슷한 성분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한빈의 피였다.

    과거 한빈은 천산혈랑의 내단을 모두 복용했다.

    한빈은 자신의 피에 남아 있는 천산혈랑의 기운을 소군에게 전해 주려고 약을 제조한 것이었다.

    소군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한빈도 그 약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마령지체가 완벽하게 깨지는 것을 막아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해맑게 웃던 소군의 표정이 바뀌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자, 현문이 다시 물었다.

    “왜 그러느냐?”

    “공자님이 지금 귀가 간지러우신 것 같아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그냥 느낌이에요, 할아버지.”

    “허허.”

    현문이 허허롭게 웃었다.

    * * *

    소군의 말대로 한빈은 지금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내 얘기를 할 사람은 없을 텐데…….”

    의문도 잠시, 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한빈의 착각이었다.

    세 명의 각주뿐 아니라 적혈맹호대 대원들도 입에서도 한빈의 이름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군이 한빈의 감각을 느끼는 것은 그가 준 약 때문일지도 몰랐다.

    물론 이것은 한빈도 예측 못 한 약효였다.

    한빈은 다시 앞을 살피며 걸었다.

    중요한 것은 백년열화초를 손에 넣는 것이다.

    한빈은 백년열화초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전생에도 몇 명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 부근을 샅샅이 뒤져 봤지만,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백년열화초는 보름달을 받으면 빛난다.

    처음에는 곳곳에 보이는 빛에 한빈은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 빛은 백년열화초가 아니라 독각서우의 배설물이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실망했었다.

    이후 한빈은 몇 마리의 독각서우를 찾아냈다.

    문제는 독각서우의 주변에 백년열화초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한빈이 취한 방법이 독각서우를 유인해서 달리게 하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달리다가 보면 독각서우는 금세 허기를 느낄 테고 먹이가 있는 방향으로 한빈을 안내할 것이었다.

    그런데 한빈의 예상을 벗어났다.

    소란에 움직인 독각서우는 예상보다 많았다.

    그래서 적혈맹호대까지 투입된 상황이다.

    문제는 그 후 생겼다.

    놈들은 쉬지 않고 달릴 뿐, 먹이를 탐하지 않았다.

    독각서우의 지구력은 일반적인 무소와 다른 것이 분명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독각서우가 이동한 흔적이 눈에 잘 띈다는 점이었다.

    마치 화선지에 붓으로 검은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독각서우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나무 중 몇 그루는 낫처럼 꺾여 있었다.

    거기에 땅도 움푹 파여 있었다.

    침입자가 여럿이라고 판단하고 다소 흥분한 것이 분명했다.

    그 흔적은 한곳에서 뻗어 나와 있었다.

    그것이 백년열화초가 있는 곳이 분명했다.

    흔적을 따라 천천히 걷던 한빈이 발길을 멈췄다.

    드디어 흔적의 중심이 도달했다.

    앞을 본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눈앞에는 독각서우의 무리가 한곳에 모여 있었다.

    놈들은 누가 봐도 뭔가를 지키고 있었다.

    그 뭔가가 백년열화초라고 한빈은 생각했다.

    자신의 식량을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둥그렇게 겹겹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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