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70화 (558/621)
  • 570.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2)

    현무각주 담천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상대를 알아본 담천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현무각주님.”

    “장 의원님이 갑자기 얼굴을 쑥 내미시니 제가 놀랄 수밖에 없지요.”

    “흠,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저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장자명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현무각주 담천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담천호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한 것이다.

    담천호는 장자명과 자신이 묘하게 닮았음을 깨달았다.

    물론 한빈과의 관계에서 말이다.

    장자명도 담천호에게 친근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자명이 본래 의지하고 있던 이는 화산파의 서재오였다.

    하지만 서재오는 한빈의 부탁을 받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 관계로 장자명은 속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세 명의 각주가 합류한 것이다.

    이들은 장자명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장자명은 잠시 담천호의 깊은 눈빛을 바라보다가 뭔가 깨달았는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속상한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냥 편히 말씀하십시오. 또 무슨 일이십니까?”

    “……현무각주님이 물으시니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무각주는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장자명이 한숨을 내쉬자 담천호가 놀란 듯한 표정을 수습하고 재빨리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장 의원님.”

    담천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장 의원의 말만 들어 보면 치료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그때 장자명이 먼저 대련을 마친 악필승을 가리켰다.

    “이것 보십시오.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담천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악필승의 상처에 꽂혔다.

    그리 대단한 부상은 아니었다.

    성한 곳은 없지만, 그렇다고 많이 다친 곳도 없었다.

    담천호는 장자명의 반응이 어이없었다.

    “그러니까, 치료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여기를 보십시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제가 어떻게 치료를 안 합니까?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부려 먹습니까?”

    감정이 담긴 듯 하소연한 장자명이 악필승의 상의를 살짝 들춰내고 상처를 조금 더 자세히 보여 주었다.

    그 상처를 본 담천호가 입을 벌렸다.

    “헉, 대체 어떻게…….”

    누워 있는 악필승의 몸에는 여기저기 검상이 새겨져 있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상처가 깊어 보였다.

    그런데 피도 나오지 않고 있다니…….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저리 상처를 입고도 큰 출혈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장자명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확히 좁쌀 한 톨 두께로 썰렸으니까요. 이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죠. 온몸에 상처가 다 균일하니까요. 덕분에 큰 출혈은 없습니다. 여기서 무리한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이럴 거면 아예 상처를 입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아닙니까?”

    “그럴 수도…….”

    “그런데 자꾸 이렇게 일거리를 만들어 놓으니 제가 쉴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왜 그러시죠?”

    “이게 가능한 검술입니까?”

    담천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이리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대련에서 생길 수 없는 상처였다.

    일정한 두께로 피도 거의 흘러나오지 않게 옅게 상처를 낸다?

    그것도 절정의 고수를 상대로?

    물론 움직이지 않는 상대라면 가능하다.

    노련한 숙수에게 부탁한다면 일정한 두께로 고기에 저런 흠집을 낼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노련한 숙수라도 움직이는 닭을 저리 잡으라면 불가능했다.

    하물며 이건 사람한테 쓴 검술이었다.

    이것은 내공의 영역이 아닌 정교한 초식의 영역이었다.

    왕자사도와 삼재검법이라?

    각각 도법과 검법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별다른 기술 없이 종으로 내려 긋고 횡으로 베는 동작으로만 겨룬 결과였다.

    이건 특별한 초식이 아닌 기본기라는 말이었다.

    얼마나 수련해야 저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무공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절제였다.

    모든 힘을 다해서 상대를 베는 것은 어찌 보면 쉽다.

    하지만 일정한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것도 서로 검과 도를 겨눈 상태에서 저렇게 균일한 상처를 내다니!

    쓰러져 있는 악필승에게는 미안하지만, 걱정보다는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앞섰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흠.”

    담천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빈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현무각주.”

    “오셨습니까, 공자님. 균일하게 그은 현문 어르신의 검술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담천호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한빈이 웃었다.

    “놀라는 게 당연하지요. 이제부터 익히셔야 할 수법입니다.”

    “무당의 검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다는 겁니까?”

    “무당의 검법은 절대 아닙니다. 현문 어르신의 가르침이죠. 제가 따로 부탁드렸습니다.”

    “그럼 이 모든 게 저희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뭐, 비슷합니다. 가르침은 벌써 시작됐습니다.”

    그때였다.

    옆에서 비명을 울려 퍼졌다.

    “아악!”

    그 소리에 옆을 힐끔 본 담천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검술이 놀랍긴 해도 이건 일방적인 구타 같은데요.”

    “흠. 원래 싸움은 많이 맞아 본 사람이 주먹도 잘 쓰는 법이죠. 칼도 맞아 본 사람이 잘 쓰는 법이고요.”

    한빈이 악필승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확히는 누워 있는 악필승의 상처를 가리킨 것이다.

    고개를 돌려 그의 상처를 확인한 담천호가 물었다.

    “그럼 저희가 계속 맞아야 한다는…….”

    “싫으십니까? 뭐, 언제든 포기하셔도 됩니다.”

    “…….”

    담천호는 마른침만 삼킬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저건 무당산에 도착하기 전에 깨쳐야 할 경지입니다.”

    “저게 저희가 도달해야 할 경지라고요? 어떻게 단기간에 저런 경지가 가능합니까?”

    “지금 일정한 두께를 보고 놀란 거 맞죠? 저것보다 살짝만 깊다면 근골이 다쳤겠지요. 상대와의 격전 중에도 깊이를 조절할 만큼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네, 제가 놀란 것도 그 때문입니다. ”

    “이건 초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겠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단기간에 저런 경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공자님.”

    “초식이 아니기에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우리는 가족 아닌가요?”

    “가족이라…….”

    담천호는 말을 맺지 못했다.

    흘러나오는 감정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아비의 종용에 그는 가문을 등지고 혈혈단신 강호로 뛰쳐나왔다.

    그가 하북팽가의 각주까지 오른 것은 한마디로 행운이 작용했다고 봐도 되었다.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가족이라니!

    그 말 한마디가 담천호의 감정을 건드렸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으로 말이다.

    한빈은 담천호의 표정과는 관계없이 아무렇지 않게 설명을 이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단련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니 현문 어르신과의 대련은 그 수련의 일부분이라도 보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잠시 주위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주위 상황이라니……. 혹시 적의 기척이라도 느끼신 겁니까?”

    “뭐, 비슷합니다. 기다리던 친구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일단 확인하고 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대련을 중지하고 경계를…….”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니 수련을 마저 끝내시지요.”

    말을 마친 한빈은 낙엽 밟는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사사삭.

    한빈의 기척이 사라지자 담천호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때 잠시 자리를 피해 있던 장자명이 입을 쭉 내밀며 나타났다.

    “휴, 맨날 저런 식이라니까. 저러니 제가 미치고 팔딱 뛰지요.”

    “우리 막내 공자님한테 불만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담천호가 슬쩍 웃자 장자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한두 번이 아닙니다.”

    “…….”

    담천호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항상 비밀이라고 해 놓고 내가 치료할 사람만 늘리고…….”

    장자명은 담천호의 옆에 앉아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의 하소연에 담천호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장자명의 하소연은 마치 강호 속의 괴담과도 비슷했다.

    한빈이 만든 상처는 모두 장자명이 치료해야 했다니!

    거기에 더해서 그 상처도 종류가 다양했다.

    담천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봤다.

    달과 한빈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 얼굴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 보였다.

    순간 담천호가 살짝 어깨를 떨었다.

    마치 등에 얼음을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현문과 가기군의 대련이 끝났다.

    주변을 둘러보던 현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장자명을 바라봤다.

    “장 의원, 팽 공자는 어디 갔나?”

    “지금 주변 상황을 살핀다고 갔습니다.”

    “그렇군.”

    “어르신은 걱정도 안 되십니까? 추룡산맥의 북쪽은 험하기로 소문나지 않았습니까?”

    “자네가 팽 공자를 걱정할 처지는 아닐 듯싶은데?”

    “그야 그렇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 자네가 동행하지 그랬나?”

    “환자를 두고 어딜 갑니까? 어르신이 막 환자를 하나 더 만들지 않았습니까?”

    장자명이 휘청거리는 가기군을 가리켰다.

    현문과 대련을 끝낸 가기군은 겨우 몸을 가누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온 가기군이 털썩하고 장자명의 옆에 쓰러졌다.

    그들의 대화에 담천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해 놓고 저리 걱정을 하는 장자명이 이해가 안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담천호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장자명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빈이 미우면서도 그를 향한 충성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현문이 담천호의 어깨를 톡 쳤다.

    “이제 자네 차례일세.”

    “아, 알겠습니다.”

    담천호가 현문에게 끌려가자 장자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련의 결과는 똑같았다.

    담천호는 장자명에게 치료를 받았다.

    약초를 짓이겨 만든 약을 상처에 정성스레 바르고 붕대로 감았다.

    치료를 하면서 장자명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현무각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담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상처를 만든 것은 현문이고 지시를 내린 것은 한빈이었다.

    그런데 장자명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담천호는 이해가 안 되었다.

    그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장자명이 다시 고개를 숙엿다.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군요.”

    “자꾸 저에게 죄송하다고 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건 비밀입니다. 곧 아시게 될 겁니다.”

    “허허, 장 의원까지 왜 막내 공자님을 흉내 내고 그러십니까?”

    “뒤에 오셨네요.”

    “뒤라니요?”

    담천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한빈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담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한빈이 아무렇지 않게 담천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냥 앉아 있으세요, 현무각주님! 그런데 혹시 뒤에서 제 얘기 하고 그런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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