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69화 (552/621)

569.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1)

팽혁빈이 눈을 크게 떴다.

“백독지회라고 했느냐? 그렇다면 그곳에 백독문이 있다는 말이냐?”

“네, 맞습니다.”

“네가 백독문의 위치를 어찌 안다는 말이냐?”

팽혁빈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그저 웃고만 했다.

한빈의 표정을 본 팽혁빈은 더욱 의문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백독문이 있는 백독곡의 위치는 독인을 제외하고는 아는 이가 드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독인조차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봐야 했다.

백독문이 있는 백독곡은 한곳에 자리 잡지 않기 때문이었다.

독을 연구하는 문파답게 그곳의 독기가 가라앉으면 다시 위치를 옮긴다.

미리 준비해 둔 독기가 충만한 땅으로 옮기는 것.

팽혁빈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찼다.

호기심 가득한 팽혁빈의 눈빛에 한빈이 답했다.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한빈은 장자명이 백독곡 출신이라는 것은 알리지 않았다.

백독문에 도착하면 당연히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람도 잠시, 팽혁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엉뚱한 아우이기에 백독문의 위치를 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다른 의문이 생겼다.

“영웅 대회에 가는 길에 백독곡에 들른다니…….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느냐?”

“필요합니다. 그곳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저는 무당산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허.”

팽혁빈이 작게 한숨을 토해 냈다.

한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삼황초가 백독문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백독문으로 간다고 했으면 모두가 술렁였을 테니 천리 표국의 표두까지 모두 보내고 이렇게 공표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의문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백독지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느냐?”

하북팽가가 백독지회에 참가한다라?

명문 정파 중에 백독지회에 참가하는 문파는 사천당가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 참가 자격조차 없었다.

하북팽가가 백독지회에 참가한다면 오해받기에 딱 알맞았다.

독인들의 모임에 정파의 무인이 참가하는 경우는 보통 염탐의 목적밖에는 없으니까.

일단 무림세가는 백독지회에 입장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독인도 아니고 초대장도 없는데 어찌 그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삼황초가 백독문에 있다면 그것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었다.

팽혁빈은 현문을 바라봤다.

현문도 근심 가득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현문은 그들의 대화에서 삼황초가 백독곡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의 눈빛에 한빈이 빙긋 웃었다.

“형님은 절 못 믿으십니까?”

“……믿는다.”

“의심하시는 것 같은데요?”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팽혁빈이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현문 어르신도 절 믿으시는 거 맞죠?”

“맞네. 내가 왜 팽 공자를 의심하겠나.”

현문도 손을 내저었다.

순간 한빈이 눈을 빛내자 현문이 슬쩍 한 발 물러났다.

현문도 이제는 한빈의 저 눈빛이 사고를 치기 전에 보이는 현상임을 깨달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빈이 그윽한 눈빛으로 현문을 바라봤다.

“잠시 할 말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가?”

“이전에 한 부탁에 조금 더 살을 붙여야 하겠습니다. 참, 장 의원님도 이리로 좀 오십시오.”

한빈은 장자명까지 불렀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세 명의 각주를 바라봤다.

* * *

세 시진 후.

그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산자락의 공터에 자리 잡았다.

자리를 잡자 한빈이 현문에게 눈짓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간만에 몸 좀 풀어 보도록 하겠네, 팽 공자.”

“조금 살살 부탁드립니다.”

“팽 공자는 나를 못 믿나?”

“흠,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걱정됩니다.”

“이래 봬도 악적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의 목숨을 거둔 적은 한 번도 없었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한빈이 어색하게 웃었다.

현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강호에 나오면서 악적을 제외하고는 목숨을 거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말싸움 한 번으로 팔을 부러뜨린다든지.

다리를 부러뜨려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강호인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모두 현문이라는 도호만 댔으면 상대가 알아서 물러났을 일이었다.

한빈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현문은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간 곳은 이제 막 노숙 준비를 끝낸 조향각주 악필승의 앞이었다.

자리 위에 떨어진 낙엽을 털어 내던 악필승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현문이 활짝 웃고 있었다.

“어서 준비하세.”

“그러지 않아도 식사를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식사 말고 수련 준비를 하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수련이라니요? 수련이라면 저 짐을 메고 여기까지 오른 게 수련이 아닙니까?”

악필승이 자신의 옆에 있는 약초 더미를 가리켰다.

약초 더미는 한눈에 보기에도 거대했다.

그 거대한 짐을 악필승은 군말 없이 이곳까지 짊어지고 온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은 마차가 지날 수 없는 관계로 짐은 모두가 나누어서 짊어져야 했다.

적혈맹호대는 기존 마차와 수레에 있던 짐을 맡았다.

하지만 중간에 천리 표국이 가지고 온 약초는 모두 각주들이 짊어졌다.

한빈은 모든 것이 수련이 일종이라고 했다.

그들이 이렇게 필사적인 이유는 이 수련이 끝나면 한빈이 하나의 선물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선물이라는 것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포한 상황.

이것이 추룡산맥에 초입에서 한빈이 약속한 것이었다.

현문이 악필승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무심한 눈길로 그의 옆에 있는 도를 가리켰다.

“자네는 도를 들게. 나는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르신!”

“전장에선 누구도 상대가 채비하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네.”

말을 마친 현문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들었다.

그러고는 일도양단의 기세로 악필승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순간 악필승은 반사적으로 좌측으로 뒹굴었다.

물론 옆에 둔 도를 챙겨서 말이다.

악필승은 도갑째 그대로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하북팽가의 도법인 왕자사도(王子四刀)였다.

가장 기본적인 도법인 만큼 그 어느 도법보다 손에 익은 초식이었다.

세 번을 긋고 한 번을 내려치는 간단한 동작이지만, 그 한 수마다 변초를 집어넣으면 그 어떤 도법보다 변화무쌍한 초식을 펼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현문이 말했다.

“쓸 만한 놈이로고. 기본기가 탄탄해.”

“…….”

악필승이 아무 말도 안 하자 현문이 선심 쓴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왕자사도를 펼친다면 나는 삼재검법을 쓰마.”

현문이 손에 든 나뭇가지를 가볍게 돌렸다.

그때부터였다.

획. 획.

산자락에 파공성이 울렸다.

드디어 대련이 시작된 것이다.

그 모습에 남은 두 명의 각주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은 기대감이 아닌 절망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빈의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알 것 같았다.

무당의 현문과 산맥을 넘는 동안 저렇게 손을 섞는다면 분명 발전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현문의 손 속이었다.

지금 보니 현문의 손 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처음에 들리던 파공성은 이제 비명으로 바뀌었다.

물론 악필승의 비명이었다.

뒤이어 비명이 멈추자 현문이 말했다.

“고생했네. 다음 사람 앞으로!”

순간 주작각주 가기군과 현무각주 담천호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눈빛으로 누가 먼저 할 것이냐를 치열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의논은 아니었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좋다는 강호 속담이 있지만, 이것은 반만 맞는 얘기였다.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먼저 맞는 놈은 상대가 가장 팔팔할 때 매를 맞아야 하니까.

어물쩍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한빈이 슬며시 그들의 옆으로 다가왔다.

“각주님들, 아마도 먼저 대련하시는 분이 편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담천호가 묻자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답했다.

“지금 보니 현문 어르신은 아직 몸이 안 풀린 것 같습니다. 아마 몸이 풀리면 손 속이 더 악랄해지겠죠. 앗, 죄송합니다. 도인께 악랄하다는 표현은 조금…….”

“공자님,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죠.”

“제 경험상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분의 검 끝은 날카로워질 것이 뻔합니다.”

“그럼 제가 먼저…….”

담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한빈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주작각주 가기군이 현문의 앞으로 뛰어나갔기 때문이다.

담천호는 멍하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치를 떨었다.

한빈의 말은 정확했다.

현문의 손 속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나뭇가지라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이 그 나뭇가지에는 그의 내공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그건 일류 무사의 진검보다도 위험했다.

담천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현문과 가기군의 대련을 바라봤다.

휙!

파공성 한 번에 상대의 옷고름이 반으로 갈려 나간다.

만약 조금만 깊었다면 가기군은 피를 토했을 것이다.

담천호는 주변을 둘러봤다.

일반적인 대련인데 자신이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어서였다.

주변을 보니 먼저 대련을 마친 악필승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반대편으로는 적혈맹호대의 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거기에 설화와 청화 소군도 별일 아니라는 듯 당과 꼬치를 들고 대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쯤 되자 담천호는 자신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었다.

현무각주의 자리는 하북팽가의 피가 섞이지 않아도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몇몇 각주와 당주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팽씨 성을 가져야 맡을 수 있는 직책.

가장 높은 자리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하북팽가라는 울타리 밖을 생각한다면 사정은 다르다.

담천호는 강호 경험이 적었다.

그 경험이라고 해 봤자 하북 지역 내에서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담천호는 이런 대련이 일반적인 것은 아닌가 의심해 봤다.

그때였다.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련을 구경하는 가운데 오만상을 짓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장자명이었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자 장자명이 조용히 걸어왔다.

그는 이상하게 옆구리에 커다란 약통을 끼고 있었다.

그는 담천호 쪽이 아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악필승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약초 더미가 담긴 짐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러고는 자신의 약통을 펼쳤다.

장자명은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약초를 조심스럽게 빻아서 섞었다.

모든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장자명은 아무렇지 않게 그 약을 악필승의 상처에 발라 주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붕대로 상처를 감쌌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담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현문은 나뭇가지를 썼다.

비록 진기를 둘러서 진검처럼 위험해 보기긴 했어도 이렇게 치료를 받아야 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장자명이 악필승에게 반복적으로 건네는 말이었다.

그것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치료해 주면서 미안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긴 담천호가 조심스럽게 장자명에게 다가갔다.

순간 담천호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치료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기척을 최대한 줄이고 갔는데 장자명이 기다렸다는 듯 돌아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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