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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60화 (557/621)

560. 새로운 물결 (4)

한빈이 한 약속은 간단했다.

첫째는 그들을 강하게 해 준다는 말이었다.

두 번째 약속은 수련을 통과할 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각주들은 그 약속에 기대하고 있다.

그들의 앞에 선 한빈이 말했다.

“이제 첫 번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한빈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

순간 각주들이 이제까지 유지하던 자세가 흐트러졌다.

자신도 모르게 목을 길게 뺀 것이다.

사실, 옆에서 지켜보던 팽혁빈도 고개를 길게 뺐다.

그들의 정신과 기세가 달라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무인이 강해졌다는 것은 바로 경지의 상승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경지가 높아졌을까?

그 점에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경지를 단시간 내에 높이기 위해서는 기연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영약으로 경지를 극복하고.

어떤 무인은 비급으로 경지를 뛰어넘는다.

물론 둘 다 연이 닿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영약을 먹었지만 몸에 안 맞아서 효과를 못 볼 수도 있고, 비급을 손에 넣었지만 자신의 내공심법과 맞지 않아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팽혁빈이 보기에는 수련 과정 중 영약을 취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새로운 무공을 익힌 자도 없었다.

정신력과 기세만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황궁 병사들보다 더한 군기를 뽐내고 있을 뿐이었다.

팽혁빈은 아우가 어떻게 그들에게 약속을 지킬지가 궁금했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때, 한빈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강해졌습니다. 그러니 나는 첫 번째 약속을 지켰습니다.”

“…….”

갑자기 싸늘해진 연무장.

마치 한겨울에 들이닥친 북풍이 쓸고 간 느낌마저 들었다.

몇몇 각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주작각주 가기군이 한 발 나왔다.

그는 한빈에게 고개를 숙였다.

불만은 있되 예를 취한 것이다.

한빈이 물었다.

“주작각주, 할 말 있습니까?”

“네. 저희가 강해진 게 맞습니까?”

주작각주는 눈을 빛냈다.

군기가 바싹 든 것은 맞았다. 거기에 더해 그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은 만큼의 담력을 이번 수련을 통해서 얻었다.

수뇌부가 지녀야 할 자존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다면 그 죗값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주작각주 가기군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그는 정보 수집이라는 업무 특성상 수련할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자긍심은 누구보다 높았다.

덕분에 전에 한빈과 병기를 맞댄 적도 있었다.

무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의 무공 수준은 낮았다.

그의 꿈은 한 번이라도 도기(刀氣)를 피워 내는 것이다.

도에 자신의 진기를 둘러 보고 싶은 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가 생각하기에 무공의 경지는 일주일 전과 똑같았다.

한빈이 약속을 지켰다고 한 것은 말장난에 가까웠다.

변화가 있었다면 자신이 모를 리 있겠는가?

주작각주 가기군의 눈빛이 실망으로 물들려 할 때였다.

그의 귓전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딱!

한빈이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온다.

설화가 앞장서고 그들의 뒤에서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몇 대의 수레를 끌고 온다.

그 수레가 그들의 앞에 도착할 때까지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드륵.

드디어 수레가 멈췄다.

수레 앞에 선 한빈이 주작각주를 바라봤다.

“주작각주, 앞으로 나오시지요!”

“명 받들겠습니다.”

주작각주가 한빈의 앞에 섰다.

한빈이 수레에서 검은 천에 싸인 물건 하나를 꺼냈다.

검은 천에는 주작각주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주작각주는 한빈에게 물건을 건네받았다.

물건을 받은 주작각주의 표정이 긴장한 듯 살짝 굳었다.

무게가 묵직한 데다 한기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빈이 턱짓했다.

“풀어 보시지요, 주작각주.”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주작각주는 눈을 크게 떴다.

검은 천을 걷어 내자 안에서 상상도 못 할 물건이 나왔다.

그것은 먹빛 윤기가 감도는 도(刀)였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도를 손에 쥔 주작각주는 약간은 난감한 눈빛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그 시선에 화답하듯 말을 이었다.

“주작각주는 경지를 뛰어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주작각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마주한 한빈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였다.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빨리 무인을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가 영약 그리고 비급입니다. 그럼 남은 하나는 무엇일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머지 하나가 무엇입니까?”

“바로 무기입니다.”

“무기라면…….”

“바로 보검이나 보도 같은 물건을 말하는 겁니다. 주작각주가 들고 있는 무기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꽤 많은 현철이 섞여 있으니까요.”

“지, 지금 현철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이것은 형님과 내가 그대들에게 내리는 선물입니다.”

“대체 이 보도를…….”

“일단 기수식을 취해 보시지요, 주작각주.”

말을 마친 한빈은 뒤로 물러났다.

순간 연무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각주들은 뒤로 물러나서 발을 굴렀다.

쿵. 쿵.

비무를 환영한다는 표시였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현철로 만든 칼을 각주들에게 내리고 그 무기를 시험할 수 있도록 한빈이 비무를 제안한 것이다.

몇몇 각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현철로 만든 보도가 값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기가 손에 익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현철이 섞인 덕분에 크기는 같아도 더 무게가 나갈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수련 기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도를 잡아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무게가 전혀 다른 도를 잡고 비무를 한다고?

실력을 모두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저 보도로 비무에 임한다면 무기의 우월성은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한빈이 비무를 제안한 것은 무공의 경지를 보려 함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병기의 성능을 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분명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팽혁빈의 생각도 똑같았다.

사실 팽혁빈은 놀라고 있었다.

무기로 무인의 무위를 끌어올린다는 생각은 그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생각했다고 해도 저런 막대한 돈을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상상을 초월한 방법이었다.

그때 한빈이 팽혁빈에게 신호를 보냈다.

비무를 주관해 달라는 뜻이었다.

연무장의 중앙에 선 팽혁빈이 외쳤다.

“살생은 엄격히 금지하며…….”

그는 비무에 대한 규칙을 읊었다.

그러고는 내공을 담아 손뼉을 마주쳤다.

짝.

“지금부터 비무를 시작하겠소!”

그 말과 함께 한빈이 월아를 뽑았다.

주작각주 가기군은 이미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틈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들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었다.

눈빛만 보면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에 가까웠다.

그와 비교해 한빈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의 눈빛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자연스러웠다.

바람이 부는 대로 향하겠다는 자연스러움.

한빈은 여유 있게 한 손만 들었다.

한 손이면 충분하다는 듯 오른손으로 월아를 잡고 왼손은 뒷짐 졌다.

그 모습에 가기군이 눈을 빛냈다.

수련을 하며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판단력.

그 두 개는 수련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였다.

무공은 제자리지만 생존 본능만큼은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주작각주 가기군은 재빨리 한빈의 틈으로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생존 본능이 꿈틀댔다.

뭔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재빨리 속도를 줄였다.

강호에 이런 속담이 있다.

바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정작 거대한 숲의 정경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가기군이 그랬다.

지금 그는 나무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비무를 지켜보던 다른 각주들은 숲을 봤다.

한빈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본 것이다.

그 움직임에 각주 중 몇이 비명을 토해 냈다.

“앗!”

“위험……!”

팽혁빈도 눈을 크게 뜨며 비무에 개입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것은 바로 한빈이 펼친 한 수 때문이었다.

오른손으로 월아를 잡으며 여유를 보인 한빈이 왼손으로 암기를 꺼내 들었다.

문제는 주작각주의 시야에서는 그 암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무에서 갑자기 꺼낸 암기라?

이건 가문 내 친선 비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한빈이 암기를 던졌다.

슝!

암기가 가기군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에 팽혁빈이 재빨리 달려갔다.

하지만 암기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어찌나 암기의 속도가 빠르던지, 어떤 종류의 암기인지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순간 이상한 소리가 모두의 귓전에 울렸다.

서걱!

뭔가 갈라지는 소리였다.

바로 이어서 연무장 바닥에 뭔가 떨어졌다.

쨍!

또르륵.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모두는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모두는 입을 벌렸다.

비명조차 토해 내지 못할 상황이라는 말이다.

물론 가장 놀란 것은 주작각주 가기군이었다.

자신이 쥐고 있는 도에 푸른 강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주작각주 가기군이 만들어 낸 도기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위험을 감지하고 그 위험을 본능적으로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본능이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그 위험을 베어 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도기를 피워 내고 있다니!

바닥에는 무쇠가 두 쪽이 되어 뒹굴고 있었다.

본래의 모습은 아마도 구슬 모양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대, 대체 어떻게 내가…….”

순간 그가 피워 냈던 도기가 희미해졌다.

그와 동시에 한빈이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축하합니다, 주작각주.”

“사, 사 공자님, 대체 어떻게 제가 도기를?”

“그건…….”

한빈은 뒷말을 생략했다.

물론 모두는 한빈이 생략한 말을 알고 있었다.

각주들은 그들의 무기를 받았다.

무기를 감싼 천 위에는 그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병기를 휘둘러 보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모두 도열해서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미리 새겨 놓은 이름의 의미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구도 탈락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무기를 준비한 한빈에게 감격한 것이다.

그것도 보통 무기가 아닌 현철로 만든 도였다.

과연 어떤 가문에서 이런 투자를 할까?

십대세가의 어느 곳이라도 확신하고 이런 투자를 하는 곳은 없을 것이었다.

거기에 가장 놀란 것은 자신들의 무공이 한 단계 더 향상했다는 것이었다.

분위기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끓어올랐다.

비록 거지꼴을 하고 있지만, 무기를 쥐고 있는 각주들의 기세는 강호의 그 어떤 고수에 뒤지지 않았다.

일반인은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의 강렬한 기세였다.

연무장은 마치 용광로처럼 점점 뜨거워졌다.

팽혁빈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진정한 칼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것은 현철로 만든 도가 아니었다.

그 칼은 바로 용광로에서 잘 단련된 현철처럼 빛을 내는 각주들이었다.

팽혁빈은 자신에게 칼을 준 아우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때 한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두 번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순간 연무장의 분위기는 뜨거워지다 못해 폭발할 것처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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