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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52화 (537/621)

552. 그게 바로 접니다 (1)

한빈이 몰고 왔던 사건이 한두 가지던가?

주작각 가기군의 말대로 태풍의 중심에 있던 자가 바로 한빈이었다.

본인이 사건을 예고하기에 조금 더 신빙성이 있었다.

한빈의 의견을 헛소리라고 할 수 있는 자는 가주전 내에 없었다.

모두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을 때 한빈의 설명이 끝났다.

“……제 생각은 여기까지입니다.”

한빈의 말이 끝나자 수뇌부는 서로의 눈치를 봤다.

조금 황당하기는 해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모두가 눈치만 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현무각주가 조심스럽게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무사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현무각의 각주는 한빈을 아직 적대시하는 몇 안 되는 하북팽가의 수뇌부 중 하나였다.

그 모습에 팽강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각주는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감사합니다, 가주님!”

현무각주는 팽강위에게 고개를 숙인 뒤 뒤쪽을 향해서 포권하며 말을 이었다.

“제 미천한 생각을 밝히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러합니다. 그러니까…… 사 공자는 저희를 희롱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장 연설을 늘어놨지만, 핵심은 마지막 말이었다.

순간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를 희롱하고 있다고?”

모두가 웅성대자 현무각주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영웅 대회는 누구나 참석하고 싶은 행사입니다. 누가 대표로 참석하느냐는 어찌 보면 무인으로서는 영광입니다. 지금 사 공자는 우리에게 겁을 줘서 자신이 참석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급박하게 계획된 무림 대회라고 하지만 무당산에서 개최되는 행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의심한다면 누굴 믿겠습니까?”

말을 마친 그는 수뇌부를 하나씩 바라봤다.

그는 모두와 눈빛을 마주쳤다.

팽강위는 한발 물러서서 조용히 그 상황을 지켜봤다.

이건 어찌 보면 하나의 시험이었다.

한빈이 가문을 어디까지 장악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가주직을 이어받을 팽혁빈도 중요하지만 한빈의 위치도 상당히 중요했다.

나중에 맡아야 할 한빈의 위치는 바로 집법당주 팽대위의 자리였다.

가주가 폐관 수련에 든다든가 자리를 비웠을 때 말 한마디로 잡음을 지워야 하는 위치이기도 했다.

팽강위는 한빈과 현무각주의 기세 싸움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현무각주는 이런 싸움에 이골이 난 자였다.

세가 내 훈련을 담당하는 현무각을 맡고 있지만, 선동에 능한 자였다.

물론 그 선동이란 대부분 세가를 위한 선동이었다.

다만, 지금은 세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빈을 위한 시험이었다.

현재 수뇌부와 다음 세대의 가주 그리고 집법당주와의 기세 싸움은 전통이었다.

그들을 꺾어야만 가문을 편안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무각주의 몇 마디에 세가 내 수뇌부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은 눈치를 보며 입 모양으로만 대화를 나누었다.

현무각주의 말이 일리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잠시, 모두의 시선이 한빈에게 모였다.

현무각주가 먼저 일침을 놨으니 한빈의 방어가 궁금한 것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한빈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한빈도 이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이 제시한 의견에 대한 반박이, 핵심이 아니라 기세 싸움임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늙다리 수뇌부에게 한 방 먹히고 들어간다면, 앞으로의 길이 가시밭이라는 점이다.

모든 일에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할 것이며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것이 분명했다.

팔짱을 끼고 주위를 돌아보던 한빈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모두가 움찔했다.

살짝 내공을 담아 튕긴 소리였다.

그 소리에 가주전의 문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천천히 들어왔다.

구릿빛, 아니 검은빛이 살짝 감도는 피부.

질끈 동여맨 머리.

약간은 가냘파 보이는 몸매.

그녀는 다름 아닌 심미호였다.

이상한 것은 그녀가 어깨에 밧줄을 걸치고 있다는 것이다.

밧줄이 팽팽한 것을 보아하니, 만만치 않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심미호가 가주전의 입구를 세 걸음 정도 지나왔을 때였다.

뒤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덜컹.

물체가 문턱을 넘는 소리였다.

가주전에 모인 수뇌부는 심미호가 어떤 물건을 밧줄에 매달아 끌고 오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심미호가 밧줄을 더욱 세게 잡고 뒤에 있는 물건을 끌었다.

드륵. 드륵.

불길한 소리가 가주전 내부에 울려 퍼졌다.

원로와 각주를 비롯한 수뇌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저게 뭔가?”

“보면 모르는가? 저건 관 아닌가?”

“나도 저게 관이라는 것은 아네. 다만 저 관을 왜 여기로 끌고 왔냐는 것이오. 혹시 가문이 망하길 고사라도 지내는 것이오?”

“듣고 보니 그 의도가 불순하오이다.”

그들은 모두 한빈을 헐뜯기 바빴다.

처음에는 경외의 눈빛을 보내던 그들이 현무각주의 말 한마디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이제는 경멸의 시선으로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기들에 대한 세뇌 교육은 끝났지만, 세가 전체에 대한 교육은 아직 시작 전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충성을 맹세한 것은 하북팽가이며, 현 가주인 팽강위였다.

팽혁빈이나 팽한빈에 대한 충성이 아니란 말이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심미호가 자신의 앞까지 오기를 기다렸다.

관을 끌고 오는 심미호의 모습을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팽강위와 팽대위밖에 없었다.

둘만은 심미호가 끌고 오는 관과 한빈을 번갈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의 앞에 다다른 심미호가 기둥처럼 우뚝 멈췄다.

심미호는 밧줄을 느슨히 풀고 한빈에게 포권했다.

“말씀하신 물건 가져왔습니다, 주군.”

“수고했어, 심 부대주.”

한빈이 빙긋 웃으며 주변을 바라봤다.

모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더욱 짙은 미소를 피워 냈다.

“다들 이게 뭔지 궁금하시지요?”

“뭔지 궁금하지는 않소. 사 공자, 저건 누가 봐도 관이 아니오? 왜 저걸 불길하게 가주전에 들인 것이오?”

현무각주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관을 가리키자 한빈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그냥 관이 아닙니다. 제 목숨을 구해 준 물건입니다.”

“사 공자의 목숨을 구했다니? 누가 봐도 저주받은 관 아니오?”

“저주받은 물건이 아니라. 구사일생의 행운을 가져다준 기물입니다.”

“난 도저히 이해가…….”

현무각주는 말끝을 흐렸다.

가주 팽강위와 집법당주 팽대위의 묘한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가주와 집법당주는 한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각주는 가주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쯤 되자 불쾌한 기분보다는 살짝 호기심이 이는 현무각주였다.

사실 관이 불길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관은 불에 그을린 듯 여기저기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군데군데 찌그러진 흔적도 있었다.

거기에 먼지와 진흙이 관에 묻어 있었다.

관을 끌고 오며 가주전 바닥은 상당히 더럽혀진 상태였다.

마치 오래된 무덤에서 도굴을 해 온 듯한 관이었다.

강철로 된 관이었지만, 도굴까지 해서 가져올 관은 아니라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한빈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들의 호기심이 최고조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때, 한빈은 때가 되었다는 듯 눈을 빛냈다.

“혹시 여러분들은 사천당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십니까?”

“…….”

모두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천당가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경천동지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자는 없었다.

그 당시 수행했던 무력대와 팽대위 그리고 팽혁빈을 제외하면 아무도 구체적인 사실은 몰랐다.

그곳에서 한빈과 적혈맹호대가 공을 세웠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다.

그것은 황궁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다.

암제는 황실의 사람이었다.

황제가 살아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황실 내부에 작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진천뢰라!

이것은 군부에서 유출되었음이 분명했다.

물론 진천뢰는 금의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나라에서 몰래 한빈을 위해서 준 물건이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개인에게 군부의 물건을 줬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강호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뒤집힐 사건이었다.

그런 이유로 금의위를 중심으로 이 사건에 대해서 입단속에 나섰다.

덕분에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지만, 정작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적들은 사천당가에 비밀 통로를 만들고 그곳에서 수천 근의 진천뢰를 묻어 놨습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모두의 표정을 확인했다.

급작스러운 한빈의 말에 모두는 헛숨을 들이켰다.

“허허.”

“어찌 그런 일이!”

모두가 헛숨을 들이켜고 있을 때, 현무각주가 한빈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기를 꺾어 놓을 수 있을까 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놀라운 듯 눈을 크고 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무가지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오?”

“다행히 수천 근의 진천뢰 중에 몇백 근만 터졌습니다. 그걸 발견한 사람이 바로…….”

한빈은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현무각주가 미간을 좁혔다.

한빈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걸 발견하고 온몸을 던져 막은 것이 바로 접니다. 그걸 터뜨리려고 하던 적에게 맞선 것이 적혈맹호대였고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진천뢰가 터지는 것은 막지 못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화마가 수십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이닥쳤습니다. 그 불길은 마치…….”

한빈은 이야기꾼이 재미있는 전설을 전하듯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한빈의 말에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던 팽강위는 고개를 돌렸다.

순간 팽대위와 시선이 마주쳤다.

팽대위도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심미호는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빈이 늘어놓는 이야기 속에 진실의 조각은 조금밖에 없었다.

통로를 판 것은 적혈맹호대였다. 물론 진천뢰를 묻은 것도 적혈맹호대였다.

이 모든 것은 한빈의 지시였다.

중요한 것은 진천뢰에 불을 붙인 것도 한빈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왜 진실을 감추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한빈이 늘어놓는 거짓말이 더 진실처럼 들린다는 점이었다.

심미호가 놀란 것은 주군의 말발이었다.

그녀는 상단전이 열리면 말발도 느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민을 멈췄다.

물론 이것은 심미호의 착각이었다.

거짓을 진실처럼 꾸밀 수 있는 것은 상단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귀검대주로 살아왔던 한빈의 전생 경험 때문이었다.

한빈의 말에 현무각주의 눈동자가 점점 옆으로 기울어졌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싶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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