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45화 (531/621)

545. 천수장에서의 내기 (5)

모든 서생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관청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그들은 잠시 넋을 놓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그들은 앞쪽에서 응시 명부를 확인하고 걸어오는 거지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휴, 무슨 거지가 저리 붓을 꼭 쥐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그러게 말일세. 마치 붓을 놓치면 죽는다는 표정 아닌가?”

“혹시 요즘 개방에서는 타구봉이 아니라 판관필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닌가?”

”그러게 말일세. 붓을 쥔 저 손등에 불끈 돋아난 힘줄을 보면 그럴 것도 같네.“

그들은 천천히 걸어오는 거지들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다.

그들이 판관필 운운한 것은 명백한 조롱이였다.

판관필이란 붓을 닮은 병기였다.

타구봉을 들고 있어야 할 거지가 붓을 들고 있다고 놀리는 것.

가까이 다가왔지만, 거지들은 비아냥대는 서생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거지들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걸어갔다.

그 모습에 서생들은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저 봇짐에는 지필묵이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하니!”

그들은 거지들이 등에 메고 있는 봇짐을 바라봤다.

서생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거지들이 멘 봇짐과 서생들이 멘 것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마치 지필묵이 들어 있을 법한 봇짐이었다.

한참을 보던 서생 중 하나가 말했다.

“설마……. 저 거지들이 진짜 이번 향시에 응시하는 것은 아니겠지?”

“저길 보게!”

서생이 다시 거지들을 가리켰다.

응시 명부를 확인하는 관리가 있는 곳이었다.

거지들이 응시를 담당하는 관리의 앞에서 호패를 꺼내 들고 있었다.

순간 서생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바로 호패였다.

“거지들이 언제부터 호패를 들고 다녔지?”

“허허,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아무래도 저자 중 하나가 낯이 익은 것 같네…….”

“그게 무슨 말인가?”

“저기 가장 초췌해 보이는 자 말일세,”

“어디…….”

“그래, 거기 말일세. 저자는 꼭 장문수 같지 않은가?”

“장문수라면, 향시에서 번번이 낙방하고 하북팽가의 서기로 들어간 친구 아닌가?”

“그래, 아무리 봐도 그 친구가 틀림없네.”

“하북팽가의 서기가 왜 저런 꼴이란 말인가? 대우가 그리 나쁘지 않을 텐데 말이야.”

“쫓겨나서 개방에 서기로 취업한 건 아닐까…… 하네만은.”

“예끼! 개방에 무슨 서기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그려.”

그들은 장문수가 있는 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말한 이는 장문수였고 그와 같이 모여 있는 거지 무리는 다름 아닌 하북팽가의 서기들이었다.

정확히는 한빈과 사제 계약서를 쓴 바로 그 서기들.

그들이 붓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을 알아본 서생들은 재미있다는 듯 장문수를 관찰했다.

그들은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이 하북팽가의 서기라는 것을 알아봤다.

“하북팽가의 서기가 저러고 있다는 건…….”

“그래, 하북팽가가 망했다는 증거 아니겠나?”

“하북팽가가 왜 망하나?”

“잘 생각해 보게. 하북팽가가 망했으니 향시에 응시하기 위해 저러고 있는 게 아니겠나?”

“흠, 그 말도 맞네그려! 그러지 않아도 하북이 잠잠하던 터였는데, 재미있게 됐군.”

그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다른 가문의 흥망성쇠는 그들에게 있어 강 건너 불구경에 불과했다.

그때 하북팽가의 서기 장문수를 관찰하던 서생이 말했다.

“잠시만, 이쪽으로 오네.”

“허허, 이거 모른 척하기도 뭐하고…….”

말끝을 흐린 서생이 빙긋 웃으며 장문수가 걸어오는 쪽으로 몸을 돌리며 발을 슬쩍 내밀었다.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으로는 성에 안 찼다.

그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을 생각이었던 것.

그때였다.

장문수가 서생의 발에 걸렸다.

순간 서생의 눈이 커졌다.

발을 걸었으면 상대가 넘어져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넘어지기는커녕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덕분에 서생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걸린 발을 앞으로 뻗으니, 마치 장문수가 서생의 발을 낚아챈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서생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동시에 뒤에 오던 다른 거지꼴의 서기가 서생을 잡았다.

“조심하시구려. 이러다 넘어지기라도 해서 팔이라도 부러지면, 향시는 물 건너간 것이 아니겠소?”

그의 말에 서생이 고개를 들었다.

상대를 확인한 서생이 눈을 크게 떴다.

장문수의 뒤를 따르던 거지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자네는 조일순 아닌가?”

“허허, 날 알아보는 걸 보니 전에 본 적이 있나 보군요.”

조일순의 말에 서생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조일순과 장문수를 번갈아 확인하고 있다.

자신이 창피해서 모른 척을 하면 몰라도 상대가 모른 척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그때 앞에 선 장문수가 조일순을 바라봤다.

“시간 없으니 우린 어서 저곳으로 가세.”

“허허, 알겠네.”

조일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서생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그 모습에 서생 하나가 웃었다.

“저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서생은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궁금하다기보다는 사실 어이가 없어서였다.

자신들이 장문수와 조일순을 모른 척해야 했다.

거지꼴을 한 장문수를 알은척해 준다는 것만 해도 큰 선심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장문수는 그들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그들은 멀어지는 장문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냥 살짝 망한 줄 알았더니 쫄딱 망했구먼.”

“그게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게.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저러겠나……. 꼴만 말이 아니라 정신까지 나간 게 분명하네.”

“허허, 그 말이 확실하군. 쯧쯧……. 그런데 자네 발목은 괜찮은가?”

서생이 발을 건 자신의 동료를 바라봤다.

발을 건 서생이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발목이 시큰했기 때문이다.

그때 동료 서생이 앞을 가리켰다.

“이제 문을 열었군.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빨리 앞으로 가야지.”

“그러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발을 내디디려고 했는데 발목이 시큰한 것을 넘어서 저릿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 서생들로부터 멀어진 조일순이 장문수에게 물었다.

“자네, 괜찮은 것인가?”

“그게 무슨 말인가?”

“아까 그 친구가 자네 발을 걸지 않았는가?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돼서 그러네.”

“그런 일이 있었는가?”

“허, 아예 상황을 몰랐다는 투로군.”

“아까 그자들이 누군지도 모르네. 그런데 자네는 그자들을 아나 보군?”

“전에 동문수학했던 친구들이 아닌가?”

“그런가…….”

장문수는 희미하게 웃을 뿐 바로 고개를 돌려 멍하니 사색에 빠졌다.

그가 예전에 같이 동문수학하던 이들을 몰라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척이 아니라 진짜 몰라본 것이다.

장문수는 그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에 집중하면 나머지 가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와 같았다.

장문수는 누가 발을 걸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힘으로 뚫고 나간 것이다.

하북팽가의 서기들에게는 한 달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구천지옥이라는 걸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괴로운 것은 밧줄에 매달려 사서삼경을 외울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식사 시간이었다.

그들에게 반찬이라고는 무말랭이밖에 나오지 않았다.

말이 무말랭이지 누런색에다 맛도 이상했다.

그 맛은 마지막 날까지도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길 수도 없는 것이, 남은 반찬을 버리려 하면 어디선가 설화가 나타나서 무말랭이를 더 올려 줬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이다.

물론 그 무말랭이는 천수장의 극양지기를 품은 영약이었다.

적혈맹호대도 똑같은 시련을 거쳐 절정의 무위를 얻을 수 있었던 것.

천수장에는 널려 있는 무말랭이지만, 외부에서 비슷한 효과의 영약을 구하려 한다면 서기의 한해 봉급을 다 털어도 불가능했다.

이제 며칠 반을 새워도 끄떡없을 만큼의 체력과 웬만한 충격에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뚝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향시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그들이 한빈에게 얻어야 할 것은 다 얻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서기 중에 자신의 변화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는 없었다.

서기들이 줄을 서기 위해 뒤쪽으로 사라지자, 그들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장유중은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는 잠시 헛기침한 뒤 조용히 관청으로 들어갔다.

* * *

관청으로 들어간 장유중은 관졸의 안내를 받아 현감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장유중은 이곳에 참관인 자격으로 왔다.

유학자 중에 가장 명망 높은 그가 일개 현의 참관인으로 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참관이 아닌 감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장유중은 한빈과 내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빈이 서기들이 향시에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단언한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올곧은 한빈의 성품을 장유중은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한빈은 목적이 있으면 그 올곧음을 적당히 구부릴 줄 아는 자라는 것이다.

성과를 위해서라면 적당한 술수를 부릴 줄도 아는 자가 바로 한빈이었다.

장유중은 한빈의 이런 면까지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단기간에 서기들이 성취를 이루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것이 과연 어떤 방법일지는 몰랐다.

그 꼼수를 막는 방법은 장유중이 직접 나서서 감시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오죽하면 시험도 자신이 내겠다고 했을까.

덕분에 참관인 겸 출제자의 역할까지 맡게 된 장유중이었다.

장유중은 현감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덜컹.

문이 열리자 관졸이 다급하게 달려가 현감에게 보고했다.

현감은 부랴부랴 장유중을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같이 있던 시험관들도 다급하게 장유중을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장유중이 손을 저었다.

“그리 예를 차릴 필요는 없네. 그러니 일단 들어가세.”

“네, 이쪽으로…….”

현감이 직접 장유중을 맞이했다.

장유중이 앉자 다른 시험관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인사를 받은 장유중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때 현감이 장유중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는 무슨 일로…….”

말끝을 흐린 현감은 조심스럽게 장유중의 표정을 살폈다.

미리 서신을 받긴 했지만, 장유중의 방문은 그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의 당황한 모습에 장유중은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현감은 날 신경 쓰지 말고 공정한 시험이 되도록 힘쓰게.”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행차에 누가 되지 않도록 힘쓰겠습니다.”

현감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건 그의 진심이었다.

유림 서원에서 나오지 않던 장유중이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중앙 정계의 변화를 의미했다.

이곳은 황제가 있는 북경과 불과 나흘 거리.

분명히 의미가 있는 행보였다.

물론 이것은 현감의 착각이었다.

장유중은 동생의 흔적과 한빈의 주변 인물이 궁금해서 하북 땅에 온 것이니 말이다.

장유중의 등장에 현감은 잔뜩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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