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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42화 (528/621)

542. 천수장에서의 내기 (2)

한빈이 기다리던 결과는 다름 아닌 구결을 나타내는 점.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지(智)의 구결을 나타내는 점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학문의 성취가 있다는 증거였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피워 낸 한빈이 옛 성현의 말씀을 떠올렸다.

결과를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는 말은 역시 진리였다.

그때 장유중이 다가왔다.

한빈의 기행에 장유중도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허허, 상상도 못 할 방법이군. 그런데 내유외강이 아니지 않은가? 저렇게 되면 외강을 중점으로 두고 교육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내면도 강해야 하지만 신체도 그만큼 따라와야 하는 것이 이치이지요.”

“그럼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가?”

“강호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강한 자만이 부드러운 척을 할 수 있다고요. 강호에서는 약한 자도 강한 척을 하고 강한 자도 강한 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법입니다. 또한 그 강함을 뛰어넘을 때가 되어서야 부드러운 척할 수 있는 여유를 보일 수 있는 법이죠.”

“허허.”

장유중이 웃자 주변에 있던 유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유생들은 정치판이나 강호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로 등용되면 반드시 한발 걸치게 되는 것이 정치 싸움이라는 무대였다.

그곳에서 상대를 배려하거나 여유를 보일 수 있는 자는 강자밖에 없었다.

그 강자를 제외하고는 복어처럼 몸을 부풀려서라도 먹잇감이 되는 것은 피해야 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런 여유를 지닐 정도의 강한 신체를 만드는 것과 학문의 성취 사이에 관계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고개를 갸웃하던 유생 중 하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입을 틀어막은 유생은 헛구역질하며 구석으로 달려갔다.

나머지 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윽.”

“나는 볼일 좀……. 흑.”

그들은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몇몇 유생만 자리에 남아서 동료들이 왜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심미호가 한빈을 바라봤다.

“저분들 왜 저러시는 거죠?”

“아무래도 징그러운 게 떠오른 모양이야.”

“징그럽다니요?”

“저 아래 뱀 말이야.”

“뱀이 왜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솔직히 광개 대협이 구워 주는 토끼구이와 뱀구이는 별미잖아요.”

“우리야 그렇지…….”

한빈은 옆을 바라보며 웃었다.

옆에는 그제야 동료들이 왜 헛구역질을 했는지 깨달은 이들이 입을 막고 있었다.

장유중과 한빈의 대화에 귀 기울이느라 아래에서 꿈틀대는 수천 마리의 뱀을 깜빡한 것이다.

거기에 그들이 먹은 음식 중에는 면 종류도 꽤 많았다.

흑미로 넣은 검은색 면들은 저 아래 있는 뱀들과 흡사했다.

양석봉도 못 참겠다는 듯 외쳤다.

“나도 잠시 자리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유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전부 자리를 피하자, 한빈이 웃었다.

“하하, 학장님은 괜찮으십니까?”

“뭐, 소싯적 나도 많이 잡아먹어 봤네.”

장유중은 평소답지 않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을 끝으로 유생들을 위한 연회는 끝났다.

아래에 있는 뱀을 보고 식사를 계속 즐길 수 있는 유생은 아무도 없었다.

심미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아래를 바라봤다.

“저게 얼마나 맛있는데…….”

“심 부대주.”

“네, 주군.”

“심 부대주도 전에는 떨었잖아.”

“그때는 독사가 제법 많이 섞여 있었잖아요.”

“그랬지.”

“덕분에 독에 대한 내성은 길렀지만…….”

심미호는 말끝을 흐렸다.

밧줄에 매달려 있는 유생 중 하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으악!”

아래로 떨어지는 서기가 비명을 질렀다.

심미호가 눈을 크게 떴다.

“아혈을 제압당했는데 비명을 지르네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한 게지.”

“아, 역시……. 효과가 있네요.”

그들의 대화에 장유중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말하는 효과가 학문의 성취와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 * *

식사 후 빈객들을 위한 전각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사신대에서 이루어진 연회를 마치고 내려온 유생들 사이에서는 제법 심각한 의견 대립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대립의 중심에는 한빈의 교육 방법이 있었다.

과연 이것이 효과가 있느냐?

아니면 단순한 고문에 불과한 것이냐?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었다.

그들은 주먹다짐 대신에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몇몇 유생이었지만, 그 논쟁은 점점 번져 나가서 유생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는 전체가 반반으로 나뉘어서 심각한 표정으로 토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영원한 경쟁자인 양석봉과 최유지가 있었다.

탁자에 마주 앉은 양석봉이 말했다.

“나는 팽 유생을 믿네.”

“나도 믿지만, 저런 교육 방식으로 어떻게 학문의 성취를 이룰 수 있겠는가?”

“우리는 팽 유생이 이제까지 보여 준 기적을 보지 않았나.”

“명분이 부족하네.”

“허허, 무슨 명분이 부족하다는 건가? 불가능한 것을 이루어 낸 그동안의 업적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아무리 그동안의 공이 컸다고는 하나 맹물로 좋은 술을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걸 자네는 놓치고 있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뭔가?”

“자네 같으면 저런 교육, 아니 수련을 버틸 수 있겠는가? 오늘만 해도 뱀에 물려서 의당으로 실려 간 서기가 셋이네. 그마저도 해독하고 나서 다시 밧줄에 매달렸지. 그리고…….”

최유지는 자신의 의견을 쉴 틈 없이 이어 나갔다.

감정 이입한 그의 표정만 보면 입에서 피가 튈 것만 같았다.

그의 설명에 양석봉이 말했다.

“흠, 교육에 대한 효과는 믿지만, 내가 봐도 서기들이 버티기에는 힘들 것 같네. 그런데 말이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이상하게 서기들이 여길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럼 우리 내기하세.”

“무슨 내기를 말인가?”

“자네는 서기들이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는 데 걸고, 나는 서기 중 반은 도망친다는 데 걸면 내기가 성립하지 않겠나?”

“흠, 판돈으로 뭘 걸고 싶나? 참고로 난 푼돈은 필요 없네.”

“이긴 사람을 팽 공자의 제일 친우로 인정하는 것이 어떤가?”

“오호. 그럼 그거 받고 가보 하나를 더 거는 것이 어떤가?”

양석봉이 눈을 빛냈다.

누가 한빈과 가장 친하냐 하는 것은 지금 유림 서원의 유생들에게는 뜨겁게 떠오르는 문제였다.

“좋네.”

최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 이후에도 어떤 가보를 거느냐 하는 문제로 밤이 새는지도 모르게 설전을 벌였다.

* * *

활기찬 유생들의 숙소와는 별개로 서기들이 묵고 있는 곳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자는 오직 그들을 치료하는 의원밖에 없었다.

의원은 그들의 상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휴, 또 이럴 줄은 몰랐네. 사람을 부려 먹어도 유분수지. 진짜 미치겠네.”

의원이 한숨을 내쉬자 장문수가 눈을 끔벅이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의원이 못마땅한 듯 불평을 쏟아 내자 아군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문수는 사실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한빈에 대한 믿음은 딱 사신대에 오르기 전까지만 유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었다.

강인한 신체고 강인한 정신이고…….

그게 학문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밧줄에 매달린 상태에서는 평소에 쉽게 떠올리던 시구와 경서의 구절도 생각나지 않았다.

완전히 백지상태로 밧줄에 매달리기에 급급했다.

장문수는 그나마 한 번 떨어졌다.

다른 서기들은 많게는 세 번까지 떨어진 자도 있었다.

그중 몇은 독사에 물린 자도 있고 말이다.

기연이고 뭐고 이제는 살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할 때임을 알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첫날 장문수가 느낀 소감은 간단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지옥을 죽어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가장 큰 깨침이었다.

사실 장문수는 동료 서기들에게 미안했다.

가장 먼저 계약서를 쓴 것도 장문수요.

그들을 선동한 것도 장문수였다.

차라리 친우인 조일순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그때였다.

눈여겨보던 의원이 드디어 장문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장문수의 머리맡에 온 의원이 물었다.

“몸은 움직일 만한가?”

“모, 못 움직일 것 같습니다.”

“에고, 고생이 많네. 그래도 말을 하는 걸 보니 내 힘은 필요 없을 듯하네.”

말을 마친 의원이 자리를 떠나려 하자 장문수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대체 이곳은 뭐 하는 곳입니까?”

“여길 모른다고?”

“네, 저희가 학문을 갈고닦을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이곳의 이름이 천수장이라죠.”

“천수장이라……. 그리고 학문을 닦는 곳이라?”

“아닙니까?”

“뭐, 비슷하긴 하다네. 자넨 여기의 옛 이름이 뭐였는지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이 근처에 귀곡장이란 흉가가 있다고만 들었지……. 천수장은 처음 들어 봅니다.”

“여기의 옛 이름이 바로 그 귀곡장이네. 아직도 가끔은 귀곡성 소리가 귓가에 울리지.”

“귀, 귀곡장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우리 공자님 말씀에 의하면 음기와 양기가 충돌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하네. 지력을 다 회복시켰다고 하는데도 가끔 귀곡성이 들리는 걸 보면 원을 풀지 못한 망자의 넋이 남아 있는 모양이야.”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긴? 여기 온 수련생들이 자네들이 처음이라 생각하는가?”

“저, 저희가 처음이 아니라면요?”

장문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다.

자신이 처음이 아니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덕분에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던 서기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은 마치 강시와도 같았다.

그들의 모습에 의원이 웃음 지었다.

“참, 내 이름은 장자명이라고 하네. 나도 자네와 그리 다르지 않은 처지일세.”

의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장자명이었다.

장자명의 말에 장문수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와 처지가 같다니요?”

그도 그럴 것이, 배움을 청하러 온 자신과 이곳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의원의 처지가 같을 리 없었다.

화등잔이 된 장문수의 눈을 본 장자명이 말을 이었다.

“자네나 나나 계약서에 묶인 몸 아니겠나!”

“의원님도 계약서를 쓰셨다고요?”

“그렇지. 여기 있는 사람은 다 계약서로 묶인 몸이네. 자네들은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 봤나?”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냥 보기에도 악랄하다는 생각이 안 들던가?”

“…….”

“그런데 그건 빙산의 일각이네. 분명히 자네들이 읽어 보지 못한 조항도 있을 것이네.”

“다 읽어 봤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글씨는 읽어 보지 못했을 것이야. 아마 위약금에 대해서도 쓰여 있을걸. 자네들은 이제 도망치지 못해.”

장자명은 놀리듯 장문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얼마 남지 않았다네. 조금만 있으면 자유의 몸이지.”

장자명은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활짝 폈다.

의기양양한 표정은 마치 전역을 며칠 앞둔 병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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