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19화 (617/621)

519. 강태공이 된 한빈 (5)

한빈은 잔혈마창의 등 뒤에 꽂힌 응조수를 아무렇지 않게 빼냈다.

순간 잔혈마창의 등 뒤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하늘을 보게 몸을 눕힌 후 장심으로 잔혈마창의 심장을 내리쳤다.

팡!

마치 확인 사살을 하려는 동작이었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소군이 놀란 듯 달려갔다.

“왜 죽은 사람을 또 죽이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저건 나를 살릴 때와 똑같은 수법이야.”

청화가 소군의 소매를 잡았다.

“네?”

“우리 공자님은 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

“다 죽어 가는 사람이 아니고 죽은 사람인데요.”

소군이 고개를 갸웃하자 설화가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소군의 소매를 잡아끈 설화는 조용히 잔혈마창과 한빈의 옆으로 다가갔다.

한빈이 잔혈마창의 가슴에 장심을 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소군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은 사람한테 왜 내공을 낭비하시는 거예요?”

“죽지는 않았어. 죽은 척한 거지.”

설화가 고개를 젓자 소군이 다시 물었다.

“죽지 않았다니요, 언니?”

“잘 봐 봐. 목 뒤에 솜털이 곤두서 있잖아.”

“솜털이라니…….”

소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잔혈마창의 목을 바라봤다.

순간 소군의 눈이 커졌다.

목덜미에 솜털이 곤두서 있었다.

이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때 설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은 귀식대법을 펼친 후 진기를 다시 돌릴 힘이 떨어진 게 분명해. 아마 저대로 놔둔다면 며칠 내로 생명이 끊기겠지.”

“언니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공자님 옆에 있다 보니…….”

설화가 말끝을 흐렸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었다. 설화는 한빈과 만나기 전에는 흑천의 특급 살수였다.

그러니 이런 현상을 모를 리 없었다.

귀식대법을 펼친 상태에서 저런 상처를 입게 되면 남들이 보기에는 목숨이 끊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완벽한 가사 상태에 빠진 것.

물론 목 뒤에 솜털이 곤두서 있는 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한빈이라는 고수의 손길에 가사 상태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사실 그가 살아 있다는 징후는 살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화도 궁금했다.

한빈은 어떻게 알았을까?

의문도 잠시, 설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파보다 더 사파 같다는 소리를 듣고, 마교인보다 더 마교인 같다는 소리까지 듣는 한빈이었다.

그러니 살수보다 더 살수 같은 게 이상할까?

설화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 것이 습관화된 성화였다.

그때 한빈의 전음이 들려왔다.

설화는 재빨리 소군에게 귀엣말을 속삭였다.

“일단 너는 빠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왜요? 언니.”

“저자의 의도를 모르잖아.”

“아, 알았어요.”

소군이 고개를 끄덕이자 청화가 그녀의 손을 잡고 뒤로 빠졌다.

이제 잔혈마창의 곁에는 한빈과 설화만 남은 상태.

그때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후.”

그 소리에 모두가 잔혈마창을 바라봤다.

한빈은 그의 가슴에서 오른손을 뗀 상태였다.

그를 보며 쭈그려 앉은 한빈.

설화가 한빈을 따라 똑같이 쪼그려 앉았다.

순간 잔혈마창이 눈을 떴다.

눈을 뜬 잔혈마창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신과 선녀가 함께 있는 걸 보니 여긴 저승이 맞나 보군.”

“…….”

한빈은 아무 말 없이 잔혈마창을 계속 내려다봤다.

옆에 있던 설화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물론 잔혈마창의 눈에는 그들의 표정이 들어오지 않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형체가 사신과 선녀처럼 보이기에 한 말이었다.

다시 눈을 감은 잔혈마창이 말했다.

“어서 날 데려가시오.”

“일단 얘기 좀 해 보고 데려가야 할지 말지를 판단하도록 하지.”

순간 잔혈마창이 눈을 떴다.

상대의 말이 사신같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거기에 고막을 때리는 음성.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가 맞았다.

“그게 무슨…….”

잔혈마창은 말을 맺지 못했다.

푸른 도포에 흩날리는 수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중원에 발을 디디며 수집했던 청운사신의 정보와 일치했다.

그렇다면…….

잔혈마창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설화야, 이 친구 몸 좀 일으켜라. 이거 고개를 숙이며 대화하려니 목이 아프네.”

“네, 공자님.”

설화가 신이 난 듯 잔혈마창의 몸을 일으켰다.

그를 일으키던 설화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응조수가 꽂혀 있던 등 부근의 피가 멈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 *

만향각의 밀실.

한빈은 자리를 옮겨 잔혈마창과 마주 보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잔혈마창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회복했다.

물론 한빈이 기사회생을 쓰지 않았다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을 터였다.

한빈과 잔혈마창 사이에는 찻잔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 내며 여유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잔혈마창은 이를 악문 상태에서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한빈이었다.

“하하, 차 식겠소.”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왜 내게 치욕을 주는가?”

“말 한번 잘했소. 죽일 거면 내가 이런 수고를 했을 것 같나? 잘 생각해 보시게.”

“…….”

잔혈마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림 서원에는 왜 온 것이지?”

“…….”

“혹시 마령지체의 주인을 찾으러 왔나?”

“음.”

잔혈마창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표정을 보니 맞는 것 같군.”

“아니오. 그건 절대 아니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지. 무공에 비해 거짓말을 못 하는 친구군.”

“…….”

잔혈마창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말은 신교에서도 자주 듣던 소리였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데는 그다지 능숙하지 못했다.

사실 성격이 아니라 그의 삶이 그랬다.

적이 나타나면 목을 베면 되고,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고개를 숙였다.

강자를 추앙하고 약자가 있으면 수하로 거두었다.

그가 우러러봐야 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단순한 삶 속에 그가 거짓말을 해야 할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강자에게든 약자에게든 자신을 속인 적이 없었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마령지체는 찾을 필요 없네. 마령지체의 주인은 이번 싸움에서 죽었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잔혈마창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를 찾은 걸 축하하네.”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이오? 마령지체의 주인이 죽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정체불명의 세력에 의해 죽었네. 자네가 더 잘 알지 않은가?”

“나는…….”

잔혈마창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머릿속에 마지막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에게 응조수를 꽂아 넣은 것은 음양쌍마가 아니었다.

그는 극마의 경지에 오른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잔혈마창이 상대를 바라봤다.

그는 마지막 내공을 쥐어짜 외쳤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구나! 어서 죽여라!”

“고작 마령지체의 주인이 죽었다고 모든 게 끝이라고?”

“너희 정파인들은 모른다.”

“뭘 모른다는 거지?”

“마령지체의 주인이 죽으면 마교가 어떻게 되는지, 중원이 어떻게 피로 물드는지를 말이다.”

“흠, 그렇다는 거지…….”

한빈은 잔혈마창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마치 돛대가 부러진 배같이 갈팡질팡 못 하는 느낌이다.

그것도 잠시, 그는 생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한빈은 일단 그가 소군을 죽이러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순간 밀실의 문이 열렸다.

덜컹.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청화였다.

그 뒤로 소군이 얼굴을 빼꼼 내민다.

순간 잔혈마도가 일어났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리는 잔혈마도.

그는 바로 소군을 향해 달려갔다.

순간 설화는 우혈랑검을 꺼냈고 청화는 장심에 독기를 모았다.

갑작스러운 잔혈마도의 돌진을 공격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 한빈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신호였다.

잔혈마창은 소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군의 눈빛이 떨리자 한빈이 말했다.

“일단 판은 깔아 놨으니 마저 대화 좀 나누지.”

한빈은 잔혈마창을 일으켰다.

잠시 후.

잔혈마창은 시종일관 정중한 말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한빈을 생명의 은인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소군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한빈은 잔혈마창이 털어놓은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생에도 몰랐던 마교의 비밀을 현생에 접하게 된 것이다.

마령지체가 왜 마교인에게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알게 된 것.

천산 산맥의 일대에 자리 잡은 천마신교의 비밀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들이 봉문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마교를 휩쓴 역병 때문이라고 한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역병이 휩쓸고 간 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천마신교의 일반 백성들이 하나둘 늘었다고 한다.

바람만 불어도 혹은 옷깃만 스쳐도 까무러칠 듯한 고통을 느끼는 병이라고 했다.

물론 모두에게 일어나는 병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인의 가족 중 하나는 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천마신교 최고의 의원이라는 마의도 처음에는 이 병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마의는 이 고통의 원인이 바로 불순한 마기라는 것을 알아낸다.

마의는 이 질병을 마통(魔痛)이라 칭했다고 했다.

마인의 몸에 들어 있는 불순한 마기와 정순한 마기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했다.

무공을 폐지하지 않는 한 그 고통을 계속된다고 했다.

그 불순한 마기를 정순한 마기로 바꿔 줄 방법이 바로 마령지체였다.

완벽한 마령지체의 주인은 불순한 마기만을 구별해서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소군이었다.

소군은 천마신교 내에서는 소마군이라 불리며.

완벽한 마령지체를 이루게 되면 천마신교의 교주 자리에 오를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마령지체를 이루는 소군의 단전에 문제가 생긴 것.

거기에 천마신교 내부에서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마령지체의 주인인 소군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발견한 것.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졌을 때 한빈이 물었다.

“그렇다면? 마교의 교주는 어떻게 된 건가?”

“교주님은 소마군의 마령지체를 보존하기 위해 본신 진기까지 모두 소진하고 지금 천마동에 폐관한 상태입니다. 사실 한 쌍의 천산혈랑만 온전히 있었다면 마령지체는 온전히 회복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천산혈랑의 내단이 바로 금이 간 마령지체의 단전을 복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천산혈랑을 풀어 준 것.

먼저 천산혈랑을 찾으러 간 것이 바로 그의 의형제인 잔혈마도.

그 후 잔혈마도와의 소식이 끊기자, 잔혈마창이 천산혈랑의 내단을 얻기 위해 중원으로 온 것이다.

그러던 중 마령지체의 흔적을 발견하고 유림 서원까지 온 것이라 했다.

여기까지 듣고 난 한빈은 대충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소군과 처음 만날 당시 쓰러져 있던 마인들은 아마도 신교의 반역자들이 분명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마통이라는 질병이 치료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여기까지 듣던 한빈이 다시 말했다.

“내 궁금한 게 있소.”

“말씀하시지요.”

“그럼 마령지체의 주인이 온전한 힘을 되찾고 그대들이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그다음 계획은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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