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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06화 (506/621)

506. 보름달이 다시 뜰 때 (4)

그녀의 신분에 대해서는 오직 장유중만이 알고 있었다.

장유중은 어거지를 피우는 효명 공주를 이길 수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유림 서원의 안가에 그녀를 숨겨 두었다.

그러고는 몰래 황궁에 서찰을 보냈었다.

서찰을 받은 현비는 효명을 위해 사람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황제 몰래 호위를 보내야 하기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장유중은 그동안 효명 공주를 안전하게 지키며 호위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흘 후면 황궁에서 보낸 호위들이 도착할 것 같았다.

그게 조금 전까지의 상황이었다.

장유중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얼마 안 가면 사람이 올 텐데, 그만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장유중의 표정과는 관계없이 효명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효명이 미소를 피워 내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다.

한빈이 자신을 챙겨 줬다는 것이 신났기 때문이다.

앳된 얼굴의 효명은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빈밖에 없었다.

절맥이라는 천형에서 그녀를 구해 준 것이 한빈이었다.

첫눈에 반한 신선도 바로 한빈이었다.

그런데 한빈이 자신을 위해서 안배를 한 것이다.

그 미소와 반대로 이를 지켜보던 제갈공려의 이마에는 주름이 잡혔다.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군요.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장혜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제갈공려가 답했다.

“저들의 목표는 효명 공주가 분명하겠지?”

“그야 그렇죠.”

“과연 얼마나 준비를 했을까?”

“흠, 그러고 보니…….”

장혜화는 입을 벌렸다.

그때 제갈공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긴 안전할 거야. 얼마나 버티느냐가 문제지.”

제갈공려가 천장을 올려다보자 장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법 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마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들의 습격은 단시간에 계획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군은 전혀 대비가 없었다.

누군가의 대비가 없었다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을지도 몰랐다.

한숨을 쉬던 제갈공려는 고개를 갸웃했다.

향로에서 나는 연기의 움직임에서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참을 보던 제갈공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에 대해서 알 것만 같았다.

연기가 퍼져 나가는 흐름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곳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연기의 흩어지는 모습에 생각보다 빨랐다.

연기를 바라보던 제갈공려는 다급히 주변을 확인했다.

그 모습에 덩달아 장혜화도 고개를 돌렸다.

황급히 주변을 살피던 제갈공려의 시선이 옛 성현들의 석상이 있는 곳에 멈췄다.

장혜화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여러 개의 석상을 살피던 제갈공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왼쪽에서부터 살펴볼 테니 동생은 오른쪽부터 살펴봐.”

말을 마친 제갈공려는 자리에서 튀어 옛 성현이 있는 석상 쪽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가자 연기의 흐름이 정확히 보였다.

연기는 옛 성현들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석상을 살피려던 제갈공려가 동작을 멈췄다.

이곳이 함정이라면…….

그때 장혜화가 외쳤다.

“여기 보세요!”

제갈공려가 장혜화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글귀 하나가 적혀 있었다.

제갈공려는 그 글귀를 읽었다.

“나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 그게 무슨 말이지?”

“그냥 단순한 뜻이 아닐까요?”

“단순한 뜻이라니?”

“석상의 눈을 확인해 보면 될 것 같아요, 언니.”

말을 마친 장혜화는 고개를 숙여 석상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 모습에 제갈공려가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갔다.

“동생, 거긴 함정일지도…….”

장혜화의 동작이 더 빨랐다.

그녀는 벌써 석상의 눈동자에 자신의 눈을 바싹 갖다 대고 있었다.

제갈공려가 마른침을 삼켰다.

다행히도 장혜화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탄성을 터뜨렸다.

“앗, 여기에서 밖이 보여요! 제가 설치했던 진법과 똑같아요, 언니.”

그 말에 제갈공려도 재빨리 다른 석상을 확인했다.

순간 제갈공려의 눈이 커졌다.

눈동자의 안쪽은 밖과 연결되어 있었다.

제갈공려는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밖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선묘도의 고양이 눈과 비슷한 원리였다.

제갈공려는 입을 크게 벌렸다.

“헉!”

한빈과 정체불명의 두 고수가 맞붙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갈공려의 눈으로는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들은 분명 화경의 고수가 맞았다.

제갈공려는 한빈의 말대로 이곳으로 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인원으로는 적의 손에서 효명 공주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제갈공려는 고개를 돌려 효명 공주를 확인했다.

순간 제갈공려의 눈이 커졌다.

화로의 옆에 있어야 할 효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색한 웃음이 옆에서 들려왔다.

“하하, 미안하네. 하도 보고 싶다고 난리를 치셔서…….”

장유중의 목소리였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옆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효명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저도 보고 싶어서요. 황궁에도 이렇게 생긴 기관이 몇 개 있거든요.”

“마음대로 하시죠.”

제갈공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황족의 행동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이곳은 향로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은 곳이었다.

걸음으로 치면 열 걸음 정도.

거기에 자신의 옆에 있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석상의 눈동자를 통해 밖을 보기 시작했다.

* * *

한빈은 섣불리 그들의 곁에 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음양쌍마는 한빈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정확히는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한빈은 그들의 손을 빠져나갔다.

몇 번 같은 상황이 되자 혈녀가 이를 부득 갈았다.

“네놈이…….”

“왜 그러시오? 벌써 지쳤소? 나이를 생각하면 지칠 때도 됐지, 하하.”

“네놈이 그러고도 무인이냐?”

“나보고 무인이라고 했소?”

“그래, 무인.”

“눈이 삐었소? 잘 보면 알겠지만, 나는 일개 유생이오. 여기 두건을 한번 보시오.”

한빈은 자신의 두건을 만지며 피식 웃었다.

유생들이 쓰는 두건이 분명했다.

그 모습에 혈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어디에서 어쭙잖은 재주를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오늘 너라는 미꾸라지를 꼭 잡겠다.”

“잡아서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나 하나 잡아서 탕을 끓이기에도 그렇고 구워 먹을 수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이쯤 해서 잠시 대화나 나눠 보죠.”

“대화라니…….”

혈녀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상대에게 집중하다 보니 뭔가를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 쉬엄쉬엄합시다.”

“네놈이!”

“보아하니 오래전 자취를 감췄던 혈교와 손을 잡은 것 같은데 말이오. 마교와 혈교는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조합이긴 합니다만…….”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혈교와 마교는 견원지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교는 혈교라고 하면 정파보다도 더 이를 간다.

그들은 무한한 힘을 추구한다는 것에서는 목적이 같았다.

하지만 힘을 얻는 과정이 문제였다.

그 힘을 얻는 과정의 하나로 피를 탐하게 되었던 것.

그때였다.

한빈이 파고들며 외쳤다.

“어디 밑천을 한번 보여 주시죠!”

“이놈이…….”

혈녀는 말을 맺지 못했다.

상대의 검이 자신의 어깨에 적중했기 때문이다.

슉!

치명상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상처는 수백, 아니 수천 번은 입었다.

다만, 적의 검기가 피륙을 뚫고 들어오는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일단은 적의 시선을 끄는 동시에 시간을 벌어야 했다.

혈녀는 개구리가 뛰듯 뒤쪽으로 다급히 몸을 튕겼다.

그때 혈자의 손이 한빈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한빈은 월아를 역수로 잡고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뒤쪽을 찔렀다.

푹!

순간 가죽이 뚫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한빈은 비틀거리는 혈자를 본 체도 하지 않고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고는 주변 상황을 살폈다.

혈녀는 어깨를 잡고 혈자는 옆구리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매섭게 한빈을 쏘아봤다.

그때 혈자가 말했다.

“왜 내 숨을 끊지 않았지?”

“그거 위험한 물건이잖아.”

한빈이 혈자의 발아래를 가리켰다.

혈자의 발아래에는 은빛 물체가 빛나고 있었다.

한빈의 말대로였다,

혈자는 한빈의 검이 적중당하는 순간 재빨리 주변에 철질려를 뿌렸다.

만약에 한빈이 혈자의 목숨을 끊기 위해 다가섰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던 상황.

그런데 한빈은 짧은 순간에 함정을 알아채고 자리를 피했다.

혈자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뿐이었다.

혈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유림 서원에 온 거지? 하북팽가라고 했나? 하북팽가라면 정파 중에도 천하 십대세가일텐데…….”

“그래도 귀는 뚫려 있나 보군. 그런데 말이야……. 귀는 뚫려 있어도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은 없었나 봐?”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진룡소협이라고 들어 봤나?”

“진룡소협?”

“모르는 걸 보니 이곳에 갇혀 지낸 지 오래됐나 보네.”

“음.”

“하긴,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소한 강호의 변화를 어떻게 알겠어?”

“혀가 길군. 일단 덤벼라.”

혈자가 손을 까닥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나는 얻을 건 얻었으니 너희와 싸울 이유가 없어.”

“그게 무슨 말이지?”

혈자가 질문을 던지자 한빈이 재빨리 뒤쪽으로 열 걸음 물러섰다.

“내가 너희에게 얻을 건 없다니까! 거기에 오늘은 운이 억수로 좋은 날이야.”

한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빈은 그 상태에서 조용히 허공을 올려다봤다.

[용안(龍眼)으로 초식을 확인합니다.]

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용린검법의 글귀가 이어졌다.

[천급 구결 유(悠)를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구결 자(自)를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 유(悠), 자(自)]

실로 운이 좋은 날이었다.

두 번 공격에 두 개의 천급 구결이 손에 들어왔다.

한빈이 혈녀와 혈자에게 쓴 초식은 다름 아닌 성동격서였다.

성동격서는 상대방의 무공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을 경우 이 할의 확률로 공격을 적중시킨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 한 번에 공격이 적중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빈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적과 자신의 경지가 동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이 여기까지 성장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감회가 새로웠다.

한빈은 다시 천급 구결을 살폈다.

‘유’와 ‘자’라?

이번에는 어떤 천급 초식일까?

글귀를 확인한 한빈의 표정이 푸근해졌다.

며칠 밥을 안 먹어도 든든할 정도였다.

얼마 만에 맛보는 구결인가?

사실 구결을 향한 갈증을 못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음양쌍마를 향해 손을 쓸 생각을 몇 번이고 했었다.

일꾼으로 변장한 음양쌍마를 보고 얼마나 군침을 흘렸던가!

오늘을 기다린 것은 음양쌍마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때였다.

한빈을 향해 음양쌍마가 동시에 달려왔다.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죽이겠다.”

“이놈!”

사자후를 내지르며 달려오는 음양쌍마.

한빈은 피식 웃으며 뒷걸음쳤다.

한빈은 그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외쳤다.

“몸이 조금 이상하지 않소?”

“네놈이 무슨 잔꾀를…….”

따라오던 혈녀가 동작을 멈췄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몸을 살피던 혈녀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혈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내가 중독이 됐지?”

“원래는 비밀인데 살짝 가르쳐 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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