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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500화 (500/621)

500. 전호후랑(前虎後狼) (7)

한빈은 천천히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장유중과 유생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한빈은 모닥불 근처에서 팔짱을 끼고 주변을 살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스륵.

바람이 멈춘 후 나타난 것은 하얀 무복의 설화였다.

설화는 평소답지 않게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무공이 고강한 설화가 이리 힘들어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짐 때문이었다.

설화는 자신의 몸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이는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마치 개미가 모이를 옮기는 모습과 흡사했다.

“헉헉. 공자님, 저 다녀왔어요.”

“거기에 내려놓고 쉬자, 설화야.”

설화는 등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았다.

설화의 몸집에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보따리가 땅에 닿자 굉음이 울렸다.

콰-앙!

그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모두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한빈과 설화를 바라봤다.

그때 장유중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유중은 유생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방금 들었다.

장유중은 설화가 가져온 물건이 유생들을 지켜 줄 무기라고 생각했다.

장유중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한빈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뭔가? 팽한빈 유생.”

“저희를 지켜 줄 물건입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그러니까 이게…….”

장유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설화가 보따리를 풀자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장유중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저, 저게 대체 뭔가?”

“보시다시피 향로죠.”

“향로인 걸 내가 모르나? 저건 우리 서원의 사당에 있는 향로가 아닌가?”

“크기가 맞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서원의 사당에 있는 것을 왜 여기에 가져온단 말인가? 혹시 자네…….”

장유중은 겨우 말을 멈췄다.

사실 장유중은 한빈이 미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향로는 서원에서 옛 성현을 모시던 사당에 있던 물건이었다.

공자에서부터 맹자까지 그들이 따라야 할 옛 성현들 전부를 모신 사당이라서 규모가 꽤 컸다.

그곳에 있는 향로를 왜 여기에 가져온단 말인가?

장유중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사당에 있는 향로로 유생들을 지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이제는 실제 적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가는 장유중이었다.

그때 한빈이 장유중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필요한 물건이니 양해해 주십시오, 학장님.”

“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한빈이 막 말을 마쳤을 때였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그 웃음소리는 마치 바람을 타고 오는 것 같아 어디서 들리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또한 그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마치 마른 낙엽이 바스러지듯 무미건조하고 생기가 없었다.

그 웃음 한 번에 유생들은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대체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지?”

“귀, 귀신 아니야?”

“맞아. 귀신 목소리 같네.”

동요한 것은 유생들뿐이 아니었다.

주변을 경계하던 호위들은 검을 꽉 잡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검을 잡은 오른쪽 손등의 힘줄이 눈에 띄게 튀어나왔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그들이 이리 긴장하는 이유는 그 웃음소리에 담긴 내공 때문이었다.

그 내공은 단순한 내공이 아니었다.

내공을 담아 내지르는 단순한 사자후가 아니고 소리를 멀리 보내기 위해 내공으로 소리의 통로를 만든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전음과 비슷한 원리였다.

저 정도의 무공이라면 화경에 올랐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짧은 웃음소리에는 묘한 적의까지 담겨 있었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웃는 것이 아군일 리는 없었다.

화경의 고수가 이곳에 등장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적으로 등장했다니.

서원의 호위들은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의 책임자인 장유중이 호위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장유중도 마른침을 삼켰다.

한빈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는 다시 한빈을 바라봤다.

“그럼 마음대로 하게나. 하지만 이전에 말했듯이, 자네가 한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네.”

“네, 물론이죠.”

한빈이 미소로 답했다.

하지만 장유중은 한빈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예 팔짱을 끼고 한빈을 감시하겠다는 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사실 감시는 아니었다.

한빈의 행동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호위들조차 저리 긴장하고 있는데, 한빈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나무로 치면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와도 같았다.

한빈은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보따리에 남아 있는 물건을 바라봤다.

보따리를 바라보던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설화가 말했다.

“참, 부탁하신 물건은 향로 안에 있어요.”

“그래, 알았다.”

말을 마친 한빈은 향로에 담긴 물건을 하나씩 빼내었다.

향로의 안쪽에서는 꽤 많은 물건 나왔다.

정체 모를 물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자 불안에 떨던 유생들조차 주변에 몰려들었다.

한빈은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건을 정리했다.

홍금호에 대한 응급처치를 마친 청화도 한빈을 도왔다.

한빈은 모닥불 옆에 향로를 놓고 기다란 향을 꽂았다.

그러고는 향에 불을 붙였다.

향로를 중심으로 은은한 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장유중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대체 뭐 하는 것인가? 자네.”

“보시다시피 향을 피웠습니다.”

“그건 아네만, 이곳에서 왜 향에 불을 피운다는 말인가?”

그때였다.

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껄껄!

이번 웃음소리는 조금 더 컸다.

즉, 적이 더 가까워졌다는 말이었다.

유생들이 다시 외쳤다.

“진짜 귀신인가 보네!”

“그러게 말일세. 대체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그러지?”

유생들이 술렁이자 장유중이 외쳤다.

“모두 진정하거라! 이곳은 안전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장유중도 이곳이 안전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다만, 서원의 호위 무사들과 한빈을 믿을 뿐이었다.

그때 한빈이 말했다.

“학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사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호위들이 예상한 대로 상대는 화경의 고수가 맞았다.

첫 번째 웃음에서 한빈도 바로 알아챘다.

문제는 두 번째 웃음이었다.

호위들은 못 알아채고 있지만, 첫 번째 웃음과 두 번째 웃음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즉, 화경의 고수가 둘이라는 말이었다.

화경의 고수 두 명이 유림 서원을 노린다고?

이건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장유중이 다급하게 속삭였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그게 정말 사실인가?”

“그 증거가 바로 저 웃음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장유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사실 그도 이렇게 당황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빈은 어둠 속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르신은 뒤통수를 치면서 미리 말하는 적을 보신 적 있습니까? 하다못해 옛 성현의 말씀을 배웠다는 관리들도 정치 싸움에서는 상대 몰래 허를 찌르지 않습니까?”

“허허…….”

장유중은 그저 웃기만 했다.

한빈의 말은 정확했다.

관리들은 모두가 공자와 맹자의 말씀을 받드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정정당당하게 상대를 누르려 한 적이 있던가?

호시탐탐 상대의 약점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굶주린 승냥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관리들도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이 달아나는 강호는 어떻겠습니까?”

“그럼 여기는 안전하다는 건가?”

“네, 진법으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쉽사리 뚫을 수 없는 진법이니 저희를 밖으로 유인하려는 술책이겠지요.”

“아, 진법이라…….”

진법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유림 서원이 안전한 이유도 진법 덕분이니 말이다.

진법에 대해서 떠올리던 장유중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왜 그러십니까? 학장님.”

“그, 그게 아니라, 내 동생이 밖에 있네.”

그때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장혜화 소저는 저와 함께 왔습니다.”

장유중은 급히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이곳에 새로 부임해 온 강사 중 한 명인 제갈공려가 서 있었다.

장유중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제갈공려의 옆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동생 장혜화.

그녀는 비에 맞은 것처럼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모습에 장유중이 재빨리 다가갔다.

“혹시 부상이라도…….”

“아, 아니에요. 오라버니.”

“그럼 왜 이리 땀을 흘리느냐?”

“제갈공려 학사님과 진법을 손보느라 뛰어다녔더니 숨이 차서…….”

“휴.”

장유중은 한숨을 쉬며 장혜화를 살피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빈이 있었다.

장유중은 진정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제갈공려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한빈이 입을 열었다.

“별건 없습니다. 정의맹과 여러 정보를 취합해 보니 누군가 이곳을 노린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럼 왜 말하지 않았나?”

“누군가라고만 했지, 그 정체는 모르니까요.”

“흠.”

“학장님은 평생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상태로 살고 싶으십니까?”

“그럴 리가…….”

“그래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흔적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기니까요.”

“그래도 내게 이야기를 해 줬으면 대비하지 않았겠나?”

“학장님은 대쪽 같은 성품의 학자이시죠?”

“…….”

장유중은 물끄러미 한빈을 바라봤다.

상대는 자신이 천재라고 인정한 유생이었다.

그 유생이 장유중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었다.

장유중은 아프기도 했지만, 대견하기도 했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아마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정식 절차를 밟아 일을 처리하셨을 겁니다. 그러면 이곳을 노리는 자들의 정체는 영원히 알 수 없겠죠. 중요한 건…….”

“계속 말해 보게.”

“중요한 건 그들은 다시 음지에 숨어 이곳을 노릴 거라는 점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이곳을 노린다는 것을 모른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겠죠. 하지만 누군가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 뻔합니다.”

“흠.”

“이제 저희가 할 일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게 뭔가?”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는 일이죠.”

“자네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포위됐다고 말일세. 그런데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 확인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체도 확인하고 적도 잡을 방법은 많습니다.”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말을 마친 한빈은 장혜화를 바라봤다.

장혜화는 허리 쪽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장유중에게 건넸다.

“오라버니, 이거 받으세요.”

장유중은 반사적으로 장혜화가 건넨 물건을 바라봤다.

“이건?”

“네, 천리신광(千里神光)이에요.”

“내 방에 있던 걸 챙겨 왔구나.”

장유중의 표정은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았다.

천리신광은 폭죽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그 성능은 보통의 폭죽과 달랐다.

하늘을 향해서 쏘면 대낮에도 이곳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폭죽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 천 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천리신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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