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 낭중지추 (2)
청화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갑자기 다수의 시선을 받은 청화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청화의 그런 모습이 걱정된 설화가 속삭였다.
“청화야, 너 괜찮아?”
“저, 정답을 알 것 같아서요. 언니.”
“그럼 당당하게 말해.”
“틀릴까 봐요…….”
“틀리면 어때!”
“틀리면 공자님의 명성에…….”
청화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이것은 청화의 진심이었다. 자신이 놀림을 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한빈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싫었다.
그때 제갈공려가 말을 이었다.
“편안히 말해 봐요, 청화 유생.”
“…….”
“상관없어요. 여기 명성이 자자한 다른 유생들도 다 틀린 문제니까. 틀려도 누구 하나 놀리지 않을 거예요.”
제갈공려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암제와의 대결에서 청화가 어떤 활약을 보였는지 제갈공려는 똑똑히 확인했었다.
청화가 가진 독공으로 이 방에 있는 유생을 누른다면 당해 낼 자가 과연 있을까?
아마 살아서 나갈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런 청화가 저렇게 당황하고 있으니 상황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제갈공려는 청화의 학문적 지식을 대충은 파악하고 있었다.
청화의 수준에서는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제갈공려는 그저 청화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궁금할 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청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라면 쥐를 안 먹을 것 같아요.”
동시에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청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신선이 쥐를 잡아먹는다니, 이상하잖아요.”
“오호, 왜 그리 생각하느냐?”
“신선이 쥐를 잡아먹으면 미친 거죠. 즉, 더는 신선이 아니라는 얘기죠.”
“네가 생각하는 근거가 그것뿐이니?”
제갈공려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청화를 바라봤다.
“근거는 또 하나가 있어요.”
“편하게 말해 봐요.”
“저걸 다 먹으면 하얀색으로 남아 있을까요?”
“하얀색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요?”
“제가 독에 대해서 조금 아는데, 여러 색의 독을 섞으면 시커멓게 변하죠. 신선 고양이가 아무 쥐나 다 잡아먹었다면 흰색을 유지할 수 없었을 거예요.”
“오, 청화 유생이 대단한 의견을 제시했네요.”
말을 마친 제갈공려는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짝, 짝.
손뼉을 치던 제갈공려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청화 유생의 말에 반박할 사람은?”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이번에 손을 든 자는 양석봉이었다.
“저는 청화 유생의 정답에 반박하고 싶습니다.”
“말해 봐요, 양 유생.”
“학사님께서 문제를 낼 때 전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선 고양이가 과연 어떤 쥐를 먹겠냐는 것입니다. 그 전제가 있으니, 쥐를 안 먹겠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날카롭군요.”
“그런 이유로 안 먹을 것이라는 정답은 무효라고 생각합니다.”
양석봉의 말에 제갈공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소호각의 유생들은 탄성을 질렀다.
“역시, 양석봉이야.”
“암, 그렇고말고.”
그들의 탄성이 잦아들기도 전에 제갈공려가 말을 이었다.
“혹시 청화 유생은 반박할 근거가 있나요?”
“그, 그러니까…….”
다시 말을 더듬는 청화.
옆에서 보던 설화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그 온기에 청화가 고개를 들었다.
반박하고 싶지만, 반박할 논리가 청화에게는 없었다.
청화는 조금 분했지만, 유생들과의 논리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승복하는 것도 병법의 하나라 하지 않았던가!
청화는 승복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때 한빈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공자님께 배운 게 하나 있어요. 그것은 공(空)도 하나의 사물이라는 거예요. 고승들이 마음을 비웠을 때 득도했다고 하잖아요. 그것은 공을 얻어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청화는 끝없이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
청화의 입은 마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말을 막 시작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제갈공려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이것은 고승에게서나 들을 법한 공에 대한 강의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공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무림에 있을까?
제갈공려는 청화에게 수준 높은 답변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청화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호기심에 듣고 있었는데 청화의 입에서는 수준 높은 답변이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답변이 아닌 강의에 가까웠다.
그때 청화의 설명이 끝났다.
“……제 의견은 여기까지예요. 헤헤.”
말을 마친 청화는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주변을 살피던 청화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
모두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공자님이 해 주신 말씀이에요. 왜 다들 그렇게 보세요?”
청화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청화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청화가 말한 의견은 모두 한빈이 해 주었던 말이었다.
청화는 한빈의 설명 덕분에 자신이 공독지체라는 것을 쉽게 이해했다.
공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바가지라고 한빈은 설명했었다.
지금 청화는 공독지체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었다.
청화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당연한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것은?
너무 수준 낮은 이야기를 해서라 생각했다.
사실 청화가 이 정답을 맞힐 수 있었던 것은 정확한 논리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욕심 없이 그림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아무 욕심 없이 정답을 맞힌 청화가 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청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한빈에게 폐를 끼쳤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때였다.
제갈공려가 손뼉을 쳤다.
짝, 짝.
청화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상황을 파악하던 청화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제갈공려가 손뼉을 치는 것을 멈췄는데도 박수 소리가 계속 들려왔기 때문이다.
짝, 짝, 짝.
내공이 담겨 있지는 않았지만, 그 소리는 묘하게 청화의 가슴을 울렸다.
청화는 고개를 돌려 다시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손뼉을 치며 청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청화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다.
청화를 바라보던 제갈공려는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청화가 말한 공자라는 사람이 한빈 말고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어느 정도 학문적인 수양이 있는 줄을 알았지만, 아무 기초도 없던 아이를 여기까지 끌어올리다니!
제갈공려는 할 말을 잃었다.
굳이 제갈세가가 나서서 그를 천하제일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제갈공려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지금은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뭐, 유생들 모두가 정답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논리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청화가 한 말은 정답이었다.
“청화 유생의 답은 이 문제에 있어서 통(通)입니다.”
제갈공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누군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어떻게 저 시녀의 말이 정답이 될 수 있습니까?”
지금 일어난 자는 최유지였다.
그는 눈빛이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날을 세우고 있었다.
최유지의 말에 제갈공려는 조용히 족자를 내린 다음 거꾸로 걸었다.
순간 모두의 눈이 커졌다.
거꾸로 거는 것만으로도 족자의 그림이 변한 것이다.
족자 속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 그림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그림으로 보이게 제작된 물건이지요. 선묘도의 다른 이름은 선악도(善惡圖)라고도 합니다.”
“저는 인정 못 합니다.”
“그럼 최유지 유생은 잠깐 남아야 하겠군요.”
“제가 왜…….”
“토론에 대한 자세가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제갈공려는 들고 있던 학우선, 즉 그녀의 부채를 던졌다.
휙.
순간 그녀의 손을 떠난 부채가 소호각의 창문을 따라 누볐다.
그녀의 부채가 지나간 자리로 어김없이 창문이 닫혔다.
탁. 탁.
신기한 광경에 유생들이 입을 벌렷다.
“그러고 보니 제갈공려 학사님의 가문이…….”
“그래, 천하 십대세가 중 한 곳인 제갈세가잖아.”
그들은 이제야 눈앞에 있는 강사가 무림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부채가 다시 돌아오기도 전에 최유지가 외쳤다.
“아, 아닙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마침 제갈공려의 부채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른손에 든 부채로 얼굴을 한 번 부친 제갈공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두 인정한다니 다행이군요. 이 그림의 속뜻을 맞힌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사실 제갈세가 말고 다른 사람이 이 그림의 참뜻을 맞힐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이 그림은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거든요. 그러니 마지막에 공에 대해 정확하게 의견을 제시한 청화 유생에게 통을 줄 수밖에 없지 않나요?”
제갈공려는 빙긋 웃었다.
최유지는 고개를 숙였다.
표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숙인 최유지는 조용히 바라봤다.
모두는 아직도 청화에게 시선을 못 떼고 있었다.
최유지가 보기에는 그 시선들은 여러 감정을 담고 있었다.
부러움도 있지만, 질투라는 감정도 무시 못 할 만큼 담겨 있었다.
그때 최유지의 앞으로 제갈공려가 걸어갔다.
터벅터벅.
청화의 앞에 간 제갈공려가 족자를 건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유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가 부러운 듯 청화를 바라볼 때, 오직 한 명만이 허허롭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강론도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듯 말이다.
그를 본 최유지는 이를 부득 갈았다.
청화가 정답을 맞힌 것보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는 한빈의 모습이 더 미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최유지만이 아니었다.
점점 한빈을 보는 유생들이 많아졌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핀 한 송이 꽃처럼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빈.
그것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 날이 서 있었다.
한빈은 과연 무엇을 보고 있을까?
[지(智) : 십(十)]
한빈은 놀라운 광경을 홀로 목격하고 있었다.
그것은 구(九)에서 머물렀던 지(智)의 구결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막 늘어나기 시작한 구결의 숫자는 십(十)이 끝이 아니었다.
[지(智) : 십이(十二)]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지(智) : 십팔(十八)]
드디어 숫자를 멈췄다.
한빈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수습했다.
사실, 지(智)의 구결이 정체되어 있었다.
한빈은 같은 사람에게는 구결을 반복해서 획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구결은 맨 처음 획득한 구(九)에서 멈춰져 있었다.
오늘 한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한빈은 지금의 현상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지혜로 누르지 않아도 숫자가 올랐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오늘 활약한 것은 설화와 청화였다.
모두 자신과 연결된 아이들이었다.
지금의 인과관계는 정확했다.
지(智)의 구결이 늘어난 한빈이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한빈은 지(智)의 구결을 손쉽게 올릴 계획이 떠올랐다.
용린검법의 실력편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한빈은 주변을 바라봤다.
순간 한빈의 눈이 커졌다.
한빈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이 묘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