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 천재와 노력파 (1)
설화가 손뼉을 치며 물었다.
“대체 어디서 이 토끼를 잡은 거야? 우리는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는데, 대단하다!”
“그, 그게…….”
“너도 비밀이야? 배우는 게 진짜 빠르구나.”
설화가 눈을 가늘게 뜨자, 소군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소군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아서 막 뛰어다녔어요. 그런데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거예요.”
“뛰어다니면 배가 고파질 수도 있는 거지. 그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왜 숨겨?”
“갑자기 토끼구이가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놈을 잡으려다 보니 이 토끼를 잡았어요.”
“풋.”
설화가 웃음을 뿜었다.
가장 먹음직스러운 토끼에 글자를 써 놓은 것이 누군가의 안배인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상황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설화 언니……. 이건 비밀로 해 주실래요?”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거야?”
“진법에 빠졌어요. 그러니까…….”
소군은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진법이라?”
설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바라봤다.
진법에 대해서는 이곳에 들어오며 한빈에게 설명을 들었었다.
중원에서 가장 강력한 진법이 서원 담장의 안팎을 보호하고 있다고 들었었다.
물론 진법뿐이 아니라 기관 장치가 서원을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외부인이 침입한다든가 유생들이 개구멍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소군이 말한 진법 정도라면 시험을 위한 방법치고는 과하다.
담장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진법과 기관 장치는 이보다 더 강력할 것이 분명했다.
유생들의 출입을 막고 좀도둑을 막기에는 조금 과한 느낌이었다.
왠지 이 서원에는 조금 더 큰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의문도 잠시, 설화는 소군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소군아.”
* * *
잠시 후.
소군이 잡아 온 토끼를 확인한 한빈은 미소를 지었다.
글자와 증표를 모두 확인한 설화가 토끼를 가리켰다.
“이제 풀어 줘도 되죠?”
“그래, 다 풀어 주거라.”
“네, 공자님.”
설화가 토끼를 풀어 주려 할 때였다.
한빈은 토끼를 향해 은침 하나를 쏘아 냈다.
휙.
순간 토끼에게 은침이 박혔다.
토끼는 은침이 박혔는지도 모르고 재빨리 수풀 속으로 뛰어갔다.
알 수 없는 한빈의 행동에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은침을……?”
“내 거라는 표시는 해 놓는 거다.”
“공자님 거라는 표시를요?”
“우리가 잡았으니 표시를 해 놔야지.”
말을 마친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걸어갔다.
천천히 진법을 벗어나던 한빈은 토끼가 보이는 즉시 은침을 날렸다.
백발백중의 효용 덕분에 은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토끼에게 박혔다.
자신의 것을 표시하겠다는 한빈의 말은 사실 거짓이었다.
한빈이 토끼에게 은침을 날린 이유는 본능이었다.
심화편으로 변화한 후 ‘지(智)’의 구결을 얻었다.
한빈은 조금이나마 지혜의 단계가 높아졌다.
이 지혜는 단순하게 문제를 풀이하는 것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었다.
지혜는 본능을 더욱 강화해 주었다.
그 본능이 지금 저 토끼에 은침을 심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빈은 다시 은침을 날렸다.
계속해서 은침을 날리다 보니 들고 있던 모든 은침을 썼다.
한빈은 그제야 손을 멈췄다.
한빈 일행이 진법을 거의 빠져나갔을 즈음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날아갔다.
순간 설화의 손이 위쪽을 향했다.
설화의 손에서 나온 은침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슝.
동시에 날아가던 비둘기 중 하나가 떨어졌다.
허공으로 뛰어올라 떨어지는 비둘기를 잡은 설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한빈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전서구 같아서요.”
“그게 뭐가 문제지?”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유림 서원에서 전서구가 날아다니는 것은 당연했다.
이곳은 북경 혹은 주요 성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곳이었다.
급한 서신이 있으면 인편보다는 전서구를 사용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다.
한빈의 눈빛을 아는지 설화가 말을 이었다.
“뭔가 중요한 서신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요. 이건 순전히 제 느낌이에요, 헤헤.”
설화는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한빈도 마주 웃었다.
“느낌이라……. 그거 중요하지. 잘했다.”
한빈이 칭찬하자 설화가 조심스럽게 비둘기를 확인했다.
설화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전서 통이 달려 있었다.
설화는 조심스럽게 쪽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을 확인한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빈을 바라봤다.
“이거 내용이 이상한데요?”
“무슨 내용이지?”
“유림 서원에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가 나타났대요. 기대하라는 내용이네요. 누굴까요?”
“그러게 말이다.”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소군과 청화도 똑같이 따라 했다.
지혜의 단계가 낮아서일까?
지(智)의 구결을 활성화한 한빈조차 그 천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 * *
그날 밤.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던 양석봉은 번뜩 눈을 떴다.
코끝에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보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아, 문이 왜 갑자기 열린 거지? 내일 손 좀 보라고 해야 하겠군.”
혼잣말을 뱉은 양석봉은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닫고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려던 양석봉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미간을 좁혔다.
“문이 자꾸 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창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생긋 웃고 있었다.
말이 웃고 있는 거지, 양석봉에게는 강도가 행인을 보고 미소 짓는 것과 같았다.
저 미소를 볼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물론 그 미소의 주인은 바로 한빈이었다.
양석봉은 상대의 천진난만한 미소 속에 얼마나 많은 간계가 숨어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양석봉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빈은 조용히 탁자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양석봉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그러시오? 팽 유생.”
“잠시 사업 얘기 좀 합시다, 양 유생님,”
“사, 사업 얘기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까 식당에서 얘기했었는데 벌써 잊어 먹었나요?”
“혹시…….”
말끝을 흐린 양석봉은 재빨리 자신의 이마를 막았다.
그 모습에 한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내가 양 유생이 이마를 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왜 야심한 밤에 이곳에 왔겠소? 혹시 취향이…….”
“휴.”
한숨을 내쉰 한빈은 재빨리 상대를 점혈했다.
마혈과 아혈이 막힌 양석봉은 다시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그 상태에서 한빈은 다시 물었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 싶습니까? 양 유생.”
“…….”
“아닌가 보군요. 그럼 일단 풀어 드리죠.”
한빈이 손을 놀리자 양석봉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 감사하오, 팽 유생.”
“별말씀을요.”
한빈이 손을 저었다.
한빈이 양석봉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유생들은 정파보다도 사파에 가깝다는 것이 한빈의 결론이었다.
힘이나 권력이 없다면 약속도 종잇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한빈이 탁자에 앉자, 양석봉은 호롱불을 켰다.
방이 환해지자 한빈은 쪽지 한 장을 올려놨다.
탁.
양석봉은 그 쪽지를 받았다.
쪽지에는 단 한 글자만 쓰여 있었다.
[습(習).]
순간 양석봉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대체 이게 무엇이오?”
“장유중 학장님이 낸 문제 기억납니까? 그 문제의 정답에 이르는 단서입니다.”
“헉, 대체 이건 어디에서 구했소이까?”
“그건 비밀입니다.”
“이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글자가 정답과 상관없다면 계약서를 무효로 해 주지요.”
“그, 그게 진심이오?”
“내 얼굴을 잘 보십시오.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허, 근데 이걸 내게 왜 보여 주는 겁니까?”
“이걸 비싼 값이 팔아 주시죠.”
“누구한테 말이오?”
“최유지 유생에게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양석봉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고 있었다.
현재 거액이 걸린 내기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상대에게 정답을 알려 주라니?
그건 말도 되지 않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양석봉은 한빈의 다음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막대한 돈이 걸린 만큼 헐값에 팔면 안 되겠지요.”
“음.”
양석봉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유생이라면 장유중 학장에게 인정받는 것과 돈을 버는 것 중에 과연 어떤 것을 택할까?
백이면 백, 유생들은 장유중에게 인정받는 것을 택할 터였다.
유림 서원에서 인정받게 되면 고위 관직으로 올라가는 길이 예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고위 관직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창고에 금은보화가 쌓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차 버린다고?
양석봉은 이 단서가 가짜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한빈과 맺은 계약서였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한빈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할 말을 마친 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편안히 주무시오.”
“덕분에 잠은 다 깼는데…….”
양석봉은 억울하다는 듯 바라보자 한빈이 손을 뻗었다.
동시에 양석봉은 고개를 떨궜다.
수혈이 찍힌 양석봉은 그야말로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
그때 창문에 달빛이 비친 그림자 하나가 지나갔다.
그 그림자는 양석봉의 처소 앞에 잠시 머물다가 금세 사라졌다.
* * *
일주일 후.
장유중의 강론 시간.
장유중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강단에 섰다.
그는 유생들을 바라보며 잠시 헛기침했다.
아무렇지 않게 유생들을 훑고 지나간 것 같지만, 그는 머릿속에 한 명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유생은 바로 한빈이었다.
장유중은 한빈이 정답에 어느 정도 도달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장유중은 한빈이 해답을 찾았다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저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간단했다.
어떤 칭찬을 해 줘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던 것이다.
너무 큰 칭찬을 해 주면 기고만장해져 학업을 소홀히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단서를 잡은 것을 모른 척한다면 동기부여에 문제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유중은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장유중이 바라본 곳에는 양석봉이 있었다.
장유중은 사실 한빈만큼이나 양석봉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가 양석봉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그것은 그가 유림 서원에 들어오고 나서 보여 준 노력이었다.
장유중은 새로운 유생들이 들어오고 나서 밤에도 그들을 살폈다.
그러던 중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밤새 호롱불이 꺼지지 않는 유생의 방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지만, 그다음 날에도 그 유생의 방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방의 주인은 바로 안휘 양가 출신의 양석봉이었다.
장유중은 눈을 빛냈다.
천재와 노력파 중 과연 누가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줄까.
장유중은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쁨이었다.
장유중은 조용히 모두에게 물었다.
“내가 낸 해답에 대해 단서를 찾은 자가 있더냐? 손을 들어 보아라.”
순간 장유중의 눈이 커졌다.
딱 둘만 빼고는 모두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