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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85화 (485/621)

485. 유림 서원의 천재 유생 (8)

놀란 장혜화의 모습에도 장유중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렇게 들었다.”

“하북팽가라면 무가가 아닌가요? 그런데 오라버니가 낸 문제의 정답에 근접했다고요?”

“정확히는 근접한 게 아니라 끝자락을 잡은 것이지. 내 생각에는 무가 출신이라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구나. 논리보다도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 무인의 습성이니 말이다.”

“흠, 그것도 그렇겠네요.”

장혜화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갑자기 그들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장유중이 말했다.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잠시만 기다려 봐요, 오라버니.”

장혜화는 마음씨 좋은 유생의 활약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흠, 그럼 잠시만 지켜보다가 가자꾸나.”

장유중은 근처 바위에 기대어 그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장유중은 눈을 크게 떴다.

단서를 모아 가는 한빈을 본 것이다.

마치 누가 정답을 가르쳐 준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답을 아는 이는 유림 서원 내에 장유중밖에는 없었다.

동생인 장혜화마저 자신이 어떤 문제를 냈는지는 정확하게 몰랐다.

이곳이 시험 장소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시험 장소도 그렇고 시험 내용도 유림 서원의 기수마다 달라진다.

물론 시험 장소에 진법을 설치하는 것은 그녀의 일.

그런 이유로 장혜화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다만,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장유중의 머릿속이 궁금할 뿐이었다.

“오라버니, 왜 그렇게 놀라세요?”

“지금 저 말을 들어 보거라.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논리를 늘어놓지 않느냐?”

“그럼 정답을 푼 건가요?”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풀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정답을 밝힌다고 하더라도 풀이 과정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통(通)을 줄 수는 없지.”

“오라버니는 신입생들에게는 정말 짓궂으시군요.”

“그래도 정말 놀랍다. 하북팽가에서 저런 유생이 나오다니……. 이건 나라의 복이야, 나라의 복. 오랜만에 진정한 관리가 될 천재를 만났구나. 이만 가 보자꾸나. 정답은 못 맞히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잔치를 열어야겠어.”

“그 정도예요?”

“하하.”

장유중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실로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웃어 보는 그였다.

그는 돌아가면 자신의 지인들에게 쓸 만한 인재가 나타났다고 서신을 쓸 생각이었다.

아마도 그 서신을 받은 친구들은 모두가 그 인재를 자신에게 달라 조를 것이 분명했다.

그 생각을 하는 장유중의 입꼬리는 벌써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다.

* * *

설명을 끝낸 한빈은 빙긋 웃었다.

정말 재미있는 진법이었다.

이 진법 자체가 시험장일 줄은 한빈도 몰랐었다.

거기에 시험 감독관이 있을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었다.

한빈은 그 시험 감독관이 들을 수 있게 조금 목소리를 높인 것이었다.

설명을 마친 한빈은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나머지도 찾자.”

“네, 공자님.”

청화가 매의 눈으로 토끼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설화가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봐.”

설화가 보따리를 꺼내자 옆에 있던 한빈이 품속에서 먼저 뭔가를 꺼냈다.

“자, 이걸 쓰거라.”

“헉, 제가 이거 찾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설화는 놀란 표정으로 한빈이 건넨 물건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은침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나도 너와 비슷한 생각을 했지.”

“헤헤, 뭔가 기쁜데요. 공자님.”

해맑게 웃은 설화는 은침을 토끼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은침은 모두 일정한 부위에 박혔다.

토끼의 뱃살 부분이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구나. 어떻게 토끼의 혈도를 알았느냐?”

“…….”

설화는 대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한빈의 안색을 살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찍었구나. 뭐, 어찌 가든 북경으로만 가면 된다는 강호 속담도 있으니 괜찮다.”

말을 마친 한빈은 토끼를 바라봤다.

그들은 토끼에 새겨진 글자를 대부분 얻을 수 있었다.

설화는 토끼로부터 발견한 글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천 위에는 글자가 점점 늘어났다.

[시(時). 불(不).

열(說). 이(而).

습(習). 지(之).

역(亦). 호(乎).]

글자는 모두 여덟 개로, 나머지 토끼 중에는 글자가 없는 놈들도 있었다.

토끼들은 배를 드러낸 채 굳어 있었다.

그 모습에 설화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제 풀어 주는 게 좋겠는데요, 공자님.”

“마혈에서 빼고 주마혈에 놔.”

“네?”

설화가 눈을 크게 떴다.

마혈은 움직임을 제한하는데 쓰지만, 주마혈은 기력을 올리는 데 쓰는 혈도였다.

“우리 거라는 표시는 해야…….”

한빈이 설명하려 할 때, 청화가 다급한 표정으로 한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공자님, 큰일 났어요.”

“큰일이라니?”

“소군이 안 보여요. 토끼 잡으러 갔다가 길을 잃었나 봐요. 찾으러 갈까요?”

“흠, 녀석에게 잠시 시간을 주자꾸나.”

“괜찮을까요?”

“아마도 괜찮을 것 같다.”

한빈은 어딘가를 보며 웃었다.

그 모습에 설화와 청화는 안심한 듯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글자를 맞춰 볼까?”

한빈의 말에 청화가 눈매를 좁히며 글자에 집중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청화가 대단하구나! 논어를 공부했다니…….”

“저 논어 모르는데요. 공자님.”

“그런데 어떻게 이 글자를 풀려고 하는 거지?”

“보다 보면 나오지 않겠어요? 공자님이 항상 그러셨잖아요. 몰라도 두드리라고요. 그러면 계약서가 나온다고요.”

“아.”

한빈이 입을 크게 벌렸다.

생각해 보니 그런 비슷한 말을 한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설화가 입을 열었다.

“저 알 것 같아요. 저는 논어를 공부한 적이 있어요.”

“와, 언니 진짜예요?”

“그렇단다.”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언제 배우신 거예요?”

“흠, 그건…….”

설화가 말끝을 흐렸다.

사실 살수는 극한 직업이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 자체가 적을 많이 둘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실수를 줄이자면, 반드시 위장을 해야 했다.

예를 들어 서생으로 위장했는데 공자나 맹자가 얘기한 글귀를 모른다면 당연히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사서삼경과 그림 정도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웠다.

그런데 지금 글귀는 그나마 논어의 앞부분이라서 기억이 났다.

설화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음,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라는 말이 있어. 청화야. 여기 글자를 잘 조합해 보면 ‘학’만 빠져 있어.”

“언니, 대단해요!”

청화는 흥분한 듯 손뼉을 쳤다.

짝, 짝.

“그럼 이제 문제를 다 푼 건가요? 공자님.”

“아직이다.”

“왜요? 글자를 다 알아냈잖아요.”

“마지막 토끼 한 마리를 잡아야 이 문제는 끝나지. 아마도 이 문제는 누군가 풀라고 내놓은 것이 아닐 것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토끼에 써 놓은 글자를 잘 보렴.”

“글자가 왜요?”

“자세히 보면 이건 보통이 먹과는 조금은 다르지. 아마도 서역에서 들여온 먹물에 흑유를 섞은 것 같다.”

“대체 왜 그런…….”

“비가 와도 지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겠지.”

“그럼 유생들을 배려한 거잖아요.”

“재미있는 것은 지금이 토끼들의 털을 가는 기간이라는 점이지. 저 털이 다 빠진다면 털을 하나하나 다 모으지 못한다면 풀지 못하는 거다.”

“음, 왜 그런 거죠?”

청화가 고개를 갸웃하자 설화가 슬쩍 끼어들었다.

“엿 먹으라는 거지. 뭐겠어?”

“헉, 언니!”

“아, 미안, 나도 모르게 흥분했네. 며칠 내로 이 토끼를 못 잡았으면 단서가 다 사라진다는 거잖아. 그걸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흥분했어.”

설화가 씩씩대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아마도 신입생들에게 하는 경고겠지.”

“무슨 경고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경고. 그리고 여길 잘 봐라.”

한빈은 씩 웃으며 토끼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토끼의 목덜미를 만졌다.

털을 옆으로 젖히자 그곳에는 가느다란 실이 있었다.

실의 끝에는 손톱만 한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토끼가 호패를 차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모습이었다.

한빈은 토끼의 목에 걸린 조각을 떼어 내서 설화에게 보여 줬다.

“이걸 봐라.”

“흠, 여기에 글자가 적혀 있네요.”

설화가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털에 적혀 있는 글자가 나무에도 써 있었다.

글자를 확인한다고 해도 증표가 없으면 모두 헛수고라는 말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은 비를 맞으면 녹는 재료라는 거지.”

설화는 재빨리 주변을 가리켰다.

“그럼 빨리 토끼를 잡아요. 공자님은 여기 계세요. 청화랑 제가 토끼 잡아 올게요.”

“그래. 나는 이곳에서 소군이를 기다리고 있으마.”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화와 청화가 흩어졌다.

* * *

소군은 지금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토끼를 잡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토끼를 잡기 위해 뛰었었다.

하지만 바로 목적이 바뀌었다.

소군은 그저 뛰는 것 자체가 좋았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이런 해방감을 느낀 것은 지금이 처음이라고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토끼는 길잡이고 소군 자신은 그 뒤를 쫓는 행인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던 끝에 토끼가 멈췄다.

소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토끼를 잡았다.

토끼를 잡고 돌아가려는 순간, 소군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전에 이곳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는 한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토끼를 들고 주변을 바라보니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백척간두였다.

좌우, 앞뒤 할 것 없이 한 발만 내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였다.

소군은 그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환상일 수도 있지만, 보통 진법은 기관 장치와 같이 섞어서 설치하기 마련이었다.

저 천 길 낭떠러지 아래에는 창이 빼곡히 심겨 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이곳에 서 있은 지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어두워졌다는 점이다.

소군은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갑자기 극심한 허기를 느낀 것이다.

당연히 소군의 몸은 좌우로 휘청이기 시작했다.

소군은 이를 악물며 토끼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순간 소군은 오전에 제갈공려로부터 받았던 장신구를 떠올렸다.

이 장신구는 진법에서 생로를 알려 주는 도구라고 했다.

소군은 힘겹게 머리에서 장신구를 떼어 냈다.

그러고는 재빨리 날개를 눌렀다.

순간 장신구는 제갈공려가 시범을 보였던 대로 사각형으로 바뀌었다.

사각형 안에는 무수히 많은 팔괘가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소군은 장신구를 통해 주변을 둘러봤다.

뭐지?

소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작은 공간 안에 길이 여러 갈래가 있었다.

한 걸음이라도 벗어나면 끝장이었다.

소군은 마른침을 삼키며 장신구에 집중했다.

그녀는 장신구를 통해 앞을 보며 천천히 진법을 벗어났다.

진법을 벗어나자 바로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휘.

소군은 한숨을 한 움큼 토해 냈다.

“휴.”

그때였다.

설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군아, 괜찮니?”

“네, 괜찮아요. 언니.”

“그래, 너는 공자님께 가 보렴. 나는 토끼를 마저 찾아봐야 해서…….”

“저도 한 마리 잡았어요, 언니.”

소군은 토끼를 내밀었다.

순간 설화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설화가 이리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소군이 내민 토끼에는 선명하게 ‘학(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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