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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81화 (481/621)
  • 481. 유림 서원의 천재 유생 (4)

    달려간 제갈공려는 양손으로 설화와 청화를 한꺼번에 안았다.

    “진짜 보고 싶었어. 설화, 청화.”

    “자, 잠시만요. 숨을 못 쉬겠어요!”

    설화가 다급하게 외치자 제갈공려가 재빨리 손을 놓았다.

    “어이쿠, 미안하다. 설화야.”

    “아니에요, 언니.”

    설화는 배시시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설화에게 제갈공려는 생사를 같이 나눈 전우이면서 든든한 언니였다. 설화에게 언니의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용돈이나 당과를 주면 언니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모르는 사람이었다.

    청화는 제갈공려에게 안긴 채 조용히 웃음만 짓고 있었다.

    제갈공려는 청화를 안은 팔도 풀었다.

    동시에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학우선이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휘리릭.

    설화가 그 모습에 놀라 물었다.

    “언니! 혹시 밖에 적이 있어요?”

    말을 마친 설화는 재빨리 우혈랑검을 꺼냈다.

    휙.

    주변을 경계하며 갑자기 기세를 피우는 설화.

    강의실의 분위기는 갑자기 변했다.

    설화의 기세에 먹 냄새가 풀풀 나던 강의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피 냄새가 풍기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설화가 기세를 푼 것은 제갈공려의 다음 동작 때문이었다.

    제갈공려가 뻗었던 손을 재빨리 회수하자 보따리 하나가 딸려 들어왔다.

    제갈공려는 순식간에 손에 들어온 보따리를 설화에게 살포시 던졌다.

    설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우혈랑검을 품에 넣고 대신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눈을 멀뚱거리며 제갈공려를 바라보는 설화.

    제갈공려는 피식 웃으며 보따리를 가리켰다.

    “선물이다, 설화야. 참, 네 선물도 있지만, 그중에는 청화의 선물도 있고 팽 공자의 선물도 있으니까. 펴 보렴.”

    설화는 고개를 돌려 한빈을 바라봤다.

    제갈공려가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 안에는 한빈의 것도 있다고 했다. 즉, 한빈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한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설화가 보따리를 풀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당과였다.

    설화는 일단 당과부터 빼고 나머지를 살폈다.

    그때 청화가 번개처럼 떡이 든 꾸러미를 낚아챘다.

    설화는 제갈공려를 바라봤다.

    나머지는 한빈에게 줘도 되겠냐는 뜻이다.

    제갈공려는 작게 웃으며 보따리에서 장신구 두 개를 꺼냈다.

    장신구는 나비 모양의 은빛을 띤 장신구였다.

    제갈공려는 나비 모양의 장신구를 설화와 청화의 머리에 각각 꽂아 주었다.

    “이건 제갈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도구야.”

    “혹시 암기인가요?”

    청화가 눈을 빛내며 묻자, 제갈공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기가 아니라 지도란다.”

    “지도요?”

    “장신구를 떼서 한번 보렴.”

    그녀의 말에 청화는 자신의 머리에 있는 장신구를 살폈다.

    요리조리 살피던 청화는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제갈공려가 자신의 머리에 있는 장신구를 떼어서 그녀에게 보여 줬다.

    “앗, 똑같은 거네요.”

    “이건 이렇게 사용하는 거란다.”

    제갈공려는 자신이 들고 있던 나비 모양 장신구의 날개를 접었다.

    탁.

    제갈공려가 장신구를 접고 나니 나비 모양의 장신구는 사각형의 모양이 되었다.

    사각형의 얇은 은판이 되어 버린 장신구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모양은 팔괘를 섞어 놓은 것처럼 어지럽게 보였다.

    고개를 갸웃한 설화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이게 뭔가요?”

    “이건 지도란다. 진법에 빠졌을 때 이걸 통해서 보면 생문이 보인단다. 혹시 몰라서 내가 슬쩍해 왔지.”

    “헉, 그래도 되는 거예요?”

    “뭐, 가주 오라버니도 너희에게 줬다고 하면 안 아까워할 거야. 너희가 없었다면 제갈세가는 기둥뿌리도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

    제갈공려는 슬쩍 웃으며 보따리를 한빈에게 건넸다.

    “이건 팽 공자 거네요. 참, 다음에 만날 때는 학생과 스승의 관계로 만나야 할 테니 각오하세요. 그런데 장유중 학장님이 낸 문제는 안 풀어도 되는 건가요? 팽 공자.”

    “그렇게 쉽게 풀 문제면 포상을 걸었겠습니까?”

    “흠. 언제나 여유가 있군요. 그런데 아까 보니 내기까지 하던데,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뭐, 패배한다면 내기에 걸었던 야명주를 넘기면 되니까요.”

    “헉, 그게 한두 푼도 아니고……. 그 정도면 중소 문파의 일 년 치 예산일 텐데…….”

    “뭐, 괜찮습니다. 제 돈이 아니니까요.”

    한빈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모두 암제의 비자금이었다.

    지금은 한빈의 것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아무리 써도 그 바닥이 드러내지 않을 정도였다.

    너무 많다 보니 한빈도 가끔은 현실감각이 없어질 때가 있을 정도였다.

    밖에서 보는 숲과 안에서 보는 숲이 다른 이치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가 천하제일의 부자라는 것은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한빈의 웃음에 제갈공려가 말을 이었다.

    “참, 거기에는 둘째 오라버니의 서신도 들어 있으니 꼭 읽어 보세요.”

    제갈공려는 보따리를 가리켰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제갈공려는 몸을 돌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갈공려가 바라보는 곳에는 소군이 멀뚱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저 아이는 누군가요?”

    “새로 저희와 함께할 아이입니다. 그냥 가족이라고 생각해 주시죠.”

    “가족이라…….”

    살짝 말끝을 흐리던 제갈공려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제갈공려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소군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소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제갈공려의 모습에 소군은 눈을 감았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때 머리를 간지럽히는 느낌이 들었다.

    소군은 살짝 실눈을 떴다.

    소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활짝 웃는 제갈공려의 모습이었다.

    제갈공려는 소군의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다시 보니 머리를 정리해 주고 있었다.

    머리를 정리해 주고 난 제갈공려는 자신의 머리에서 장신구를 떼어 냈다.

    그러고는 소군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팽 공자의 가족이라니까, 너한테도 줘야지. 이름이 뭐지?”

    “소군이에요.”

    “그래, 소군이라……. 재미있는 이름이네. 그럼 나중에 보자.”

    말을 마친 제갈공려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소군은 자신의 머리를 만져 봤다.

    그녀의 머리에는 설화나 청화의 머리에 꽂혀 있는 장신구와 똑같은 나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순간 소군은 가슴이 찌릿했다.

    기억을 모두 되찾지는 못했지만, 이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본 감정인 것 같았다.

    가족이란 말이 이렇게 포근하게 들린다니!

    소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때 한빈이 나지막이 외쳤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그 소리에 설화와 청화가 소군이 팔짱을 꼈다.

    순간 소군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공자님! 지금 다른 유생들은 단서를 찾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해요?”

    “아까 제갈 학사님에게 말했듯이, 괜찮단다.”

    “저는 공자님이 남에게 지는 게 싫어요. 저라도 단서를 찾을 테니 공자님하고 언니들은 식사하고 계세요.”

    소군은 이를 악물었다.

    올망졸망하게 보이는 눈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였다.

    당돌하게 한 발 앞으로 나온 소군의 모습에, 한빈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가족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한빈은 긍정적인 변화에 삼촌 미소로 답했다.

    “마음은 고맙구나. 하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더냐? 일단 식당으로 가자.”

    “아무리 그래도…….”

    소군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짓자 한빈이 턱짓했다.

    순간 설화와 청화가 소군의 팔을 한쪽씩 잡았다.

    그렇게 소군은 더는 반항하지 못하고 식당으로 끌려갔다.

    한참을 끌려가던 소군은 나지막이 한빈을 불렀다.

    “고, 공자님. 쌍검이 이상해요.”

    “이상하다고?”

    “부르르, 부르르 떨려요!”

    소군의 말에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소군이 들고 있는 진사쌍검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소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한빈은 알고 있었다.

    소군은 무서워서 살짝 어깨를 떨고 있었다.

    한빈은 소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 보렴.”

    “네, 공자님.”

    소군이 진사쌍검을 주자, 한빈은 그것을 받아서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한빈의 눈이 커졌다.

    한빈의 귀에도 전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전음의 내용이었다.

    -근처에서 구결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없습니다.

    누가 들었다면 이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빈은 이미 용린검법을 통해서 이런 현상을 접하고 있었다.

    용린검법이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면 진사쌍검은 단서를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한빈은 주변을 둘러봤다.

    기감에 집중하자 멀리 있는 유생의 무리가 느껴졌다.

    한빈은 말없이 구걸십팔보를 펼쳤다.

    사사삭.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한빈의 신형이 사라졌다.

    한빈이 다시 나타난 곳은 서원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는 최유지와 유생의 무리가 있는 전각의 뒤편이었다.

    한빈은 기척을 숨긴 후 조용히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것도 잠시, 그들을 계속 따라다니던 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한빈의 눈에는 구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한빈은 재빨리 용린검법을 살폈다.

    용린검법의 보상 중 선택하지 않은 하나의 항목이 있었다.

    [용린검법의 책장 중 하나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선택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책장의 선택이었다.

    한빈은 이제 책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기임을 깨달았다.

    실력편, 응용편, 융합편의 책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기.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중 실력편을 바라봤다.

    한빈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 설화 일행에게 돌아왔다.

    한빈이 돌아오자 설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공자님,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실 정도면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는 거 맞죠?”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혹시 적이 나타났나요?”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고 해 두지.”

    “아군이요?”

    “아마도…….”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설화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저곳에 뭐가 있는데요?”

    “식당.”

    한빈의 한마디에 모두는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 * *

    최유지와 대화를 나누던 양석봉은 지금 식당에 홀로 앉아 있었다.

    식당에 들어온 지 벌써 반 시진이 지났지만, 양석봉은 숟가락도 들지 않고 있었다.

    대신에 식당의 여기저기를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양석봉은 눈에 불을 켜고 시험의 단서를 찾는 무리를 빠져나와 조용히 식당으로 들어왔다.

    양석봉은 사실상 이번 시험은 포기했다.

    갑자기 벌어진 내기 덕분에, 같은 또래의 무리가 모두 최유지 쪽으로 붙었기 때문이다.

    이 넓은 유림 서원에서 혼자 문제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험은 포기했지만, 단서를 찾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단서를 찾으면 최유지에게 거래를 제안할 작정이었다.

    장유중이 낸 시험으로 봐서는 한 곳에 단서가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양석봉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만향각에서 손해 본 금액을 메꾸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휴.”

    양석봉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입학하면 안휘 양씨 가문을 배경으로 권력을 키워 나가려고 했는데,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진 것이었다.

    순간 밥그릇에 한 명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양석봉이 치를 떨고 있을 때였다.

    식당 문이 스르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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