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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80화 (480/621)

480. 유림 서원의 천재 유생 (3)

다른 유생도 눈을 빛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나도 여기 출신 학사님들한테 들었어.”

“서열 싸움이 없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공부하나!”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첫 강의는 아니지만, 첫 주에는 학문의 높고 낮음을 가리는 서열 싸움이 시작된다.

그것을 통해서 파벌과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자네는 누구한테 걸 텐가?”

“나야 당연히 최 유생한테 걸어야지. 자네는 처음 보는 유생한테 걸 텐가?”

“예끼, 누굴 물로 보고.”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유생 중 하나가 붓과 자루를 들고 강의실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 유생이 지나갈 때면 모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돈을 걸었다.

내기도 성립되기 전에 일단 돈부터 걸고 보는 유생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런 것이 낙이었다.

항상 책과 씨름해야 하는 그들에게 무슨 즐거운 일이 있겠는가?

아침에는 스승에게 배우고 밤에는 호롱불 아래에서 그날 배운 것은 모두 머릿속에 넣어야 했다.

덕분에 그들이 사는 세계는 우물 안과도 같았다.

어찌 보면 그들은 그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이러한 소소한 내기도 그들에게는 신세계였다.

즐거움도 잠시, 누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저 유생에게 거는 사람은 없다는 건가?”

“그러면 냈던 돈 그대로 받아 오는 거잖아.”

“이건 내깃거리도 안 된다는 건가?”

모두가 고개를 흔들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강의실을 휘적휘적 걸어왔다.

순간 그들은 숨을 멈췄다.

지금 강의실에 들어온 이는 학사건을 단정히 쓰고 있는 학사였다.

문제는 그 학사가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복장으로 봐서는 유림 서원의 강사가 분명했다.

점점 다가오는 여인이 모습에,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림 서원에는 여자 강사가 없잖아.”

“그렇지.”

다른 유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대로였다.

최근에 유림 서원에 여자 학사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모두는 마른침을 삼키며 여인을 바라봤다.

그때 여인은 조용히 판돈을 관리하는 유생의 앞에 섰다.

장부와 판돈이 든 자루를 들고 있던 유생은 비 맞은 생쥐처럼 애처롭게 여인을 바라봤다.

여기에서 내기했다는 것을 들키면 자신의 성적에 지장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용히 손을 뒤쪽으로 가져갔다.

그때 여인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

그 소리에 유생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학사님, 죄송합니다. 저는 내기와 아무 상관이…….”

“누가 내기를 하는 거 가지고 뭐라고 했나요?”

“네?”

“나도 껴 달라는 거지요.”

“네?”

유생은 옴짝달싹 못 하며 계속 같은 질문만 해 댔다.

그 모습에 여인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여인의 손에서 나온 것은 은전이었다.

그녀는 자루에 은전을 털어 넣으며 말했다.

“나는 저 유생에게 걸지.”

여인은 손가락으로 한빈을 가리키자 유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분은 누구지?”

“그러게 말이야,”

“분명히 강사 중 한 분이신 것 같은데…….”

“장유중 학장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강사님이 저분이 아닐까?”

“그러게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런데 저분이 든 부채는 뭐지? 조금 특이하잖아.”

“저건 학우선이잖아. 요즘은 유행이 지나서 다른 가문에서는 안 쓰고 제갈세가 사람들만 쓴다던데…….”

학우선은 제갈공명이 들어 유명해진 부채였다. 덕분에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유행과 관계없이 학우선을 들고 다닌다고 중원에 소문이 나 있었다.

“제갈세가라고?”

순간 모두는 숨도 쉬지 않고 여인을 바라봤다.

제갈세가라면 관과 무림의 중간에 있는 가문.

제갈세가는 관직에 진출해서 중앙 정계를 휘어잡다가도 때가 되면 은퇴해서 후인을 양성했다.

그렇게 정계에서 은퇴했을 때는 꼭 강호의 한 축을 담당하고는 했다.

유생들의 눈에는 제갈세가의 이런 행동들이 신비롭게 보였다.

그들이 숨도 쉬지 않고 여인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녀가 제갈세가 출신이라는 것뿐은 아니었다.

제갈세가가 유림 서원에 왔다는 것은 바로 제갈가의 정계 복귀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모두는 그녀가 누구에게 돈을 걸었는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이자 여인이 작게 웃었다.

“다들 긴장 풀고요. 나는 이번 학기에 임시로 유림 서원의 강사를 맡게 된 제갈공려라고 해요. 이번 학기만 강의하고 돌아갈 테니 그렇게 긴장들 하지 말아요.”

그녀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한마디는 모두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않았다면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긴장을 풀라 했지만, 움직이는 유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제갈공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뭐 해요? 하던 거 마저 해야죠.”

제갈공려는 판돈을 관리하는 유생의 손목을 놨다.

유생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 판돈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란이 마무리되자 한빈은 속으로 한숨을 삭였다.

대체 제갈공려가 여기에 왜 왔단 말인가?

혹시…….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한빈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한빈의 예감이란 바로 사천당가에서 제갈공려가 했던 말이었다.

제갈공려는 이른 시일 내에 은혜를 갚는다고 했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제갈세가의 식솔들도 한빈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약속했다.

한빈은 십대세가 중 한 곳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에 만족했었다.

그들에게 지운 빚은 나중에 야무지게 써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제갈공려가 왔다는 것은 왠지 한빈 때문인 것 같았다.

은혜를 갚는다고 해도 사실 그것은 한빈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뜰살뜰 정보를 모은 후 천수현갑을 털어서 떠나는 것이 한빈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제갈세가의 인물이 버티고 있다?

그것은 도리어 한빈의 발목을 잡는 일일 수 있었다.

한빈의 표정을 본 최유지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돈을 원한다고 했지만, 최유지가 보기에는 그것은 허풍에 불과했다.

허풍이 아니고서야 저리 안 좋은 표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유지는 품속에서 전낭을 꺼냈다.

그는 손을 들어 전낭을 모두에게 흔들어 보였다.

딱 봐도 무게가 제법 되어 보이는 전낭에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호!”

“와아.”

그 환호성에 빙긋 미소를 지은 최유지가 책상 위에 전낭을 올려놨다.

탁!

묵직한 소리가 책상 위에 울려 퍼지자 최유지가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나.”

“흠, 이건 제 생각보다…….”

살짝 말끝을 흐리는 한빈이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겨우 웃음을 참았다.

산서 최씨 가문은 학문도 학문이지만, 재산으로 쳐도 무시할 수 없는 가문이었다.

모두가 김빠진 표정으로 한빈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빈은 야명주가 든 주머니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최유지의 전낭보다 가벼워 보이는 한빈의 주머니에 모두는 고개를 저었다.

기 싸움에서 벌써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빈은 턱짓하며 주머니를 확인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최유지는 할 수 없이 자루를 살폈다.

순간 굳어지는 최유지의 눈빛.

자루 안에는 자신의 전낭과는 비교도 안 될 값비싼 야명주가 들어 있었다.

양석봉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모든 것이 자신이 이틀 전 당했던 것과 판박이였다.

다만, 이번에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달랐다.

양석봉은 조용히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반 시진이 지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땡. 땡.

양석봉은 재빨리 강의실을 벗어났다.

아직 내기에 대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강의실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럴 때가 기회였다.

이 시험의 승자는 자신이 되어야 했다.

목표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면 안 되었다.

벌레도 일찍 일어나는 새의 몫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양석봉은 숨겨진 글자를 찾아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양석봉은 이내 걸음을 멈췄다.

장유중의 문제를 풀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가 너무 없었다.

급한 마음에 나오긴 했는데 획 하나는 단서가 되지 않았다.

양석봉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어쩌다가 내가…….”

그가 멍하니 있는 사이에 뒤쪽에서 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쪽을 보니 최유지가 빙긋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빈은 보이지 않았다.

양석봉은 모른 척 최유지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와 내기했던 유생은 어떻게 됐나?”

“넋이 빠진 듯 강의실에 계속 머물러 있네. 아무래도 무리한 것이지.”

순간 양석봉은 최유지가 한빈에게 낚였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자신과 판박이였다.

양석봉이 겨우 웃음을 참고 있는데, 최유지가 말을 이었다.

“내 계획을 얘기해 줬더니 그 넋이 나간 표정이란…….”

최유지는 뭐가 재미있는지 볼살이 들썩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양석봉이 다급하게 물었다.

“계획이란 게 뭔가?”

“나는 그자와 머리싸움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네.”

“흠.”

“자네는 이 문제를 혼자 풀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혼자 풀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나는 여기 있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네. 아까 그자가 내놓은 야명주는 내가 가진 토지를 모두 팔아야 할 정도로 거금이더군. 그런 큰 금액이 걸려 있는데, 어떻게 머리만 믿고 싸울 수 있겠나?”

“그럼 어떻게 하려고 하나?”

“나는 여기 있는 동료를 고용할 것일세. 유생들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 아닌가? 서원에 숨겨 놨다 했으니, 손이 많으면 문제도 금방 해결될 테지.”

“허.”

양석봉은 입을 벌렸다.

자신은 한빈과 내기에서 자만했었다.

하지만 최유지는 상대를 얕잡아 보지 않고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양석봉은 상대를 얕잡아 봤던 자신을 질책했다.

* * *

한편 텅 빈 강의실에는 한빈과 제갈공려만이 남아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던 제갈공려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팽 공자, 오랜만이군요.”

“잘 지내셨습니까? 제갈 누님. 아니, 이제는 강사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호호, 누님이라는 호칭이 더 듣기 좋네요.”

“제갈 가주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팽 공자 덕분에 얻은 작은 깨달음을 정리하고자 지금 폐관에 들었어요.”

“경하드릴 일이군요.”

“모든 게 팽 공자 덕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공자를 돕기 위해 유림 서원의 강사를 자청했지요.”

“헉.”

한빈이 입을 크게 벌렸다.

불길한 예감은 보통 이렇게 십 할의 확률로 맞아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 모습에 제갈공려가 피식 웃는다.

“강호를 구한 팽 공자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게 놀랍네요. 그런데 왜 밖으로 안 나가나요? 다들 단서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잖아요.”

“지금 나가서 찾을 단서였으면 장유중 학장님이 문제로 내셨겠습니까?”

“아까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잖아요.”

“다 지켜보셨군요.”

“네, 궁금해서 밖에서 보고 있었어요.”

제갈공려가 빙긋 웃자 한빈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배가 고파서 식당에 빨리 가려고 했던 겁니다.”

“배가 고파요?”

“저도 배가 고프지만, 저 아이들이…….”

한빈은 강의실 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설화와 청화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순간 제갈공려가 한걸음에 그들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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