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79화 (479/621)
  • 479. 유림 서원의 천재 유생 (2)

    장유중의 외침에 모두가 자리에서 멈췄다.

    모두는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다만, 가장 먼저 자리를 뜨려 했던 한빈은 이미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장유중은 한빈을 보더니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데 모은 장유중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험이란 자고로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내가 듣기에는 일부 가문에서 무공을 가르치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번 시험에서는 절대 무공을 써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치에 대한 공평함도 중요하다. 이 앞에 있는 학생과 뒤에 있는 학생이 같은 출발선상에 있다고 보나?”

    “…….”

    장유중의 질문에 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장유중은 유생들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학문의 출발은 근본에서 시작한다. 내가 생각하는 근본은 바로 공정함이다. 그러니…….”

    장유중의 말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의 말이 길어지자 유생들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결심이 섰다.

    그것은 바로 이 시험에서 반드시 우승해, 이 과목만은 면제를 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빈 역시 이번 시험에 흥미가 있었다.

    이것은 마치 보물찾기와도 같았다.

    한빈이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이던가?

    바로 현무의 등껍질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무림 칠대기보 중 하나인 천수현갑을 찾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것을 찾으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선묘도였다.

    선묘도를 가장 쉽게 손에 넣는 방법은?

    지금 보니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번 학기의 최우수 유생이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최우수 유생에게 선묘도를 빼앗는 것이다.

    물론 최상책은 세 번째 방법이었다.

    그것은 장유중을 미행해서 선묘도가 있는 곳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길이었다.

    한빈이 계획을 세우는 동안, 장유중의 일장 연설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시간을 빼앗은 것 같군. 내가 간 후 반 시진 뒤 종이 울릴 터이니, 그때부터 시험을 시작하면 될 것이네. 만약에 종이 울리기 전에 출발하는 학생이 있다면 학칙에 따라 다스릴 것이네. 모두 명심하도록!”

    말을 마친 장유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모두의 입에서 헛숨이 튀어나왔다.

    “휴.”

    “후.”

    그 모습에 장유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았군.”

    “…….”

    순간 유생들은 다시 숨을 참았다.

    장유중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붓을 들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앞에 있는 종이에 글자를 하나 썼다.

    -일(一).

    그것은 바로 ‘일’ 자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올라와 있는 것으로 봐서 완성된 글자가 아니라 어떤 글자의 획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유중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강의 때 한 획씩 가르쳐 주지. 이 글자가 다 완성되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네.”

    말을 마친 장유중은 몸을 돌렸다.

    한빈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가 왜 유림 서원의 지박령이 되었는지를 이번 연설을 통해서 알았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공정함이었다.

    그 공정함이 유림 서원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

    거기에 유생들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강의 수법까지……. 그 무엇 하나 모자라는 것이 없는 강사였다.

    장유중은 유생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이에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 강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금 무슨 시험을 낸 거지?”

    “그러게 말일세.”

    “한 획을 써 놓고 나중에 하나씩 단서를 가르쳐 주겠다는 건, 강의를 다 들으라는 거 아닌가?”

    “자네 말대로 너무하네.”

    “미친 거 아니야?”

    “쉿, 자네 못 들었나?”

    “뭘 못 들어?”

    “저 장유중 학장님의 경우 유생 중에 첩자를 심어 놓는다더군.”

    “헉.”

    “그렇게 심어 놓은 첩자를 통해…….”

    유생은 말끝을 흐리더니 슬쩍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한빈이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유생들의 앞을 가렸다.

    한빈을 바라보던 두 명의 유생은 앞을 선 자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시선이 마주치자 앞에 선 사내는 가볍게 헛기침하며 두 유생을 내려다봤다.

    “험.”

    유생 중 하나가 앞선 자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빛 속에는 옅은 적의가 담겨 있었다.

    유생은 재빨리 표정을 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상대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자, 자네는 양 유생이 아닌가? 이번에 입학했군. 북경에서 보고 이게 얼마 만인가?”

    유생의 앞에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양석봉이었다.

    “오랜만일세, 최 유생.”

    양석봉과 말을 섞고 있는 자는 산서 지방에서 온 최유지라는 유생이었다.

    최유지의 산서 최씨 가문과 양석봉의 안휘 양씨 가문은 대대로 중앙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는 가문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이 대대로 경쟁자 관계에 있었다.

    최유지는 어색하게 웃었다.

    “허허, 어떻게 지냈는가? 그러지 않아도 내가 한번 찾아보려 했는데…….”

    “허허. 그 말은 내가 할 말이지. 회포는 나중에 풀고 일단 시험에 집중하세.”

    “암, 그래야지. 이 시험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귀띔 좀 해 주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하지만!”

    양석봉은 말을 끊더니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러나?”

    “혹시 저자에 대해서 아는가?”

    양성봉은 방금 전까지 최유지가 지켜보던 한빈을 가리켰다.

    최유지는 그러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에 이렇게 물어보자 옳다구나 하고 답했다.

    “나는 모르네. 처음 보는 자라서 경계하고 있지. 자네는 혹시 알고 있나?”

    “하북에서 왔다고 하더군.”

    “하북이라…….”

    “자네도 알다시피 하북에는 눈에 띄는 가문이 없지.”

    “허허.”

    “자네의 예상대로 저자가 첩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지.”

    “언제 내 얘기를 들었는가?”

    “아까부터 자네 뒤쪽에 있었네.”

    “어쨌든 정보 감사하네. 그럼 저자를 멀리해야겠군.”

    “그게 아니지. 저자를 옭아 넣으면 우리 생활이 편해지지 않겠나?”

    “옭아 넣는다고?”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그러니까…….”

    양석봉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최유지에게 자기 생각을 전했다.

    요점은 간단했다.

    상대를 도발해서 유림 서원에 있는 동안 수하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계획을 듣고 난 최유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양석봉이 물었다.

    “지금 뭐 하나?”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유림의 속담이 있지 않나? 지금 내가 가 보겠네.”

    “허허, 나와 계획을 세워서…….”

    “아닐세. 나 혼자 해결하겠네.”

    “혼자 저자를 독차지하겠다고?”

    양석봉은 과장스럽게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최유지가 손을 내저었다.

    “자네가 자신이 있었으면 내게 얘기를 했겠는가?”

    “…….”

    양석봉이 답하지 않자 최유지는 힘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나서겠네. 자네는 조용히 구경만 하게. 아마 재미있을 거야.”

    최유지는 희미한 미소를 뿌리고는 바로 돌아섰다.

    한빈에게 다가가는 최유지를 보는 양석봉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 모습에 다른 유생들이 양석봉을 바라봤다.

    양석봉이 아쉬워서 한숨을 쉰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양석봉의 속마음은 달랐다.

    양석봉이 도발하려고 한 것은 바로 최유지였다.

    양석봉은 멀어지는 최유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누가 이기든 자신은 손해 보는 것이 없었다.

    최유지가 이기게 되면 시원하게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이고.

    한빈이 이기게 되면 그것은 계약 내용을 지키는 것이었다.

    계약 내용대로라면 최유지는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게 된다.

    한빈이 제시한 계약은 마치 조약돌을 높이 쌓는 요령과도 같았다.

    조약돌을 높이 쌓으려면 바닥이 튼튼해야 하는 법.

    꼭대기의 조약돌이 하나라면 그 밑에는 두 개 이상이 받치고 있어야 하고 그 밑으로는 점점 더 많은 조약돌이 필요하다.

    그래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는 졸지에 사람들이 말하는 바람잡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최유지는 조용히 걸어가며 상대를 살폈다.

    얼굴의 허여멀건 것이, 평소에 햇빛도 못 본 얼굴이었다.

    거기에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모부터가 최유지의 눈에는 만만해 보였다.

    최유지의 입꼬리가 한계까지 올라간 것은 상대의 서책을 본 뒤였다.

    상대의 서책은 새 책의 향기가 멀리까지 풍기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서생 중 사서삼경을 새로 산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승이 가르쳐 준 주석이 남아 있는 책을 버리고 새 책을 살 유생은 없었다.

    책은 학문을 갈고닦는 유생들에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다.

    책의 표지를 보면 상대의 학문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었다.

    사서삼경을 한 번 읽고 나면 색은 점점 누렇게 변한다.

    열 번을 읽고 나면 누렇게 변하던 것이 붉게 변한다.

    백 번을 읽고 나면 붉게 변하던 것이 흙빛을 띠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유생과 함께하는 서책의 운명이었다.

    지금 최유지의 논어라 적힌 서책은 누렇다 못해 검게 변한 상황. 논어뿐 아니라 사서삼경 그리고 나머지 서책들이 모두 비슷한 상태였다.

    여기에 있는 어떤 누구도 저런 서책을 들고 있는 이는 없었다.

    반대로 상대의 책은 깨끗했다.

    즉, 상대의 학문적인 소양이 바닥이라는 것이다.

    상대는 지식에 있어서나 힘에 있어서나 모두 자신의 아래였다.

    최유지는 재빨리 표정을 숨겼다.

    상대가 자신의 시선을 인식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최유지는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시오. 나는 산서의 최유지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저는 팽한빈이라고 합니다.”

    한빈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최유지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유림 서원에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혹시 아시오?”

    “전통이라니, 금시초문이군요.”

    “유림 서원에서 이루어지는 첫 수업에서는 항상 학문적인 서열을 가리는 내기를 하곤 합니다.”

    “내기라…….”

    “혹시 나와 내기를 하지 않겠소?”

    “무슨 내기입니까?”

    “장유중 학장님이 낸 문제를 누가 먼저 푸느냐 하는 내기요.”

    “내기라면 무엇을 걸어야 하는지요?”

    “무엇이 좋을까요? 서열을 가리는 내기다 보니 그저 아랫사람이 되는 거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보아하니 나이도 내가 많은 것 같고…….”

    말끝을 흐린 최유지는 최대한 사람 좋은 얼굴로 한빈을 바라봤다.

    말이 위아래를 정하는 거지, 정확히 말하면 수하가 되라는 것이었다.

    그 미소에 한빈도 마주 웃었다.

    “저는 보이는 않는 것은 잘 믿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열을 정한다는 약속이나 의라든지…….”

    “그럼 원하시는 게 뭡니까?”

    “저는 최 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 더해 돈을 조금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이라…….”

    최유지가 말끝을 흐리며 입가에 미소를 피워 냈다.

    그 모습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유생들은 순식간에 한빈과 최유지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드디어 서열 싸움이 시작됐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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