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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77화 (477/621)

477. 진사쌍검 (3)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던 한빈은 혼잣말을 뱉었다.

“그게 진짜였다니!”

그 말에 지나가던 점소이가 물었다.

“손님, 저 부르셨습니까?”

“아닙니다.”

한빈이 씩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한빈은 전생에 정의맹의 비밀 자료를 떠올렸다.

그것은 진사쌍검에 얽힌 이야기였다.

진사쌍검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한다.

특히 상대의 적의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주인에게 알려 준다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검이라?

그런 것이 어디 있겠냐고 모두가 웃기만 했었다.

그런 검이 있다면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을 터.

진사쌍검이야말로 무림 최고의 보물이 분명했다.

대충 상황을 정리해 보면 적의를 느낀 진사쌍검이 검명(劍鳴)을 토해 낸 것이 분명했다.

그 적의는 양석봉 일행으로부터 온 것이 분명했다.

말은 자신들끼리 술 한잔을 했다고 하지만, 그 안줏거리는 한빈 자신이 분명했다.

물고 뜯고 맛보면서 적의를 불태웠고, 그 적의가 진사쌍검의 검명으로 나타났을 것.

그것을 달래 준 것이 바로 소군이 품고 있는 마기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진사쌍검은 마기와 공명하는 것이 맞았다.

하긴, 진사쌍검이 만들어진 것이 천산산맥 근처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 일리도 있었다.

한빈은 진사쌍검을 받았던 가문이 왜 망했는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유명한 가문일수록 식구도 많고 내부의 다툼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서로 견제하며 서로에게 적의를 느끼고 있는 명문가에서 이 진사쌍검을 받았다면?

아마도 끊이지 않고 검명을 토해 냈을 수도 있었다.

거기에 황궁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진사쌍검이 울지 않을 때가 있을까?

한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사쌍검이 저주받은 검이 아닌 위험을 알려 주는 검이었다니!

황궁에서도 이 비밀을 풀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설사 진사쌍검이 상대의 적의를 알려 주는 이능이 있다고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밖으로 밝힐 수는 없었다.

그 이능을 믿는 순간 황궁에서는 피바람이 불어올 터.

진사쌍검의 검명이 줄어들 때까지 숙청은 계속될 테니까 말이다.

돌아온 한빈의 표정을 본 설화가 물었다.

“공자님, 좋은 일 있었어요?”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지.”

“정말로요? 무슨 일인데요?”

“그건…….”

“비밀이죠?”

“우리 설화가 많이 늘었구나.”

“헤헤. 칭찬 감사해요, 공자님.”

설화가 방긋 웃자 한빈도 마주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유림 서원에 들어가는 날이 되었다.

유림 서원은 이 년에 한 번, 두 달 동안 문을 닫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유림 서원의 정비를 위함이었다.

그동안 유림 서원은 바닥을 대패로 밀어 내고 다시 칠을 한다.

기둥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환경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였다.

한 이 년 정도가 지나면 유림 서원의 바닥이며 책상이며 기둥이 남아나지 않는다.

기둥이며 바닥에는 온통 유생들이 시험을 대비해서 써 놓은 글자들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었다.

유림 서원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입소한 유생들은 매번 치러지는 시험에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 진심이 정직한 노력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매번 치러지는 시험은 그들의 한계를 넘어섰다.

시험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부정행위밖에 없었다.

그 결과 바닥이며 기둥이며 벽이 모두 시험의 예상 해답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렇기에 유림 서원은 이 년마다 한 번씩 정비 기간을 갖게 된다.

그 기간에 이곳에서 강의하는 강사들 또한 새로 바뀐다.

하오문으로부터 받은 유림 서원의 정보를 떠올린 한빈은 천천히 유림 서원의 정문으로 걸어갔다.

정문에는 꽤 많은 유생이 유림 서원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문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상인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자, 젊은 서생! 붓 한번 보고 가요.”

“들어가면 절대 이런 벼루는 못 구합니다. 북경의 물 좋은 곳에서 갈고 닦은 영험한 벼루입니다.”

상인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호객했다.

열정이 가득한 상인들의 모습에 설화가 관심이 동한 듯 고개를 돌렸다.

“공자님, 저희도 저거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것은 미리 준비해 줬으니 안 사도 돼.”

“저기 저건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었다는 붓대라는데요. 그것도 양동 지방에서 가져온 거래요.”

“설화야!”

“네, 공자님.”

“너 보기보다 순진하구나. 진짜 그걸 믿는 건 아니지?”

“음……. 설마 제가 저걸 믿겠어요. 헤헤.”

설화는 실없이 웃으면서도 끝까지 상인들이 파는 지필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상인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믿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소군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공자님은 왜 저게 가짜라고 생각하세요?”

그 말에 한빈은 마침 질문을 잘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정답은 간단하지.”

“간단하다고요? 공자님.”

소군은 눈을 끔뻑이며 한빈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무에 벼락이 맞을 확률. 그중에 대추나무에 벼락이 맞을 확률. 모든 것을 계산하면 저 붓대가 가짜라는 것이 맞지.”

“그래도 확률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소군은 진짜 궁금했다.

적은 확률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동 지방에는 대추나무가 없다는 점이지. 토양과 기후 때문에 양동에서는 대추나무가 자라지 못해.”

“헉.”

소군은 작은 탄성을 질렀다.

설화는 고개를 돌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지 않아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소군이 그걸 대신해 줬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군은 민망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때 한빈이 말했다.

“소군아,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란다. 그러니까 저기 있는 유생들 모두 배우기 위해 유림 서원에 들어가는 거지.”

“네, 감사해요. 공자님.”

소군이 진사쌍검을 꼭 안은 채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소군이 힘들어 보이니, 설화와 청화가 도와주는 게 좋겠군.”

한빈의 말에 설화와 청화가 진사쌍검을 나눠 들었다.

그 뒤로 한빈은 계속해서 상인들이 파는 지필묵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벼루가 영험하다고 하는데…….”

청화가 한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공자님, 우리가 적을 너무 많이 만든 것 같아요.”

“적이라니…….”

한빈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왠지 따갑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유생과 상인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빈은 입을 막고 헛기침했다.

“흠, 사람이 너무 정직해도…….”

“너무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이죠?”

설화가 맞장구치자 청화는 재빨리 그들을 잡아끌었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의 눈빛은 살벌했다.

유림 서원에 입소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식하다고 매도했으며, 장사꾼들을 사기꾼이라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한빈이 말한 것 중 맞는 것도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에 설화가 말한 것은 여기 모두를 거짓말쟁이라 말한 것이었다.

한빈은 할 수 없이 슬쩍 옆으로 빠져서 기다렸다.

사실 지금 한빈은 진사쌍검의 효능을 시험한 것이었다.

진사쌍검이 검명을 내는 조건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진사쌍검의 검명을 재우는 것은 소군이었다.

소군의 손에서 진사쌍검이 떠나면 이능이 발동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잠잠했다.

그렇다면 이 정도의 적의로는 이능이 발동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흠, 이거……. 참.”

한빈이 턱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유림 서원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나온 것은 학사건을 쓴 유학자였다.

하얀 장포에 학사건을 쓴 모습은 한 마리의 학이 걸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내공은 없었으나 정갈한 발걸음이 그의 소양을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네! 나는 유림 서원을 책임지고 있는 장유중일세. 입소에 앞서 내 잠시 전할 말이 있어 이렇게 나오게 되었네. 올해에는 특별한 강사들을 모셨으니 기대할 만하네. 아마 자네들의 닫힌 눈을 뜨게 해 줄 강사들이니 잘 배울 수 있도록 부탁하네. 그리고…….”

한빈을 비롯한 다른 유생들은 모두 장유중의 말에 집중했다.

장유중이라는 이름은 전생에도 들어 봤지만, 본 적은 없는 인물이었다.

장유중은 앞으로도 유림 서원을 굳건하게 지킬 이였다.

한빈이 기억하는 장유중은 꽤 뛰어난 인물이었다.

장유중이 이곳 유림 서원에 내려온 것은 황제의 배려였다.

잠시 쉬었다 오라는 뜻에서 이곳에 내려보냈지만, 장유중은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것은 황제의 뜻도, 장유중의 뜻도 아니었다.

장유중이 아무런 사고 없이 이곳을 잘 운영하는 바람에, 이곳의 적임자로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던 것.

이 때문에 중앙으로 다시 올라가려는 장유중의 뜻은 번번이 꺾인 채 죽을 때까지 이곳에 남았었다.

아마 관과 무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니 이번 생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빈은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를 보니 유생 중 몇은 벌써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조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재학생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꼿꼿이 서서 자고 있었다.

저 정도면 누군가 마혈을 제압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말이 서서 자는 것이지, 조금만 근육이 풀리면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

잘못하면 학장이 있는 앞에서 낭패를 본다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편안하게 자고 있다고?

그중 하나는 코까지 살짝 골고 있었다.

저 정도면 유림 서원의 고인물이 맞았다.

옆을 보니 설화와 청화도 하품하고 있었다.

대충 반 시진은 너끈히 지난 것 같지만, 서원의 원장인 장유중의 말은 끝날 줄 몰랐다.

그때 누군가가 장유중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제야 장유중은 헛기침하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험, 내 말이 너무 길었나 보군. 나머지 말은 안에서 하도록 하고 일단 유림 서원의 재학생부터 앞으로 나오게.”

그의 말에 유생 중 삼 분의 이가 앞으로 나갔다.

유림 서원의 경비 무사는 명부와 그들의 얼굴 그리고 호패를 확인한 후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한빈의 차례가 오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호패를 보여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한빈이 호패를 내밀자 경비 무사가 살짝 고개를 뺐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맞습니까?”

경비 무사의 표정은 마치 선망의 대상을 보는 듯했다.

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허허, 진짜 혈랑공자라 불리는 그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맞는 겁니까?”

혈랑공자는 황궁에서 내린 한빈의 별호였다.

천상혈랑을 잡고 받은 별호이긴 하지만, 그 뒤 이렇게 불린 적은 드물었다.

황궁과 연계된 곳이기에 여기에서는 혈랑공자라는 이름이 꽤 유명한 것처럼 보였다.

“아, 이거 제가 직접 말하기는 뭐하고…….”

한빈은 빙긋 웃었다.

이곳은 유림 서원이지만, 경비 무사는 강호의 칼밥을 먹은 자가 맞았다.

별호를 지닌 무인은 때로는 선망이 대상이 되고는 한다.

그때였다.

뒤쪽에 다른 경비 무사 하나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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