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75화 (475/621)
  • 475. 진사쌍검 (1)

    우우웅.

    흐흐.

    이건 강호에서 말하는 귀곡성이 분명했다.

    소군은 눈을 뜬 상태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걸 모른 척해야 하나, 아니면 그 원인을 찾아봐야 하나를 고민하며 몸을 뒤척였다.

    우우웅.

    흐흐.

    귀곡성은 계속 들려왔다.

    “이게 뭐지?”

    소군은 혼잣말을 뱉으며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참으려고 했지만, 귀곡성은 너무 귀에 거슬렸다.

    소군은 슬쩍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하는 동시에 몸이 얼어붙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귀곡성이 더 커졌지만, 설화와 청화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그 이야기는 지금 이 귀곡성을 자신만이 듣는다는 이야기였다.

    소군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를 고민했다.

    우우웅. 흐흐.

    소군은 귀를 막아 봤지만, 계속 귀곡성을 들려왔다.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귀곡성이 나는 곳을 찾아봤다.

    하지만 귀곡성이 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방 안에서 나는 것 같은데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를 찾을 수 없었다.

    위쪽도 아니고 아래쪽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소군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아악!”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터뜨렸다.

    귀곡성이 머릿속에서 울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군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자신은 지금 내공도 없고 무공도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서 적과 마주치면 죽는다는 것을 소군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상대가 귀신이든 사람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곤히 자는 설화와 청화를 깨워서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소군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순간 소군의 눈앞에 하얀 옷에 머리를 찰랑거리는 형상이 보였다.

    “악!”

    비명을 내지른 소군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 소군아.”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설화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소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청화가 눈을 비비며 다가와 있었다.

    소군은 순간 이걸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설화가 소군의 어깨를 토닥였다.

    “큰일을 당했으니 악몽을 꾸는 것도 당연하지…….”

    “그래요, 언니. 아무래도 같이 침상에서 자야 할 것 같아요.”

    청화도 소군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녀들은 얼마 전 시체 더미 아래에 깔린 일을 말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런 혈겁의 현장을 목격한다면 이렇게 악몽을 꾸는 것도 당연했다.

    청화는 소군의 소매를 잡고 자신의 침상으로 이끌었다.

    소군은 졸지에 설화와 청화의 가운데에 끼어 밤을 보내게 되었다.

    양쪽에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덧 눈이 감겨 왔다.

    그것도 잠시, 머릿속에서는 다시 귀곡성이 들려왔다.

    우우웅.

    흐흐.

    소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설화도 주변을 경계하며 우혈랑검을 뽑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설화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설화의 목소리에는 한기가 맴돌았다.

    지금은 어린 소군을 달래는 것보다는 정확한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설화의 우혈랑검이 소군을 향했다.

    “소군아,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지?”

    설화는 생긋 웃었다.

    그 웃음은 만향각에서 암막 비무를 하기 전과 판박이였다.

    소군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설명을 다 듣고 난 설화가 턱을 어루만졌다.

    마치 한빈이 고민하는 모습과 너무 똑같았기에 옆에 있던 청화는 보이지 않게 웃었다.

    청화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설화가 말을 이었다.

    “흠,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된 건지 아시겠어요? 언니.”

    청화가 묻자 설화가 답했다.

    “소군이 머릿속에서 귀곡성이 들렸다고 했잖아.”

    “그렇죠.”

    “그리고 나하고 너는 못 들었고.”

    “그것도 그래요, 언니,”

    청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설화가 살짝 표정을 풀고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누군가 소군에게 전음을 보냈기 때문이야.”

    “전음이요? 대체 누가 이 시간에 전음을 보내요?”

    “그러니까 아군은 아니지. 일반적인 고수가 전음을 보낼 수 있는 거리는 스무 걸음이야.”

    “그렇죠. 절정의 고수라면 그렇겠죠.”

    “초절정의 고수가 보낸다고 해도 서른 걸음을 넘지 못해. 화경의 고수가 왔다면 이렇게 숨어서 전음을 보낼 리도 없고.”

    “네, 맞아요. 그럼 적은 서른 걸음 안에 있다는 거네요. 그럼 제가 한번 살펴볼까요?”

    “어떻게?”

    “그거 있잖아요. 서른 걸음은 불가능하지만, 스무 걸음 정도라면 가능해요.”

    청화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설화는 재빨리 손을 저었다.

    “그러다가는 공자님도 깬다. 아서라, 청화야.”

    청화가 말한 방법은 공독지체만이 가지고 있는 공간 장악 능력이었다.

    엷게 독을 퍼뜨려서 공간을 장악한다면 전음을 보낸 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이었다.

    이 방법은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여기서 독을 엷게 퍼뜨린다면, 객잔의 주방에서부터 시작해 객잔에 묵고 있는 손님들이 다 영향을 받을 터였다.

    거기에 기감에 예민한 한빈도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설화는 요즘 한빈이 잠을 못 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것은 설화의 착각이었다.

    청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면 전음을 보낸 자의 정체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

    설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바라볼 뿐,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설화가 고민할 때, 뒤쪽에서 낙엽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사-삭.

    동시에 신형 하나가 그녀들의 앞에 나타났다.

    소군은 상대를 확인도 안 하고 비명을 냅다 질렀다.

    “아악!”

    “소군아, 공자님이야. 진정해.”

    청화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소군의 어깨를 흔들었다.

    청화의 말대로 그녀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한빈이었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비명이 계속 들리던데, 무슨 일이지?”

    “깨셨어요?”

    “그 정도 비명을 질렀으면 나를 부른 거나 다름없잖아. 안 그래?”

    “헤헤, 공자님, 죄송해요.”

    “그나저나 자초지종을 말해 봐.”

    “누가 소군에게 전음을 보내왔대요. 그러니까…….”

    설명을 다 듣고 난 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빈의 모습은 설화나 청화 모두에게 의외였다.

    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에 설화가 다급하게 물었다.

    “공자님, 어디 가세요?”

    “설화야, 그게 사실이었던 것 같다,”

    “사실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진사쌍검에 대한 소문 말이야.”

    말을 마친 한빈은 구석에 있는 진사쌍검을 집어 들었다.

    진사쌍검을 한 손에 들고 쓱 훑어보는 한빈의 뒤에는 설화가 벌써 따라와 있었다.

    “소문이라니요?”

    “먼저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지. 내가 나라에 세운 공은 제법 되지?”

    “그렇죠. 그러니까 이런 상도 내린 거잖아요.”

    “진사쌍검이 무림 칠대기보라고 전해지는 것도 사실이지?”

    “네, 어마어마하게 큰 상이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지.”

    “그게 뭔데요? 공자님.”

    “무게가 서로 맞느냐는 거지.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야 그렇죠. 그런데 이건 공자님이 공을 세우셔서 받은 거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관리도 아닌 한낱 무가에 무림 칠대기보를 준다? 그건 계산에 안 맞잖아.”

    “…….”

    설화는 뭔가를 계산하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었다.

    “관리라면 이런 상을 내려도 괜찮겠지, 하지만 무림세가가 황궁과 관계를 맺기에는 제약이 좀 있지. 그런 관계로 황궁에서 내리는 상에는 상한선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 내가 보기에는 진사쌍검은 그 상한선을 벗어났어.”

    “이전에 이미 상방보검도 받으셨잖아요.”

    “상방보검이야 황제가 마음대로 찍어 내는 기념품 같은 거지. 하지만 진사쌍검은 하나잖아.”

    “흠.”

    “그래서 내가 하오문과 개방을 통해서 알아봤지.”

    “하오문과 개방이요?”

    “뭐, 내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곳이 그곳이니 당연하지. 마침 만향각의 금미랑이 그 답을 주더라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요.”

    설화는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처럼 목을 삐죽 내밀었다.

    “뭐, 진사쌍검을 준 이유는 간단해. 하북팽가의 몰락을 바라기 때문이지.”

    “네?”

    설화가 눈을 크게 뜨자, 옆에 있던 청화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그럼 황제가 하북팽가의 몰락을 바란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왜 무림 칠대기보를 상으로 내려요?”

    “일단, 황제는 하북팽가가 어찌 되든 관심이 없을 거야. 내게 고마움은 있지만, 그건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 산속의 낙엽 한 개 정도도 안 되거든.”

    “그럼 누가 하북팽가의 몰락을 바라는 거예요?”

    “아마도 동창?”

    “동창이요?”

    “동창은 마지막까지 지선과 연을 맺었잖아. 그런 면에서 내가 좀 껄끄러워 보이겠지.”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무림 칠대기보를 준다고 가문이 망해요?”

    “이제까지는 망했어.”

    “네?”

    “지금의 황제나 관리들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테지만, 진사쌍검을 하사받은 가문은 모조리 망했어. 반역도로 몰려서 망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도태됐어. 덕분에 황제가 하사한 진사쌍검은 계속해서 황궁으로 돌아왔지.”

    “헉.”

    “재미있는 것은 이게 모두 백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서 지금의 황제와 관리들은 모두 잊고 있다는 점이지. 아마 황궁에서도 몇몇만 기억할 거야,”

    “그게 동창이라는 거네요.”

    “진사쌍검을 내리라고 황제에게 권유한 것도 서 태감이라고 하더라고.”

    “그럼 그냥 버려요.”

    “황제가 하사한 검을 버린다고?”

    “그건 안 될까요?”

    “버리면 그것대로 벌을 받겠지. 문제는 진사쌍검을 받은 가문이 왜 몰락했느냐 하는 점이야.”

    “그게 중요하겠네요. 공자님.”

    “아마도 진사쌍검에서 흘러나오는 귀곡성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귀곡성이요?”

    “방금 소군이 들었다는 귀곡성 말이야. 생각해 봐. 귀곡성이 밤낮없이 울려 대면 그 집안이 남아나겠어? 그걸 고치려고 의원이 방문할 테고, 그 의원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를 상황도 있을 테고.”

    한빈은 아직도 침상에서 경계의 눈빛을 띠고 있는 소군을 가리켰다.

    그때 설화가 입을 크게 벌렸다.

    “헉, 소군이 이런 얘기 다 들어도 되는 거예요?”

    “아마 못 들었을 거야. 기막을 쳐 놨거든.”

    한빈이 주위를 가리켰다.

    소군을 데리고 다니긴 하지만, 한빈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떠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 공자님은…….”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문제인데…….”

    “그런데 귀곡성이 왜 나오는 거예요?”

    “흠, 그건…….”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담담한 눈빛으로 설화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설화는 마지막 정답을 듣기 위해 목을 더 길게 내밀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진짜 궁금하구나, 설화야?”

    “네, 궁금해요. 공자님.”

    “그럼 지금부터 같이 알아보자고.”

    “헉.”

    “왜 싫어?”

    “해답을 알고 계신 게 아니었어요?”

    “황궁에서도 못 푼 수수께끼를 내가 하루 만에 어떻게 풀어.”

    말을 마친 한빈은 진사쌍검을 들고 소군에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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