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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69화 (469/621)

469. 내가 누군지 알아? (3)

순간 점소이의 얼굴색이 변했다.

이제는 눈앞에 손님이 간만 보다 튈 사람이라 확신한 것이다.

점소이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손님, 그러지 마시고 일단 가격에 대한 설명부터…….”

“다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니까.”

한빈이 또 사람 좋은 얼굴로 웃자, 점소이는 잠시 심호흡하는 듯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손짓했다.

“그럼 일단 올라가시죠.”

“안내하시죠.”

한빈이 미소를 머금고 턱짓하자 점소이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그 모습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도 같았다.

만약 음식값을 못 내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 점소이가 부담하게 된다.

그것이 만향각의 법칙이었다.

그러니 점소이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못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칠 층 이상에서 무전취식 문제가 터지게 되면 몇 달 동안 모아 놓은 돈이 모두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점소이는 진심으로 칠 층은 올라가기 싫었다.

하지만 손님이 이리 우기는데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올라가서 음식값이 너무 많이 나온다 싶으면 선불을 받을 작정이었다.

점소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칠 층으로 안내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흠, 적당하군요.”

한빈이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점소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칠 층에서 머문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사실 한 층 더 올라간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만향각의 칠 층과 팔 층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일 층에서 칠 층까지는 가격이 이 할씩 뛰지만, 칠 층에서 팔 층으로 올라가면 무려 열 배 이상이 뛴다.

이것은 군자현에 있는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점소이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앞장서서 안내했다.

순간 청화는 힐끔 설화를 바라봤다.

한빈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칠 층이 괜찮다고 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였다.

설화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어떤 기준에서인지는 설화도 몰랐다.

안쪽에는 커다란 탁자가 열 개 정도 있었다.

거기에 그 사이의 간격도 제법 넓어서 딱 봐도 쾌적해 보였다.

칠 층이 비싸다고 하지만, 칠 층에서 반 정도는 자리가 차 있었다.

역시 이곳 군자현에는 돈 있는 자들이 넘쳐 난다고 설화는 생각했다.

한빈이 점소이의 뒤를 따르고 설화와 청화는 한빈의 뒤를 따르는 모습이, 오리가 줄지어 길을 걷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소군의 눈에는 일행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모든 행동이 비밀스러워 보였고 모든 말 속에 뼈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모든 기억을 찾지는 않았지만, 신교의 첩자들도 저렇게 비밀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거기에 식사하러 가는 자리에 보따리를 들고나온 설화의 모습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체가 뭘까 고민하는 소군의 귀에 설화의 외침이 꽂혔다.

“거기서 안 오고 뭐 해!”

“네. 알았어요, 언니.”

이제는 언니라는 말이 술술 나오는 소군이었다.

소군은 설화와 청화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자신의 꼴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의 신분은 신교에서도 지고지순한…….

소군은 생각을 이어 가지 못했다.

갑자기 옷에 뭔가 걸린 느낌이 들어서였다.

순간 뒤를 이어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그 소리에 소군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비단옷의 유생이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단아한 눈썹에 귀공자 같은 외모.

여느 유생처럼 상투를 틀어 올렸지만, 은빛 비단으로 만든 속발관으로 정갈하게 마무리했다.

유생의 은빛 속발관은 그의 신분을 나타낸다.

금빛 속발관은 황족에게만 허용된 것.

그 아래 은빛 속발관은 왕족 혹은 고위 관료와 그 가족에게만 허용된 것이다.

거기에 칠 층에 있다는 것은 돈도 넘쳐 난다는 뜻.

하지만 소군의 눈에는 그의 거만한 눈빛만이 들어왔다.

그는 앉은 자세에서 아래를 보고 있는데,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습이 거만함이라는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군은 사실 지금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자신은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고개를 숙일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을 지워야 한다고 배웠던 것 같았다.

여기서 지운다는 것은 상대를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을 말한다.

신교를 상징하는 자는 그 정도의 위엄은 있어야 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소군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때 설화가 소군의 어깨를 잡았다.

소군은 설화를 바라봤다.

설화는 빙긋 웃으며 소군을 살짝 뒤로 끌었다.

그러고는 소군 대신 앞으로 나아갔다.

“죄송해요. 저희가 식사를 방해한 것 같네요. 음식은 저희가 물어 드릴게요.”

설화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빈이 그 정도면 되었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때 은빛 상투의 상대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사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음식값으로 대신하겠다고?”

“접시값도 만향각에 물어 줘야겠죠.”

설화가 답하자 사내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하하, 재미있는 아이들이구나.”

“감사해요.”

설화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때 뒤쪽에서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 잃어버린 시간은 어떻게 하지?”

그 질문에 설화가 몸을 돌렸다.

“잃어버린 시간이라니요?”

“지금도 내 잃어버린 시간은 계속 늘고 있는데…….”

사내가 자신의 아래를 가리키자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진데요.”

“복색을 보아하니 너희도 유림 서원에 가는 길인 모양이구나. 시비가 들고 있는 보따리도 그렇고 말이야.”

“네, 저희도 공자님을 모시고 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저희 신분은 비밀이에요.”

이제는 비밀이란 말이 입에 붙은 설화.

비밀이란 단어에 상대의 눈썹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사내는 마음을 다스리려는 듯 작게 심호흡한 후 주변을 바라봤다.

사내가 향한 곳에는 유생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동료 유생들의 눈치를 살핀 후 말했다.

“흠, 그럼 이렇게 하지. 내 시간을 빼앗은 것을 용서할 테니. 자네들이 내 체면을 세워 주고 가야겠네.”

“체면을 어떻게 세워 드려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내는 주변을 쓱 훑어봤다.

동료 유생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그중 하나가 입 모양으로 뜻을 전한다.

사내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유림 서원에 온 저 공자분이 노래를 하고 너희는 춤을 춰서 흥을 돋우면 내 이번 무례를 용서해 주지.”

“지금 우리보고 춤을 추라고요?”

“그렇지. 그리고 우리 음식을 쏟은 저 아이는 너희가 춤을 추는 동안 음식을 핥아서 바닥을 청소했으면 하네.”

그 말에 뒤쪽에 있던 소군이 소리쳤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런 무례한 놈 같으니라고!”

순간 주변은 적막에 싸였다.

이곳에서도 가장 힘이 없어 보이고 어린 소군이 이리 나서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침묵도 잠시, 은빛 상투의 사내는 코웃음 쳤다.

“그래서 너는 누군데?”

“흠.”

소군은 이를 악물었다.

버릇처럼 말이 튀어나오긴 했어도 답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고 해도 믿어 줄 이도 없었고, 믿어 줄 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는 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사내와 신경전을 이어 가던 설화도 지금 상황은 어이없었다.

사실 설화는 이 사내를 어떻게 요리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걸리는 것은 사내가 유림 서원의 유생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사내를 요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방법이 문제였다.

상대를 힘으로 누르는 것은 하책이라 들었다.

중책은 상대에게 돈을 빼앗는 것.

상책은 상대에게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한빈의 가르침이었다.

강호에는 강한 놈이 상전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유생들이 사는 세상은 강한 놈이 상전을 넘어서 강한 놈이 황제라도 되는 듯했다.

설화가 보기에는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군의 발언에 상황이 살짝 꼬였다.

상대의 심기를 살살 건드려 도발하려는 도중 긴장의 끈이 확 풀려 버렸다.

일단은 후퇴하고 다시 도발을 시작해야 했다.

설화는 소군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얘가 좀 아파서요.”

“…….”

소군이 말없이 설화에게 끌려 나가자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사내의 이름은 양석봉.

대대로 고관대작을 배출해 낸 안휘석가의 직계였다.

일곱 살에 사서삼경을 모두 독파하고 열 살에 향시에 합격했다.

사실 관직에 언제 나가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었다.

어떤 길로 가야 빨리 재상의 자리에 도달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자였다.

황족을 제외하면 자신의 또래는 모두 발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였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상황을 맞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는 웃음을 지우고 고저 없는 억양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그때였다.

가장 뒤쪽에 있던 한빈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사내는 슬쩍 자신의 호위에게 신호를 보냈다.

만일에 대비하라는 뜻이었다.

사내의 호위들은 슬쩍 허리에 찬 검집에 손을 올려놓았다.

한빈은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친근한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한빈은 빈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앉더니 상체를 쓱 양석봉 쪽으로 내밀었다.

한빈은 마치 남들은 들으면 안 된다는 듯 은밀하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양석봉은 그저 황당하다는 듯 한빈을 바라봤다.

자신이 수치심을 안겨 줬는데도 이리 친근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근본 없는 가문의 자제임이 분명했다.

양석봉은 슬쩍 몸을 뒤로 뺐다.

근본 없는 가문의 자제와 이리 가까이 있는 것이 불쾌했다.

그때 한빈은 사내가 뒤로 물러난 만큼 상체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다시 은밀한 말투로 말했다.

“유림 서원에 입학한 유생 혹은 입학할 유생의 경우, 서원의 학칙에 적용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험.”

갑자기 학칙 이야기가 나오자 양석봉은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명성이 드높은 가문이라도 유림 서원의 학칙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유림 서원의 학칙은 이곳 서원뿐 아니라 군자현에도 적용된다는 걸 아십니까? 서원 학칙 삼백이십이 조입니다.”

“……알고 있네만은 왜 그러는가?”

“그러면, 유생끼리의 대결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그러니까, 가문의 힘으로 상대를 누르면 학칙 위반입니다.”

“…….”

“그래서 하나 제안드리겠습니다.”

“무슨 제안인가?”

“수하끼리 재능을 겨루는 겁니다. 그래서 패자가 상대의 음식값을 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죠.”

“음.”

양석봉은 침음을 흘렸다.

그때 주변의 유생들이 사내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외쳤다.

받아들이라는 뜻이었다.

그 전까지는 어떤 방법으로든 상대를 억누르려고 했지만, 학칙 이야기가 나오자 나머지 유생들도 마음이 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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