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61화 (461/621)
  • 461. 선묘도 (3)

    허공에 뜬 용린검법의 책장에 주르륵 글귀가 나타났다.

    [무림 칠대기보 중 세 가지를 획득했습니다.]

    [무림 칠대기보를 획득함으로써 보상이 주어집니다.]

    [용린검법의 숨겨진 설명을 확인하십시오.]

    용린검법은 허공에서 반짝이며 마치 사람처럼 친근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한빈은 조용히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용린검법이 말하는 설명이 아래에 쓰여 있었다.

    [보상은 무림 칠대기보를 일정 숫자 모았을 때 주어집니다. 완벽한 용린검법을 완성하기 위한 안배입니다.]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바로 다음에 재미있는 내용이 이어졌다.

    [용린검법의 책장 중 하나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선택하시겠습니까?]

    친절하게 의향을 묻는 허공에 뜬 비급.

    한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비급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상자를 건넨 팽강위의 눈썹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빈은 재빨리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벅차오르는 감정에…….”

    팽강위가 손바닥을 보이며 한빈의 말을 끊었다.

    덕분에 한빈은 말을 맺지 못했다.

    한빈은 대충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것 같았다.

    가주 팽강위는 아들의 공로를 위해 선물을 내렸다.

    그것도 황궁에서 내린 선물을 그대로 전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한빈은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것은 하북팽가의 예법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공을 세운 사람이 한 사소한 실수 정도는 넘기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팽강위는 공에 대해서는 상을.

    실수에 대해서는 질책을 내리는 수장이었다.

    한빈은 최대한 미안한 표정으로 팽강위를 바라봤다.

    호통의 강도를 낮추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팽강위의 손이 한빈의 손을 덮쳤다.

    마치 용이 여의주를 잡듯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손이 덮쳐 왔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손을 으스러뜨릴 만큼 한빈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한빈이 긴장하고 있을 때, 팽강위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이렇게 좋아할 줄을 몰랐다. 안에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당황해하다니……. 이 아비는 감격스럽구나!”

    팽강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것은 팽강위의 진심이었다.

    한빈은 그제야 그와 자신 사이에 오해가 생겼음을 알아챘다.

    용린검법을 확인하던 도중 생긴 감정의 변화를 팽강위는 오해한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이 주신 선물이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저는 아버님의 마음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네게 준 것이 미흡하구나.”

    팽강위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자, 옆에서 지켜보던 팽대위가 재빨리 그를 말렸다.

    “형님, 한빈이 손이 터지겠습니다.”

    “아, 내가 이런 실수를…….”

    그들의 대화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아버님.”

    “어서 안을 확인해 보아라. 황궁에서 내려온 물건이다.”

    “괜찮습니다. 이게 어떤 물건이든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

    팽강위는 말없이 한빈을 바라봤다.

    뭔가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그럼 일단 상자를 열어 보겠습니다, 아버님.”

    재빨리 상자를 연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상자 안에는 적색과 청색의 검이 있었다.

    무림 칠대기보 중 적색과 청색의 검이라?

    분명 진사쌍검이 분명했다.

    진사쌍검의 검신은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검날도 없이 뱀의 몸통과도 같은 검신을 가지고 있어 이 검으로는 누구를 해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거기에 진사쌍검은 단검도 아닌 장검도 아닌 중검의 크기였다.

    한빈이 진사쌍검을 살피고 있을 때, 팽강위가 말을 이었다.

    “이 검은 진사쌍검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팽강위는 진사쌍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전설에 의하면 이 검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래전 천년 묵은 두 마리의 이무기는 한날한시에 용이 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둘은 먼저 하늘로 올라가 용이 되려고 싸웠다고 한다.

    같이 올라가도 되는데, 올라가는 통로가 하나였기에 먼저 올라가겠다고 싸운 것이다.

    사이가 좋았던 이무기도 선착순 앞에서는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때 한 남자가 등장해서 둘의 시시비비를 가려 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남자는 도를 구하기 위해 간다는 말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두 이무기는 사라진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둘은 용이 되기 위한 승천은 뒷전에 두고 서로 동쪽으로 가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즉, 누가 먼저 남자를 찾으러 가느냐를 두고 싸운 것이다.

    두 이무기는 백 일 동안 쉬지 않고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다.

    문제는 두 이무기가 싸우면서 중원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두 이무기의 싸움은 인간계를 넘어 천상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천계에서 그들의 만행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그 벌로 두 마리의 이무기는 볼품없는 쇠붙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쇠붙이를 다시 주워 간 것은 두 이무기가 사랑한 남자.

    그 남자의 정체는 도를 구하기 위해 중원을 떠돌아다니는 도인이었다.

    그 도인은 쇠붙이를 가져가 검으로 만들었고 자신이 몸담은 거처에 그 검을 봉인시켰다.

    도인의 이름이 왕중양이라고도 하는 자도 있지만,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저 이름 높은 도인이라고 한다.

    중요한 점은 그 도인이 청사검과 적사검을 남겨 둔 채 등선한 것이다.

    도인이 등선한 후 청사검과 적사검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울부짖는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진사쌍검에 얽힌 전설이었다.

    설명을 마친 팽강위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헛기침했다.

    “험.”

    그 모습에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버님, 표정이 좀 이상하시네요.”

    “그게, 이 진사쌍검에는 비밀이 있다.”

    “비밀이라니,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말고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겁니까?”

    “이건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아니 되는 이야기다.”

    말을 마친 팽강위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기막을 펼쳤다.

    한빈은 갑자기 바뀐 팽강위의 태도에 재빨리 진지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모르겠지만…….”

    “그냥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그럼 편안히 말하마. 사실 이 진사쌍검은 가짜다.”

    “네?”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진사쌍검이 가짜라니!

    이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용린검법이 진짜라고 확인까지 해 줬는데 가짜일 리는 없었다.

    한빈의 표정을 본 팽강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헛숨을 터뜨렸다.

    “아무리 하북팽가의 공로가 막대하다고는 하지만, 황궁에서 무림 칠대기보를 내려 줄 리가 없지 않으냐?”

    “하긴 그렇지요.”

    “심증만이 아니다. 강유찬 대인이 슬쩍 말을 흘리고 가시더구나. 전설에 의하면 보름달이 뜨면 검명이 울려야 하는데, 이제까지 이 진사쌍검에서 검명이 울린 적은 한 번도 없다더구나.”

    “아, 그러면 이건 가짜가 맞군요.”

    “그것뿐이 아니다. 검명이 울리기는커녕…….”

    팽강위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재촉하듯 물었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아버님.”

    “황궁 보고 근처에 있던 황자 하나가 자꾸 환영을 본다더구나. 덕분에 황궁에서는 이 검을 보검이 아닌 귀검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귀검이요?”

    “쉿, 목소리를 낮추거라. 기막을 펼쳤어도 자칫하면 목소리가 새어 나갈 수가 있다. 일단 우리는 진짜 진사쌍검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내게 알리거라.”

    팽강위는 진사쌍검이 왜 하북팽가로 왔는지에 대한 정치적인 설명도 곁들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것은 황궁에서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미운 놈한테는 저주받은 귀검이 제격이었다.

    계속되는 공로로 하북팽가는 황궁에서도 주목을 받는 무림세가가 되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황궁의 정치 세력 중 몇몇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바로 하북팽가였다.

    그 때문에 이렇게 귀검을 받게 된 것이라 팽강위는 설명했다.

    한빈은 팽강위의 미안한 표정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귀검을 아들에게 줘야 한다니,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팽강위는 조용히 한빈의 눈을 바라봤다.

    순간 팽강위는 입을 벌렸다.

    눈빛을 보니 한빈은 진심으로 자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귀검이라는 것을 알고도 저런 마음을 갖다니!

    잔잔한 파문이 가슴에서부터 번져 나갔다.

    물론 한빈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발 벗고 뛰어다니면서 찾는 것이 바로 무림 칠대기보였다.

    용린검법을 완성할 수 있는 것도 무림 칠대기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빈이 취한 무림 칠대기보는 세 개.

    유림 서원에 단서가 있다고 하니, 네 개는 손에 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무림 칠대기보의 숫자에 따른 특별한 보상도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한빈은 북경 근처에 있는 유림 서원으로 향하기 위해 하북팽가의 문을 나섰다.

    하북팽가의 정문 앞에는 한두 명이 아닌, 많은 사람이 한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인 홍칠개와 강남 사도련주인 독고진이 팔짱을 끼고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빈은 그들을 향해 작게 포권했다.

    “사부님, 련주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한빈은 둘에게 동시에 인사했다.

    독고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죽을 뻔한 이였다.

    거기에 사적으로는 끈끈한 동업자였다.

    그다음으로는 종남흑선과 아미백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던 한빈이 물었다.

    “두 분은 진짜 돌아가시려는 건가요?”

    “사문으로 돌아가 벌을 받는 것이 맞겠지요, 팽 공자.”

    “그럼 흑선의 의향도 똑같습니까?”

    “맞네. 사문이 내리는 합당한 죗값을 받고 파문을 요청할 것이네.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네.”

    “돌아오다니요?”

    “우리가 갈 곳이 어디 있겠나? 그냥 천수장에서 신세 좀 지겠네.”

    “아, 그런 계약 조건이 바뀌는데…….”

    “하하, 자네답군. 그런 잘 다녀오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은 보중하십시오.”

    한빈은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흑선과 백선은 본의 아니게 무림에 해를 끼쳤다.

    아마 사문에서 그들에게 내리는 벌은 만만치 않을 터였다.

    사문에 돌아가 죗값을 받겠다는 것은 완벽한 정파인으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한빈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마차에 올랐다.

    그때였다.

    누군가 다급하게 마차로 다가왔다.

    가만히 보니 흑미랑과 백미랑이었다.

    그중 백미랑이 다급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팽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무림 칠대기보 중 하나가 있는 곳을 알아냈어요. 칠대기보 중 진사쌍검이에요.”

    “혹시 황궁 아닌가요?”

    “헉, 어떻게…….”

    “다 아는 법이 있습니다.”

    “흠, 다른 물품에 대한 다음 행방은 반드시 우리 하오문이 알아낼게요.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백 소저, 흑 소저.”

    한빈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백미랑과 흑미랑의 뒤에 누군가 웃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광개였다.

    광개는 지금 하오문과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해 있었다.

    천수현갑의 단서가 될 선묘도에 대한 행방을 밝혔으니, 이번에는 개방의 승리가 맞았다.

    반대로 하오문은 이를 갈고 있었다.

    역시 무한 경쟁 체제는 확실히 강호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

    덜그럭.

    마차가 출발하자 한빈은 팔짱을 끼고 오른쪽에 다소곳하게 놓인 상자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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