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 불청객 (3)
암기처럼 날아오는 작은 나뭇가지는 유난히 반짝였다.
햇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팽대위가 나뭇가지에 내공을 불어 넣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효명은 입을 딱 벌렸다.
던지는 순간 바로 눈앞까지 날아온 나뭇가지에 그녀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날아오는 속도가 그 정도로 빨랐다.
효명은 순간 주마등을 보았다.
황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던 어릴 적 기억.
괴질 때문에 황궁의 화려한 풍경과는 단절된 채 침상에서 간호만 받던 기억.
그리고 극적으로 병을 치료하고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밖으로 나들이를 나갔던 얼마 전 기억.
마지막으로 멀리서 봤던 하북팽가의 사 공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잠시 후면 비명횡사라는 단어가 어울릴 처지가 될 터.
효명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뜬 채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역시 강호는 만만히 볼 곳이 절대 아니었다.
불청객으로 오인당하여 죽는 것은 그녀의 계획에는 없었다.
한마디로 개죽음이었다.
좌절하던 그녀는 곧 고개를 갸웃했다.
암기가 머리를 뚫는 통증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 없이 죽었다는 건가?
그녀는 살짝 실눈을 떴다. 그러고는 입을 딱 벌렸다.
“어?”
그녀의 눈앞에 암기가 멈춰져 있었다.
누군가의 검지와 중지에 나뭇가지가 매달려 있었다.
그때였다.
다시 멀리서 파공성이 들려왔다.
슝!
멀리 연무장에서 다시 암기를 날린 것이 분명했다.
순간 효명은 몸이 붕 뜨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변의 사물이 휙휙 그녀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효명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에 정소연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도 놀란 듯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자신이나 정소연이나 누군가에게 이끌려 허공을 날아가고 있다.
효명이 막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붕 떴던 그녀의 발이 감각을 찾았다.
발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그것은 분명히 땅을 밟고 있는 느낌이었다.
효명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색 깃발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깃발이 아니라 하얀색 도포였다.
그 도포의 주인은 자신과 비교해도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사내였다.
하지만 훤칠한 키 덕분에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효명이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정소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누, 누구세요? 누구신데 하북팽가에 있는 거예요?”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누구 허락을 받고 하북팽가를 휘젓고 다니는 거지?”
“아, 그게…….”
“됐고,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다칠 수 있으니 그냥 사람이 다니는 길로 다녀.”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마.”
하얀 무복의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낙엽 밟는 소리만 남긴 채 사라졌다.
사사-삭.
순간 정소연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효명도 마찬가지였다.
효명 역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작게 읊조렸다.
“신선 오라버니네.”
“맞아. 신선이 맞는 것 같아.”
“하북팽가 사람인 것 같은데……. 대체 누구지? 혹시 너는 알아?”
“나도 몰라.”
정소연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효명은 뭔가 생각났는지 경공을 펼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에 정소연이 물었다.
“어디 가? 효명아.”
“신선 오라버니 잡으러.”
그때였다.
효명의 소매를 누군가 잡았다.
탁.
효명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시비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공…….”
효명은 그녀의 입을 재빨리 막았다.
그러고는 정소연을 바라봤다.
“나는 그만 가 볼게. 그럼 다음에 보자, 친구.”
“그래, 효명아.”
그들의 대화에 시비가 끼어들었다.
“무…….”
하지만 이번에도 효명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이상한 그들의 행동에 정소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졌을 때였다.
뒤쪽에서 누군가 정소연의 어깨를 잡았다.
“소연이 아니니? 여긴 웬일이야?”
“앗, 조호 오라버니.”
“그래, 나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왔어? 오늘은 황궁에서 손님이 오는 바람에 다른 방문객은 모두 막았는데.”
“황궁이요?”
“아, 별건 아니고 이번에 우리 주군이 또 공을 세웠잖아. 그래서 황궁에서 포상하러 나온 거야.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
“아, 다행이네요.”
“혹시 설화 보러 온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정소연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이 사라지자 아까 한빈의 옆에 있었던 성숙한 여인 둘이 기억났다.
정소연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저는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무공을 익혀야 할 것 같아서요. 열심히 연습해서 쑥쑥 클 거예요.”
말을 마친 정소연은 휙 돌아섰다.
조호는 그녀에게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정소연의 표정이 비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사라지자 조호는 나지막이 외쳤다.
“참, 그놈 많이 컸네!”
조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 *
한편 효명과 함께 가는 시비는 한숨을 쉬었다.
“공주 마마께서 이러시면 저희는 목이 달아나요.”
“아직 살아 있잖아.”
“마마, 그게 할 말이에요?”
“미안해, 조미.”
효명은 시비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의 시비 조미는 효명이 어렸을 적부터 옆에서 병간호하던 사람이었다.
효명에게는 어미인 현비보다도 같이 지낸 시간이 많은 인물이었다.
효명의 사과에 조미는 손을 내저었다.
“마마, 남들이 있을 때는 그렇게 사과하지 마세요. 저 목 달아나요.”
“걱정하지 마, 조미 목은 내가 지켜 줄 거야. 내 목을 걸고!”
“마마, 그런 말씀도…….”
조미를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손만 휘휘 내저었다.
그때 효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런데 여기 혹시 신선이 살아?”
“하북에요? 하북에 영험한 산이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요. 화산이나 무당 그리고 곤륜 같은 곳에 가야 신선이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런 도사들 말고. 진짜 신선.”
“진짜 신선이요?”
“내가 방금 신선을 봤거든.”
“네?”
조미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가 이내 미소를 피워 냈다.
효명은 평상시에도 엉뚱했기 때문이었다.
조미가 미소를 피워 내자 효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 결심했어.”
“무슨 결심이요? 공주 마마.”
“미래의 반려자를 찾았어.”
“지난번에 찾으셨잖아요. 여기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혼례를 하신다고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현비 마마께도 조르시고…….”
“아니야. 마음이 바뀌었어.”
“네?”
“나는 신선 오라버니한테 갈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여기 사 공자한테는 조금 미안해. 그런데 여자의 마음은 원래 움직이는 거잖아. 뭐 혼담이 본격적으로 오간 것도 아니고.”
“아니, 혼담 얘기 꺼내려고 현미 마마께서 얼마나 고심했는데요.”
“그래도 아직 얘기는 안 꺼냈잖아.”
“혼담에 대한 밑밥으로 유림 서원의 입학 허가증을 보낸 거잖아요.”
“어차피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유림 서원에 안 갈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유림 서원에 가는 무림인 봤어? 거기가 얼마나 고리타분한 곳인데…….”
“그건 그렇지만, 이제까지 현비 마마께 말해 놓은 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건 돌아가자마자 어마마마에게 솔직히 말씀드릴 거야. 신선 오라버니랑 혼례를 올리겠다고. 헤헤.”
말을 마친 효명은 봄날 갓 핀 개나리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조미는 그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하지만 효명이 황궁으로 돌아가는 날 하늘은 천둥이 칠 것이었다.
신선에게 시집가겠다고 우기는 공주와 머리를 싸매는 현비 마마의 모습을 조미는 머릿속에 그렸다.
조미의 걱정과는 달리, 효명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통거리며 걷고 있었다.
효명은 신선의 정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신선의 외모를 보면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매우 비슷했다.
분명 하북팽가와 연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효명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줬기 때문이다.
전에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좋아하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괴질로 고생하던 그때 천산혈랑의 내단으로 자신을 구해 준 것이 하북팽가의 사 공자였다.
당시에 내단을 구한 사람은 하북팽가의 사 공자였고, 직접 자신을 구한 것은 황궁의 의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신선 오라버니는 목숨을 잃을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 줬다.
효명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 *
연무장에서는 모두가 집법당주 팽대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팽대위는 그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무명이 물었다.
“집법당주님! 왜 그쪽으로 암기를 날리신 겁니까?”
“암기는 아니고 나뭇가지일 뿐이네.”
“아니, 강기까지 실어서 던지셨으면서…….”
“됐고.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러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분명히 이쪽을 보는 기척을 느꼈는데 바람처럼, 아니 바람도 아니었어. 그냥 순식간에 기척이 사라졌어.”
“그럼 고수가 침입해 왔단 말입니까?”
이무명의 눈이 커졌다.
그 옆에 있던 설화와 청화 그리고 하오문의 두 문주도 각자 병장기를 잡았다.
그러고는 언제든 병기를 뽑을 준비를 하며 사방을 경계했다.
갑자기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 팽대위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적인지 아군인지는 모르지.”
팽대위의 말에 뒤쪽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암기를 날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하얀 무복을 입은 한빈이 서 있었다.
팽대위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때는 일단 제압한다는 게 하북팽가의 가칙이 아닌가? 집법당주인 내가 그 가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 유기이지.”
“경계 임무에 관한 가칙 오 조 이 항에 살펴보면 제압한다고 쓰여 있지, 죽인다고는 안 쓰여 있습니다.”
“험.”
팽대위는 고개를 재빨리 돌려 먼 산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빈은 한숨을 쉬었다.
“휴.”
팽대위의 암기에 황궁에서 온 공자가 맞았다면?
이건 그냥 하북팽가가 하루아침에 끝장나는 상황이었다.
뭐, 사실 팽대위의 말이 맞긴 했다.
일단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강호의 생리에 더 어울렸다.
하지만 힘 조절이 문제였다.
팽대위가 날린 나뭇가지에는 절정의 무인도 막을 수 없는 강맹한 기운이 맺혀 있었다.
한빈이 그것을 막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빈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때 이무명이 한빈에게 다가왔다.
“주군, 그렇게 입으시니 꼭 신선 같습니다.”
“신선은 무슨 신선. 본래 입던 무복이 다 찢어져서 이번에 새로 가져올 때까지 할 수 없이 입는 건데. 확실히 하얀 무복은 뭔가 부담스럽네. 화산의 도인들은 이런 하얀 무복에 매화까지 넣고 다니니…….”
“그러다가 서 대협이 듣습니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지.”
말을 마친 한빈은 고개를 돌려 팽대위를 바라봤다.
“당주님은 왜 여기에 오신 겁니까?”
“흠.”
팽대위는 헛기침하며 품속을 뒤적였다.
한참을 품속을 뒤지던 팽대위가 봉투 하나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