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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57화 (457/621)

457. 불청객 (2)

울상이 된 효명의 어깨를 상대가 톡톡 두드렸다.

“울지 마, 왜 그렇게 소심해?”

상대는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효명을 바라봤다.

당당한 상대의 모습에 효명이 물었다.

“너는 방법이 있어?”

“당연히 있지. 언니라고 부르면 가르쳐 주지.”

상대는 가슴을 활짝 펴더니 자신 있는 얼굴로 효명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방법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효명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언……. 아니, 내가 한 살 더 많은데 왜 너를 언니라고 불러!”

“조용, 목소리가 너무 커.”

상대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자, 효명은 그제야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자세히 보니 멀어지던 하북팽가의 경비 무사가 멈칫하며 뒤를 돌아본다.

효명은 재빨리 숨까지 죽였다.

뒤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발길을 옮기는 경비 무사를 본 효명은 그제야 숨을 토해 냈다.

“휴.”

“너도 무공을 익혔구나.”

상대가 효명을 보며 빙긋 웃었다.

효명은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상대는 재미있다는 듯 효명을 보다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왜 그렇게 봐? 여긴 내 집 같은 곳이야.”

“그럼 하북팽가 사람?”

“아니, 그냥 친한 사람이 여기 살아서…….”

“흠.”

“그렇게 보지 말고 그냥 친구 하자. 잘 생각해 봐. 외모는 내가 더 언니 같고 나이는 네가 언니라고 우기잖아.”

“…….”

효명은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몰라 눈매를 더욱 좁혔다.

“그렇게 인상 쓰니까 무섭잖아. 한 살 차이니 그냥 친구 하자. 강호에서는 원래 열 살은 맞먹는 거라고 들었어.”

“너 무림인이야?”

“뭐, 말하자면 그렇지. 나는 정소연이라고 해.”

“음, 그럼 나도 소개해야겠네. 나는 효명.”

효명이 손을 내밀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맞잡았다.

효명은 슬쩍 장심에 내기를 모았다.

상대가 무림인이라고 했으니 시험을 해 보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내공이 있을 리도 없었다.

딱 보면 무공을 익힌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상대에게 해를 입힐 생각은 없었기에 적당한 내공을 불어 넣었다.

순간 맞잡은 그녀들의 손이 살짝 떨렸다.

부르르.

그 떨림이 점점 커지더니 마치 반가워서 서로 손을 맞잡고 흔드는 모양새가 되었다.

효명은 눈을 크게 떴다.

상대가 무림인이라고 말한 것이 맞았다.

상대는 자신의 내공에 따라 같이 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효명은 황궁의 호위들에게 자신의 내공이 절정 수준이라는 것을 들었다.

절정이라면 작은 마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수준의 무공 수준이라 들었다.

효명의 또래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경지라고도 들었다.

그런데 상대가 자신의 내공에 따라 같이 내공 수위를 끌어올리자 놀란 것이다.

효명은 눈매를 더욱 좁혔다.

그녀의 눈은 마치 단춧구멍 같았다.

효명이 바라보던 상대는 다름 아닌 정소연이었다.

그녀는 하북 대장간의 명장 정철민과 사도련 독고련의 손녀였다.

거기에 정소연을 이곳에 데려다준 것은 강남 사도련주 독고진이었다.

그녀의 할머니인 독고련과 함께 영단산에 머무는 동안 무공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 결과 단전에 내공의 씨앗이 자리 잡았으며 동네 왈패들에게서 몸을 보호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혈통으로 봐서나 실력으로 봐서는 당당한 무림인이 맞았다.

물론 할아버지 정철민이 안다면 기겁할 노릇이지만 말이다.

독고련과 정철민이 따로 사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무림인들의 칼부림에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정소연이 무공을 배운 것에는 조금 사연이 있었다.

정소연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무림인이니 거기에 맞춰 무공을 익히고 싶었다.

물론 독고련은 반대했다.

그때 정소연이 던진 말 한마디에 독고련은 그녀에게 무공을 전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무공을 익혔다면?’이라는 가정이었다.

둘 다 무림인이라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헤어져 있지 않아도 되지 않았냐는 물음이었다.

그 물음을 들은 독고련은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나오지 않았다.

손녀의 질문 하나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물론 정소연은 그것이 할머니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미안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독고련은 손녀에게 격체전공의 수법으로 자신의 내공을 나누어 주었다.

덕분에 정소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정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몇 가지 상승 기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지금 정소연이 자신도 모르게 펼치고 있는 이화금나수였다.

이화금나수란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한 초식이었다.

이화금나수는 말 그대로 상대를 틀어쥐고 상대의 기운을 돌려보내는 것.

이는 날카로운 병장기를 잡을 때나 대장간에서 화기를 다룰 때도 유용한 수법이었다.

정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이화금나수를 펼치며 효명의 내공을 돌려보내고 있다.

그것은 거울을 본 태양과도 같았다.

태양이 거울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찌 저렇게 밝은 놈이 있을까? 하며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지금 효명의 상태가 그랬다.

효명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놔!”

내공이 한계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더 진기를 끌어올린다면 자신도 다치고 상대도 다칠 것 같았다.

순간 상대가 당황한 듯 손을 놓았다.

“아, 미안. 잠시 딴생각하느라…….”

“딴생각했다고?”

“고민이 있어서.”

“고민?”

효명은 상체를 기울여 귀를 갖다 댔다.

또래와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처음이었다.

황궁에서는 모두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오라비와 누이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와도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아이가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 하자 효명은 자신의 상황도 잊었다.

반대로 정소연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 동안 영단산에 머물며 마주한 것은 험한 인상의 아저씨들밖에는 없었다.

그것도 병장기를 휘두르는 못생긴 아저씨들이었다.

알고 보면 마음씨는 착했지만, 그들과 어찌 속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정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사실 여기에 아는 무사님이 있는데…….”

살짝 말끝을 흐리자 효명은 안달이 난 듯 물었다.

“무사님이라고?”

“그래, 무사님. 그분을 살펴보러 온 거야.”

말을 마친 정소연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물론 정소연이 말한 이는 한빈이었다.

연모의 감정인지, 우상을 우러러보는 마음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공자라고 하면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는 것을 단번에 들킬 것 같아 무사라고 한 것이다.

정소연의 표정을 본 효명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마음 나도 알아.”

“어? 안다고? 어떻게?”

반가운 듯 질문을 쏟아 낸 정소연을 보며 효명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도 좋아하는 무사님이 있거든. 그런데 신분의 차이 때문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잖아. 힘내.”

정소연은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효명은 머리 장식을 제외하면 옷차림이 수수하다 못해 초라했다.

거기에 전각 사이를 누비다가 먼지란 먼지는 다 묻은 상태였다.

그러니 신분의 차이라는 것을 효명이 아래, 상대가 위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착각은 착각이고, 정소연은 자신의 눈빛이 효명과 같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효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친구 하자. 그런데 이 진법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는 거지?”

“진법? 무슨 진법?”

“우리 진법에 갇힌 거잖아.”

“너, 강호 초출이구나. 여기에는 진법 같은 거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무림세가에서는 이런 숲에다 반드시 진법을 설치한다고 들었어.”

“그거 전쟁이라도 일어나야 그렇고. 평소에 진법을 설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혹시…….”

“혹시라니? 뭔데?”

“너, 혹시 강호를 책으로 배운 거 아니야?”

“음.”

효명이 침음을 삼켰다.

정소연의 지금 한마디는 그녀의 정곡을 정확히 찔렀다.

효명이 강호에 대해서 들었던 내용은 모두 서책에 있었다.

효명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슬픈 눈으로 정소연을 바라봤다.

“그래, 맞아. 아파서 집에만 있었거든.”

“미, 미안해.”

정소연은 효명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효명을 잡고 숲속을 가로지르는 정소연.

그 뒤를 묵묵히 따르던 효명이 물었다.

“어디 가?”

“여기서 벗어나야지.”

“아, 알았어.”

효명은 일단 정소연을 믿기로 했다.

하북팽가의 담장 안쪽이긴 했지만, 그녀는 이곳이 강호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가던 정소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탁.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누가 봐도 몸을 숨기는 모습에, 효명도 재빨리 몸을 숨기고 앞을 관찰했다.

앞쪽에는 하북팽가의 식솔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효명은 비명을 터뜨릴 뻔했다.

너무 멀리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서 대화를 나누는 인물 중 하나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하북팽가의 사 공자, 팽한빈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무장 옆에 편안히 앉아 있었다.

가끔 웃음소리도 들리는 것으로 봐서 제법 재미있는 말을 주고받는 분위기였다.

물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정확한 대화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효명은 그들의 대화를 듣기 위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하지만 대화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효명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숲을 벗어나 연무장을 향해 달려가려고 하는 효명을 정소연이 잡았다.

“쉿.”

“미안.”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하북팽가의 입장에서는 불청객이었다.

잘못하다가는 하북팽가에 찍힐지도 몰랐다.

효명과 정소연은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한참을 보던 효명은 미간을 좁혔다.

“소연아, 저기 저 언니들은 누구지?”

“설화 언니와 청하 언니 같은데…….”

“그럼 저기 저 아줌마들은? 왜 복장이 이상하지?”

“저 아줌마들? 그건 나도 잘…….”

정소연은 말끝을 흐렸다.

설화와 청화가 한빈의 시녀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성숙한 여인 둘은 정소연도 처음 보는 이였다.

설화와 청화에게는 동질감이 들지만, 성숙한 두 명의 여인은 전혀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정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만져 보았다.

그러고는 실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저 둘과 비교하면 자신은 여인이라 할 수 없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에 불과했다.

재미있는 것은 효명도 정소연과 판박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 *

한편 효명이 지켜보는 곳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무명이었다.

가주와 금의위 그리고 동창의 수뇌부끼리의 만찬이 시작되자, 이무명은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무명은 사실 황궁의 방문에 대해서는 일절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지금 나누는 대화도 이무명에 대한 출생의 비밀이 중심이었다.

설화와 대화를 나누던 이무명은 뒤를 돌아봤다.

“혹시 주군은 어디 갔나요?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인데, 사라지셔서는…….”

“저도 몰라요.”

답한 이는 백미랑이었다.

옆에 있던 흑미랑도 거들었다.

“하오문이 모르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이 호위님, 사실 저희도 공자님에게 물어볼 게 태산만큼 있어요.”

그들은 모두 한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들의 곁으로 거대한 신형이 다가왔다.

이무명은 그를 향해 재빨리 포권했다.

“오셨습니까? 집법당주님.”

“혹시 사 공자 봤나? 이 호위.”

“저희도 찾고 있습니다.”

“쉿.”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댄 집법당주 팽대위가 나뭇가지 하나를 줍더니 가차 없이 숲이 있는 방향으로 날렸다.

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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