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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56화 (456/621)

456. 불청객 (1)

관직 진출을 원하지 않는데도 유림 서원을 수료해야 하는 딱 한 가지였다.

그것은 황실의 가족이 되어야 할 경우였다.

일반 백성이 황실의 가족이 되는 경우는 부마가 되는 경우다.

유림 서원에서는 사서삼경을 바탕으로 인, 의, 예, 지, 신을 비롯한 궁중 예법까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부마의 후보자들은 필수적으로 유림 서원을 수료한다.

강유찬은 도저히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부마라?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성이 없었다.

자신이 선물을 전달해 놓고 넋을 잃고 있던 강유찬.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춘추에도 보면 문무를 겸비한 인재는 천년을 살아온 노송과도 같다 하지 않았습니까? 무로 중원의 전역에 명성을 떨친 하북팽가가 문까지 겸비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

“이 모두가 폐하의 안배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망극하옵니다.”

팽강위는 북경이 있는 방향을 향해 재빨리 포권했다.

그 모습에 강유찬이 말을 이었다.

“저희만 있는데 예의는 안 차리셔도 괜찮습니다.”

“혹시 이 입학 허가증이 우리 한빈이를 위한 것입니까?”

“아마도요…….”

강유찬은 말끝을 흐렸다.

유림 서원의 허가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강유찬도 모른다.

하지만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아니라면 또 누가 그 대상이겠는가?

* * *

접객실에서 은밀한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였다.

금의위와 동창의 무사들은 지금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그들이 지금 넋이 나가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명을 전하는 이번 행렬은 눈 깜짝할 사이에 꾸려졌다.

그것은 신속하게 상을 내려야 한다는 동창의 성화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밥도 먹지 못하고 천 리를 한걸음에 달려와야 했다.

이곳에 와서 끼니라도 때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끼니는커녕 가주전 앞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행렬을 지켜야 했다.

꼬르륵.

그들은 뱃가죽 안에서 소리가 울리자 서로를 바라봤다.

금의위와 동창이 견원지간이라지만, 지금만큼은 동병상련이란 표현이 적절했다.

지금 그들의 표정을 보면 팽강위가 위국이라는 현판을 개작두로 오해한 것도 당연했다.

그들의 표정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썩어 있었다.

그들 중 참다못한 금의위 무사가 작게 말했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누구에게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옆쪽에서 누군가가 답했다.

“그러게 말일세. 아무리 어르신들의 일이라지만, 이건 너무 과하지 않은가?”

말한 이는 동창의 무사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죽이 맞았는지,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금의위와 동창의 무사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수장이 고개를 돌리면 단번에 잠잠해지지만, 그 웅성거림은 계속 이어졌다.

금의위와 동창의 행렬 안에는 조그만 마차 한 대가 묻혀 있었다.

금의위와 동창의 무사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마차였다.

그때였다.

하북팽가의 무사 하나가 그들에게 달려왔다.

하북팽가의 무사는 강유찬과 서 태감을 빼고 이 행렬의 수장으로 보이는 무사의 앞에 섰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던 것이, 그 무사가 맨 앞에 서 있었다. 거기에 그가 입은 무복도 그중 가장 고급스럽게 보였다.

그는 재빨리 행렬의 우두머리를 향해 포권했다.

“대인들, 일단 목부터 축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안에 계시는 강유찬 대인과 서 태감 나으리도 승낙하셨습니다. 다들 이쪽으로 오시죠.”

순간 금의위와 동창 무사들의 안색이 돌아왔다.

사실 그들은 이미 한계였다. 반 시진 정도만 지나면 곧 쓰러질 터였다.

그런데 식사 자리를 준비했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반 무사에서부터 책임자들까지 모두가 눈을 빛내며 하북팽가 무사들을 따랐다.

마차를 지키고 있던 무사들도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가던 무사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뭔가 까먹은 거 없나?”

“까먹은 건 우리가 아직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걸세.”

“듣고 보니 그렇구먼.”

그들은 금의위와 동창이 하나가 되어 하북팽가 무사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마차 몇 대와 수레만이 남았다.

무사들이 겹겹이 에워쌌던 마차의 문이 한 뼘만큼 열렸다.

스륵.

마차 문이 열리자 한 쌍의 눈동자가 주변을 살핀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 눈동자의 주인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눈동자의 주인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머리는 양쪽으로 말아 올려 마치 머리 위에 두 마리의 제비집이 있는 것 같았으며,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은 마치 시골에서 올라온 소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길고 가느다란 손으로 마차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더니 재빨리 마차에서 내려 손을 탁탁 털었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황제와 현비 사이에서 태어난 팔 공주였다.

세상에서는 팔 공주라 부르지만, 그녀의 이름은 효명이었다.

나이는 열여섯이지만, 어려서부터 앓았던 병 때문에 키는 또래에 비해 작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병이 치료되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는 그녀였다.

효명은 장차 누군가의 신부가 될 꿈을 가진 소녀였다.

효명은 뒤를 힐끔 돌아봤다.

뒤쪽에는 그녀의 시비로 보이는 여인이 지친 듯 잠들어 있었다.

여인의 앞 조그마한 향로에 향이 꽂혀 있었다.

그 향은 마차 밖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부석에 앉은 호위까지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봐서 그 향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모든 상황을 확인한 효명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여인의 미소가 아닌 아이의 미소였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주위를 살핀 효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서였다.

그녀는 멈칫하며 방향을 고민하다가 어딘가로 재빨리 뛰어갔다.

그곳은 금의위와 동창의 무사들이 간 곳과 반대 방향이었다.

그녀는 이곳으로 왜 왔을까?

그것은 자신이 꿈에 그리던 하북팽가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하북팽가를 마음속에 두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병을 고쳐 준 이가 다름 아닌 하북팽가의 사 공자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시름시름 앓던 절맥증은 누구도 고치지 못했다.

여인에게 일어나는 절맥증은 보통 음기가 맥을 막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효명이 앓고 있던 절맥증은 양기가 맥을 막고 있는 희한한 병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양기가 혈맥의 곳곳을 막고 있는 구양절맥은 흔히 있는 병은 아니었다.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음기가 가득한 영물의 내단.

그것이 바로 천산혈랑의 내단이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자신의 병을 고쳐 준 신선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현비도 그 정도면 신랑감으로 괜찮다고 허락을 했다.

단 몇 년 후에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 칠음현에서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잠시 본 적이 있었다.

그 뒤 효명의 마음은 더욱 깊어져 갔다.

효명은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만나지 못해도 가문의 전경이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곳으로 오는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이란 마차 안에서만 머물기로 한 것이다.

금의위와 동창이 호위한다고 하지만, 강호는 험한 곳이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강호였다.

그녀의 어미인 현비는 강호 출신으로, 누구보다 무림의 생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효명은 뛰어가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규칙을 깨라고 있는 거예요, 어마마마.”

누구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미안한 마음에 혼잣말을 던졌을 뿐이었다.

효명이 전각 사이를 누비는 모습은 흡사 조그만 미꾸라지가 그물을 피해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경공은 제법 쓸 만했다.

주변을 경계하던 하북팽가의 무사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니 말이다.

사사삭.

효명은 몸이 약했던 탓에 현비로부터 기본적인 무공을 배웠었다.

그런데 천산혈랑의 내단을 먹고 향상된 내공 덕분에 일류 고수에 버금가는 무공을 얻을 수 있었다.

무공이 일류지, 내공만 놓고 보면 절정에 이르는 기연을 얻었던 효명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효명의 눈앞에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효명은 그 숲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그녀는 숲에 한 발을 디뎠다.

그러고는 잽싸게 발을 뺐다.

“이런 곳에는 보통 진법이 펼쳐져 있다고 들었어. 하북팽가 정도면 진법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 음……. 아무리 봐도 어떤 진법인지 가늠이 안 되네.”

혼잣말을 뱉은 효명은 숲 앞에서 계속 멈칫거리며 고민했다.

그때였다.

그녀의 뒤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흠.”

고개를 돌려 보니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팔짱을 끼고 있다.

시선이 마주치자 소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거기서 뭐 해?”

“너, 너는 누구냐? 무…….”

효명은 말을 더듬었다. 몰래 하북팽가를 둘러보고 싶어서 온 것인데,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금의위와 동창이 몰려올 것이 뻔했다.

효명을 보던 상대방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수상한데?”

“내가 어디가 수상하다고 하는 것이…….”

“말투가 수상해.”

“흠, 내 말투 어디가 그렇게 수상해요?”

효명은 재빨리 표정을 고치고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자 상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말투가 바뀌네.”

“제 말투는 원래 그래요. 그런데…….”

효명도 눈을 가늘게 떴다.

대화를 이어 나가다 보니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말끝을 흐린 효명은 그 이유가 뭔지를 곰곰이 고민했다.

그때 상대방이 물었다.

“그런데 뭐?”

상대방의 말에 효명이 꺼림칙한 이유를 깨달았다.

“너, 왜 나한테 반말해?”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반말하면 안 돼?”

“무…….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몇 살인데?”

“난 열다섯. 그러는 너는 한 열셋 정도?”

“풋, 열다섯이라고? 머리에 피도 안 말랐네.”

효명은 가소롭다는 듯 입가에 비웃음을 한껏 피웠다.

그 모습에 상대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웃어?”

“난 올해로 열여섯이다. 조금만 지나면 열일곱이지.”

상대는 표정을 수습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흥,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 무…….”

“또 말투가 이상해졌네.”

둘이 난데없는 나이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뒤쪽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터벅터벅.

순간 효명은 상대의 손목을 잡고 재빨리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숨을 죽였다.

잠시 뒤 효명의 눈앞에 하북팽가의 경비 무사가 나타났다.

터벅터벅.

그들이 모습이 멀어지자 효명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휴.”

동시에 상대도 탄성을 터뜨렸다.

“아, 들킬 뻔했네.”

“뭐야? 너도 몰래 들어온 거였어?”

“그럼 너도?”

상대도 놀란 듯 효명을 바라봤다.

서로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뜨자 다람쥐 두 마리가 마주 보는 형국이 되었다.

그때였다.

효명은 그제야 자신이 진법 때문에 숲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효명은 다급하게 외쳤다.

“아, 큰일 났어! 이 진법이 뭔지도 모르는데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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