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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51화 (451/621)
  • 451. 위국(爲國) (2)

    종남흑선은 저것이 한빈이 변장한 적룡대협이라 생각했다.

    쓰러져 있는 무인은 한 명이었다.

    종남흑선은 쓰러져 있는 무인이 위상호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한 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나머지 한 명은 이곳을 빠져나갔다는 증거였다.

    빠져나갈 이유가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위상호였다.

    그렇다면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한빈일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봐서는 숨이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종남흑선은 재빨리 끊어진 만근교 위에서 뛰어내렸다.

    펄쩍 뛰어내린 그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것은 얕은 강물 위였다.

    첨벙.

    그것이 시작이었다.

    강물 위로 너나없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쓰러져 있는 무인 쪽으로 다가간 종남흑선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사 공자!”

    그는 쓰러진 무인이 한빈이라 확신했다.

    붉은 무복이 바로 증거였다.

    종남흑선이 다시 외쳤다.

    “사 공자, 어서 대답해 보시오!”

    하지만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첨벙거리며 쓰러진 무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세히 보니 붉은 무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몸에 낭자한 선혈 때문에 붉은 무복으로 보였다.

    붉은 무복이라는 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물결이 옷을 적시자 붉은색은 점점 빠져나갔다.

    하지만 흥분한 종남흑선의 눈에는 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종남흑선이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설화가 그를 밀어 냈다.

    설화는 널브러져 생사도 모르는 무인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을 이었다.

    “잠시만요……. 우리 공자님이 아닌데요.”

    “맞아요. 우리 공자님이 아니에요.”

    그때 강물이 찰랑거리며 무인의 얼굴을 씻어 냈다.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위상호!”

    그 목소리의 주인은 강유찬이었다.

    강유찬은 재빨리 모두를 밀치고 그의 코에 손을 갖다 댔다.

    그는 재빨리 그의 혈맥을 짚었다.

    탁. 탁.

    그를 제압하기 위한 점혈은 아니었다.

    터져 나오는 핏물을 막기 위해 점혈을 한 것이다.

    그가 지혈하자 위상호의 몸에서 흐르던 피가 멈췄다.

    강유찬은 재빨리 뿔피리 하나를 불었다.

    휘익.

    날카로운 뿔피리 소리가 근처로 퍼져 나가자 그때야 금의위 무사들이 끊어진 다리 위로 몰려왔다.

    그들이 던진 밧줄을 잡은 강유찬은 숨만 붙어 있는 위상호를 끌고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때 다시 올라온 아미백선이 구절편을 들고 위상호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강유찬이 손을 내밀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저자는 위험해요. 깨어나면 저희가 감당할 수 없어요.”

    “여길 보십시오.”

    강유찬은 그의 복부에 박혀 있는 검을 가리켰다.

    그 검은 한빈의 월아였다.

    부러진 월아가 그의 복부에 박혀 있었다.

    정확히는 위상호의 단전에 깃발처럼 꽂혀 있었다.

    자세히 상처를 살핀 아미백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찬의 말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지금 위상호는 단전이 깨져 있었다.

    단전은 무인에게는 생명이었다. 그런데 그 생명과 같은 단전이 깨져 있다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이야기였다.

    금의위 무사들은 위상호에게 금창약을 바르는 동시에 그에게 족쇄를 채웠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되자 설화가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청화가 물었다.

    “언니, 왜 그래요?”

    “그럼 공자님은 어디 간 거지? 혹시 강물에 휩쓸려 간 건 아니겠지?”

    “어, 공자님! 공자님!”

    청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애타게 한빈을 불렀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금의위 무사들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설화나 청화가 공자라고 지칭할 만한 사람은 주변에 없던 것이다.

    금의위 무사 중 누구도 청화가 애타게 찾는 이가 적룡대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 설화가 청화의 어깨를 다독였다.

    “청화야, 일단 진정해 봐.”

    “네, 어, 언니.”

    고개를 끄덕였지만, 청화의 눈빛은 바람에 흔들리는 호롱불 같았다.

    그 모습에 설화가 청화의 어깨를 더욱 꽉 잡았다.

    청화가 조금 진정되자 설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화야, 침착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아까 바닥에 독을 퍼뜨려 놨다고 했잖아. 그걸 찾아보면 되잖아.”

    “그건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끊겨서…….”

    “주변을 찾아보면 흔적이 있겠지.”

    “흠.”

    “일단 가 보자.”

    설화는 청화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동시에 둘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사-삭.

    그 모습에 강유찬이 혀를 찼다.

    그때 아미백선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강유찬 대인은 이곳을 마무리하셔야죠.”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강유찬은 아미백선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하북팽가 사 공자의 동료임을 알 것 같았다.

    불쑥 튀어나온 덕분에 인사도 나누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때 종남흑선이 끼어들었다.

    “저와 정 소저는 각각 종남과 아미의 제자입니다. 강유찬 대인이 황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멀리서 뵌 적이 있습니다. 당시 화산의 매화검수로 종남에 방문하신 적이 있죠?”

    “아, 같은 구대문파의 제자셨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유찬의 눈빛이 순식간에 호의로 바뀌었다.

    그때 아미백선이 말을 이었다.

    “사 공자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번 계략도 대인께서 짜셨다고요. 정말 탄복했어요.”

    “아, 뭐 그렇죠…….”

    강유찬은 어색하게 웃으며 설화와 청화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놈!”

    강유찬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웬 무인이 황토색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뛰어오고 있었다.

    막아서는 금의위는 그의 그림자조차 잡지 못했다.

    그들과는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먼지구름만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먼지구름은 점점 가까워졌다.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무인은 강유찬의 코앞에서 멈췄다.

    탁.

    강유찬도 섣불리 대응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기 때문이다.

    먼지구름이 걷히고 무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순간 강유찬은 입을 딱 벌렸다.

    상대는 다름 아닌 홍칠개였다.

    금의위의 수장이지만, 무인 간의 배분으로 봤을 때는 하늘과 같은 것이 홍칠개였다.

    그런 홍칠개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쏘아보고 있었다.

    “어, 어르신, 무슨 일이십니까?”

    “누가 내 제자를 때렸느냐?”

    “어르신, 쉿!”

    “…….”

    “어르신의 제자가 이곳에 왔다 간 것은 비밀입니다.”

    “비밀이라…….”

    홍칠개는 뒤쪽을 힐끔 돌아봤다.

    그곳에는 먼지구름 하나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먼지구름 역시 홍칠개와 강유찬의 앞에서 멈췄다.

    먼지가 걷히자 나타난 것은 광개였다.

    광개를 본 홍칠개가 물었다.

    “비밀이라는데……. 왜 그건 내게 말 안 했지?”

    “사 공자가 죽어 가는데, 어떻게 일일이 다 설명합니까?”

    “안 죽었다는데?”

    “그럼 다행이지요.”

    광개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광개는 한빈과 위상호의 결전이 시작되는 순간, 그들을 돕는 대신 홍칠개에게 달려갔다.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봤자 자신의 무위로는 폐만 끼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홍칠개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때 두 명의 여인이 홍칠개에게 정중히 포권했다.

    “홍칠개 어르신, 인사드립니다. 하오문의 백미랑이라고 해요.”

    “저는 흑미랑이에요.”

    홍칠개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둘을 바라봤다.

    “하오문이 여기에는 웬일인가?”

    홍칠개의 눈빛은 탐탁지 않았다.

    하오문과 개방은 똑같이 정보를 다루는 문파이기에 둘은 견원지간이었다.

    그런데 하오문의 지부장 둘이 인사를 하니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광개가 다시 나섰다.

    “흠, 사 공자를 돕는 분들입니다.”

    “험.”

    홍칠개는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뱉었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사과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는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그 뒤로 이번 일의 전말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 중 가장 놀란 것은 강유찬이었다.

    실상을 들어 보니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하북으로 오면서 전서구를 통해서 모두와 연락을 한 것이었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모두가 바둑판 위의 돌과 마찬가지였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전체 바둑판을 굽어보며 지시를 내린 것이다.

    거기에 정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개방과 하오문을 언제든 주무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나라를 위해 이번에도 공을 세웠다.

    이제까지 나라에 세운 공을 다 더한다면 개국공신 중에도 사 공자를 따를 자는 없었다.

    강유찬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사 공자 자네는 대체…….”

    “무슨 말인가?”

    홍칠개가 고개를 갸웃하자 강유찬은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들다 보니 그의 눈에 끊어진 만근교가 보였다.

    순간 강유찬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만근교는 하북성을 넘어서 나라의 명물이었다.

    어찌 보면 북쪽의 기둥이라 불리는 것이 만근교였다.

    그런데 만근교가 끊어졌다니!

    이것은 사 공자가 세운 모든 공을 깎아내릴 수도 있었다.

    강유찬은 재빨리 표정을 숨겼다.

    홍칠개가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북경으로 가서 황제에게 따지겠다고 난동을 피울지도 몰랐다.

    * * *

    하북성의 성문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경락산의 산자락.

    경락산의 경은 거울 경(鏡) 자였다. 거울 경 자를 쓰는 이유는 경락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잡으려다가 떨어지는 곳이 바로 경락산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경락산을 피해 간다.

    어떤 이는 귀신 붙은 산이라고도 한다.

    귀신 붙었다는 소문까지 퍼진 경락산의 중턱에는 붉은색 실선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실선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한빈이었다.

    한빈은 위상호를 제압하고 재빨리 강남 사도련주 독고진이 남겨 놓은 흔적을 따라 경락산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이것은 한빈과 독고진의 밀약이었다.

    한빈이 위상호에게 말한 것은 단순한 위협이 아닌 사실이었다.

    흑룡단이라는 조직의 영향력이 정파에만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뿌리를 캐려고 한다면 위상호의 자식이 도주하는 것을 추격하는 것이 가장 빨랐다.

    그 임무를 사파의 독고련에게 부탁한 것은 가장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정파의 인물에게 맡기면 적이 꼬리를 드러내기도 전에 칼을 뽑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임무에 독고진만큼 적합한 인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산길을 달리던 한빈이 잠시 멈췄다.

    탁.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한빈이 발길을 멈춘 이유는 당연하게도 독고진이 남겨 놓기로 한 흔적이 끊겼기 때문이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독고진이 남기기로 한 표식은 간단했다.

    그것은 나뭇가지였다.

    나뭇가지가 놓은 방향은 직선을 나타낸다.

    다음 나뭇가지가 보이기 전까지는 직진하면 되었다.

    덕분에 한빈은 앞이 아닌 아래를 보며 달렸다.

    나뭇가지를 따라 달리다 보니 눈앞에 갈림길이 나왔다.

    하지만 방향을 나타내는 나뭇가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빈은 재빨리 나무를 밟고 튀어 올랐다.

    휘리릭.

    나무 꼭대기로 튀어 오른 한빈은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나무 위로 오르자 경락산 중턱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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