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50화 (450/621)

450. 위국(爲國) (1)

어떻게 보면 일목요연은 역지사지에서 상대의 무공을 분석하는 수법을 특화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일각이라…….

한빈은 선에 집중하면서 위상호의 검을 예측해야 했다.

상대의 속도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만큼 한빈이 반격할 기회는 없었다.

일단은 관찰이 끝날 때까지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들이 대결을 지켜보는 설화는 입을 벌렸다.

이제는 둘의 신형이 아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화는 마른침을 삼켰다.

적과 마주한 한빈을 보고 이처럼 애를 태운 적은 없었다.

한빈이 피를 흘리며 위상호와 마주했을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지금은 둘의 격돌이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동체 시력이 따라 준다고 해도 지금은 볼 수 없었다.

주변의 먼지와 나뭇잎이 그들의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화는 힐끔 옆을 보며 물었다.

“백선 언니,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혹시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세요?”

“나도 안 보이는구나. 휴…….”

백선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중 유일하게 편안한 모습으로 한빈과 위상호의 격돌을 보는 이가 있었다.

설화는 고개를 갸웃하며 청화를 바라봤다.

“청화야, 너는 긴장 안 돼?”

“아직까지는 괜찮으세요.”

“자, 잠시만, 지금 공자님이 괜찮다고 한 거야?”

“네, 아직은요.”

“그럼 너는 저 안쪽이 보인다는 거야?”

설화는 손을 들어 나뭇잎에 거대한 구를 만든 공간을 가리켰다.

지금 그곳은 만근교 위에 달덩이가 떠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달덩이처럼 보이는 원 밖으로는 계속 먼지와 나뭇잎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쪽이 보인다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 모습에 청화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제가 위상호라는 사람 때문에 바닥에 독기를 피워 놨거든요. 그런데 제가 뿌려 놓은 독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더라고요. 대신에 그 움직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공독…….”

설화는 말을 아꼈다.

그녀가 공독지체라는 것은 당문에서도 일부만 아는 비밀이었다.

설화는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청화는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독을 바닥에 뿌려 놨음이 분명했다.

전체 공간은 아니지만, 바닥만은 공독지체인 청화와 연결된 것이다.

그때 청화가 말을 이었다.

“이상해요, 언니.”

“뭐가 이상한데?”

“둘 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둘 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그럼 둘 다 혹시…….”

“아니요. 제자리에서 미세한 움직임만 있을 뿐이에요.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예요, 언니.”

“그럼 둘 다 지금은 멀쩡하다는 거지?”

“네, 맞아요. 저는 공자님이 이길 거라고 봐요.”

“그래, 그래야지.”

설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근교 위를 바라봤다.

한빈과 위상호가 있는 곳은 마치 태풍의눈과도 같았다, 둘의 검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는 이곳만큼은 잔잔했다.

한빈의 검은 위상호의 검과 비교하면 느렸다.

하지만 일목요연이 주는 능력 덕분에 한빈은 그의 공격을 예측할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번씩 요혈을 찔러 들어오는 위상호의 공격은 한빈은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었다.

조금씩 흘려보낸다는 이야기는 요혈만 겨우 피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제 한빈은 공력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긴 전투의 끝에 모든 내공이 바닥난 것이다.

그때였다.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상대 초식의 분석이 끝났습니다. 천라신선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천라신선보는 백 년의 공력이 필요합니다.]

순간 한빈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공력이 바닥을 보이는 상태.

본신의 내공도 바닥을 쳤고.

[실력편 상급(上級)]

[속(速) : 삼(三)]

[체(體) : 사(四)]

[력(力) : 삼(三)]

[공(功) : 일(一)]

[……]

실력편에 나와 있는 공력도 바닥이 난 상태였다.

백 년의 공력은 아무리 쥐어짜 내도 나올 수 없었다.

과연 이 상태에서 위상호를 제압할 수 있을까?

구걸십팔보 혹은 구룡십팔보를 통해 자리를 피할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지나면 경공술을 펼칠 수 있는 내공과 구결마저 바닥나기 때문이었다.

서걱.

위상호의 검이 한빈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스륵.

위상호의 검이 한빈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한빈이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마지막 남은 한 수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금의환향.’

상단전의 기운으로 용린검법의 구결과 본신의 내공을 구 할 회복시킬 수 있는 수법이었다.

순간 본신 진기의 내공 중 정확히 구 할이 회복되었다.

회복된 본신 내공은 오십 년이 넘었다.

한빈은 재빨리 실력편을 확인했다.

[공(功) : 칠십이(七十二)]

주판알을 굴리듯 계산은 정확했다.

한계인 팔십에서 일 할을 제외한 나머지 공력이 모두 회복된 것이다.

내공을 확인한 한빈은 즉시 상대의 무공을 펼쳤다.

‘천라신선보.’

순간 천라신선보의 구결이 한빈의 머릿속으로 몰아친다.

요결은 짧지만, 그 뒤에 따르는 깨달음은 적지 않았다.

위상호가 수십 년 동안 연구해 온 요결에 기초한 깨달음이니 적은 양일 수는 없었다.

노도처럼 밀려드는 천라신선보의 깨달음.

한빈은 이 깨달음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천라신선보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위상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자신은 제외하고서였다.

왜냐하면 한빈은 실시간으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그것은 실력편의 구결이 모두 구 할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복(復) : 칠십이(七十二)]

한빈은 슬쩍 한 발을 밀고 상대 쪽으로 들어갔다.

느낌상으로는 한발을 내디딘 것 같지 않았다.

발에 느낌 자체가 없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 한 걸음에 한빈의 속도가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빈의 기세가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기세가 없어졌다.

한빈의 검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한빈은 그것이 천라신선보의 극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챙, 챙.

한빈의 검이 위상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한빈이 다시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어찌나 가깝게 다가섰는지 위상호의 눈에 한빈의 얼굴이 비쳤다.

하지만 한빈의 검은 위상호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한빈은 한 걸음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이것은 물놀이하기 전 준비운동과도 같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물에 들어가면 혈맥이 굳고 심장이 멈출 수도 있었다.

급하게 펼쳤다가는 혈맥이 걸레가 된다는 것을 한빈을 알고 있었다.

한빈은 슬쩍 실력편을 바라봤다.

[복(復) : 칠십일(七十一)]

두 걸음을 다가서자 실력편에 변화가 나타났다.

한빈은 다시 한 걸음 다가섰다.

터벅.

한빈의 한 걸음에 공기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두 개의 검이 허공에서 얽히면서 이전보다 더 큰 범위의 구체를 만들어 냈다.

주변을 휘도는 먼지와 나뭇잎이 이제는 태풍을 만난 것처럼 이리저리 소용돌이쳤다.

그때였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복(復) : 칠십일(七十)]

[……]

[복(復) : 육십구(六十九)]

실력편의 구결이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두 걸음과 세 걸음의 차이는 천양지차였다.

그렇다면 네 걸음은?

한빈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상대의 한계도 세 걸음일 것이다.

그때였다.

한빈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천라신선보가 단순한 보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했다.

천라신선보는 보법이 아니라 내공심법에 속했다.

내공을 빨리 돌려 신체의 속도를 높인다는 것이 이 무공의 이론이었다.

천라신선보를 쓰면서 거기에 딱 맞는 신법을 쓴다면?

아마도 천라신선보의 효과가 배가될 것이었다.

한빈의 머릿속에는 거기에 딱 맞는 무공이 하나 있었다.

그들의 대결을 바라보는 아미백선은 자신도 모르게 구절편을 들고 내공을 피워 냈다.

한빈과 위상호를 감싼 구체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둘이 만들어 낸 구체 사이로 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슉.

그들이 만들어 낸 예기는 형태가 있는 암기처럼 주변에 날아들고 있었다.

아미백선은 구절편을 회전시키며 설화와 청화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만근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릉.

이상한 굉음에 뒤쪽에 있던 설화가 말했다.

“일단 피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일단 피하는 게 맞아요, 언니.”

그때 주먹을 불끈 쥔 종남흑선이 다가왔다.

종남흑선은 만근교 위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만근교는 무너지지 않는다. 몇백 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다리가 무인들의 격돌로 무너진다는 것은 있을 수…….”

종남흑선은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들린 굉음 때문이었다.

꾸아앙!

그 소리와 함께 다리가 출렁였다.

종남흑선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혹시 진천뢰라도 터진 것인가?”

누구에게 던진 말은 아니었다.

진천뢰가 터졌다면 저곳에서 살아날 수 있는 무인은 없기 때문이었다.

벽력탄도 아니고 진천뢰라면, 이것은 무인 간의 대결이 아닌 전쟁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누군가 답했다.

“진천뢰는 없습니다.”

“누구…….”

종남흑선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서 있는 자는 다름 아닌 금의위의 강유찬이었다.

위상호에게 당한 강유찬은 조금 전 정신을 차렸다.

그는 성안에 남은 금의위 대원에게 위상호의 잔당을 처리할 것을 지시하고는 멀리 떨어진 다른 문을 통해 나왔다.

덕분에 만근교를 지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성문을 통해서 나왔다면 이쪽으로 지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둘이 저렇게 검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말이다.

강유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곳에는 어떤 폭약도 없습니다. 벽력탄도 당연히 없습니다. 저 굉음은 격돌의 증거일 뿐입니다.”

“대체 어떤 무공이…….”

“저도 궁금하군요.”

강유찬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뒤쪽에서는 금의위들이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의를 포위하는 동시에 이 승부가 끝나면 위상호를 체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시 굉음이 울렸다.

꾸아앙.

그 소리는 그 뒤로 몇 번이 더 울렸다.

정확히 일곱 번의 굉음이 울렸을 때였다.

두 무인이 만들어 낸 기파로 생긴 구체가 없어졌다.

마치 본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종남흑선은 재빨리 그들이 격돌하던 장소로 뛰어갔다.

타닥.

몇 걸음 달리던 종남흑선이 걸음을 멈췄다.

그 뒤를 따라가던 설화가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래요? 아저씨.”

“없어졌다.”

“없어졌으니까 우리가 가는 거잖아요.”

“구체가 아니라, 다리가 없어졌다.”

종남흑선이 가리킨 곳에는 만근교의 일부가 사라진 상태였다.

그들은 재빨리 끊어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역시 종남흑선이었다.

그는 바닥을 가리켰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그리 깊지 않았다.

만근교 아래 얕은 강물 위에는 다리의 일부분이 박혀 있었다.

종남흑선은 안력을 돋궈 아래쪽을 살폈다.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무인 하나가 복부에 검이 박힌 채 대자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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