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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48화 (448/621)

448. 만근교 위의 고수들 (4)

말아 쥔 아미백선의 주먹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나왔다.

땀방울의 색이 붉은 것이, 꼭 핏방울이 섞인 것 같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상대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한빈의 모습은 무모해 보였다.

마치 수십 마리의 늑대 무리를 향해 달려드는 사냥개 같았다.

은빛 이를 번뜩이는 수십 개의 검날에도 한빈은 오직 한 곳을 향해 검을 뻗었다.

물론 그것은 구결을 향해서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이것을 알 리 없었다.

멀리서 그들의 격돌을 바라보는 모든 이가 이를 악물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의 종남흑선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싸움에 자신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위상호의 검날에 피륙이 찢기면서도 웃고 있는 한빈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종남흑선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이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여유를 보임으로 다른 이가 이 승부에 끼어들어 다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종남흑선은 이를 깨물었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 공자, 당신은 대체…….”

하지만 한빈은 모두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상호의 검을 받아 내고 있었다.

이제 회복을 나타내는 복(復)의 속성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덕분에 한빈의 몰골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무복 위로 새어 나온 피만 봐도 끔찍했다.

붉은 토사가 한빈의 몸 전체를 뒤덮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 상태라면 한빈은 벌써 죽었어야 했다.

한빈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 모습에 위상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본래는 안 보여 주려 했는데, 마지막 가는 길이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오의를 보여 주겠네.”

말을 마친 위상호는 단전의 진기를 가슴으로 모았다.

그가 마지막 일 초를 펼치려 하는 이유는 방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를 공격할 때마다 돌아오는 반탄력 때문이었다.

분명히 상대를 베고 있는데 자신의 몸에 묘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위상호는 그것이 상대의 사술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사파의 정신적인 지주인 적룡대협이었다.

대협이란 칭호가 붙었지만, 사파는 사파일 뿐.

그렇다면 위상호가 모르는 사파의 비기를 쓰는 것은 당연했다.

사파는 정파와 달리 승리를 위해서라면 비겁한 수도 마다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위상호가 느껴지는 이질적인 고통은 바로 자승자박 때문이었다.

한빈이 펼친 자승자박은 이화접목의 수법에 해당한다.

본래는 자승자박의 상위 초식인 역지사지를 쓰려 했다.

하지만 역지사지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필요 공력이 무려 오십 년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더해 역지사지는 단발성 초식이었다.

그에 비교해 자승자박은 상대 공격의 이 할 정도를 일정 시간 동안 돌려줄 수 있다.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쌓인 이 할 때문에 위상호도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상호가 이를 알아챌 수는 없었다.

오의를 보여 주겠다는 위상호가 한빈을 노려봤다.

위상호의 단전에서 거대한 진기가 느껴졌다.

한빈은 지금은 위험한 때라 생각했다.

지금 그가 펼치는 초식에 적중된다면 용린검법의 초식으로도 회복할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한빈이 의도한 것이었다, 이렇게 위태롭게 보이지 않는다면 상대가 방심할까?

정답을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에 방점이 찍힌다.

한빈은 나름대로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를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빈이 보여 준 상황에 상대는 숨겨 둔 패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제 한빈이 그에 상응하는 패를 보여 줄 때였다.

한빈은 재빨리 용린검법의 초식을 떠올렸다.

‘기사회생.’

순간 몸 전체에서 용린의 기운이 끓어올랐다.

용린의 기운이 혈맥을 타고 노도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기사회생은 시전자의 상처 및 체력을 구 할 정도 회복시키는 효용이 있었다.

갈라졌던 피부는 이내 아물기 시작했고 끊어졌던 힘줄마저도 이어졌다.

아쉬운 것은 기사회생의 효용이 구 할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속도만큼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한빈은 재빨리 금선탈각의 초식을 펼쳤다.

순간 한빈이 허물을 벗듯 위상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사사-삭.

한빈은 순식간에 바로 위상호의 옆에서 나타났다.

한빈은 재빨리 매화삼경으로 위상호의 옆구리를 찔렀다.

전광석화를 극성까지 펼친 덕분에 매화삼경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이번 한 수가 위상호의 등에 적중했다.

푹!

살갗을 뚫는 소리와 함께 위상호의 가슴에 모이던 진기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 순간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위상호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위상호의 검이 검은빛을 띠었다.

마치 그의 검은 감정을 담아내는 듯 검은 기운을 일렁이고 있었다.

검은 기운을 담은 검이 그대로 매화삼경을 내리쳤다.

위상호의 검이 순식간에 매화삼경을 갈랐다.

서걱.

한빈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위상호를 바라봤다.

사실 지금의 일격은 한빈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이 박혔는데 그대로 그 검을 잘라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박힌 상대의 검을 잘라 내면 본인의 몸에도 충격이 오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 수는 위상호가 금강불괴의 경지에 접근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성벽 위에서는 누군가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서재오였다.

지금 반 토막 난 매화삼경은 서재오의 애검이었다.

한빈은 입맛을 다셨다.

“쩝, 미안하네.”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봤다.

[천급 구결 요(瞭)를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 일(一), 요(瞭)]

이제 새로운 초식을 만들기 위해 남은 것은 구결 두 개였다.

한빈은 기분 좋게 웃었다.

천급 초식이라?

새로운 깨달음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때였다.

위상호의 몸에서 진기가 아른거렸다.

그것은 호신강기였다.

그와 동시에 몸에 박혔던 검신이 튕겨 나온다.

스스슥.

팡.

튕겨 나온 검신이 그대로 한빈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빈은 재빨리 매화삼경의 검집을 앞으로 내밀었다.

스윽.

검집에 검신이 빨려 들어갔다.

부러진 검신을 다시 검집 속으로 회수하는 신묘한 수법에 위상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재주가 좋구나.”

“칭찬으로 듣지.”

한빈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튕기는 검신을 받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빈이 지금 펼친 것은 백발백중의 수법이었다.

부러진 검신을 향해 검집을 쏘아 냈다고 보면 되었다.

용린검법의 초식을 운용하는 한빈의 수법은 그만큼 발전해 있었다.

한빈은 재빨리 매화삼경을 검집에 넣었다.

그러고는 뒤쪽으로 던졌다.

“설화야! 이건 매화검협께 전달하거라. 그리고 잘 썼다고 전해 주고.”

“네.”

설화가 고개를 끄덕일 때, 한빈은 벌써 위상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파바박.

전광석화와 보법의 절묘한 조화가 만근교 위를 수놓았다.

위상호는 아무렇지 않게 검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아직 검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상태.

한빈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순간 한빈이 있던 자리에 내리꽂히는 검기.

쿠아앙.

검기가 만들어 낸 굉음과 섬광이 천둥처럼 만근교 위에 떨어졌다.

한빈은 방향을 바꾸어 미리 준비한 월아를 뽑았다.

스릉.

한빈이 월아를 빼는 모습은 다소 이상했다.

검을 빼며 자신의 손바닥을 월아의 검날에 갖다 댄 것이다.

월아의 검날이 한빈의 피를 머금었다.

하지만 이것을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월아가 머금은 한빈의 피는 바로 검신에 흡수되었다.

한빈의 피 때문일까.

월아는 붉은색 기운을 띠었다.

발검과 동시에 한빈은 위상호의 허벅지를 찔러 들어갔다.

위상호는 한빈의 경로를 예측한 듯 무심한 눈길로 검을 내리그었다.

휙.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이지만, 그의 검은 월아가 들어오는 자리를 정확히 막았다.

챙.

막은 것뿐이 아니었다.

그의 검은 월아를 반 토막 내었다.

댕강.

월아가 반 토막이 난 것은 당연했다.

암제와의 전투에서 이미 월아는 상해 있었다.

임시방편으로 고치긴 했으나 위상호의 일격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한빈은 반 토막 난 월아를 그대로 찔러 넣었다.

그 모습에 위상호가 씩 웃었다.

상대가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 생각했다.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는 백지장 하나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법이었다.

그런데 반 토막 난 검으로 달려들다니!

저것은 호롱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위상호는 귀찮다는 듯 자신의 검을 횡으로 그었다.

획.

순간 위상호는 검을 멈추고 잽싸게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봤다.

허벅지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위상호는 이해가 안 되었다.

반 토막 난 검으로 어떻게 자신을 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상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심검?”

이것은 당연한 의심이었다.

다섯 걸음 안쪽은 모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간격에서 벌어지는 것은 눈을 감고서도 다 알아챌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이 바로 그의 오의였다.

내공을 모아서 주변으로 퍼뜨린다.

거기에 퍼뜨린 내공의 밀도를 유지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의 절대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뜻이 무엇이던가?

위상호는 자신의 간격 안에 있는 모든 움직임을 굽어볼 수 있었다.

즉, 다섯 걸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위상호는 이미 그의 오의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상대의 공격을 파악하지 못했다.

위상호에게 검을 찔러 넣은 한빈은 재빨리 위상호의 절대 공간인 다섯 걸음에서 벗어났다.

한빈도 주변에 퍼져 있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월아를 들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반 토막 난 월아가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대신 월아의 외형이 달라져 있었다.

검신의 앞부분은 붉은빛의 기운을 띠고 있었다.

한빈이 지금 들고 있는 월아는 반은 붉은색이고 반은 은빛 광채를 띠고 있었다.

과연 어찌 된 일일까?

상대가 월아가 두 동강 났다고 생각할 때, 반 토막 난 월아는 용린검으로 다시 태어났다.

혈맥 속에 잠들어 있던 용혈이 활성화되어 월아의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

그런 이유로 월아의 반은 용린검의 기운을 띠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용린검의 반쪽을 위상호가 눈치챌 수 있었을까?

그것은 불가능했다.

놀란 위상호의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심검은 무슨 심검? 네 눈이 삔 게지.”

“이놈이!”

위상호는 눈을 파르르 떨었다.

격장지계라 생각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위상호는 전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난감해하고 있었다.

심검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었다.

상대가 뱉은 말이 자신을 덫으로 유인하는 미끼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이것은 위상호의 착각이었다.

그 착각이 위상호를 갈등하게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암제마저도 자신의 한 수 아래라 생각했는데 상대의 검이 보이지 않는다면?

대체 상대의 경지는?

다섯 걸음 안쪽의 공간에서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심검(心劍)뿐이었다.

심검에 대항할 수 있는 무공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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