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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46화 (446/621)

446. 만근교 위의 고수들 (2)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같은 편입니다.”

한빈의 말에 종남흑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소녀를 바라봤다.

“이 둘이…….”

종남흑선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소녀 중 한 명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이 아이는…….”

“장사 중 최고는 사람을 남기는 장사지요.”

말을 마친 한빈이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 종남흑선도 마주 웃었다.

그의 입가에서는 비릿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제법 깊은 내상을 입은 듯 보였지만, 종남흑선의 웃음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종남흑선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다름 아닌 청화였다.

청화는 천독의 밑에 있던 아이였다.

외모에서 풍기는 기운이 달라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하지만 얼굴의 윤곽이 어딘가 익숙해서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 지금 옆에 있는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를 들어 보니 천독의 아래에 있던 독인이 맞았다.

그 독인이 하북팽가의 사 공자 아래에 있다니?

그것도 완전히 변한 외모로 말이다.

종남흑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남흑선은 한빈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아미백선도 모두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거기에 천독의 수하에 있던 아이까지 저렇게 아래에 두고 있다는 것은…….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말 그대로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설화가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날리신 것 아닌가요?”

설화가 가리킨 곳은 난장판이 된 돌다리와 성문이었다.

설화가 말한 의미는 위씨세가를 말함이었다.

위씨세가는 이번 전투와는 관계없이 한빈의 계략으로 멸문의 위기를 앞두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 편은 남기고…… 적은 날려야지.”

“음, 맞는 말씀이네요. 그럼 저희도…….”

설화는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반대편에서 기세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기세를 피워 대는 위상호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위상호는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치를 떠는 모습이었다.

위상호는 이제 가문을 버려야 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성벽 위에서 날아오른 전서구 때문이었다.

각 문파와 북경으로 향하는 전서구를 막을 재간은 없었다.

그는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자를 찾아야 했다.

혹시 하북팽가일까?

위상호는 그쪽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북팽가는 자신이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 몰아넣은 자가 누굴까를 고민하던 중에 적룡대협이란 작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버릴 건 버리고 없앨 것은 없애야 했다.

버릴 것은 가문이요.

없앨 것은 적룡이었다.

그다음 미리 마련해 놓은 계획으로 넘어가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저들이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자, 자신도 모르게 기세를 피워 낸 것이다.

사실, 위상호에게도 시간은 필요했다.

위상호는 힐끔 성벽을 바라봤다.

성벽에는 위씨세가의 깃발이 하나 꽂혀 있었다.

그것은 동생 위상군이 꽂아 놓은 것이 분명했다.

위상호는 동생 위상군에게 위지천과 위지약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은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깃발은 그 지시에 관한 결과였다.

위상호는 천천히 한빈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적룡과 승부를 봐야 할 때였다.

그의 목을 벤 후 이곳을 떠날 것이었다.

그때였다.

위상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의 태도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보통 무림인 간의 대결이라면 자신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상대도 한 발 다가와야 한다.

한마디로 기세 싸움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한 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위상호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빨리 검을 뽑아라!”

“멈추고 내 말을 들어 보시오.”

“싸움을 입으로 하는군.”

“거, 말이 과하오. 검을 맞대기 전에 물어볼 것이 있어 그러오.”

“…….”

“당신 정도 되면 무위로도 천하 십대세가의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왜 숨어 지낸 것이오?”

“목이 떨어지기 전에 이유를 알고 싶다는 말인가? 그럼 말해 주지. 원래 잠룡은 눈앞에 대해가 펼쳐지기 전까지는 연못에서 숨을 죽이는 법이지.”

“오호, 그럼 자네가 잠룡이라는 거군. 세상은 나를 적룡이라 부르니 두 마리의 용이 이곳에서 싸우는 셈이 되겠군. 그런데 어쩌나? 이곳에 영물은 나뿐만이 아닌데…….”

말끝을 흐린 한빈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는 묘한 기운을 품고 멀리 퍼져 나갔다.

동시에 멀리서 폭죽이 터졌다.

팡. 팡.

대낮인데도 하늘 위에서 터지는 폭죽은 선명했다.

붉은색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 모습에 암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무슨 짓이냐?”

“지금 위씨 가문의 식솔들이 탈출했지?”

“…….”

“추격 명령을 내린 거야. 재미있는 것은 네놈의 가문을 쫓을 인물들이 정파가 아니라는 점이지…….”

“그게 무슨 말이더냐?”

“피도 눈물도 없다고 알려진 강남 사도련의 독고진이 쫓고 있으니 얼마 안 가서 붙잡히겠지.”

“…….”

“내가 왜 놔줬다고 생각하지? 하북성을 탈출하는 토끼 셋을 못 봤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들이 누굴 만나는지 궁금했어. 과연 누굴 만날까? 그리고 북쪽에는 누가 있을까?”

“네놈을 찢어발기고 사파 놈들을 쫓겠다.”

위상호의 일그러진 표정에 한빈은 씩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다시 위상호의 표정이 더 구겨진다.

계속되는 상호작용 속에 위상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물론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빈이 의도한 것이었다.

이것은 사천당가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당시 암제를 상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일까?

바로 암제의 성격이었다.

암제는 잠적한 후 십대세가를 은밀하게 공격하겠다고 협박했었다.

중요한 것은 암제의 경신술을 따라잡을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불리하면 피한 후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암제의 계획은 누가 봐도 위협적이었다.

암제가 한빈을 만만하게 보고 이성을 잃지 않았다면 말이다.

물론 한빈도 암제를 도발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써야 했다.

암제를 도발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던가.

이번만은 그 과오를 범하지 않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위상호의 분노가 모두 한 명에게 쏠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도망간다고 해도 그는 딱 한 명만을 노릴 것이었다.

그것도 적룡대협이란 가공의 인물을…….

한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든지. 그런데 잠시만 기다리게.”

“또 무슨 수를 부리려 하는가?”

위상호는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쿵.

그때 한빈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 모습에 위상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암기까지 쓰는군.”

“잠시만, 기다리게.”

말을 마친 한빈은 힐끔 옆을 바라봤다.

옆에는 종남흑선이 결전을 위해 내상을 다스리고 있었다.

한빈이 품에서 꺼낸 것은 암기가 아니라 환약이었다.

한빈이 흑선에게 환약을 건넸다.

“이걸 드시지요.”

“이게…….”

종남흑선은 환약을 받아 들고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편이긴 해도 종남흑선의 눈에 한빈은 사파보다도 더 사파다운 정파인이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독은 안 섞었으니 안심하시지요. 내상이 다 치유되면 그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흑선.”

“알겠소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

한빈은 어깨와 목을 푸는 시늉을 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동시에 한빈의 옆에 있던 설화와 청화가 한빈의 뒤를 따른다.

거기에 아미백선은 훌쩍 만근교의 난간으로 뛰어올랐다.

그 모습에 위상호가 물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내가 일대일이라고는 안 했잖아.”

“대협의 칭호를 듣는 자가 옹졸하군. 하긴 하나나 다섯이나 내겐 똑같다.”

“강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다구리엔 장사 없다고…….”

한빈은 말을 맺지 않았다.

성벽 위에서 검 한 자루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기 때문이다.

휘리릭.

검은 정확하게 한빈을 향해 날아왔다.

한빈은 그 검을 아무렇지 않게 잡았다.

탁.

동시에 성벽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룡대협, 제 검을 쓰시오!”

검은 던진 자는 서재오였다.

서재오는 한빈이 지금 허리에 차고 있는 월아의 검신이 온전치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검을 던진 것이다.

한빈은 그의 마음을 받기로 했다.

한빈이 검을 빼려는 순간, 다시 성벽에서 서재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검은 매화삼경이라고 하오. 삼경이라는 이름은…….”

서재오는 자신의 검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매화검협이라는 별호로 칭송받고 있기는 하지만, 본래 지니고 있던 공명심은 못 버린 듯했다.

한빈은 그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매화삼경을 뽑아 들었다.

순간 햇빛을 받은 매화삼경의 검신이 번뜩하고 예기를 빛냈다.

동시에 한빈은 위상호를 향해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일촉즉발.’

순간 매화삼경의 앞에 한빈의 기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화살촉과도 같았다.

상대의 공격에 위상호는 낮게 읊조렸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방법은 간단하지…….”

그는 재빨리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동시에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만근교 위에 울려 퍼졌다.

챙.

챙.

그 소리 뒤에, 한빈은 위상호를 지나쳐 만근교의 뒤쪽에 자리했다.

한빈은 다시 검을 쥐고 위상호를 바라봤다.

“고맙소.”

“고맙기는, 뭘 그것 가지고 그러나?”

위상호가 검을 털어 냈다.

휙.

그 모습에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뼈를 주고 살을 취했구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지. 자네도 만만치 않네.”

위상호는 자신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털었다.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 모습에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울려 퍼진 병장기 소리가 이해가 안 되었다.

설화가 보기에는 한빈은 위상호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귀에 들린 소리는 두 번이었다.

그 말은 두 번의 합을 눈으로 좇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설화보다 더 놀란 이가 있었다.

바로 아미백선 정소군이었다.

만근교 난간 위에 서 있던 아미백선은 눈을 크게 떴다.

병장기 울려 퍼지는 소리는 두 번이었지만, 둘은 정확히 다섯 수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한빈이 위상호의 어깨를 찔러 들어갔다.

위상호는 그것을 옆으로 피하면서 한빈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찍어 누른 것이다.

그때 첫 번째 소리가 들린 것이다.

검을 튕겨 낸 위상호는 바로 한빈의 목을 찔렀다.

하지만 한빈도 상대의 검을 튕겨 냈다.

둘은 그 뒤로 세 번의 합을 주고받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다.

문제는 아미백선도 그 뒤에 이루어진 세 번의 합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적룡대협과 한빈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미백선은 한빈이 진짜 하북팽가의 사 공자인지 의심이 갔다.

자신도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라니?

대체 저게 어떻게 하북팽가의 무공이란 말인가?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보던 아미백선의 눈이 커졌다.

한빈의 어깨에서 가느다란 선혈이 번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빈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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