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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45화 (445/621)

445. 만근교 위의 고수들(1)

금의위 무사들은 불길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언제 나타났는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금의 발소리가 아니었다면, 아마 아무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걸음걸이는 평범했다.

그들은 본래 그 자리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 금의위 무사들의 옆을 지나갔다.

그런 모습이 금의위 무사들을 긴장하게 했다.

그런데 위상호가 남녀를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금의위 무사들의 눈빛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상대 못 할 적이 나타나면 피하라는 강유찬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한 남녀는 금의위 무사의 시야를 떠나 한빈과 위상호가 마주 보고 있는 돌다리 위에 점점 가까워졌다.

정체불명의 남녀가 멀어지자 금의위 무사 하나가 동료를 바라봤다.

“혹시 누군지 아는가?”

“나는 처음 보네만……. 자네가 더 잘 알 것 아닌가? 자네는 그래도 강호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나도 저런 고수는 처음 본다네. 아예 들어 본 적도 없네.”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봐도 저들과 비슷한 무림 고수는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걸음걸이조차 평범한 그들은 기세도 피워 내지 않았다.

다만 정숙한 움직임과 여유롭게 전장을 걷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고수라 짐작할 뿐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여자는 티끌 하나 없는 백색 무복을 입고 있었고.

남자는 흑색 무복을 입고 있었다.

눈처럼 흰 백색의 무복과 모든 빛을 집어 삼킬 듯한 흑색의 무복은 묘하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성문 앞 돌다리에 다다르자 부드럽게 뛰어올랐다.

휘릭.

동시에 뛰어오른 남녀의 모습은 마치 두 마리의 학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위상호의 곁에 섰다.

신묘한 그들의 움직임과 복장 때문에 여인은 마치 선녀 같았으며 사내는 저승사자같이 보였다.

여인과 사내는 조용히 위상호를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위상호였다.

“무사했군, 자네.”

“당신이 맞죠?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군요.”

여인이 답하자 위상호가 말을 이었다.

“연락이 끊겨 걱정 많았네.”

“걱정되면 찾아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날 찾아온 것을 보면 사정을 알지 않나?”

“무슨 사정이요?”

“자네도 알 것 아닌가? 우리 흑룡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네.”

“저는 몰라요. 반년 전 겨우 목숨을 건지고 몸을 회복한 게 한 달 전이에요.”

“날 찾은 것을 보면…….”

“네, 사천당가에서 경천동지할 일을 벌이셨더군요.”

“그건 내가 아니네.”

“어쨌든요. 거기서 남겨진 단서를 찾다 보니 지선이 당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네요.”

“흠.”

“평소 같으면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텐데…….”

“내가 흔적을 남긴 이유는 남은 동지들을 불러들이기 위함이었지.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는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금제가 발동되기 전까지는 지금 딱 넉 달 남았어요. 흑룡단주는 어떻게 됐죠?”

“그는 죽었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럼 우리 금제는 누가 풀어요!”

“방법이 있네.”

“흑룡단주, 아니 암제 말고도 금제를 풀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요?”

“걱정하지 말게.”

“혹시 이용만 하고…….”

“아니, 나를 믿게. 나도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암제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었네.”

“그 얘길 여기서 해도 되는 건가요?”

“상관없네. 우리는 여기에 있는 자들을 모두 없애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되네.”

“북쪽이요?”

“이들을 다 해치운 다음 계획을 알려 주겠네.”

위상호는 손을 들어 반대 방향에 있는 한빈을 가리켰다.

“그럼 우리가 맡을 자가…….”

“아니네. 자네 둘은 성문 안쪽의 금의위와 동창의 병사들을 맡게.”

위상호가 뒤를 가리키자 여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흠.”

그때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검은 무복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얼마나 찾아 헤맸는데, 계획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만 가겠소.”

“금제가 발동된다면 죽기보다 더 고통스러울 텐데, 괜찮겠나?”

“흠…….”

침음을 삼킨 검은 무복의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고민했다.

고민도 잠시, 그는 할 수 없다는 듯 위상호를 바라봤다.

“할 수 없군요. 뭘 원합니까?”

“뒤쪽을 부탁하네.”

위상호는 둘에게 시선을 거두고 앞을 바라봤다.

한빈과 위상호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을 때였다.

금의위 무사들은 이제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흑백 복장의 남녀가 성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상황을 전해야 했고.

적룡대협과 위상호의 승부가 나기 전에 이 자리를 떠야 했다.

그들은 서로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임무를 분담했다.

금의위 무사들이 막 움직이려 할 때였다.

갑자기 위상호의 주변에서 굉음이 울려 왔다.

팡!

동시에 피어오르는 회색 먼지.

그것은 평범한 먼지가 아니었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모습은 마치 사천당가의 만천화우가 하늘을 덮는 것만 같았다.

피슝.

그 범위는 생각보다 넓어 한빈뿐 아니라 금의위의 무사들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금의위 무사들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등 위로 돌가루가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투두둑.

툭.

소리가 잦아들자 금의위 무사들은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살폈다.

순간 그들은 입을 벌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먼지가 입 안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돌다리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백색 무복의 여인과 흑색 무복의 사내가 위상호에게 손을 쓴 것이다.

백색 무복의 여인은 곱게 접은 은색 구절편으로 위상호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위상호는 백색 무복의 여인이 뻗은 구절편을 검으로 가볍게 막은 상태.

그 반대쪽 검은색 무복의 사내는 먹빛이 감도는 검으로 위상호의 허리를 찔렀다.

그 공격 역시 위상호가 왼손에 든 검집으로 막았다.

먼지가 걷히고 난 뒤 보이는 것은 둘의 공격을 위상호가 막은 채 서로 석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얽힌 그들의 주변을 중심으로 사람의 무릎 높이만큼 바닥이 깊게 파여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사방으로 흩어진 돌가루의 정체였다.

금의위 무사 중 하나가 움푹 파인 돌다리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걸 보게.”

“대체 어떻게 해야 만근교가 저렇게 되지?”

“그러게 말일세…….”

황궁의 무공 고수들이 모여 있다는 금의위의 무사들마저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렇지 않게 공격을 주고받은 것 같지만, 그들이 나눈 내공의 깊이는 그들이 서 있는 돌다리의 역사만큼이나 아득했다.

다른 돌다리였다면 단번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북성의 돌다리는 튼튼한 만큼 유서가 깊었다.

오백 년 전 황제가 서쪽을 정벌하고 하북성을 지날 때 군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그 후 다시 세워진 것이 마로 이 돌다리.

그래서 이 돌다리를 만근교(萬斤橋)라 부른다.

만근교라는 별칭대로 이 돌다리는 오백 년 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흠집이 난 적도 없었다.

금의위 무사들은 지금 상황도 잊고 움푹 파인 만근교를 보며 웅성대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저 둘이 위씨세가 편이 아니었다는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한빈이 외쳤다.

“두 분은 피하시지요!”

그 외침에 위상호와 내공을 겨루고 있던 남녀가 재빨리 물러났다.

그들은 방아깨비처럼 튀어서 한빈의 옆에 섰다.

한빈의 옆에 선 백색 무복의 여인이 숨을 한번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군요. 원하시는 정보는 얻었죠?”

“고맙소, 백선.”

한빈은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다름 아닌 흑룡단의 팔선 중 하나인 아미백선 정소군이었다.

위상호의 격돌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가렸던 면사는 날아가고 없었다.

하얀 무복과 가지런한 눈썹, 누가 봐도 단아한 인상.

그 외모에 어울리는 붉은 입술.

한빈과 마주했던 처음 그대로였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입술이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붉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미백선을 옥죄던 금제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검은 무복의 사내가 기침을 쿨럭하고 기침을 토해 낸다.

동시에 왈칵하고 그의 입술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사내는 재빨리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로 종남흑선이었다.

한빈이 그들과 맺은 인연은 바로 장운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만 해도 한빈과 그들은 서로의 목을 노리던 적이었다.

하지만 장운현에서 천독이 죽은 후 한빈이 그들을 옥죄고 있던 금제를 풀어 줌으로 그들은 자유를 찾게 되었다.

그들은 조용히 숨어 지내며 자신을 납치해서 병기로 키운 흑룡단을 조사하며 정보를 틈틈이 한빈에게 보내왔었다.

쿨럭.

종남흑선이 다시 선혈을 토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흑선도 수고했습니다. 일단 옆에서 쉬시지요.”

“……정보를 캤으니 이만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흑룡단주의 아래가 아닙니다.”

그가 말한 흑룡단주는 암제를 말함이었다.

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리를 피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자를 누가 막습니까?”

한빈은 검지를 들어 위상호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종남흑선이 눈시울을 붉혔다.

물론 한빈이 위상호를 막으려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한빈이 바라보는 쪽에는 황금색 점이 일렁이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천급 구결인가?

천급 구결을 취한다면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빈은 요즘 들어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한빈은 ‘강함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화두를 자신에게 던져 보기도 했고.

그 강함의 끝에 거의 다다랐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태극검제의 태극칠성보 그리고 지금 위상호의 무위를 보면서, 강함의 끝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뒤통수 맞기에 딱 좋은 곳이 바로 강호라는 세상이었다.

생각을 마친 한빈은 아미백선의 머리 위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고는 재빨리 용린검법의 초식 중 하나를 떠올렸다.

‘근묵자흑.’

근묵자흑은 용린검법의 금제법 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팔선의 일원인 아미백선과 종남흑선을 믿을 수 없어 걸어 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위상호와의 일전을 앞두고는 풀어 줄 필요가 있었다.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무인은, 눈 깜빡할 사이에도 운명이 바뀐다.

한빈은 손을 떼고 아미백선에게 말했다.

“이제는 진짜 자유입니다. 은거하든지 아미로 돌아가든지…….”

“아니, 남겠어요. 저자를 처단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대협.”

“허허.”

한빈이 허탈하게 웃자 옆에 있던 종남흑선은 자신의 검을 버렸다.

툭.

검을 아무렇지 않게 버린 종남흑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종남흑선은 검보다 권장법에 능숙한 자였다.

그가 검을 던진 것은 본격적으로 싸움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흰색 무복의 두 소녀가 나타났다.

기척을 느낀 종남흑선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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