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42화 (442/621)
  • 442. 사람을 남기는 장사 (7)

    위상호의 말에 금의위에 밀려 한곳에 모여 있던 철혈검대 무사들이 검을 뽑았다.

    스르릉.

    스르릉.

    마치 칠현금을 타는 듯한 소리가 성문을 중심으로 울려 퍼졌다.

    그 뒤 이어진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챙. 챙.

    금의위와 철혈검대의 격돌이 이어진 것이다.

    강유찬도 재빨리 검을 뽑았다.

    스릉.

    강유찬은 금의위의 수장이기 전에, 화산파의 매화검수이기도 했다.

    화산파가 아닌 황궁에 몸을 맡겼지만, 무인 간의 대결에 자신도 모르게 피가 끓어올랐다.

    강유찬이 검을 뽑자 위상호가 말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

    “위 가주께서 잘 보셨소이다. 제 핏속에는 아직 매화의 향기가 남아 있습니다.”

    “인정하오. 그 때문인지 그대의 검에서 매화향이 나는 듯하구려. 내 오늘 매화 가지 하나를 꺾어 보겠네.”

    말을 마친 위상호가 검을 뻗었다.

    위상호와 강유찬의 간격은 다섯 걸음.

    강유찬은 진기를 보내 매화보를 밟을 준비를 했다.

    매화보의 특징은 화려함.

    꽃잎이 떨어지는 데 규칙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것을 화려함으로 느낀다.

    눈이 부실 정도로 현란한 화산의 보법.

    하지만 화산의 기본 무학이라 불리는 매화보의 속성은 그것이 아니었다.

    매화보는 불확실성을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생사결을 펼치는 무인의 눈은 어디를 볼까?

    누군가는 검 끝을 봐야 한다고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은 상대의 눈을 본다.

    여기까지가 일류의 이야기였다.

    절정의 고수부터는 상대의 검 끝도 상대의 시선도 아닌, 상대의 발을 본다.

    검이나 시선은 속여도 나아가려는 방향까지 속이지 못한다.

    사실 이것도 절정의 경지까지의 이야기였다.

    그 윗줄의 경지에서는 발끝의 움직임도 의미가 없어진다.

    지금 강유찬의 매화보처럼 상대에게 조금의 예측도 허용하지 않으니까.

    사사-삭.

    강유찬이 미끄러지듯 보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검이 위상호의 목을 향하는 듯하다 살짝 비틀린다.

    순간 멍하니 있던 서 태감이 탄성을 질렀다.

    “허허, 강 대인이 우리 편이라는 것이 다행이군.”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위씨세가라는 패를 버리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위상호는 적이었다.

    하지만 바로 후회했었다.

    위상호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금의위의 수장인 강유찬이 그보다 더 높은 실력의 무위를 펼치자 내심 안심이 되었다.

    위상호는 변변치 않은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목을 내놓고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무기력하게 검 자루만 움켜쥐고 있었다.

    현란한 화산의 무공 앞에 맥을 못 추는 것이 분명했다.

    강유찬의 검은 위상호의 목 쪽을 향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하체를 그으려 했다.

    서 태감은 화려한 화산의 검술을 보며 입을 벌렸다.

    그는 이제 승부가 곧 끝날 것이라 확신했다.

    놀람도 잠시, 서 태감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유찬의 공격이 위상호의 허벅지에 적중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강유찬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타다닥.

    미끄러지듯 다섯 걸음 밖으로 빠져나가는 강유찬은 검을 쥔 자신의 오른팔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서 태감은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호위가 재빨리 서 태감의 앞을 막았다.

    “조심하십시오, 대인!”

    그 말과 동시에 호위의 검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팅.

    이것은 마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서 태감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느냐?”

    “일단 뒤로 피하시죠.”

    “…….”

    서 태감은 호위의 손에 이끌려 대결이 펼쳐지는 장소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서 태감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다.

    바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데 뒤로 빠진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서 태감은 무공이나 정치나 싸움에서는 똑같다고 봤다.

    빈틈을 노려 공격하고 상대가 약해지면 바로 숨통을 끊어 놓는다.

    무인 간의 대결이나 황궁에서의 암투나 모두 상대방의 목숨을 끊어야 끝나는 법.

    그런데 왜 상대를 봐준다는 말인가?

    거기에 자신의 호위는 또 무슨 말을 한다는 말인가?

    서 태감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그의 호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검기입니다.”

    “검기?”

    “예. 하지만, 저는 저자의 검기를 보지 못했습니다.”

    호위는 위상호를 가리켰다.

    위상호는 여전히 검을 잡은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처음과 똑같은 자세였다.

    그런데 검기라니?

    그의 호위는 초절정의 무인이었다.

    그가 헛말을 할 리 없었다.

    순간 서 태감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떨리는 눈빛으로 강유찬을 바라봤다. 동창의 일원인 자신이 금의위를 응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은 위상호와의 끈을 끊기 위해 그를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이 싸움이 위상호의 승리로 끝난다면?

    서 태감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위상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 태감, 딱 거기까지만 허용하리다. 그 밖으로 벗어난다면 그대의 목은 바닥에 뒹구는 낙엽이 될 것이오. 이 충고는 그간의 정을 봐서 해 주는 말이오!”

    그 외침에 서 태감은 걸음을 멈췄다.

    서 태감은 조용히 자신의 호위에게 눈짓했다.

    위상호의 충고가 무섭긴 해도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호위도 그 뜻을 눈치챘는지 서 태감의 소매를 잡고 끌었다.

    그때였다.

    스륵.

    갑자기 호위의 몸이 허물어졌다.

    차디찬 돌 위에 쓰러진 호위를 본 서 태감의 눈이 떨렸다.

    돌바닥 위에 누워 있는 호위의 주변에 피가 번지고 있었다.

    위상호의 경고대로였다.

    스무 걸음도 더 떨어진 곳에서 위상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데…….

    자신의 호위가 쓰러졌다라?

    깜짝 놀란 서 태감은 재빨리 강유찬을 바라봤다.

    “강 대인!”

    “…….”

    강유찬은 대답이 없었다.

    몇 발짝 물러나 위상호를 노려보던 강유찬은 갑자기 오른손을 늘어뜨렸다.

    바닥에 강유찬의 검 끝이 닿았다.

    탕.

    순간 검신을 타고 핏줄기가 흘러나온다.

    강유찬은 살짝 신음을 토해 냈다.

    “음.”

    “매화나무에서 매화가 피지 않고 혈화가 피는군.”

    위상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시를 읊듯 말하자, 강유찬이 표정을 수습하고 받아쳤다.

    “내 핏속에는 매화가 있으니 혈화라는 말은 과하군요.”

    “내 검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군.”

    “나라를 향해 검을 돌리고도 무사하리라 보십니까?”

    “여기에 있는 자들은 전부 지운다면 누가 증인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그게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내 검을 보고 그게 할 소리인가? 허허.”

    말을 마친 위상호는 검을 털어 냈다.

    휙.

    순간 검신에서 핏방울이 흩어졌다.

    촤악.

    그 모습에 강유찬이 말했다.

    “쾌검이군요.”

    “힘은 우직함보다 못하고 화려함은 빠름보다 못한 법이지 않은가?”

    “좋은 말씀입니다. 그럼 저도 한 수 보여 드리죠.”

    “방심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인가?”

    “알았다 해도 막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변명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변명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위 가주.”

    말을 마친 강유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를 노려봤다.

    순간 강유찬의 눈빛이 바뀌었다.

    눈빛뿐이 아니었다. 기세도 바뀌었다.

    그전에 그가 보여 주었던 기세가 화려함 속의 살기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부드러움이었다.

    그 부드러움 속에서 살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강유찬을 바라보던 위상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하신검 중 매화유검? 자네가 어떻게 그것을 익혔는가?”

    위상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위상호가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자하신검은 장문인 후보의 자격이 되어야 배울 수 있는 검이었다.

    장문인 후보가 되면 자하신검의 전반 다섯 초식을 전해 받게 되고, 장문인이 되면 후반 다섯 초식을 받게 된다.

    완벽한 자하신검은 장문인만이 익힐 수 있는 검법이었다.

    그중 매화유검은 초반 다섯 초식에 속하는 검법이었다.

    부드러움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덮는다.

    이것이 매화유검의 화두였다.

    위상호는 검법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황제의 오른팔인 금의위의 수장 강유찬이 장문인 후보까지 올랐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위상호의 질문에 강유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시간을 끌겠다는 말인가? 내 쾌검을 매화유검으로 받을 수 있다 보는가?”

    “가능하다 봅니다. 매화의 부드러움은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지요.”

    강유찬은 여유 있게 웃었다.

    그러고는 먼 산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사실 그는 매화유검으로 정체불명의 검법을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상호를 향해 뱉은 말은 허풍이었다.

    그는 지금 시간을 끌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던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사라졌다.

    그렇다는 것은 지원할 무력대를 데리러 갔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강유찬이 바라는 바였다.

    이곳에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온다 해도 별 도움이 안 될 터였다.

    그렇다면 지원할 무력대를 데려오는 것이 맞았다.

    단순한 무인이 아닌, 강북 최고의 고수여야 했다.

    강유찬은 하북팽가 사 공자의 경공술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강유찬은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제발 빨리 와 주게. 제발…….’

    그의 마음과는 달리 위상호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검을 올리자 강유찬이 말했다.

    “위 가주, 이것도 인연인데 그 초식의 이름이라도 알려 주구려.”

    “내가 초식명을 외치는 것은 왠지 낭비 같네만…….”

    위상호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뻗었다.

    순간 그의 신형이 검과 함께 사라졌다.

    강유찬은 본능적으로 매화유검의 첫 동작을 펼쳤다.

    강유찬은 검을 허공에 그었다.

    마치 떨어지는 매화 사이로 검신이 지나가는 듯 그의 검은 표홀히 움직였다.

    위상호의 신형은 안 보이지만, 둘의 검신은 허공에 청아한 공명을 만들어 내었다.

    챙, 챙.

    이윽고 강유찬의 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검의 속도와 더불어 강유찬의 몸도 빨라졌다.

    서 태감의 눈에 강유찬의 발은 보이지 않았다.

    서 태감의 눈으로는 따라가지 못할 동작이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청아한 울림은 철혈검대와 금의위의 싸움마저 멈추게 했다.

    챙, 챙.

    금의위의 무사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둘의 싸움을 바라봤다.

    철혈검대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위상호의 자식인 위지천도 검을 늘어뜨리고는 둘의 대결을 바라봤다.

    그 옆에 있던 위지약이 물었다.

    “오라버니, 이러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우리의 싸움은 의미가 없다, 지약아.”

    “네?”

    “주변을 바라봐라, 지약아.”

    “흠.”

    “모두 아버님과 강유찬의 싸움을 보고 있지 않으냐? 이유가 뭐라 생각하느냐?”

    “그건…….”

    “아버님과 저자의 승부에 따라 우리의 승부도 갈린다는 거지. 아버님이 이기면 금의위가 죽고, 저자가 이기면 우리가 죽는 것이다. 나머지 싸움은 이 승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

    위지약은 조용히 두 고수의 대결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으로는 검을 쫓기 힘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유찬이 펼치는 매화유검에 한계가 찾아왔다.

    부드러움으로 빠름을 막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이론상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매화유검은 촘촘한 그물이었다.

    부드러운 실이 꼬이면 굵은 밧줄이 되고.

    그 밧줄을 얼기설기 얽혀 놓으면 촘촘한 그물이 된다.

    하지만, 그 밧줄을 끊을 수 있는 검이 있다면?

    챙. 챙.

    소리는 처음과 같았지만, 강유찬의 검 끝은 무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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