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39화 (439/621)
  • 439. 사람을 남기는 장사 (4)

    한빈 일행이 객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각, 하북성의 성문.

    하북성 성문은 근 달포 동안 마차나 수레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 적이 없었다.

    동창에서 나서서 통제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어 상인들은 이곳을 지날 생각을 못 했다.

    덕분에 이곳을 지키는 동창의 병사들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어제까지였다.

    성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가 고개를 돌려 동료를 바라봤다.

    “무슨 불나방도 아니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 텐데 여길 들어오려는 상인들은 무슨 깡이지?”

    “그러게 말일세. 역시 정보에 눈이 어두우면 멀쩡한 돈도 날리는 법이지.”

    “어제 돌아간 그 상인이 생각이 나는군.”

    “그 정도의 곡식이면 하북성도 안정이 될 텐데.”

    “자네 말이 맞네. 상인들은 걱정 안 되네만, 안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은 어찌 되는가?”

    “그러게 말일세.”

    “아무렴, 그런데 안정이 된다면 우리 서 태감 나으리의 돈줄이 없어지지 않나?”

    “자네, 목소리 좀 낮추게…….”

    병사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이 이리 조심스러운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것은 하북성을 통제하고 있는 서 태감이 식량을 매입해서 몰래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검지에서 아직 손도 떼지 않았을 때였다.

    저 멀리서 요란하게 수레바퀴 소리가 울렸다.

    덜그럭.

    덜그럭.

    그 소리에 병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제와 오늘은 묘하게 성문이 북적거리네그려!”

    “그러게 말일세. 불나방 한 무리가 기어들어 오는군.”

    “불나방에는 불맛이 최고지.”

    병사는 씩 웃으며 창대를 고쳐 잡았다.

    한참을 보던 병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저 수레 말일세…….”

    “왜 그러는가?”

    동료가 묻자 병사가 점점 다가오는 행렬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어제 쫓겨난 상인이 가져온 마차와 비슷해서 말일세.”

    그 행렬은 희미하게 먼지를 일으키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병사의 말에 동료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길 보게. 깃발이 다르지 않은가?”

    “깃발이라니, 대체…….”

    병사는 눈을 크게 떴다.

    수레마다 꽂힌 깃발은 위씨세가의 깃발이었다.

    순간 동료 병사는 재빨리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위씨세가의 무사들이 오게 되면 바로 통보하라는 서 태감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북성의 성문 위씨세가 일행이 도착하자 때마침 서 태감이 뛰어왔다.

    그들은 본 서 태감은 바람처럼 나와 위상호를 맞이했다.

    “그러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른 들어가시지요.”

    성문 안쪽을 가리키는 서 태감의 모습에 위상호가 포권했다.

    “호의에 감사드리오, 대인.”

    말을 마친 위상호는 뒤쪽을 보며 손짓했다.

    동시에 수레가 일사불란하게 성문을 향했다.

    덜그럭.

    덜그럭.

    수레가 성문 앞에 모이자 서 태감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너희는 목적지까지 위 대협을 호위하라!”

    그 지시에 병사들이 동시에 외친다.

    “존명!”

    그 광경에 위상호가 재빨리 손을 저었다.

    “괜찮소이다, 대인”

    “아닙니다. 귀빈이 오셨는데 제가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가문의 무사들만으로도 이 한 몸은 지킬 수 있소이다.”

    “허허, 제가 실례를 범했군요. 천하의 위씨세가에 호위를 붙이려 했다니, 제 불찰입니다.”

    서 태감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찌 보면 과도한 친절이었다. 천하 십대세가 중 한 곳인 위씨세가를 호위한다는 건 조금 과장된 행동이었다.

    “아닙니다…….”

    위상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마주 웃었다.

    사실 위상호는 서 태감의 대우에 기분이 좋았다.

    황궁에 뿌린 돈이 얼마던가?

    그때 뿌린 씨를 지금 조금 거둬들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빛은 그리 곱지 않았다.

    성문의 입구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긴 해도 이 난리 통에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단은 성문 오십 걸음 이내로는 발도 못 붙이게 하는 것이 이곳의 규율이었다.

    그런데 지금 온 무림세가는 자신들에게 호위까지 명하는 모습이 너무 모순적이었다.

    서 태감과 위상호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수레들이 성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수레의 반이 성문을 통과했을 때.

    병사들이 데리고 있는 군견이 마구 짓기 시작했다.

    컹컹.

    군견이 수레를 향해 달려들기 위해 앞으로 가자, 병사들이 쥐고 있던 목줄이 팽팽해진다.

    군견 몇 마리가 미친 듯 짓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병사들은 재빨리 군견을 진정시키기 위해 목줄을 더욱 세차게 잡았다.

    “이놈이 왜 그래?”

    컹컹!

    군견이 아예 미친 듯 짖어 대는 상황까지 이르자 위씨세가의 행렬이 잠시 멈췄다.

    동시에 수레를 끄는 말이 놀란 듯 난리를 쳤다.

    휘잉.

    동시에 위씨세가의 무사들은 말의 정수리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기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점혈의 원리와 같았다.

    흥분하던 말은 진정이 되었는지 그대로 멈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군견이 짖는 소리만 주변에 울려 퍼질 때, 서 태감과 위상호 간의 은밀한 눈빛이 오갔다.

    서 태감은 턱짓으로 군견이 달려들려 하는 수레를 가리켰다.

    위상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서 태감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상체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전했다.

    “대협, 숨긴 물건이 없다는 것이 확실합니까?”

    “네.”

    “그럼 안심하고 있겠습니다.”

    “저건 저희가 장운현에서 산 곡식을 그대로 들고 온 겁니다.”

    “흠.”

    “어제 성문까지 왔다가 문전박대당하고 돌아가는 상인들의 물건을 산 거니…….”

    “어제라, 그럼 안심해도 되겠군요.”

    서 태감의 표정에서 살짝 여유가 묻어났다.

    어제 돌려보냈다면 안에 불법적인 물건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물건이 있다면 성문에서 병사들이 잡아내지 않았을 리 없으니 말이다.

    서 태감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하북성 내에 있는 금의위의 강유찬 때문이었다.

    동창과 금의위는 황제를 보필한다는 점에서 목적은 같지만, 정치적으로는 물과 기름이었다.

    여기에서 금의위에 꼬투리를 잡힐 일이 생긴다면?

    서 태감의 정치 생명에도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서 태감은 힐끔 옆을 보더니 병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병사는 며칠 동안 계속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였다.

    병사가 다가오자 서 태감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어제 너희가 돌려보낸 상행이 있더냐?”

    “네, 맞습니다. 저 수레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수레 위의 덮인 천이 특이해서 생각납니다.”

    병사의 답에 서 태감이 위상호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대협의 말씀이 맞았군요. 발길을 잡은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대인, 개의치 마시지요. 나랏일을 하시다 보면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이리라 생각하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 숙인 서 태감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말이 놀라지 않게 군견을 떨어뜨리거라!”

    “존명.”

    모든 병사가 복명복창하며 다시 길을 안내했다.

    병사들은 군견을 수레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군견은 끌려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짖어 댔다.

    컹컹.

    마지막 수레가 성문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추시오.”

    그 외침에 모두가 동작을 멈췄다.

    빠져나가던 수레는 더는 전진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강유찬만이 온 것이 아니라 금의위의 무사들까지 와서 수레를 막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선 것은 서 태감이었다.

    서 태감은 재빨리 강유찬에게 달려갔다.

    그는 강유찬을 뚫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대인! 지금 무슨 일입니까?”

    “저 멀리서 보니 군견이 짖더이다. 그 소리를 들어 보니 군견이 이상한 물건을 탐지한 듯싶군요. 그런데 아무런 조사도 없이 보내는 걸 보니 이상해서 달려왔습니다.”

    “다 조사해 봤소이다.”

    “군견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이다.”

    “허허. 이곳의 담당은 강 대인이 아니라 저란 말입니다.”

    “저는 하북성의 안정을 위해 폐하의 명을 받았소. 사소한 싸움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하오. 이곳을 통제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무림인의 싸움을 막자는 것이 아니오?”

    “그래서 이제까지 잘 막고 있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무림인이 아니오?”

    강유찬은 수레에 꽂힌 깃발을 가리켰다.

    깃발에는 위씨세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선명했다.

    위씨세가를 나타내는 상징은 청룡과 호랑이.

    호랑이보다 더 용맹하며 청룡보다 더 높이 비상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이 담겨 있는 가문의 깃발이었다.

    그때 바람이 세차게 그들 사이에 몰아친다.

    휘잉.

    바람이 쓸고 지나가자 감정을 가라앉힌 서 태감이 말을 이었다.

    “저분은 저와 안면이 있는 분이요. 강 대인도 이틀 전에 약초를 실은 마차를 끌고 들어가지 않았소. 이분을 들여보내는 것은 내 소관이오.”

    “그래도 군견이 탐지한 수레는 까 봐야 한다고 봅니다, 서 태감.”

    “불가하오.”

    “그럼 안에서 기다리다가 하북성주와 함께 이 행렬을 검문하겠소.”

    “흠.”

    서 태감이 눈매를 좁히자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위상호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위상호는 강유찬을 보며 포권했다.

    “위씨 가문의 가주 위상호라 하오. 지난번 사천당가에서 우리 아이들이 대인의 신세를 졌다 들었소이다. 그 점은 감사드리오.”

    “별말씀을요.”

    “저희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니 직접 살펴보셔도 되오. 하지만!”

    위상호는 기세를 피워 냈다.

    그 모습에 강유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저 수레에는 하북성의 백성을 구휼할 곡식이 들어 있소이다. 일정에 차질이 생겨 겪게 되는 백성들의 고초는 대인이 책임지셔야 할 것이오.”

    말을 마친 위상호는 조용히 강유찬을 바라봤다.

    정치적인 명분으로 강유찬을 압박하려 하는 것이다.

    서 태감도 작은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까지 동창과 금의위는 서로의 선을 넘지 않았소. 하지만 지금 강 대인의 말은 선을 넘는 일이외다. 수레를 조사하시고 싶거들랑 조사하시되, 그 책임은 지셔야 할 거요.”

    그 모습에 강유찬은 한빈의 얼굴을 떠올렸다.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상인으로 위장한 상행을 통과시킨 것이나 지금 이곳에 잠복해 있던 것 모두 한빈의 부탁이었다.

    한빈은 이곳에 동창과 위씨세가를 옭아 넣은 건수가 있다고 했다.

    강유찬은 처음에는 자신 있게 막았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니 살짝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 수레에 담긴 물건이 금지 품목이 아니라면?

    군견이 미친 듯 짖어 댄 것이 엉뚱한 오해라면?

    고민을 이어 가던 강유찬은 고개를 저었다.

    여태껏 하북팽가 사 공자의 말을 듣고 손해 본 적이 있던가?

    황제에게는 총애를 받고 있고.

    수하들에게는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자신감 가득한 서 태감의 표정이 묘하게 거슬렸다.

    그때였다.

    멀리 나무 위에서 누군가가 손짓했다.

    강유찬은 살짝 진기를 일으켜 안력을 돋구었다.

    순간 그는 비명을 터뜨릴 뻔했다.

    오백 걸음도 떨어진 나무 위에서 누군가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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