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38화 (438/621)

438. 사람을 남기는 장사 (3)

수레에 불을 지른 행수는 다음 수레에 불을 붙이기 위해 다시 부싯돌을 긋고 있었다.

툭, 툭.

그런데 얼핏 보니 웃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위상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그것은 착각일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 행수의 눈은 촉촉해졌다.

위상호는 그제야 의심을 거두었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물품을 불에 태우는데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때였다.

몰려든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저게 뭐야?”

“그러게 말이야.”

“아, 쌀 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아이고, 아깝네! 저 쌀을 차라리 우리한테 주지.”

“전에 해동성국에서 건너온 상인도 저리 인삼을 모두 태우지 않았는가?”

“그래, 상인이 확실하네그려. 그나저나 쌀 튀는 소리가 듣기 좋네.”

그들의 말처럼 타들어 가는 수레에 담긴 쌀이 톡톡 소리를 내고 있었다.

주변의 소란에도 젊은 행수는 묵묵히 두 번째 수레를 태우기 위해 부싯돌을 튕겼다.

다행인지 부싯돌은 묵묵부답이었다.

순간 행수는 고개를 돌려 위지약을 바라봤다.

“이제 속이 시원하오? 이게 위씨세가가 일하는 방식이오?”

“…….”

위지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뒤쪽에 있는 위상호는,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는 위지약을 잡아끌었다.

“너는 뒤로 물러나 있거라.”

“아버님, 저는…….”

위지약은 말끝을 흐렸다.

위상호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팅.

젊은 행수의 부싯돌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두 번째 수레가 타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길이 수레에서 솟아오르자 위상호가 재빨리 달려갔다.

그러고는 수레의 앞에서 멈췄다.

위상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불타는 수레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르륵.

수레를 단번에 불태울 듯하던 화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순간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건 기막이다.”

“기막으로 불을 껐다고……?”

“저 사람이 대체 누구기에?”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하나였다.

공기를 차단해서 불을 끄는 것과 단순하게 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지였다.

위상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경지를 모두에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위씨세가의 가주 아니겠어?”

“허허.”

그 소란에도 위상호는 아무 말 없이 젊은 행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품에서 전낭을 꺼내 던졌다.

휙.

전낭이 방금 불이 꺼진 수레 위에 떨어졌다.

툭.

젊은 행수를 본 위상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금 이백 냥에 준하는 야명주가 들어 있네. 나머지는 위씨세가에서 받도록!”

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젊은 행수에게 쏠렸다.

젊은 행수는 전낭을 확인하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젊은 행수는 손을 들어 저잣거리의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동시에 수레를 이끌던 이들이 젊은 행수를 따라 사라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나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행인들도 어벙벙한 표정으로 남은 위상호와 위씨세가 사람들을 바라봤다.

위상호는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객잔 쪽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만으로 객잔의 삼 층에 있던 철혈검대 대원들이 번개처럼 달려왔다.

위상호의 앞에 선 철혈검대 무사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수레 앞에서 부동자세로 위상호의 명을 기다렸다.

그 모습에 흡족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린 위상호가 말했다.

“수레에 가문의 깃발을 꽂아라.”

그들은 가져온 깃발을 수레에 꽂았다.

휙, 휙.

수레에 갑자기 꽂힌 위씨세가의 깃발.

그 모습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그 기세에 행인들은 입만 딱 벌리고 있었다.

그때 위상호가 외쳤다.

“모두 출발하라!”

그 소리에 수레는 하북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잣거리의 가운데에는 타다 만 수레 하나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하북성을 향해 길게 늘어선 수레의 앞에는 위상호가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위지약이 울상이 된 얼굴로 물었다.

“그걸 왜 주셨나요? 이건 말도 안 되는 바가지잖아요.”

“아니다. 그 정도는 줘도 된다. 그리고 그 야명주 중 몇 개는…….”

살짝 말끝을 흐리는 위상호의 모습에 위지약이 재빨리 물었다.

“야명주가 왜요?”

“값어치가 없는 물건이다. 아마도 위에 있는 야명주만 봤겠지.”

“위에 있는 야명주만요?”

“내 기세에 눌려 그 안까지 제대로 살펴볼 엄두는 못 냈겠지. 누가 위씨세가의 가주가 일개 상인을 속이리라 생각했겠느냐?”

“나중에 따지러 오면요?”

“그때는…… 호북 상단이 지워지는 게지.”

위상호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위지약은 존경의 눈빛으로 자신의 아비 위상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위상호의 속마음을 타들어 갔다.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는 야명주가 든 가죽 주머니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의 전 재산이라 다름없었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하북을 손에 넣기는커녕 돌아갈 여비마저 바닥날 수도 있었다.

* * *

그곳에서 재빨리 빠져나온 한빈 일행은 저잣거리의 커다란 불상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천독과의 대결 때 들썩였던 바로 그 불상이 있는 곳이었다.

조금 금이 가 있었지만, 장운현을 지키고 있는 불상은 여전히 하북을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선 한빈은 위상호가 건넨 전낭을 다시 꺼냈다.

그러고는 조그마한 야명주를 하나씩 살폈다.

한빈은 야명주 몇 개만을 전낭에 다시 넣고는 나머지는 버렸다.

휙,

한빈이 버린 야명주가 불상의 손바닥 위에 정확히 올라갔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공자님, 저걸 왜 버리세요?”

“에이, 값어치가 없는 건 버려야지.”

“값어치가 없다니요?”

“내가 골라낸 세 개를 빼고는 전부 가짜야.”

“헉. 그럼 위씨세가의 가주가 사기를 친 거예요?”

“뭐, 할 수 없지. 거기서 따지면 말만 길어지니까.”

“그래도…….”

설화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바로 한빈이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는 점이었다.

상대를 함정에 몰아넣기 위해 상인으로 위장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설화가 보기에, 한빈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상대방의 자금을 바닥내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가짜 야명주를 받고 저리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다니.

혹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진짜 생불이 된 것은 아닐까?

설화는 불상과 한빈을 번갈아 봤다.

그것도 잠시, 설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빈의 미소는 불상의 인자한 미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설화의 표정을 본 심미호가 손을 저으며 나섰다.

“설화야, 지금 무슨 걱정을 하는 거니?”

“부대주 언니…….”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 줄은 아는데,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잘 생각해 봐. 주군이 손해 볼 거래를 하실 분이야?”

“그러니까 걱정되는 거죠.”

“너는 수레에 실려 있는 게 모두 곡식이라고 생각해?”

“그럼요?”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과 동행하면서 곡물을 매입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곡식이 아니라니?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심미호가 말을 이었다.

“그중 반 이상은 모래와 황토야.”

“네?”

설화는 슬쩍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시선을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설화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곳까지의 여정을 떠올려 봤다.

그러고 보니, 자신과 청화는 꽤 많이 자리를 비웠었다.

아마도 비운 사이에 지시가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설화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있을 때, 한빈이 어딘가를 바라봤다.

한빈이 바라보는 곳에는 다루 하나가 있었다.

다루를 보던 한빈은 심미호에게 말했다.

“심 부대주. 잠시 저기에서 쉬었다가 가지.”

“아깐 바쁘다고 하셨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차 한잔 할 여유는 있어야지. 안 그래?”

“진심이에요? 주군.”

심미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다루의 이 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이상하게도 한빈이 올라가자 이 층에 있던 손님들은 자리를 비웠다.

그때 점소이 하나가 천천히 한빈에게 다가왔다.

점소이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떤 차를 대령할깝쇼? 손님.”

“황화차에 백아주를 섞어 내오게.”

한빈의 말에 놀란 것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황화는 황하의 강변에서만 난다는 꽃이었다.

그 꽃의 향기는 제법 유명해서 황궁에 올리는 진상품 중 으뜸이라고 전해진다.

문제는 황화가 사 년마다 한 번씩 나는 꽃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말려서 차의 재료로 만들어도 보관이 힘들어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물건이었다.

백아주는 또 어떤가?

술 중에 으뜸이라 불리는 술이었다.

그런데 둘을 섞는다고?

얼핏 생각하기에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싼 차와 비싼 술을 그대로 날리는 것이다.

누구도 이런 주문은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점소이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빨리 대령하겠습니다, 손님.”

“네, 고맙습니다.”

한빈은 씩 웃었다.

순간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모든 이가 입을 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의 대화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옆에 있던 설화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공자님, 지금 주문한 차 조금 이상할 것 같아요. 빨리 말해서 취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다. 맛을 보면 너도 충분히 이해할 거다, 설화야.”

“전 이해가 전혀…….”

설화는 말끝을 흐렸다.

이 층에 따로 마련된 주방에서 회색 무복의 사내 셋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상자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터벅터벅.

한빈의 앞에 온 그들은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탁.

묵직해 보이는 세 개의 상자가 탁자 위에 놓이자, 한빈이 아무렇지 않게 상자를 열었다.

덜컹.

순간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가 침을 삼켰다.

그중 백미랑과 흑미랑만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자를 열자 그곳에서는 문서가 나왔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문서를 하나씩 꺼내 살폈다.

그렇게 반 시진이 넘게 한빈은 문서를 꼼꼼히 살폈다.

한빈이 문서를 상자 안에 넣자, 회색 무복의 무인 중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차는 만족하셨습니까?”

“네, 입에 착착 감기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주군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무사들은 상자를 가지고 사라졌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듯 한빈을 바라볼 때, 백미랑은 무사들이 사라진 주방을 보며 말했다.

“여기는 공공문의 본거지네요.”

“역시 하오문의 정보는 탁월하군요.”

“공자님 덕분에 공공문의 암어도 알게 됐어요. 감사해요.”

“저들에게 하오문의 암어도 가르쳐 줬으니 공평합니다.”

한빈이 씩 웃자 백미랑이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흑미랑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공자님은 잔인하시군요.”

“제가요?”

한빈이 씩 웃자 흑미랑이 말을 이었다.

“저희가 가져온 물건 말이에요. 위씨세가가 난감할 것 같은데요.”

말을 마친 흑미랑은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은 하북성의 성문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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