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32화 (432/621)

432. 칼을 가는 공자님 (2)

객잔 주인은 눈매를 좁혔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색 무복의 무인들 사이에 하얀색 무복이 보이자 호기심이 생겼다.

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길게 빼고 그들의 대화를 들으려 했다.

그때였다.

주인의 옆으로 무사 하나가 다가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장은 지금부터 눈과 귀를 막게. 지금부터 우리가 떠날 때까지는 다른 손님은 받지 말고.”

말을 마친 무사는 주인에게 전낭을 던졌다.

획.

전낭을 받은 주인은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걸 전부…….”

주인은 무사를 바라봤다.

무사는 씩 웃는다.

“며칠간 우리가 여기를 쓸 비용이네. 적은가?”

“아, 아닙니다.”

주인은 재빨리 손을 저었다.

무림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어찌 되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긴장하며 그들을 쳐다보던 이유도 무림인이 지나가면 난장판이 되기 일쑤여서가 아니던가.

그때 무사가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비밀이 새어 나가면 목숨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주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조용히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사라지자 중앙에 있던 흰색 무복의 사내가 수염을 쓸어 올렸다.

“지천아, 지약아. 이번 일은 우리 가문의 명운이 걸려 있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지금 말을 뱉은 자는 바로 위상호의 동생 위상군이었다.

위상군은 위씨세가 제일의 무력대인 철혈검대의 대주이자 집법당주를 겸하고 있었다.

그는 가주의 명을 받아 위씨세가 최고의 전력을 데리고 이곳 장운현에 도착했다.

위상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그것은 그와 철혈검대가 앞으로 치러야 할 전투 때문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간단했다.

식량으로 하북성 내부를 휘어잡는 동시에 하북팽가와 천리 표국의 싸움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었다.

하북팽가와 천리 표국이 힘을 잃었을 때 위씨세가가 나설 예정이었다.

이제는 명분까지 생겼다.

하북의 혼란은 하북팽가와 천리 표국 때문이라고 모두가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 싸움을 부추긴 것이 위씨세가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상황.

백성들은 하북팽가와 천리 표국을 원망할 테고.

그들을 평정하는 위씨세가는 그야말로 하북의 영웅이 될 것이었다.

이제 천하 십대세가는 천하 구대세가로 재편되기 전이었다.

조금 삐걱거리는 것이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순조로웠다.

위상군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그가 보기에 이곳 장운현은 폭풍 전야와도 같았다.

그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

그 폭풍이 자신과 철혈검대라 생각하니 묘하게 웃음이 나와서였다.

장운현은 위상호와 약속한 장소였기에 그는 위지천과 위지약을 데리고 이곳에 머물러야 했다.

일단은 기다리는 것이 첫 번째 임무.

그때였다.

일 층에서부터 발소리가 울려 왔다.

타다닥.

위상군은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다급한 발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던 것이다.

삼 층에 나타난 것은 검은 무복의 사내였다.

그는 다름 아닌 위씨세가 철혈검대의 일원.

삼 층에 도착해 황급히 뛰어오던 무사는 위상군의 앞에 멈췄다.

그는 포권하는 것도 잊은 채 다급하게 대나무 통 하나를 건넸다.

대나무 통에는 천(天)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그 통에 쓰인 글자를 본 위상군이 눈을 빛냈다.

“이게 어디에서 날아온 것이더냐?”

“호북 만금 전장에서 날아온 전서구에서 떼어 낸 것입니다.”

“천급 전서구라…….”

위상군은 말끝을 흐리며 밀봉된 전서구 통을 열었다.

위씨세가는 전서구를 보낼 때 등급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인급(人級).

가문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정도의 사안은 지급(地級)이었다.

그렇다면 천급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일이 생겼을 때나 표시하는 글귀였다.

왜 천급이?

의문도 잠시, 위상군은 떨리는 손으로 통을 열었다.

안에서 평범한 쪽지 하나가 나왔다.

쪽지의 내용을 본 그는 입을 떡 벌렸다.

“헉.”

그 모습에 위지천이 재빨리 물었다.

“숙부님, 무슨 일입니까?”

“누군가 만금 전장에 있는 위씨세가의 비자금을 모조리 털어 갔다는구나. 이걸 믿어야 할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길 보면 써 있지 않으냐?”

위상군은 쪽지를 내밀었다.

위지천은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만금 전장에 맡긴 금액 대부분을 찾아갔으며 절차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쪽지를 읽어 가던 위지천의 눈이 점점 커졌다.

사실 그 내용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만금 전장에 맡겨 놓은 금액은 위씨세가 전력의 반이라고 보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만금 전장의 비자금은 직계만이 찾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만금 전장에서 돈을 찾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그 첫 번째가 숫자로 된 암어였다.

그 암어를 안다고 해도 돈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번째가 바로 필체니 말이다.

숫자를 적은 필체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만금 전장에서는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

즉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직계 중 누군가가 가문을 배신하고 비자금을 찾아갔다는 뜻.

본래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법이었다.

위상군은 쪽지를 구겼다.

그가 손을 폈을 때는 쪽지는 가루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대화를 지켜보던 위지약이 물었다.

“숙부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님, 아니 가주께서 돌아오시면 해결될 일이다. 그리고 이 전서가 가짜일 수도 있지 않으냐?”

“인장을 보면…….”

위지약은 말을 멈췄다. 위상군의 눈짓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는 위씨세가의 철혈검대도 있었다.

그들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을 만큼 충성심이 강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고 하지 않은가.

수하들에게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그때였다.

객잔의 밖에서 제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덜그럭.

덜르럭.

누가 들어도 수레를 끄는 소리였다.

위상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창가로 뛰어갔다.

그는 팔짱을 끼고 아래를 바라봤다.

덜그럭, 덜그럭.

수레 끄는 소리와 함께 그 진동까지 느껴졌다.

객잔 아래로 여러 대의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상인들의 행렬이었다.

“대체 어느 상단이지…….”

위상군은 눈매를 좁혔다.

위상군은 지금 하북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인들 모두가 강호의 싸움에 휘말릴 것이 두려워 하북에는 발길을 끊은 상황이었다.

중요한 점은 장운현을 기점으로 하북 쪽으로는 더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몰려드는 낭인들을 막기 위해 관에서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렇게 많은 짐을 싣고 하북으로 향한다?

아마 백이면 백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었다.

위상군이 보기에 그들은 정보가 부족한 것이 확실했다.

지금 하북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위씨세가밖에는 없었다.

하북성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동창.

그 수장으로 있는 동창의 태감은 바로 위씨세가와 끈끈한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 * *

수레 위에 앉아 있던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청화가 물었다.

“왜 그래요? 언니.”

“어쩐지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언니가 예뻐서 누가 쳐다보는 게 아닐까요? 헤헤.”

청화가 해맑게 웃자 설화도 웃음을 터뜨렸다.

“푸웁.”

“왜 웃어요?”

“아니, 예쁜 건 네가 더하지. 사람들이 널 보면 봤지, 날 보겠니?”

“아니에요, 언니가 더 예뻐요.”

그때였다.

누군가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호호. 너희 둘 다 예쁘니까 걱정하지 말렴. 그런데 그 시선 나도 느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백미랑이었다.

백미랑은 방금 지나온 객잔을 슬쩍 바라봤다.

분명히 시선은 그곳에서 느껴졌었다.

사내가 여인을 보는 시선이 아닌.

맹수가 먹잇감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백미랑의 시선에 설화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백 언니, 그렇게 보시면 눈치채잖아요. 저도 그렇고 청화도 그렇고 대충은 알고 있어요.”

“어? 알고 있었다고? 언제부터?”

백미랑은 질문을 연달아 날리자 설화가 뒤쪽을 가리켰다.

“아까 장운현에 들어왔을 때부터요.”

“그게 무슨 말이야? 설화야.”

“제법 많은 무인이 기척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설화는 설명을 하면서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설화의 말은 간단했다.

객잔뿐 아니라 그 주변에도 꽤 많은 무인이 일반 상인들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백미랑은 고개를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설화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은 하오문의 사천 지부 책임자였다.

그런데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이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백미랑은 곡식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바라봤다.

수레를 끄는 자들은 지금 푸른색 경장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몇몇은 장부를 옆에 끼고 있었다.

설화와 청화도 백색의 무복을 벗어 던지고 푸른색 의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상태.

누가 본다 해도 상단의 여식들이라 착각할 만했다.

십대세가의 무력대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무복을 그리 쉽게 벗어 던질 줄은 몰랐다.

사실 적혈맹호대에게 그들의 본래 무복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백미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와 적혈맹호대는 이곳까지 오면서 곡식을 긁어모았다.

상인이 물품을 사고 그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파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위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행렬을 둘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따라 수레에 실은 짐도 달랐다.

앞쪽 수레는 적혈맹호대의 대주인 소대섭이 맡고 있고 뒤쪽은 부대주인 심미호가 맡고 있었다.

그들은 오백 걸음 정도의 차이를 두고 하북성으로 향했다.

그들이 장운현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앞쪽 행렬은 그대로 하북성을 향해 가는데 뒤쪽 심미호가 맡은 행렬은 멈췄다.

그 모습에 백미랑은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정말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그들은 하북성의 입구에서 마차를 멈춰야 했다.

그곳에는 동창의 병사들이 촘촘히 입구를 막고 있었다.

동창의 병사 중 하나가 창을 들어 바닥을 찍는다.

쾅.

그 소리에 사람들이 나와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맨 앞에 가던 소대섭과 조호는 마부석에서 내려 동창의 무사 앞으로 다가갔다.

“나으리, 무슨 일이십니까?”

소대섭은 완벽하게 상인처럼 묻고는 무사를 바라봤다.

동창의 무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소대섭과 심미호를 아래위로 살폈다.

“어디에서 온 상인이요?”

“저희는 호북에서 왔습니다. 여기 통행증이 있습니다.”

소대섭은 그에게 통행증을 내밀었다.

통행증을 확인한 병사는 통행증을 보는 둥 마는 둥 살피더니 다시 건넸다.

“잘 봤소. 그런데 지금은 들어갈 수 없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낭인을 철저히 통제하라는 명을 받았소.”

“네? 통제라니요?”

“지금 하북은 창끝에서 사마귀 두 마리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형국이요. 아, 여기까지만 하겠소. 그러니 돌아가시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소대섭은 힐끔 뒤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신호를 받은 조호는 옆쪽에서 나팔을 꺼냈다.

그러고는 나팔을 힘껏 불었다.

뿌우!

소뿔로 만든 나팔 소리가 성벽에 부딪혀 다시 돌아왔다.

그 정도로 조호의 나팔 소리는 엄청났다.

신호를 보낸 소대섭도 귀를 막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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