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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18화 (418/621)

418. 오비이락(烏飛梨落) (5)

영호가 고개를 갸웃할 때, 병사가 서생 복장의 사내에게 외쳤다.

“경을 칠 테니 입 다무시오!”

서릿발 같은 병사의 목소리에 서생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알겠소. 그렇게 소리치지 마시오.”

서생은 뒤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병사도 표정을 풀고 헛기침을 뱉었다.

“알았다고 하니 그만하리다.”

병사는 재빨리 자신이 지키던 마을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터벅터벅.

군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병사를 보며 서생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병사가 떠나자 그 자리에는 영호와 서생만이 남았다.

영호는 조용히 주문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을 살펴보았다.

호북의 초입인 주문현은 그리 큰 마을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적은 병력으로 완벽하게 봉쇄할 수 있었다.

은밀하게 진행하는 임무인 만큼 여기서 경거망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찼다.

어찌 보면 이번 일이 자신이 음지에서 뛰는 마지막 임무일 수도 있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위씨세가의 일원으로 정의맹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어 양지로 나오게끔 돕겠다고 가주 위상호가 약속했기 때문이다.

영호는 어둠 속에서 살아왔다.

태어나자마자 살수로서 이십 년을 살아왔다.

그 이십 년 동안 살행을 하면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어느 무인이 그린 검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도 영호는 마치 잠을 자고 밥을 먹듯 아무렇지 않게 살행을 떠났었다.

상대는 달빛을 받고 있었고.

영호는 어둠 속에서 그를 노리고 있었다.

목표는 달빛을 받으며 검무를 추고 있었다.

검무가 끝나고 방심할 때 파고들 예정이었다.

땀이 식으면 마음도 가라앉는 법.

그때를 파고들면 백이면 백 성공이었다.

하지만 영호는 검을 뽑아 들지 못했다.

영호는 술에 취한 듯 몽롱해진 눈으로 그 무인이 떠날 때까지 석상이 되어 있었다.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취한 것이다.

상대의 검무에······.

달빛을 받으며 움직이는 목표의 검날은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마치 달을 검신에 띄운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검신에 뜬 달은 하나가 아니라 열두 개.

그것이 위씨세가의 월광검법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영호가 꼼짝 못 하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위씨세가의 가주였던 위상호의 목소리였다.

그때부터 영호는 위상호의 오른팔이 되어 움직였고, 살수의 검이 아닌 무림인의 검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제 그 검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였다.

낯선 목소리가 영호의 상념을 깨웠다.

“댁도 여기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군요.”

고개를 들어 보니 아까 봤던 눈치 없는 서생이었다.

영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생을 살폈다.

아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치는 조금도 없었다.

지금도 희망에 차 그리고 있던 자신의 상상을 큰 목소리로 깨웠으니까.

영호의 눈빛에도 서생은 말을 이었다.

“허, 이거 참, 큰일 났군요. 만금 전장에 들러야 하는데······.”

영호는 서생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목적지가 만금 전장이라 하니 뭔가 정보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영호는 귀찮아하던 표정을 싹 지우고 말을 건넸다.

“당신은 만금 전장에 무슨 볼일이오?”

“저는 만금 전장에 돈을 맡겨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지금 돈을 맡긴다고 하셨습니까?”

“네, 조금 큰돈이라서 그냥 들고 갈 수는 없고 전장에 맡긴 후 나중에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담장을 넘어도 기가 막히게 병사들이 쫓아옵니다. 나는 왜 그러나 했더니 그게 역······.”

서생은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힐끔 병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역병이란 그런 존재였다.

주문현에 역병이 돈다고 소문이 퍼지면 호북 전체가 혼란에 빠져들 것이었다.

그 혼란이 중원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고 말이다.

그래서 역병은 초기 대응이 중요했다.

그 첫 번째 대응은 철저한 봉쇄였다.

그다음이 바로 입단속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황제의 결정을 기다리면 되었다.

다행히 병사는 슬쩍 눈치만 준 후 자리를 지켰다.

영호는 눈치 없는 서생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서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영호는 서생의 소매를 잡았다.

서생이 놀란 듯 외쳤다.

“왜 그러시오?”

“자, 잠시만 조용히 해 보시오. 저와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영호는 서생의 소매를 잡고 조금 떨어진 수풀 쪽으로 걸어갔다.

병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영호가 물었다.

“안쪽의 경계가 그렇게 삼엄하다는 말이오?”

“얼핏 봤는데 금의위에서도 나온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호북성의 병사들도 몰려온 것 같고요. 어쩐지 전부 얼굴을 가리고 있더라니, 역시 역병······.”

“쉿, 목소리 좀 낮추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서생은 영호를 아래위로 살폈다.

영호는 서생의 그런 모습에 황당한 듯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

하지만 서생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영호를 다시 살폈다. 고개를 갸웃한 서생이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무림인이신 것 같은데······.”

“네, 무림인이 맞습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라······.”

“저를 좀 호위해 주시죠.”

“그건······.”

“돈이 좀 많아서 불안해서 그럽니다. 만금 전장에 맡기고 출발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돈이 대체 얼마나 있기에 그럽니까?”

“뭐, 황금 이천 냥 정도······.”

서생이 말끝을 흐리자 영호는 눈을 크게 떴다.

황금 이천 냥이라면 하북성 전체의 몇 년 예산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위씨세가의 심부름으로 만금 전장에 맡긴 돈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순간 영호는 눈을 빛냈다.

무리해서 만금 전장에서 돈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림인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말한다라?

상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서생이 분명했다.

호위를 핑계로 옆에 머물다가 돈을 빼앗으면 그만이었다.

“좋습니다. 의뢰 비용만 제대로 쳐주시면 호위를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줄 수 있는 품삯은 바로 큰 거!”

서생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순간 영호의 눈이 커졌다.

“황금 한 냥을······.”

“아니, 철전 한 닢입니다. 이건 제 돈이 아니라서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서생은 자신의 품속을 가리켰다.

영호는 순간 마른침을 삼켰다.

서생이 진짜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황금 한 냥이라고 했다면 아마 영호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본래 가진 자가 더 팍팍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저 서생은 집안에서 교육을 확실히 받고 자란 것이 분명했다.

영호가 표정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서생이 물었다.

“싫은가요? 합쳐서 철전 한 닢은 아니고 하루에 철전 한 닢입니다.”

“흠, 좋습니다. 제가 호위해 드리죠.”

영호가 서생을 향해 작게 포권했다.

그 모습에 서생이 활짝 웃었다.

“하하, 다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무사님.”

“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제가 모시는 분이 계십니다. 전서를 띄우고 가야 해서 근처에 잠시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전서를 보내러 혹시 어디로 가시나요?”

“하오문이라고 들어 봤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저도 구경 가도 될까요?”

서생이 어색하게 웃자 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시지요. 대신에······.”

“대신이라니요? 혹시 돈이 필요한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냥 조용히 계시면 됩니다.”

영호는 검지에 입술을 갖다 댔다.

하오문이야 호북의 무림인이라면 제집 드나들듯 하는 곳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는 것도 아니고 하오문에 같이 가는 것 정도야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해도 데려가야 할 판이었다.

그래야 서생이 가지고 있는 돈을 빼앗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서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영호는 조용히 앞서 나갔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따라오던 서생이 물었다.

“무사님은 원래 어디까지 가십니까?”

“흠, 하남 양주현까지 가야 합······.”

말을 하던 영호는 고개를 돌렸다.

생각해 보니 서생의 목적지를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때 서생이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곳까지 가는데 잘됐군요.”

“다행입니다.”

영호는 속으로 안도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 * *

두 시진 후.

영호가 도착한 곳은 하오문의 호북 지부가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대나무로 된 공예품을 파는 상점 앞에 서 있었다.

붉은색 옷을 입은 상점의 점원은 슬쩍 서생을 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려는 점원.

하지만 점원은 이내 표정을 지우고 영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전서구 하나 띄울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점원은 점포의 안쪽으로 영호를 안내했다.

입구는 보통 점포였지만, 안쪽으로 가자 끝없는 통로가 나타났다.

안내하는 점원이나 뒤를 따르는 영호는 아무렇지 않게 통로를 지나갔다.

다만, 그 뒤를 따르는 서생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갈 뿐이었다.

영호는 그런 서생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뒤를 돌아봐야 했다.

서생은 마치 다른 세상을 구경하는 것처럼 신기한 듯 하오문의 호북 지부를 살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영호는 그 서생이 부잣집의 보통 도련님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얼굴에 귀티가 좔좔 흐르는 것이, 부잣집도 보통 부잣집이 아닌 것 같았다.

뒤쪽에서 따라오는 서생을 확인하느라 영호는 정신이 없었다.

그때 앞서가던 점원이 멈췄다.

사방이 꽉 막힌 막다른 통로.

통로의 끝은 붉은색 방으로 되어 있었다.

그 방에는 비둘기 몇 마리가 작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구. 구. 구.

비둘기를 가둬 놓은 새장의 옆에는 작은 종이들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가느다란 붓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서생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무사님, 죄송하지만······.”

기어들어 가는 소리에 영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서생이 안절부절못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영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뒷간을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서생의 말에 영호는 이를 바득 갈았다.

순진하게만 보이는 서생은 묘하게 자신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영호는 표정을 수습하고 점원을 바라봤다.

점원은 재빨리 서생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통로가 비좁아 이곳에서 해결하시면 큰일 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서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붉은색 옷을 입은 점원은 조용히 앞장섰다.

모두가 사라지자 영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붓 하나를 잡았다.

영호는 종이에 가주에게 보낼 내용을 써 내려갔다.

쓰윽. 쓰윽.

붓이 멈추자 영호는 옆쪽에 있는 대롱 하나를 잡았다.

그러고는 쪽지를 최대한 가늘게 접어 조그만 대롱 속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는 새장 하나를 들어 그 속에 있는 비둘기 하나를 잡았다.

여기에 있는 비둘기는 하오문의 것이 아니었다.

어느 누군가가 맡겨 놓은 비둘기였다.

지금 영호가 들어 올린 새장 속에는 자신이 맡긴 비둘기가 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하오문도 이 비둘기의 목적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거기에 이 비둘기가 운반하는 전서의 내용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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