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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16화 (416/621)
  • 416. 오비이락(烏飛梨落) (3)

    잠시 후, 백미랑의 손에서 조조가 떠났다.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멀어지는 조조를 본 한빈이 작게 웃자 백미랑이 물었다.

    “팽 공자님, 진짜 그래도 되는 거예요?”

    “그래도 됩니다.”

    “아무리…….”

    그때 햇볕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자, 백미랑을 말끝을 흐렸다.

    햇볕이 들어오자 한빈의 모습이 완벽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백미랑의 눈에 한빈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한빈을 처음 봤다면 무공을 모르는 서생이라 했을 것이다.

    살짝 변한 얼굴의 윤곽선.

    그리고 이전보다 더 하얗게 변한 얼굴.

    키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큰 것 같지만, 나이는 이전보다 더 어려 보였다.

    백미랑은 반로환동이란 말이 왜 있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한빈의 외모가 변한다면 아마 지금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될 것이다.

    빤히 바라보는 백미랑의 모습에 한빈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는 이 호위와는 전혀 다르게 보이지요?”

    “……그, 그래요.”

    “이제 이 호위가 수염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뭐, 나도 변장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그런데 이 호위의 외모를 이용 못 한다고 하니 아쉽네요, 쩝.”

    한빈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

    백미랑을 입을 크게 벌렸다.

    빗속에서 선 채로 환골탈태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만들어 낸 사내가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변장을 안 해도 된다니!

    백미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이들의 눈치를 봤다.

    이상한 것은 아무도 한빈의 모습에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광개는 아예 한빈에게는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망연자실 마차 밖을 바라보고 있다.

    백미랑은 대충 광개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자신도 태극칠성보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으니 광개의 기분을 모를 리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설화와 청화의 모습이었다.

    둘은 조용히 당과와 떡을 먹고 있었다.

    한빈의 변화에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 한빈의 목소리가 들리자 백미랑은 번뜩 정신 차렸다.

    “백 문주, 이건 내 형님의 행렬로 보내는 전서입니다. 그리고 이건…….”

    한빈은 한 뭉치의 쪽지를 내밀었다.

    백미랑은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전서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주는 쪽지까지 끼어 있었다.

    백미랑이 급히 물었다.

    “그냥 지시를 내리면 되시지, 왜 이걸 우리에게…….”

    “저는 하북으로 먼저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떠나시다니요?”

    “지금 떠나지 않으면 하북에서 벌어지는 잔치에 못 낄 것 같아서요.”

    한빈이 씩 웃자 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준비할게요, 공자님.”

    “아니야. 이번에는 너도 백 문주와 천천히 와.”

    “네?”

    “아마도 지금은 경공술로는 나를 따라오지 못할 거야.”

    “그래도…….”

    “나중에 때가 되면 가르쳐 줄게.”

    “약속이에요.”

    설화가 눈을 빛내자,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말을 마친 한빈은 청화를 바라봤다.

    “너도 마찬가지야, 청화야.”

    “말 안 해도 알고 있었어요, 헤헤.”

    청화가 밝게 웃자 한빈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덜컹.

    마차 밖으로 나간 한빈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땅을 박찼다.

    순간 화살이 날아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피슝!

    한빈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빈의 옷자락조차 보지 못했다.

    눈앞에서 사라진 한빈을 본 청화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앗, 저게 구걸십팔보라니…….”

    “아니야. 저건 분위기가 달라. 새로 얻은 깨달음의 결과일 것 같아.”

    설화는 한빈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활짝 웃었다.

    설화는 한빈이 강해지는 것이 자신이 강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욕심이 많기는 해도 한빈은 수하와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흐뭇하게 웃던 설화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 모습에 청화가 물었다.

    “왜 그래요? 언니.”

    “아, 아무것도 아니야.”

    손을 내저으며 고개까지 휘휘 젓는 설화의 모습은 누구 봐도 이상했다.

    설화는 계약 기간이 끝나 이곳을 떠날 것을 생각하니 서글퍼졌던 것이다.

    * * *

    한빈은 휙휙 지나가는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새로 얻은 구룡십팔보는 위력은 놀라웠다.

    이 정도의 속도로 내공의 소모 없이 간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풍경을 바라보던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풍경에 겹쳐 보이던 용린검법에 나와 있는 실력편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실력편]

    [속(速) : 이(二)]

    [……]

    실력의 속성이 눈 깜짝할 줄어들고 있었다.

    속의 속성이 다 소모되자 다음 속성이 줄어들고 있었다.

    줄어드는 모습이 마치 밑 빠진 항아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무시 못 하는 속도.

    이제 풍경을 감상할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속성에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멈춰야 할까?

    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멈춘다면 하북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실력편에 남아 있는 속성이 없었다.

    공, 체, 력 등 모든 속성이 바닥을 보였다.

    점점 효과를 다하는 구룡십팔보.

    그때였다.

    허공에 뜬 용린검법이 반짝이더니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한혈마의 효과로 구룡십팔보를 펼칠 수 있습니다. 구룡십팔보를 계속 펼치시겠습니까?]

    한혈마라?

    한혈마라면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전설의 명마였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리며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명마.

    왜 그 이름이 나온다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한빈이 펼치던 구룡십팔보가 다시 속도를 얻었다.

    피슝.

    한빈이 쏜살처럼 산자락을 지나갔다.

    빠른 속도에 기척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산자락을 번개처럼 나아가는데도 산짐승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문제는 한빈이 호북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발생했다.

    한빈은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살짝 어지럼증을 느끼던 한빈. 속도가 자신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동시에 몸이 슬쩍 기울어졌다.

    달려가는 속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자 한빈의 몸은 공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우당탕.

    한빈은 마을 초입에 있던 담벼락과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순간 귓가에 비명이 들려왔다.

    “꺅! 사람이 죽었어요!”

    “저, 저건 역병이야!”

    “다들 피해!”

    그들의 목소리에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한빈의 눈에 당황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거지들은 자신의 자리에 있는 동냥 그릇까지 놔두고 허겁지겁 자리를 피했다.

    한빈의 주변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한 한빈은 허공을 바라봤다.

    허공에는 묘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한혈마 효과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용혈이 부족합니다.]

    한빈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첫째. 구룡십팔보는 실력편의 구결을 사용한다.

    둘째. 실력편의 구결이 사라지면 한혈마 효과가 발동된다.

    원래대로 구룡십팔보를 펼친다면 실력편의 속성을 쓴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소모되고 나면…….

    순간 한빈은 다시 한번 용린검법을 바라봤다.

    한빈의 시야에 들어온 용혈이란 단어를 한혈마와 연관시키자 등에 소름이 돋았다.

    한빈은 재빨리 몸을 일으킨 후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자신의 손을 보니 마치 전쟁터에서 칼이 썰린 병사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한빈이 볼 수 있는 곳은 모두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한빈은 옆을 힐끔 바라봤다.

    그곳에는 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한빈은 작은 개울로 가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빈은 그제야 사람들이 역병을 외치며 도망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한빈의 모습은 완벽한 환자였다.

    환골탈태 덕분에 하얗게 변한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으며 얼굴의 여기저기에는 핏물이 굳어 있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역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한빈은 일단 개울에서 세수했다.

    얼굴에 덕지덕지 묻었던 피가 바로 씻겼다.

    한빈은 피가 묻은 목과 팔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 냈다.

    환골탈태 덕분에 생긴 허물도 같이 벗겨졌다.

    팔에 있던 기존의 피부는 뱀이 허물을 벗듯 손쉽게 떨어져 나왔다.

    일단 세안을 끝낸 한빈은 재빨리 개울 옆 바위에 몸을 기댔다.

    한빈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지금 세안을 하며 벗겨 낸 것은 분명 진짜 피였다.

    그 피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 용혈이 부족하다고 나온 글귀와 연관이 있을 것이었다.

    한혈마는 피 같은 땀을 배출하는 명마.

    한빈은 진짜 피를 내뿜고 달리고 있었던 것.

    한빈이 피를 뿜고 달리는 것을 누군가 봤다고 하면 까무러쳤을지도 몰랐다.

    다행인 것은 피를 모두 소모하지 않았다는 것.

    아마 모든 피를 소모했다면 한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었다.

    피를 소모할 때는 이미 실력편의 속성은 모두 동이 난 상태이니 ‘기사회생’같은 구명절초도 쓸 수 없을 터였다.

    무공이란 대가를 소모하기 마련이었다.

    상승 무공은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내공을 사용하는 반면, 용린검법의 초식들은 속성을 사용한다.

    속성을 다 사용하고 나면 본신의 내공을 사용하게 된다.

    문제는 그 한계를 넘었을 경우였다.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전 같으면 초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환골탈태 덕분인지 한계가 없어졌다.

    한계를 벗어난 경우는 속성이나 본신의 내공이 아닌 피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빈은 지금 혈맥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상황.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던 한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다급한 상황.

    피를 사용하더라도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좋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몸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한빈은 자신의 품에 손을 넣었다.

    한참을 자신의 품을 뒤지던 한빈이 입을 살짝 벌렸다. 생각해 보니 환골탈태 덕분에 옷을 갈아입고 그냥 떠나온 것이 기억난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다리에 찬 만월과 부러진 월아 밖에는 없었다.

    그때 한빈의 배 속에서 소리가 울린다.

    꼬르륵.

    제법 큰 소리에 한빈은 미간을 좁혔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한빈은 암제와의 대결 때보다도 더 힘들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한빈은 옆에 있던 나무토막을 집었다.

    그것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한빈이 자리에서 사라진 후 창을 든 병사들이 개울가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한빈이 있던 자리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는 피딱지와 벗겨진 허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병사 중 상급자로 보이는 이가 소매로 입을 다급히 막았다.

    그러고는 재빨리 외쳤다.

    “모두 저곳에서 떨어져라. 역병이 분명하다.”

    그의 외침에 병사들은 개울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개울에서 물러나서 그곳을 바라보는 병사.

    그중 병사 하나가 상급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 개울 말입니다.”

    “말해 봐라.”

    “이 마을의 식수원으로 쓰이는 물이 아닙니까? 저기에 역병이 묻어 흘러들어 간다면…….”

    “흠. 일단 나는 지부대인께 보고하겠다. 너희는 이곳을 지키고 있거라.”

    상급자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 * *

    한 시진 후.

    한빈은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잣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한빈은 주변에 있던 유생의 집으로 들어가 옷을 홈쳐 입고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천천히 저잣거리를 거닐던 한빈은 커다란 전각 아래에 멈췄다.

    한빈은 조용히 위쪽을 바라봤다.

    높지는 않지만, 마치 성벽처럼 단단해 보이는 담장에 입구의 기둥은 철로 되어 있는 전각이었다.

    그 전각의 위에는 금빛 필체가 살아 숨 쉬는 듯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만금 전장 호북 지부]

    현판을 본 한빈은 진득하게 웃었다.

    구룡십팔보의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이 저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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