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15화 (415/621)

415. 오비이락(烏飛梨落) (2)

정주섭의 말에 조세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도 싸움이 일어난 배경에 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으니까.

조세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혹시…….”

“예상하고 계신 것이 맞을 겁니다. 소문에 의하면 하북팽가에서 낭인왕의 동생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 동생과 사 공자의 외모가 비슷하다지요.”

“그럼 그 동생이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는 것인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사 공자는 하북팽가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것은 하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이곳 하북에서 꽤 유명했었습니다.”

“유명했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유명했습니다.”

“안 좋다니…….”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하북에서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겁쟁이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흠.”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요. 어쨌든 자신의 동생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자가 싸움을 말리면 일단 진정될 것 같습니다.”

정주섭은 확신한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 모습에 조세현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럼 빨리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내 앞으로 데려오게.”

“문제는 그가 아직 하북으로 돌아오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소식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소식이라……. 어떤 방법으로 말인가?”

“강호에는 하오문이라는 집단이 있습니다. 그 집단을 통해서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현재 상황을 그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허허.”

조세현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 모습에 정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개방을 통해서 전하는 게 빠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주섭은 오래전부터 하오문과 정보를 거래해 왔다.

정보는 그가 하북의 붙박이 이인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의 근본이었다.

그런 이유로 강호의 생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정주섭은 분명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나선다면 이 싸움은 일단락될 것이라 믿었다.

그때 조세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빨리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찾아보게.”

“성주님, 죄송하지만…….”

“빨리 말해 보게!”

“이번에는 돈이 조금 들 것 같습니다.”

“얼마나 들지는 모르겠지만, 저것을 가져가게.”

조세현은 하북팽가와 천리 표국에서 받은 상자를 가리켰다.

“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고개를 숙인 정주섭은 재빨리 상자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는 한참 동안 고심했다.

얼마를 가져가야 할지를 몰라서였다.

그 모습에 조세현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무슨 고민을 하나? 필요한 만큼 가져가게. 저건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이네. 저 선물로 그들의 싸움을 막을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정주섭은 미안한 표정으로 상자 중 하나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들고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조세현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뭐 하는 건가?”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모자라면 다시 가지러 오겠습니다.”

“…….”

조세현은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정주섭의 표정이 심각하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정주섭은 이 상자에 있는 돈의 반 이상은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하북성의 이인자로 살아남은 관리로서의 감이었다.

* * *

설화와 청화 그리고 백미랑은 호법을 서고 있었다.

그것은 한빈이 태극칠성보의 흔적을 바닥에 깔아 놓고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른침조차 삼키지 않고.

숨도 조심해서 쉬고 있었다.

한빈에게 방해가 될까 걱정되어서였다.

흔적을 마차 밖으로 옮겨 놓은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수다스럽던 광개도 입을 굳게 다문 채 주변을 살피며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었다.

과연 한빈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빈은 백미랑으로부터 실마리를 하나 얻었다.

그것은 태극칠성보의 결이었다.

모든 사물과 동작에는 결이 있다는 것은 무공의 기본.

그 결은 길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모든 무공은 정상적인 길을 따라 움직인다.

때로는 옆길로 새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본래의 길로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허초이든.

변초이든.

모든 초식은 하나의 점으로 귀결된다.

태극칠성보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걸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마지막에 향하는 것은 오로지 한 점.

한빈은 이제까지 변화를 살피려 할 뿐이었지, 그 목표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목표를 보고 큰길을 살필 수 있다면 태극칠성보의 깨달음은 자신의 것이 된다 믿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흔적을 바라보던 한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길이 보인 것이다.

샛길을 하나씩 지우다 보니 이제야 큰길이 보이게 된 것.

한빈은 몰랐지만,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만 해도 무려 열두 시진 이상이 걸렸다.

한빈은 그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집중했다.

이것은 모두 용린의 주인이 된 덕분이었다.

그 글을 찾자 눈앞이 환해지며 황금빛 줄기가 하나로 이어진다.

그때 시야를 가득 채우는 문구.

[강호에 흩어진 초식을 찾았습니다. 태극칠성보.]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뒤를 잇는 글귀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 초식은 불완전합니다.]

[용린검법에서 이 초식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나오는 글귀만 가지고 해석한다면 이 초식은 꽝이라는 말이었다.

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태극칠성보라는 기연이 왜 자신에게 다가왔겠는가?

분명 이유가 있어서라 생각했다.

그런데 초식을 펼칠 수 없다니!

이것은 진수성찬을 차려 두고 구경만 하라는 것과 똑같았다.

그때였다.

비가 내렸다.

툭. 툭.

공터를 적시는 소나기.

하지만, 한빈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빈의 눈앞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태극칠성보를 기존의 무공과 융합하시겠습니까?]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문구가 이어졌다.

[새로운 초식이 탄생했습니다. 구룡십팔보.]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한빈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용을 본 사람들은 용이 느리다고 말합니다. 하늘을 오르는 용은 그리 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의 움직임 한 번은 중원을 덮고도 남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서 보기에 용의 움직임이 작게 보일 뿐입니다. 이제 당신의 한 걸음은 용의 한 걸음이 됩니다. 실력편의 모든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글귀는 천천히 사라졌다.

동시에 온몸이 불에 탄 듯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마치 온몸에 있던 탁기를 용린의 기운이 태우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빈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상한 현상에는 신경 쓰지 않고 용린검법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빈은 조용히 허공 속의 책장을 넘긴다 생각했다.

동시에 용린검법의 책장이 스르르 넘어간다.

한빈의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응용편]

[구룡십팔보]

[구걸십팔보]

[진룡파혼검]

[……]

이제까지 익혔던 응용편의 초식의 맨 위에 새로운 초식이 나와 있었다.

다행인 것은 기존에 있던 구걸십팔보의 초식이 온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한빈의 입꼬리는 보기 좋게 올라갔다.

한빈은 조용히 태극칠성보의 흔적을 한곳에 모았다.

청강석이 일곱 개 쌓이자 한빈은 조용히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진룡파혼장.’

순간 태극칠성보의 흔적이 가루가 되었다.

그 가루는 대지를 적시는 빗물에 서서히 쓸려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광개는 입을 딱 벌렸다.

그가 보기에는 한빈에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한빈이 관찰하던 흔적은 분명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나와 있는 지도라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다니.

광개는 재빨리 한빈에게 다가갔다.

“친구, 괜찮은가?”

말을 건넨 광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입으로 들어가는데도 광개의 입은 닫힐 줄 몰랐다.

그 모습에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광개, 표정이 대체 왜 그래?”

한빈이 평소의 말투처럼 물었지만, 광개의 입은 닫히지 않았다.

광개의 당황한 모습에 설화와 청화 그리고 백미랑도 달려왔다.

한빈이 걱정되기에 못 참고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한빈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공자님.”

청화는 그 한마디를 남긴 채 석상처럼 굳었다.

설화는 조심스럽게 한빈에게 다가간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대체 다들 왜 그래?”

“지금 공자님 얼굴이 이상해요. 꼭 피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아요.”

설화의 말에 한빈은 자신의 얼굴을 만져 봤다.

순간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찐득찐득한 액체가 얼굴을 덮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액체는 빗물에 계속 씻겨 내려가고는 있지만, 피부에서 계속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빈은 그 액체를 확인했다.

검은색에 액체는 마치 흑유와도 비슷했다.

순간 백미랑이 외쳤다.

“환골탈태!”

순간 모두의 눈이 한 단계 커졌다.

그러지 않아도 커졌던 그들의 눈은 이제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설화도 똑같이 외쳤다.

“공자님, 환골탈태가 맞는 것 같아요!”

그들의 말에 한빈은 자신의 얼굴을 다시 만져 봤다.

그러고는 자신의 소매를 바라봤다.

지금 피부를 통해서 나오는 것은 분명히 탁기였다.

얼굴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탁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체 이게…….”

한빈은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태극칠성보의 깨달음 때문인 것 같았다.

빗줄기는 계속 거세졌다.

덕분에 한빈의 몸에서 나오는 탁기는 빗줄기에 바로 씻겨 내려갔다.

그들은 빗줄기를 맞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광개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대체 무슨 깨달음이었나? 친구.”

“흔적을 보다 보니 머리를 살짝 치는 깨달음이 지나갔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네.”

한빈이 모르겠다는 듯 웃자 광개가 상체를 기울였다.

“그 깨달음 나눠 줄 수 있겠나? 친구.”

“광개, 네가 직접 확인해 봐.”

“헉.”

광개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깨달음의 가장 중요한 단서인 태극칠성보의 흔적이 빗물에 씻겨 없어진 것이다.

당황한 광개의 모습에 한빈이 말을 이었다.

“몸에 안 맞는 옷은 그래도 버틸 만하지만, 안 맞는 음식을 먹으면 큰일 난다.”

“…….”

광개는 눈을 끔뻑거리며 한빈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한빈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조용히 웃었다.

한빈도 광개가 웃자 마주 웃었다.

진심으로 광개를 위해 한 말이었다.

태극검제도 일곱 걸음을 펼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곱 걸음을 펼친 후 보여 줬던 태극검제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한 한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건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태극칠성보는 용린의 기운을 담고 있던 무공이라 한빈은 확신하고 있었다.

내공이 아닌 용린의 기운을 사용하는 무공.

일반인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신력을 소모해야 하는 무공.

어찌 보면 광개와 같은 초절정 고수에게는 위험한 무공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한빈은 미리 준비한 무복으로 갈아입고 아침을 맞았다.

그 모습에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붉은색 무복이 아닌 평범한 회색 무복으로 갈아입은 한빈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모두가 모여서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푸드득.

고개를 돌려 보니, 영물인 조조가 백미랑의 어깨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백미랑은 조조의 다리에 달려 있던 전서 통을 떼 내어 한빈에게 전했다.

전서 통을 확인한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도 잠시, 한빈은 재빨리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설화가 약속한 것처럼 마차 바닥에 종이를 깔았다.

한빈은 재빨리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화가 준비한 세필을 들었다.

한빈의 붓이 종이 위를 누볐다.

사사-삭.

전광석화의 묘용이 담긴 한빈의 붓놀림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하지만 백미랑이 놀란 것은 한빈의 붓놀림 때문이 아니었다.

한빈이 적은 내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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