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14화 (414/621)

414. 오비이락(烏飛梨落) (1)

접객당주의 말에 팽강위가 고개를 저었다.

“낭인을 모집한다고 했나?”

“네, 병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낭인들이 필요합니다.”

“낭인왕하고 전쟁을 하는데 낭인을 모집하자고 했는가?”

감정 없는 목소리에 접객당주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

모두가 접객당주에게 시선이 몰렸지만, 팽강위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들이 등에 칼을 꽂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흠…….”

“팽가에서 가장 촉이 빠른 것이 접객당주 자네 아닌가?”

팽강위가 접객당주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눈빛은 가라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제가 잠시 실언을 했습니다.”

“자네를 책망하기 위함이 아니네.”

“…….”

“모두의 지혜를 한데 모으고자 함이네.”

팽강위는 조용히 팽가를 이끌어 가는 수뇌부를 바라봤다.

그들은 팽강위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결연한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 뿐이었다.

지금의 대화에서 팽강위의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주작각의 가기군이 손을 살짝 들었다.

“제가 한마디 드려도 될는지요.”

“말해 보게.”

“낭인왕이 낭인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만큼 저희는 하북 땅의 중소 문파와 무림세가를 규합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와 동시에…….”

가기군은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 모습에 팽강위가 말했다.

“편안히 말해 보게, 주작각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제공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요 전력이 빠져 있다고는 하나, 기습이라면 충분히 낭인왕 이세명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기군은 눈을 빛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팽가의 피가 섞여 있지 않았다.

어찌 보면 팽가의 녹을 먹는 일꾼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그가 맡은 일은 정보를 관리하고 행정 업무.

하지만, 오랜 세월 팽가에 몸을 담은 그에게는 팽가의 기질이 나타났다.

가기군의 말에 팽강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붙을 싸움이라면 한발 먼저 칼을 들이미는 놈이 유리한 것 맞지. 주작각주는 묘수가 있나?”

“네, 있습니다.”

가기군의 눈이 한층 더 빛났다.

* * *

천리 표국의 국주실.

이세명은 탁자 위에 있는 반토막 난 호패를 보고는 호흡을 멈췄다.

이세명은 그 호패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호패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순간 떠오르는 오래전의 기억.

주화입마에 걸린 숙부를 피해 가문을 나온 것이 이십 년 전이었다.

당시 이세명은 스무 살 차이도 더 나는 동생이 있었다. 그는 주화입마에 걸린 숙부가 자신과 동생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안 후, 가문에서 몰래 도망쳐 나왔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이세명의 아비가 살아 있었다면 가주의 자리는 숙부가 물려받지 못했을 것이었다.

주화입마에 걸린 숙부는 자신의 자리를 위해서 형의 핏줄인 이세명과 동생을 죽이려 한 것.

가문의 눈을 피해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동생을 잃어버린 것이 바로 장하의 부근이었다.

몇 날 며칠을 찾아 헤맸지만, 동생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세명은 동생이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것은 바로 복수였다.

숙부의 목을 베어서 장하의 나루터에 던져두고 동생의 원혼을 달래는 일.

그것이 그의 숙원이었다.

그런데 숙부의 목을 베기 전에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는 어제 서찰을 통해 동생을 죽인 진짜 범인을 찾았다.

봉투 안에는 동생이 걸고 있던 호패가 있었고 서찰의 내용은 동생을 죽인 흉수와 장소를 밝히고 있었다.

반토막 난 호패는 분명 이십 년 전 잃어버린 동생의 것이었고.

호패를 반으로 가른 도법은 분명 팽가의 도법이었다.

그리고 반토막 난 호패에 묻어 있는 혈흔은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증거였다.

모든 것이 동생을 죽인 원흉이 하북팽가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과연 이 서찰을 전한 것은 누굴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동생의 복수가 끝난 후여야 했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이세명이 답했다.

“들어오너라.”

그의 말에 문이 스르르 열렸다.

모습을 나타낸 것은 그의 호위 무사.

호위 무사는 이세명의 앞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입을 열었다.

“국주님, 열흘 후면 모든 준비가 끝날 것 같습니다.”

“흠, 얼마나 모였느냐?”

“지금 모인 낭인의 수는 삼백입니다. 열흘 후면 족히 천 명은 채울 것 같습니다.”

“그럼 닷새 후에는 얼마나 모일 것 같나?”

“닷새 후라면…….”

슬쩍 말끝을 흐린 호위 무사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마도 오백이 채 안 될 겁니다. 대부분의 인원은 장하를 건너야 하니 엿새 후가 되어서야 나머지 인원이 모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럼 닷새 후에 출발한다.”

“네?”

“준비된 적에게 천 명이 쳐들어가는 것보다는 넋 놓고 있는 적을 오백 정도로 제압하는 게 더 손쉽겠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게 뭡니까? 국주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적도 알고 있다는 점이지.”

“그렇다면…….”

“아마도 적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야. 하북팽가에서 인원을 모을 수 있는 것은 대충 엿새. 우리의 사정을 안다면 엿새 후에 바로 우리의 목에 칼을 들이대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말씀하시지요, 국주님.”

“이건 자네와 나만 알고 있어야 하네.”

“명 받들겠습니다.”

호위 무사는 깊숙이 포권했다.

* * *

하북성의 성주실.

성주 조세현은 턱을 어루만지며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본래라면 무림인들 간의 분쟁은 그냥 보고 있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싸움의 주체였다.

일이 있고 나서 하북성의 물가가 요동치고 있었다.

상행을 호위하는 천리 표국이 당분간은 손을 놓은 상태.

물론 하북팽가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상점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단까지.

시간이 멈춘 듯 동시에 손을 놨다.

거기에 다른 무림세가들도 마찬가지로 눈치를 보느라 숨을 죽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몇몇 무림세가가 천리 표국 쪽으로 붙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세력만으로 보면 하북팽가가 불리한 것은 사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하북팽가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하북팽가가 십대세가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천하십대세가는 누군가가 뒤통수를 맞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모두 달려들어 상대를 토막 내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었다.

자신의 이익 때문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자신들도 그렇게 공격을 당할 수 있기에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하북팽가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하북성의 민심이었다.

물가가 이렇게 올라간다면 황실에서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북팽가나 천리 표국을 벌하는 것이 아닌 하북성주를 징계할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하북성주는 쓴 입맛을 다셨다.

하북성이 요즘 떠오른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맡은 것이 화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돈과 권력을 휘어잡아, 바로 중앙 정계로 복직할 수 있는 열쇠가 이곳 하북성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개작두가 아른거렸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주님, 진정하시지요.”

고개를 들어 보니 이곳의 토박이 정주섭이었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못 볼 꼴을 보인 것이다.

성주 조세현은 미간을 좁혔다.

“자네도 있었구먼.”

“네, 아까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자네가 하북팽가와 친분이 있지 않나? 혹시 둘을 말릴 방법이 있으면 말해 보게.”

“이번 일은 천리 표국에서 원한을 품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북팽가를 설득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열쇠는 천리 표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표국이라면 성주님께서…….”

“내가 얘기를 안 해 본 것이 아니네. 표국주가 딱 잘라 말하더군.”

“뭐라고 했습니까?”

“이건 무림인의 일이라더군.”

“그런 무례한…….”

“무례하지는 않았네. 일이 끝나면 사례를 하겠다고 정중히 허리를 숙이더군. 그리고 건넨 것이 저 황금이 가득 든 상자네.”

조세현은 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평상시 같았으면 얼씨구나 하고 숨겼을 양의 뇌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것에 눈독을 들여서는 안 되었다.

하북성의 민심이 바닥을 치는 순간 황실은 조세현이 모아 놓은 모든 재산과 지금까지 닦아 놓은 권력의 기반을 모조리 회수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저것을 받는 것은 소탐대실.

웃긴 것은 그 상자의 옆에 비슷한 크기의 상자가 하나 더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하북팽가가 보내온 선물로, 옥과 금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지금 조세현에게는 저것이 사약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왜 돌려주지 못했을까?

그것은 본능이었다.

목에 칼이 날아온다면 무림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막고 몸을 피하고 상대를 벨 것이었다.

그렇다면 평범한 관리가 뇌물을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백이면 백 모두 뇌물을 뒤로 숨긴다.

그러고는 상대가 자리를 뜨면 그다음부터 계산에 들어간다.

조세현도 평범한 관리였다.

평범하기에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의 미간에 깊은 골짜기가 생겨났다.

황하의 물도 족히 담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였다.

우왕좌왕하는 조세현을 본 정주섭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주섭이 보았을 때 조세현은 오로지 직진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타인을 위한 직진이 아닌 자신의 성공을 위한 직진 말이다.

정주섭은 오랫동안 하북성에서는 이인자로 여러 명의 성주를 모셔 왔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갈피를 못 잡는 성주는 처음이었다.

정주섭은 일단 그를 돕기로 했다.

잘못하다가 그의 목이 달아난다면 이인자인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성주님,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이번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조세현이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에 정주섭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하북팽가의 사 공자입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 이번 무가지회에서 명성을 드높였으며 현비 쪽과도 연이 닿아 있다는 강호의 후기지수가 아니더냐? 내 딸과 이어 주려고도 생각했네”

조세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지 않아도 유심히 보고 있는 친구였다.

오죽 관심이 있으면 자신의 딸과 이어 주려는 결심을 했겠는가?

조세현의 말에 정주섭은 헛숨을 들이켰다.

딸과 이어 주려고 하는 것은 조세현의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딸이 문제였다.

조세현의 딸은 무려 열다섯 명이 넘었다.

나이가 열다섯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딸만 열다섯 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 양녀로 삼은 아이도 다섯이었다.

조세현은 혼인이라는 끈으로 여기저기 줄을 대고 있었다.

하지만 정주섭은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말을 이었다.

“팽가의 사 공자가 있었다면 분명히 이번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까지 모든 일을 백성의 관점에서 해결해 왔으니까요. 오죽하면 하북의 생불이라 불리겠습니까?”

“그 얘기는 들었네. 하지만,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아무리 의인이라도……. 복수심에 불탄 낭인왕을 어찌 막겠는가?”

“낭인왕이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친해진 이유를 아십니까?”

“자네는 알고 있다는 투군?”

“네, 알고 있습니다. 낭인왕이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친해진 것은 그의 대범함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 공자의 외모가 낭인왕이 오래전 헤어진 가족과 비슷하게 생겨서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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