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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05화 (405/621)
  • 405. 보이지 않는 위협 (2)

    물론 무인이 석공과 목수의 기술을 익히게 되면 더할 나위 없다.

    문제는 그런 자가 강호에 어디에 있을까?

    어떤 자들은 검기를 낼 수 있는 무인이 목수와 석공이 하는 일은 왜 못 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의 차이만큼 컸다.

    무인을 죽이기 위해 무공을 익히는 반면, 목수는 나무를 용도에 맞게 살리기 위해 기술을 익힌 자였다.

    물론 석공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무인에게 일을 시킨다면?

    재료를 못 쓰게 만드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잡일을 할 일꾼으로는 써도 숙련공으로 쓸 수 없는 이유였다.

    그런데 한빈은 자신의 무력대를 숙련공이라 소개했다.

    문제는 무력대의 대주마저도 영문을 모르고 있다는 것.

    한빈은 이소운을 바라봤다.

    “그럼 적당한 재료로 시험해 보시지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목수 이소운이 조심스럽게 묻자, 한빈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얼마든지요.”

    한빈의 말에 목공과 석공을 시험할 장소가 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적혈맹호대 대원들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가장 먼저 시험을 치를 심미호가 조심스럽게 한빈에게 다가왔다.

    “주군.”

    “왜 그래? 심 부대주.”

    “저희가 어떻게 목수나 석공의 역할을 합니까?”

    “걱정 말고 저기로 가 봐.”

    한빈은 심미호를 이소운이 있는 곳으로 밀었다.

    툭.

    한빈의 손에 밀린 심미호는 떨리는 눈으로 시험대를 바라봤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시험이란 건 항상 긴장의 끈을 조이게 만드는 법이었다.

    심미호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이소운의 앞에 섰다.

    심미호를 본 이소운은 흠칫 놀라며 살짝 뒤쪽으로 물러났다.

    아무리 봐도 앞에 있는 여인은 무인이 분명했다.

    거기에 미간을 좁힌 것이, 언제든 칼을 뽑아 들 것만 같았다.

    이소운이 긴장하고 있을 때, 심미호가 말했다.

    “시험이란 게 뭐죠?”

    심미호의 말에 이소운의 표정이 풀렸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분위기에 비해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던 것.

    “여기 있는 통나무를 제가 금을 그어 놓은 대로 자르시면 됩니다요.”

    “이 통나무를 선에 맞춰 자르면 된다는 거죠?”

    “네, 그렇습죠.”

    이소운은 통나무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심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통나무를 바라봤다.

    앞쪽에는 여러 개의 톱이 있었다.

    심미호는 그중에 가장 가느다란 톱을 잡았다.

    순간 이소운은 헛숨을 터뜨렸다.

    “허.”

    그 소리에 한빈을 따라온 당세령이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이 목수님.”

    “저 톱으로는 저 커다란 통나무를 자르지 못합니다요. 이 시험에는 목수의 기본을 보는 항목도 있습니다.”

    “기본이라니요?”

    “저 통나무를 제가 만들어 놓은 선대로 자르려면 여러 종류의 톱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톱으로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야 하고, 두 번째로 세세한 세공을 할 톱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가는 톱으로 나머지 부분을 다듬어야 하는 법이지요. 부류는 세 가지의 톱이지만, 또 자신의 손에 맞는 톱이 있기에 저렇게 아홉 개의 톱을 가져다 놓은 것입죠.”

    “그러면, 목수로서의 기본이 전혀 없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요. 가는 톱을 맨 처음 잡는다는 것은 목공의 기초를 아예 모른다는 뜻입니다요.”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당세령은 조용히 심미호를 바라봤다.

    심미호는 가장 조그마한 톱을 들고 나무를 살피고 있었다.

    당세령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제까지 한빈이 보여 준 모습이 경이롭기는 했지만, 이것은 무리수였다.

    이소운의 말대로 기본기도 없는 무인이 목수의 기술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심미호의 톱에 모였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지금 오직 통나무만 보였다.

    통나무 속에서 한 달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 전의 기억까지 떠올랐다.

    황보세가에 갔을 때도 그녀는 끊임없이 굴을 팠다.

    그리고 한 달 전에도 따뜻한 햇볕과 이별을 고한 채 굴속에서 생활했다.

    낮에는 통로를 개척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와 잠을 잘 수 있었으니.

    그것은 사람이 할 짓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좁은 통로에서 돌과 나무를 깎으면서 생활해 온 심미호였다.

    덕분에 지금 잡은 톱과 통나무는 묘하게 친근했다.

    좁은 통로에서 지지대를 대던 기억.

    조금이라도 지지대의 길이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심미호가 가장 작은 톱을 잡은 이유는 하나였다.

    좁은 통로에서 가장 섬세하게 작업할 수 있던 도구가 바로 작은 톱이었기 때문이다.

    심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몸속의 진기를 일으켰다.

    스스슥.

    온몸의 진기가 부드럽게 손으로 흘러들어 갔다.

    순간 그녀가 잡은 작은 톱에 희미하게 진기가 맺혔다.

    심미호는 그 톱으로 통나무를 썰기 시작했다.

    쓱쓱.

    통나무가 마치 두부처럼 잘려 나간다.

    그 모습을 보던 이소운은 입을 딱 벌렸다.

    병기에 어리는 진기는 들어 봤어도 톱에 진기를 담아 작업하는 무인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그가 놀란 것은 심미호가 보여 준 무공 때문만이 아니었다.

    심미호는 나무의 결에 충실했다.

    목수라 해도 나무의 결대로 작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무의 결대로 작업하면 부드럽게 나무를 재단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나무는 신체와 똑같아서 일반적인 흐름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절맥과 같은 것이 나무에서는 옹이로 나타난다.

    그것을 피하다 보면 결을 거스르게 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런데 심미호는 그것을 톱에 진기를 담아 극복하고 있었다.

    결을 안다는 것은 십 년 이상 된 숙련공이란 이야기.

    거기에 그 이상이 있다.

    그때 심미호가 톱질을 멈췄다.

    목수 이소운의 눈이 더 커졌다.

    “대체 어떻게…….”

    이소운이 놀라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통나무는 완벽하게 다듬어져 하나의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정(正)이라는 글자였다.

    이소운이 낸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하라고 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완벽하게 다듬을 수 없는 것이 이번 시험의 과제였다.

    자신도 상(上) 정도밖에 깎지 못한다.

    정(正)이라는 글자를 깎다 보면 할 수 없이 중간에 부러지게 된다.

    그래서 획이 부족한 글자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

    이소운은 조심스레 다가가 심미호를 바라봤다.

    “대체 어디에서 온 목수십니까?”

    “네?”

    “이건 적어도 이십 년은 넘은 숙련공의 솜씨입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거기(鋸氣)라니!”

    거기란 톱에 담긴 진기를 뜻한다.

    여기서 ‘거’라는 글자는 말 그대로 톱을 말한다.

    ‘거기’라는 말이 강호에서 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예 안 쓰는 말은 아니었다.

    거도의 거는 ‘거대할 거(巨)’를 쓰기도 하지만, 일부 무인들이 들고 다니는 톱니가 있는 칼에 ‘거(鋸)’를 붙이기도 한다.

    물론 당세령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옆에 있던 당광현도 뜻밖의 전개에 눈을 크게 떴다.

    * * *

    그 후 놀라움은 계속되었다.

    한 달 동안 굴을 팠던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훌륭한 목수이자 석공이 되어 있던 것이다.

    물론 한빈과 사천에 동행했던 몇몇은 예외였다.

    사실 그들도 자신의 기술에 대해서 놀라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품삯은 무려 다른 목수들의 열 배로 책정되었다.

    모든 시험이 끝나자, 이소운은 이 정도의 숙련공이 도와준다면 한 달이 아닌 보름에도 끝날 것이라 장담했다.

    그 후 그들은 다음 날을 기약하고 모두 처소로 돌아갔다.

    한빈도 마찬가지였다.

    한빈이 처소로 돌아와 처음 한 일은 하오문의 성물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리에 차고 있는 것도 만월.

    이 상자도 만월이라니 이해가 안 된 것이다.

    한빈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상자가 살짝 흔들린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빈이 잡고 있으면 조용한 상자가 왜 한빈의 곁을 떠나면 흔들린단 말인가?

    한빈은 상자를 자세히 살폈다.

    상자의 이음새에는 틈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아무리 훌륭한 대장장이라도 이음새를 없애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다만 상자의 위쪽에 작은 바늘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그 구멍을 통해 열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상자를 바라보던 한빈은 혼잣말을 뱉었다.

    “혹시…….”

    한빈은 자신의 다리에 숨겨 놓은 만월을 꺼내 보았다.

    한빈은 만월이 가까이 갖다 대자, 상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만월과 상자가 공명하는 모습이었다.

    한빈은 한 가지 가정을 내 보았다.

    이 두 가지의 물건은 원래 하나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빈은 만월에 용린의 기운을 실었다.

    스스륵.

    만월이 점점 얇아진다.

    한빈은 만월의 상자의 바늘구멍에 찔러 넣었다.

    이건 말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상자가 반응했다.

    스르륵.

    상자가 열리더니 그곳에서 조그마한 검집이 나왔다.

    한빈은 만월을 검집에 끼워 보았다.

    착.

    마치 잡아당기는 것처럼 검집이 만월을 끌어당겼다.

    한빈은 이 두 가지 물건을 합쳐 만월이라 부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기구한 운명의 보물이었다.

    검집은 하오문에게 보관되었고.

    단검은 사천당가에 있다가 혈교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글귀가 나타났다.

    [강호의 흩어진 용린의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뭐지?

    용린검법이 알려 주는 새로운 정보에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그때 글귀가 다시 이어졌다.

    [용린검법의 하 권에 대한 단서입니다. 무림 칠대기보를 찾으면 하 권을 열 수 있습니다.]

    “오호라!”

    한빈은 쾌재를 불렀다.

    삼 년 내로 용린검법의 하 권을 못 찾으면 무공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한빈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금 걸리는 것은 위씨세가 하나였다.

    위씨세가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뒤통수를 칠 세력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어디까지 강해져야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

    그때였다.

    다시 글귀가 바뀌었다.

    [하 권을 익혀야 진정한 용린의 무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귀를 보며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용린검법은 자신을 끝없이 단련시키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방문에 비친 그림자를 보아하니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어서 들어와, 심 부대주.”

    한빈의 말에 방문이 열렸다.

    스륵.

    그러지 않아도 검은 얼굴의 심미호는 마치 위장한 듯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네, 주군.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심미호는 한빈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한빈은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봤다.

    심미호는 조용히 한빈에게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입술을 달싹이는 심미호의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편안히 말해 봐. 심 부대주.”

    “그, 그러니까…… 주군, 우리가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낮에 책정된 품삯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한빈은 빙긋 웃었다.

    “챙길 수 있을 때 챙기는 게 좋지 않아? 심 부대주 솔직히 고생했잖아. 내가 내린 보상만 가지고 되겠어?”

    “헉.”

    심미호는 헛숨을 들이켰다.

    동시에 눈물이 울컥 쏟아지려고 했다

    심미호는 감정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이 지금 한 이야기는 그 품삯을 개인이 챙겨도 좋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도라도 깨달은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을 바라보는 한빈은 마치 득도한 고승 같았다.

    이전과는 다르게 아무런 물욕이 없어 보이는 한빈이었다.

    물론 한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새롭게 나타난 글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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