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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04화 (404/621)
  • 404. 보이지 않는 위협 (1)

    불씨를 뿌린 조호마저도 묘하게 눈물이 났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거짓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눈물이 났었다.

    사람의 감정을 이토록 잘 움직이는 주군은 대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것이 강호의 속담이었다.

    그런데, 주군인 한빈은 열 길만 한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열 길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열 수의 앞을 내다보고 판을 짜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조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주군인 한빈에 대한 믿음만큼 조호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힘만으로는 주군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갑자기 다시 눈물이 쏟아지는 조호.

    그때 이소운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젊은이, 너무 감정에 휩쓸리지 말게. 은혜야 갚으면 되지 않는가?”

    이소운의 위로에 조호가 답했다.

    “네, 그렇죠.”

    말을 마친 조호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이제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

    적혈맹호대가 나서지 않아도 사천의 백성들은 주군인 한빈의 맹신도가 된 상황이었다.

    * * *

    잠시 후, 당광현은 대표로 보이는 이소운이란 자에게 물었다.

    “가문의 소가주로서 감사의 인사를 건네겠네.”

    “아닙니다요. 은혜를 입은 것은 저희입니다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렇게 호의를 베푼 분들은 아마 중원 역사에서도 없을 것입니다요.”

    “자네들이 이렇게 오지 않았나. 그리고 사천당가에는 자네들이 걱정하는 독 기운은 남아 있지 않다네.”

    당광현은 마지막 말은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올렸다.

    괜한 두려움은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소운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네?”

    “독 기운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네.”

    “헉.”

    이소운은 놀란 얼굴로 자리에 멈췄다.

    그러고는 당광현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독 기운이 남아 있지 않다면 자신들은 생명을 건 것도 아니었다.

    즉, 이제는 사천당가와 진룡소협에게 빚만 진 셈이 되었다.

    한숨을 토해 낸 이소운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희가 한 것이라고는 손도장을 찍은 것밖에는 없는데, 이런 호의를 베풀다니…….”

    “손도장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진룡소협께서 나중에 확인을 위한 문서라면서 손도장을 받았습니다요. 그게 당연합죠.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는 진룡소협 한빈의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소운의 말에 십대세가의 대표들은 조용히 입을 벌렸다.

    그중 가장 놀란 것은 제갈공민이었다.

    제갈공민은 조용히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흑유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흑유의 특성상 며칠은 지나야 완벽하게 없어진다.

    이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서약서에 손도장을 찍은 흔적이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전 중원인에게 문서로 약조를 받은 수준이었다.

    * * *

    일꾼들이 도착한 후 두 시진이 지나서야 한빈이 탄 마차가 도착했다.

    한빈 일행이 마차에서 내리자, 경비 무사 중 하나가 쪼르르 달려왔다.

    당세령은 마차에 내린 후 달려오는 경비 무사를 보고 손을 내저었다.

    과한 예는 삼가라는 말을 하려 할 때였다.

    경비 무사는 당세령을 지나쳤다.

    그러고는 한빈의 앞에 가서 포권했다.

    “진룡소협 대협.”

    “네? 소협이면 소협이고 대협이면 대협이지, 소협과 대협이 왜 합쳐집니까? 그냥 편하게 팽 공자라 불러 주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말이 헛나왔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일꾼들이 도착했습니다, 팽 공자님.”

    “아, 그렇군요.”

    한빈은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 무사의 눈이 커졌다.

    “알고 계셨습니까?”

    “제가 천리안을 지닌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고 있었겠습니까?”

    “아, 혹시 도와드릴 거라도…….”

    “저 안에 자루 좀 제 처소로 옮겨 주십시오.”

    “물론입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팽 공자님.”

    경비 무사는 마차 안에 있던 자루를 잡았다.

    그러고는 낑낑대며 조그마한 손수레에 실었다.

    그 모습에 당세령은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경비 무사의 모습 때문이었다.

    경비 무사는 가문에서 가장 눈치가 빠른 자가 맡는 자리였다.

    앞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것도 일인 만큼, 눈치가 경비 무사에게는 최고의 덕목이었다.

    그런데 경비 무사가 자신이 아닌 한빈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한빈이 무리 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자라 판단했다는 뜻이었다.

    나올 때와 들어올 때의 한빈의 위상이 달라진 것.

    당세령은 표정을 지우고 한빈에게 물었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뭐, 씨를 뿌렸으면 거두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요?”

    “…….”

    당세령은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한빈의 모습에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한빈이 말하는 모든 것은 너무나도 합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 * *

    한빈 일행은 바로 일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일꾼의 대표인 이소운과 당광현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나으리, 아무리 생각해도 석공과 목수가 모자랍니다요. 잔해를 제거하고 틀을 세우는 정도는 일반 일꾼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돌을 다듬고 나무를 깎아야 하는 작업은 저들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 상태에서 목수와 석공만 충분하다면 한 달 내에 공사를 끝낼 수가 있습니다요.”

    “허, 그 일꾼을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어떻게든 구해야 합니다요. 이대로라면 인원만 많지, 공사를 끝내려면 올해가 다 가도 힘들다고 생각합니다요.”

    “묘안이 없는가? 자네들은 여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저희도 여기에 들어와서 알게 된 것입죠. 제가 다른 마을에서 아무리 외쳐도 믿어 주지 않을 겁니다요.”

    “음.”

    당광현은 미간을 좁혔다.

    이소운의 말은 사실이었다.

    잡일을 해 줄 일꾼은 차고도 넘쳤다.

    사천당가에 빚을 진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숙련된 목수와 석공이 문제였다.

    아무리 일꾼이 많아도 핵심적인 작업을 할 두 부류의 일꾼이 없다면, 이소운의 말대로 겨울을 넘겨 작업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흠.”

    그 소리에 당광현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빈이 입을 막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당광현이 깜짝 놀라 물었다.

    “팽 공자, 자네 언제 왔는가?”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제가 있는 듯싶습니다.”

    “여기 있는 이 목수의 말에 의하면 숙련공이 부족하다는군.”

    “흠.”

    “어디 묘책이 있겠나?”

    당광현은 힘없이 물었다.

    그는 갑자기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강호 속담이 떠올랐다.

    묻고 보니 자신이 딱 그 꼴이었다.

    이 많은 일꾼을 구해 온 것은 하북팽가의 사 공자였다.

    그런데 숙련공까지 어떻게 안 되겠냐 묻는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우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

    한빈을 본 이소운도 한 발 앞으로 다가와서는 넙죽 고개를 숙인다.

    “진룡소협 아니십니까요?”

    “허, 이 목수도 오셨군요.”

    “제가 목수라는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방금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물론 사실은 아니었다. 한빈은 심미호에게 마을 사람들을 조사하라 했다.

    심미호는 그들을 조사해서 그들이 하는 일까지 알아냈고, 거기에 따라 적절히 상대한 것이었다.

    이소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그러셨군요. 염치없지만, 진룡소협께서는 방법이 없으신지요? 하긴, 이런 상황에서 방법이 있으실 리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빈이 답했다.

    “있습니다.”

    “네?”

    이소운의 눈이 커졌다.

    옆에 있던 당광현도 다급하게 물었다.

    “팽 공자, 대체 어떤 방법이 있단 말인가?”

    “숙련된 목수와 석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빨리 말해 보게.”

    “그들의 품삯이 조금 높습니다.”

    “품삯이 높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마 일당백은 몰라도 일당십의 몫은 할 겁니다. 그러니 품삯이 높을 수밖에 없죠.”

    “그런 숙련된 일꾼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가까이 있습니다. 혹시 제가 그들의 품삯을 책정해도 되겠는지요?”

    “그렇게 하게. 부탁함세.”

    당광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빈의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었다.

    열 명분을 할 숙련된 목수와 석공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사실 지금의 상황만 해도 고마웠다.

    이소운을 비롯한 다른 일꾼들을 구해 오지 못했다면 사천당가는 허물어진 전각 그대로 겨울을 나야 했다.

    하지만 한빈이 일꾼을 구해 온 덕분에 이렇게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한빈은 목수 이소운을 바라봤다.

    “내가 기술자를 불러오면 이 목수가 보고 품삯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 주시죠.”

    “제가요?”

    “이 목수는 열 명분의 일을 하는 목수이니 보면 알 것 아닙니까?”

    “어떻게 제가…….”

    “여기 계신 당 소가주와 일꾼들의 대표로 대화를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면 자격은 충분합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당광현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당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믿고 자네가 평가해 보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요.”

    이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회색 무복의 무사들이 멀리서 달려왔다.

    어깨에는 붉은 띠가 메어져 있었다.

    그들은 정식 복장을 한 적혈맹호대 대원들이었다.

    대주인 소대섭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그들의 앞에서 달려왔다.

    그들은 한빈의 다섯 걸음 앞에 멈춰 깊숙이 포권했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순간 당광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에게는 다른 무사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풍겼기 때문이다.

    활활 타오를 것 같은 강렬함과 더불어, 어딘지 모를 어두움마저 보였다.

    양기와 음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것은 당광현이 정확히 본 것이었다.

    천수장에서 나는 명물, 즉 극양의 기운을 띤 무말랭이를 삼시 세끼 먹었던 그들이었다.

    누가 봐도 양기가 넘쳐흐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한 달은 햇볕도 못 보고 땅속에서 두더지처럼 생활했었다.

    그러니 음기를 띨 수밖에 없는 일.

    한빈은 당광현의 눈빛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 대주에게 맡길 임무가 있어.”

    “네, 말씀하시죠. 주군.”

    “파견 임무를 나가야겠어. 정확히는 나가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파견 임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천당가의 복구 공사에 목수와 석공이 필요하다네.”

    “그럼 목수와 석공을 구해 오면 됩니까? 제가 빨리…….”

    소대섭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한빈이 손바닥을 보이며 말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주군.”

    “멀리서 찾을 게 없잖아.”

    “네?”

    “대주 뒤에 있잖아.”

    한빈은 소대섭의 뒤쪽에 있는 적혈맹호대 대원들을 가리켰다.

    소대섭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영문을 모르기는 당광현도 마찬가지였다.

    소대섭의 뒤에 있는 자들은 누가 봐도 무인이었다.

    무인이 목수와 석공의 기술을 익히고 있다고?

    물론 그럴 수는 있었다.

    하지만 돌을 깨고 나무를 깎는 일을 할 시간에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이 바로 무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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