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97화 (397/621)
  • 397. 공자님 뭐 하세요? (5)

    양중삼은 필사적이었다.

    입과 다른 신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눈은 끔벅일 수 있었다.

    그는 눈을 끔벅이며 하오문 고유의 신호를 그들에게 보냈다.

    끔뻑, 끔뻑.

    하지만 양중삼의 동료들은 반응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양중삼은 이를 악물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막힌 혈도를 복원하려 애썼다.

    양중삼의 눈은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행인들의 눈이 커졌다.

    누군가 양중상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것 보게! 눈이 벌게졌네!”

    행인의 외침에 모두가 양중삼의 눈을 바라봤다.

    동시에 주변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양하삼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모두가 술렁이는 가운데, 행인 중 누군가가 동행을 보며 말했다.

    “허허, 하북팽가의 사 공자 말이 맞았네그려.”

    “이제는 그렇게 부르지 말게.”

    “그럼 뭐라 부르나?”

    “진룡소협이라는 별호가 있는데, 그렇게 부르면 섭섭하지.”

    그는 자신의 동행을 노려봤다.

    진심이 담긴 그 눈빛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나도 오늘부터 진룡소협을 좋아하기로 했네.”

    “저기 보게. 진룡소협이 움직이기 시작했네.”

    모두는 마른침을 삼키고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으로 변장한 양중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였다.

    양중삼의 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관절에서 마치 수수깡 꺾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딱, 딱.

    묘한 소리와 함께 그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때를 맞춰 한빈이 달렸다.

    타다닥.

    마치 적토마가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기세로!

    한빈이 양중삼에게 도착하기까지 불과 두 걸음이 남았을 때였다.

    양중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타다닥.

    타다닥.

    한빈이 달려온 동작이 적토마의 모습이었다고 하면.

    양중삼이 튄 동작은 전설 속의 한혈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모두의 눈이 커졌다.

    침묵이 대기를 짓누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깨진 것은 찰나.

    짝, 짝.

    누군가의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고요함은 열기로 바뀌었다.

    짝, 짝.

    그 소리를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진룡소협이 노인을 치료했다!”

    그 목소리에 모두는 손뼉 치는 동작을 멈추고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노인이 어디로 달려갔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왜 도망치듯 떠났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꼼짝달싹 못 하고 죽어 가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는 기적을 봤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들은 한빈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까이 가기에는 한빈이 너무 숭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조그마한 아이 하나가 한빈을 향해 걸어갔다.

    “찐룡소협.”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한빈을 부르는 아이.

    아이의 부모는 다급하게 손을 내밀어 말렸다.

    “얘야, 그만…….”

    하지만 아이를 말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이는 쪼르르 한빈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 모습에 아이의 어미는 재빨리 뒤를 따랐다.

    아이가 달려오는 모습에 한빈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힐끔 설화와 청화를 바라본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청화 역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빈은 슬쩍 쪼그려 앉아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찐룡소협.”

    “그래, 착하게 생겼구나. 몇 살이지?”

    “음…….”

    아이는 고민하다가 손가락 네 개를 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 살이구나. 내가 안아 주고 싶어도 몸이 불편해서 그렇게는 못 하겠고……. 혹시 찹쌀떡이 좋니? 당과가 좋니?”

    “…….”

    한빈의 말에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답하지 못한 것이다.

    그 모습에 한빈은 힐끔 설화와 청화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청화와 청화가 다가왔다.

    설화는 아이의 오른손에 당과를 쥐여 줬고.

    청화는 아이의 왼손에 찹쌀떡을 쥐여 줬다.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뒤로 돌아갔다.

    순간 함성이 터졌다.

    “역시 진룡소협이야!”

    “어찌 저런 성품이 있을 수가……!”

    “소문대로 생불이 맞네, 맞아!”

    경외가 친근감으로 바뀌는 순간 한빈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동행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천하제일세가는 하북팽가네.”

    “자네, 그건 조금 무모한 발언 아닌가?”

    동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반문하자, 그는 한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진룡소협이 있으니 천하제일세가가 맞지.”

    “한 명으로 천하제일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조금 경솔한 것 같구먼.”

    “한 명이 아니지. 진룡소협의 뒤에는 또 다른 고수가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게 무슨 말인가?”

    ”진룡소협이 사파제일인과 정파제일인의 후인이라는 것을 몰랐는가?”

    “어떻게 한 명이 동시에 사파제일인과 정파제일인의 후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정파제일이라면 소림사의…….”

    “그게 아니라, 사파의 적룡대협과 정파의 청운사신을 말하는 것일세. 진룡소협이 그들의 후인이라는 이야기를 못 들었는가?”

    “허, 그게 진짜인가?”

    “진짜일세. 저분의 의술도 적룡대협과 청운사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네.”

    “허허, 그러고 보니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도 모자라 저리 펄펄 날도록 만드는 것은 내 생전 처음 보네그려.”

    “나도 처음이라네.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앉은뱅이 거지 소녀를 고쳤다는 말도 있네.”

    “허, 그게 하북팽가의 사 공자였나?”

    “맞네. 그게 하북팽가, 아니 진룡소협이 맞다네.”

    행인들의 말에 한빈은 당과를 먹고 있는 설화를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님, 왜 그러세요?”

    “사람들이 설화 얘기를 하고 있네.”

    “제 얘기를 해요?”

    “지금 앉은뱅이 거지 얘기 하고 있잖아.”

    “헉, 우리 빨리 가요.”

    설화는 재빨리 한빈의 소매를 잡았다.

    지금이야 한빈의 옆에서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녀는 살수였다.

    설화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기 싫었다.

    거지 복장을 한 것이나 살수였다는 것을 떠올리기 싫은 것 아니었다.

    한빈을 제거하려고 했던 당시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싶었다.

    그때였다.

    한빈 일행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 * *

    만월루의 구 층, 루주이자 사천지분의 문주인 백미랑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르륵.

    방문이 열리자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녀의 호위인 양하삼이 대나무 통을 하나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백미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양하삼이 허락도 없이 문을 연 것도 처음이요.

    지금 그가 들고 있는 대나무 통, 즉 전서 통도 궁금했다.

    “양 호위, 그게 뭐지?”

    “첫 번째 현장으로부터 온 전서입니다.”

    “조조를 안 보내고 전서를 보냈다고?”

    백미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오문 사천지부는 간단한 전언은 조조를 이용해서 소통했다.

    조조는 참새로 보이지만, 그냥 참새가 아니었다.

    하오문에 대대로 전해지는 영물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매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백미랑도 그것은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까지 소식을 전할 때 한 번도 다른 맹수의 공격을 받지 않은 것으로 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조조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매나 비둘기보다도 더 빨리 소식을 전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직접 전서를 전하다니?

    상당히 복잡한 일이 발생했음이 분명했다.

    백미랑은 양하삼이 건넨 전서를 재빨리 확인했다.

    순간 그녀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어찌 이런 일이…….”

    “왜 그러십니까? 문주님.”

    “음, 내 예상을 벗어났어.”

    “뭐가 말입니까?”

    “하북팽가의 사 공자 말이야.”

    “혹시 시험을 통과했습니까?”

    “시험을 통과하지는 못했어.”

    “그럼 함정에 빠진 겁니까?”

    “그것도 아니야. 그냥 시험 자체를 없애 버렸어. 거기에 막대한 이득도 얻었다네.”

    “막대한 이득이라니요?”

    “민심(民心).”

    말을 마친 백미랑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다시 한번 보고서를 살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다.

    “뇌공절맥이라…….”

    보고서를 읽던 백미랑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양하삼이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문주님.”

    “임무를 중지시켜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준비해 놨던 모든 작전을 중지시켜.”

    백미랑의 말은 단호했다.

    양하삼은 더는 묻지 않고 재빨리 방에서 나갔다.

    * * *

    노인을 치료하고 자리를 떠난 한빈 일행은 이제 만월루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당세령은 쉴 틈 없이 한빈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궁금한 것은 한빈이 말한 병명이었다.

    당세령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팽 공자님, 뇌공절맥이 뭐예요? 저도 의술은 조금 공부했지만, 그런 병은 처음 들어 봐요.”

    “처음 들어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그게 왜 당연해요. 제가 이래 보여도 사천당가에 있는 의술 서적은 대부분…….”

    “세상에 없는 병이니까요.”

    “없는 병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까 치료했잖아요.”

    당세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한빈이 환자를 치료했다고 믿고 있었다.

    다소 황당한 방법이긴 했지만, 한빈은 분명히 수상쩍은 노인을 치료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없는 병이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당황한 그녀의 표정을 본 한빈이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한 뇌공이란, 뇌가 비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뇌가 비어서 피가 돌지 않을 정도면 구음절맥보다도 더 심하지요.”

    “헉, 왜 그럼 이름의 병을…….”

    “상대에게 제 뜻을 전한 겁니다.”

    한빈이 씩 웃자 당세령이 다시 물었다.

    “뜻을 전했다면……. 혹시 그 노인이 가짜 환자였다는 말이에요?”

    “그럼요, 당연히 가짜죠. 가짜가 아니라면 어떻게 다 죽어 가던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까?”

    “…….”

    당세령은 한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설화와 청화를 번갈아 봤다.

    둘은 아무렇지 않게 간식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둘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참다못한 당세령이 물었다.

    “너희는 안 궁금하니?”

    “제가 왜 궁금해해요. 공자님이 알아서 하시는 일인데요.”

    설화가 멀뚱히 당세령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청화가 말을 이었다.

    “그냥 공자님을 믿는 거죠. 언니도 의심하지 말고 그냥 믿으세요.”

    청화는 눈을 빛냈다.

    순간 당세령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 같은 게 아니었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왔다.

    당세령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앞쪽의 저잣거리에는 사천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몰려 있는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사천에 인구가 많기는 해도 이런 적은 없었다.

    사천에서 있었던 어떤 행사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밀려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설화도 놀란 눈을 하며 걸음을 멈췄다.

    “공자님, 대체 저게 뭐예요?”

    “흠, 사람이 많구나.”

    “왜 저렇게 많은 거죠?”

    그때였다.

    지나가는 행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사람이 왜 많은지 모르는 걸 보니 이곳 사람이 아닌 듯싶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저씨.”

    설화가 묻자, 행인이 말을 이었다.

    “오늘 대단한 사건이 일어났지. 지금껏 사천에서 유례없던 배당액이 터졌어. 그래서 그 판돈을 수령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몰려든 것이고.”

    “최고의 판돈이요?”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한빈을 바라봤다.

    ‘설마 아니겠지…….’

    그때였다.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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