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공자님 뭐 하세요? (4)
그들 중 몇은 상인처럼 보였다.
그들은 한빈이 있는 쪽으로 다가와서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중 초립을 쓴 상인이 말했다.
“저기 사람이 쓰러져 있군. 어떻게 하나?”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저분은…….”
말끝을 흐린 대머리의 상인이 한빈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초립을 쓴 상인이 물었다.
“왜 그러나?”
“저 사람……. 어디선가 본 듯하단 말이야.”
“에이, 사천에서 오다가다 본 모양이지.”
“사천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본 것 같으니 그러지.”
“다른 곳이라면…….”
“내 지난번에 하북에 갔다 오지 않았나?”
“그랬지.”
“그때 하북에서 유명한 천수장의 장주님을 본 적이 있거든.”
“천수장이라……. 생불이라 불리던 그분을 말하는 것인가?”
“그래, 그 생불이라 불리는 천수장의 장주님과 똑같이 생겼네그려.”
“허, 저분이 천수장의 장주님이라면……. 저 노인을 치료해 주시겠군.”
“하북에서 뵙고 사천에서도 천수장의 장주님을 뵙다니 행운이군. 저 노인은 천운인 게야. 생불을 여기서 만나다니 말일세.”
그들의 대화는 묘하게도 목소리가 컸다.
그 목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제 상인뿐 아니라 그냥 지나치려던 행인들도 한빈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순간 누군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분이 의술로 유명하다는 천수장주네.”
“허허, 그렇군. 나도 들어 봤다네.”
“천수장이라고? 나는 처음 들어 보는데…….”
“예끼, 이 사람아. 어떻게 그 이름을 처음 들어 본다는 말인가? 장운현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하지 않았나. 덕분에 천수장의 가까운 곳에는 마을까지 생겼다지.”
“그러고 보니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네.”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한빈을 바라봤다.
덕분에 한빈을 둘러싼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빈에게 집중했다.
그때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그런데 천수장의 장주가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지?”
“허허, 그게 사실인가?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면 하북 최고의 겁…….”
거기까지 말한 행인은 말을 멈췄다.
그때 그의 옆에 있던 행인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건 옛날 일이고, 저렇게 고매한 인품과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겁쟁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듣고 보니 그러네그려!”
그들의 대화에 다른 행인들은 모르던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설명 덕분인지 한빈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눈에서는 호기심이 맴돌았다.
이제 그들의 관심은 한빈의 고매한 성품과 의술에 쏠렸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한빈은 피식 웃었다.
이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덫이었다.
왜 이런 덫을 놨는지는 모르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
저들 중 몇몇은 몰이꾼이 분명했다.
몰이꾼이란 사기를 칠 때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하는 이를 말한다.
하지만 지금 막 몰려든 사람 대부분은 덫을 놓은 자들과는 상관없는 일반 백성들이다.
지금 한빈의 행동에 따라 하북팽가의 위세가 높아 질수도.
한없이 낮아질 수도 있다.
문제는 노인이 진짜 환자냐 하는 점이었다.
우습게도 저 노인은 젊은이가 분명했다.
손과 굳은살까지 완벽하게 분장했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목 뒤쪽의 피부였다.
그곳만은 손을 안 댔는지 탱탱했다.
적일까?
아군일까?
그것도 모른 체 그냥 속아 넘어가기는 싫었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니까.
노인으로 분장한 자를 살피던 한빈은 손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고칠 수 있겠군.”
한빈의 말에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화는 한빈에게 의술에 대한 소양이 조금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응급처치나 독에 대한 이해는 높았다.
하지만 한빈은 의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소리치니 이해가 안 되었다.
“공자님…….”
“괜찮다. 강북 정파의 주축인 하북팽가의 일원으로서 어찌 아픈 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느냐?”
한빈은 마치 석가여래가 현신한 듯한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화는 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실리주의의 극을 향하는 한빈이 약한 자를 위해 시간을 버린다는 것이 그녀는 이해가 안 되었던 것.
설화가 의문을 뭉게뭉게 피워 올릴 때, 한빈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목을 돌리고.
주먹을 쥐고는 뚝뚝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그 모습에 당세령이 눈매를 좁혔다.
뭔가 싸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팽 공자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저분을 치료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치료 준비를 하는 거라고요?”
당세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치료하려는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를 겁박하기 위해 몸을 푸는 저잣거리의 왈패와도 같았다.
거기에 더해 그녀에게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한빈과 하북에서부터 사천까지 동행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된 당세령이었다.
천수장이 의술로 유명하다는 것은 모두 의원인 장자명 덕분이었다.
이제까지 한빈은 누군가를 치료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노인을 치료하겠다고?
그때 한빈이 말했다.
“저 노인의 증세는 실로 위태롭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 노인은 수레바퀴에 다친 것이 아닙니다.”
“앗, 그럼 뭐예요?”
“저 노인에게는 선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아무래도 뇌공절맥 같습니다.”
“뇌공절맥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시간이 없으니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기를 모아 저 노인의 단전 부근에 모인 사악한 기운을 한 번에 박살 내야 저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말을 마친 한빈은 노인으로부터 물러났다.
당세령이 다급하게 말렸다.
“공자님, 다치셨잖아요. 이제는…….”
그녀는 말을 맺지 못하고 조용히 한빈의 오른팔을 바라봤다.
오른팔이 망가져서 이제는 한빈이 전과 같은 무공을 못 쓴다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진 상태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팔은 못 써도 다리는 멀쩡하니……. 저 노인을 위해 시술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도 노인을 완벽히 치료한다고는 보장 못 합니다.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아.”
이것은 순수한 존경심에서 나온 탄성이었다.
이제까지 한빈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자애로움에 대한 경외였다.
그때였다.
한빈이 고개를 돌려 행인들을 바라봤다.
행인들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저 사악한 대법을 파훼하기 위해서 제 본원진기까지 모두 쓰겠지만……. 노인의 기력이 쇠해졌으니 다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좋소.”
누군가가 말하자 한빈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를 마친 한빈은 서서히 진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빈은 반박귀진을 풀었다.
그러고는 남들이 보란 듯이 기세를 피워 냈다.
한빈의 기세에 행인들의 눈이 커졌다.
물론 한빈 본연의 기세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만 알맞게 힘을 풀었다.
한빈은 그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혼검의 기운을 오른쪽 다리로 몰았다.
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신검합일을 성취한 그였다.
한빈의 몸이 용린검이자, 검은 한빈 그 자체였다.
스스-슥.
한빈의 몸 안에서 용린의 기운이 노도처럼 몰아친다.
하지만 기운만 계속 모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행인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뇌공절맥이라니! 그런 병이 있었나?”
“그런 말 하지 말게. 우리가 모든 병을 아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하긴,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저 노인을 치료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만 떠들고 우리는 팽가의 사 공자가 어떻게 치료하는지나 구경함세.”
“그런데 말일세,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면…….”
“앗, 그러고 보니 사천의 나루터에서 진룡소협의 칭호를 받았던 후기지수가 아니던가?”
“그러네, 그려.”
“허허, 천수장의 장주가 하북팽가의 사 공자이면서 진룡소협이라니!”
“그럼 무공과 의술을 모두 갖췄다는 게 아닌가?”
“무공은 얼마 전에 많이 다쳐서 쓰지 못한다고 들었네. 지금도 팔을 못 쓴다고 하지 않았나?”
말한 이는 안쓰러운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그때 행인 하나가 말했다.
“쉿. 치료하는 데 방해되겠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행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행인 중에 몇은 불안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시였다.
그렇게 신호를 주고받은 사람들은 처음에 바람을 잡았던 상인들이었다.
하지만 가장 놀란 이는 따로 있었다.
그는 바로 노인으로 변장하고 있던 하오문의 무사였다.
사천당가의 담장에 앉아서 비무 대회를 설명하던 무사가 바로 그였다.
그의 이름은 양중삼이며, 백미랑의 호위인 양하삼의 형이었다.
그의 무위는 동생인 양하삼보다는 한참 아래였다.
하지만, 변장술과 경공은 양하삼보다 위였다.
경공의 대가들이 많다는 사천의 하오문에서는 가장 빠르다고 소문이 난 자가 바로 양중삼이었다.
그는 다친 노인으로 위장해서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무력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지략으로 막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것은 상대의 측은지심을 공략하면 간단했다.
사파라면 먹히지 않을 테지만, 정파라는 백이면 백 이 수법에 당하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주변에 보는 눈이 있다면 상대는 양중삼이 쳐 놓은 거미줄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세인들의 눈치를 보며 ‘의(義)’라는 한 글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정파의 약점이니 말이다.
양중삼은 상대가 치료하겠다고 일어섰을 때 걸려들었다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을 푸는 것이 아닌가?
뚝뚝 소리를 내며 관절을 꺾는 모습이 시정잡배들보다도 불량스럽게 보였다.
양중삼의 불안감은 그때부터 점점 커졌다.
거기에 뇌공절맥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을 대더니 갑자기 기세를 피워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양중삼은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완벽한 위장을 위해 다리에 혈도를 찍어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북팽가 사 공자의 다리에서 상상도 못 할 진기가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 진기로 자신의 단전을 박살 내는 것이 치료법이라고?
양중삼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저기에 맞으면 단전이 박살 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양중삼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손을 허벅지 쪽으로 옮겼다.
자신이 막아 놓은 점혈을 풀기 위해서였다.
툭.
양중삼은 가볍게 혈도를 눌렀다.
툭.
그는 조금 더 세게 혈도를 눌렀다.
순간 그는 비명을 질렀다.
‘앗!’
이제까지 지른 비명이 연기였던 반면, 지금의 비명은 진짜였다.
아무리 혈도를 눌러도 점혈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지?
양중삼은 눈을 크게 떴다.
비명까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제길!’
양중삼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순간, 그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자신의 몸을 살폈던 때를 떠올렸다.
분명히 그때 점혈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왜 자신을 점혈했다는 말인가?
의문을 떠올리던 양중삼은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자신들이 파 놓은 함정을 간파했다면?
함정을 파 놓았다는 것은 아군이 아닌 적.
그렇다면 자신을 죽이려는 것도 당연했다.
양중삼은 상인으로 위장한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