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94화 (394/621)
  • 394. 공자님 뭐 하세요? (2)

    당세령의 목소리는 마치 남자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그걸 들은 설화와 청화가 입을 벌렸다.

    당세령 자신도 모르게 당기명으로 변장했을 때의 말투가 나왔던 것.

    그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었다.

    “말투가 변하셨군요. 본래 변장이란 말투와 눈빛까지 바꿔야 완벽한 법이지요.”

    “앗,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실수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게 원래 제 모습이고 당기명이 변장한 모습이라고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한빈은 짓궂게 웃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청화는 흐뭇한 모습으로 웃었다.

    한빈이 농담을 던지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청화는 한빈이 농담을 던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당세령은 당기명이라는 이름으로 하북에서 사천까지 왔었다.

    그간 몇 번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한빈에게는 당세령이 여자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든든한 동료로 보이기에 편안히 농담을 던진 것이 분명했다.

    여기까지가 청화가 읽은 한빈의 생각이었다.

    그때 당세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음……. 그런데 지금 누굴 기다리시는 거예요?”

    “임무를 도와줄 수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와줄 수하요?”

    당세령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당세령의 콧등에 떨어졌다.

    뚝.

    그 모습에 한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것도 잠시, 한빈은 검지로 정자 하나를 가리켰다.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한빈 일행이 비를 피할 정자 아래에 서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툭, 툭.

    대지를 울리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악기 소리처럼 흥겨웠다.

    그때 빗줄기를 뚫고 검은 그림자가 하나 달려왔다.

    검은 그림자는 묘한 소리를 냈다.

    따락.

    따락.

    자세히 보니 흑색 대나무 껍질로 만든 도롱이를 입고 있었다.

    그 소리는 대나무 껍질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

    묘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 도롱이가 펄럭이는 모습은 마치 박쥐 같았다.

    그 모습에 당세령은 자신도 모르게 검집을 잡았다.

    순간 설화가 당세령의 손을 잡았다.

    당세령이 고개를 돌리자 설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정자로 들어왔다.

    설화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부대주 언니.”

    “그래, 설화구나. 잘 지냈니?”

    “에이, 아까도 봤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웬일이세요?”

    설화의 질문에 심미호는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검은 그림자를 보며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전서구 통이었다.

    전서구를 넣을 조그마한 통은 전서구뿐만 아니라 조그만 쪽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쓰였다.

    한빈은 품에서 꺼낸 전서구 통을 심미호에게 건넸다.

    지금처럼 비가 내릴 때는 꼭 필요했다.

    심미호는 재빨리 전서구 통을 품속에 갈무리했다.

    한빈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첫 번째 임무.”

    “두 번째 임무도 있나요?”

    심미호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빈이 전서구 통을 하나 더 꺼냈다.

    “이게 두 번째 임무야, 심 부대주.”

    “알겠어요, 주군.”

    심미호는 두 번째 전서구 통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二)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심미호가 막 몸을 돌릴 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심 부대주, 비도 많이 내리는데 수고했어. 이대로만 하면 돼. 그리고 이것도…….”

    한빈이 품을 뒤졌다.

    그 모습에 심미호가 물었다.

    “세 번째 임무도 있나요?”

    “그건 아니고……. 이건 대원들한테 내리는 중간 포상이야.”

    한빈이 전낭 두 개를 건넸다.

    심미호는 전낭을 받는 즉시 살짝 내용물을 확인했다.

    순간 심미호의 눈이 커졌다.

    “아, 주군. 나머지 대원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진짜 좋아할 겁니다.”

    심미호가 전낭을 흔들었다.

    “감격할 필요 없으니 그만 가 봐, 심 부대주.”

    “존명!”

    심미호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바람 같은 속도로 정자를 떠났다.

    그 모습에 당세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심미호가 저리 감동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세령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팽 공자님, 저 전낭에는 얼마나 넣었나요?”

    “돈이 아니라…….”

    “그럼요?”

    “마음이지요.”

    “헉, 마음이요?”

    “뭐, 내 정성이 담긴 영약입니다.”

    “두 개 다요?”

    “나머지 하나는…….”

    “빨리 말씀해 주세요.”

    “비밀입니다.”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당세령은 기가 찬 듯 한빈을 보다가 재빨리 청화를 바라봤다.

    “청화야, 너는 저기에 뭐가 들었는지 알지?”

    “모르는데요, 언니.”

    청화가 고개를 흔들자 당세령이 한숨을 쉬었다.

    “휴……. 역시 비밀이 많은 가문이네요.”

    그때였다.

    툭-툭.

    빗소리의 간격이 줄어들었다.

    한빈은 하늘을 보더니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이제 출발하지요.”

    “네, 공자님.”

    설화가 반갑게 답하자 청화가 뒤를 이었다.

    “출발해요.”

    당세령은 한빈의 뒤를 따라 사천당가를 나왔다.

    당세령의 마음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렇게 비밀이 많을 때는 꼭 큰일이 일어났다.

    당세령은 자신이 들고 있는 짐에 눈을 돌렸다.

    그 안에는 사천당가로부터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의 명부가 들어 있었다.

    당세령은 한빈이 명부와 차용증을 어디에 쓰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한빈이 차용증을 이용해 사천의 백성들을 겁박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실 주변 백성 중에 사천당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사천당가 덕분에 이 주변에는 고리대금업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것이 사천당가가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이유였다.

    사실, 이렇게 어려울 때 돌아서는 사람들이 조금 얄밉기는 했다.

    당세령도 그들에게 빌려준 돈을 다 회수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책이었다.

    사천당가의 복구에 시일이 걸리더라도 사천의 민심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걸어가던 중이었다.

    설화의 목소리가 당세령의 귓전에 울렸다.

    “이게 뭐야!”

    화난 설화의 목소리에 당세령이 재빨리 물었다.

    “왜 그러니? 설화야.”

    “이놈들이 튀었어요. 튀었어요!”

    설화는 살짝 흥분했다.

    판에 돈을 건 자는 한빈만이 아니었다.

    설화도 이번 판에 돈을 걸었다.

    물론 무승부는 맞히지 못했다.

    하지만 사천당가가 승리할 것이라 예상하고 걸었던 판의 내기 결과는 설화가 맞혔다.

    자신과 청화가 나간 비무에서 질 것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제법 많은 돈을 걸었다.

    그런데 자리에 아무도 없자 분노가 차오른 것이다.

    설화의 이글대는 눈을 본 당세령이 물었다.

    “튀다니?”

    “여기서 판을 벌이던 친구들 말이에요. 이것들이 입을 싹 씻고 튀었네요.”

    “혹시 판돈을 걸었니?”

    “그럼 안 걸어요? 공자님이 그러셨어요.”

    “뭐라고?”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고 두 번째가 불구경이라고요.”

    “그런데, 그게 내기와 무슨 상관이니?”

    “그리고 제일 짜릿한 건 싸움 구경하면서 딴 돈이라고…….”

    설화는 말끝을 흐렸다.

    말을 하다 보니 뭔가 뒤통수가 따가웠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빈이 설화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설화가 말했다.

    “죄, 죄송해요. 공자님. 저도 모르게…….”

    “설화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지?”

    “그러니까…….”

    “네 잘못은 비밀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설화야.”

    “비밀이라니요?”

    “좋은 건 우리만 알아야지.”

    “아.”

    설화가 탄성을 터뜨리자, 당세령이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우리라는 말이 묘하게 그녀를 이 집단에서 밀어내는 것처럼 들렸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비밀은 가족끼리는 공유해도 좋다.”

    “가족이라니요?”

    “당 공자는 청화의 오라비가 아니더냐. 그러니 당연히 가족이지. 그리고 설화, 네게도 마찬가지고. 당무천 어르신의 손녀가 되었다고 들었다.”

    한빈이 활짝 웃자 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대화를 듣던 당세령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가족이라 칭하자 갑자기 가슴에서 따뜻한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그들의 대화를 곱씹던 당세령의 표정이 구겨졌다.

    “팽 공자님.”

    “왜 그러세요?”

    “왜 저를 당 공자라고 하시는 거죠?”

    “아,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차차 고치기로 하죠. 호칭이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말을 마친 한빈이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일단 판돈부터 받아야지.”

    “판돈이요? 다 날랐잖아요.”

    “뭔가 우리가 오해한 것 같구나. 저길 봐라.”

    “어디요?”

    “저 아래에 죽처럼 풀어져 있는 종이 말이다.”

    한빈이 담장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종이가 녹아 죽이 되어 있었다.

    “저기에 방을 붙여 놨군요.”

    “내가 저걸 발견 못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설화는 잠시 상상에 빠졌다.

    한빈이 처리를 안 하더라도 자신이 손을 썼을 것이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설화야, 지금 저들을 처리할 상상을 했지?”

    “아, 아니에요. ……그런데 저들이 누군지 알고 찾아요?”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설화의 모습에, 한빈이 짧게 답했다.

    “하오문.”

    “하오문에 물어본다고요?”

    “그 말이 아니라, 저기 있던 자들이 하오문 사람들이었다는 얘기였다. 설화야.”

    “아……. 그런데 하오문이라는 걸 알아도 그들을 어떻게 찾아요? 저렇게 되었으니, 내용을 읽을 수가 없잖아요.”

    “그건 간단하지.”

    한빈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당세령을 바라봤다.

    갑자기 시선을 받은 당세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팽 공자님.”

    “저기 있는 경비 무사에게 물어보시죠. 아마 어디로 돈을 찾으러 가야 하는지 알 겁니다.”

    “경비 무사가 어떻게 알겠어요?”

    “한번 물어보시죠.”

    “네, 알았어요.”

    당세령은 고개를 갸웃하며 경비 무사에게 다녀왔다.

    갔다 온 당세령이 신기한 듯 한빈을 바라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뭘 말입니까?”

    “경비 무사가 돈을 건 걸요. 경비 무사가 지금 토설하더라고요.”

    “저는 몰랐습니다. 그냥 느낌이었죠. 그래서 질책하셨나요?”

    “덕분에 정보를 얻었으니 일단 비밀로 해 주기로 했습니다.”

    당세령은 한빈과 경비 무사를 번갈아 봤다.

    한빈은 정문을 지키는 무사가 내기에 참여한 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

    그리고 왜 저 경비 무사의 흠을 덮어 줬을까?

    그것도 잠시, 당세령은 한빈이 가족이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아마 한빈은 사천당가의 흠을 덮어 주기 위해 비밀로 했을 것이었다.

    순간 당세령의 눈썹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 주는 한빈의 세심함이 고마웠다.

    하지만, 한빈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아, 그랬군요.”

    “어쨌든 감사해요, 팽 공자.”

    “당연한 일입니다.”

    한빈은 손을 내저었다.

    무엇을 감사한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한빈은 단지 자신이 내기에서 돈을 딴 것을 숨기고 싶었다.

    강호 속담에 무공의 삼 할을 숨기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상계의 속담에는 재산의 구 할을 속이라고 한다.

    한빈은 상계의 속담을 따르고 있었다.

    한빈의 답에 당세령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도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한다고 합니까?”

    “여기에서 판을 벌였던 하오문 사람들은 모두 만월루로 가 있다고 합니다.”

    “만월루라…….”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서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자신의 다리를 힐끔 바라봤다.

    그곳에는 만월이 꽂혀 있었다.

    사천당가의 무가지보인 만월과 하오문의 만월의 이름이 같은 것이 우연일까?

    한빈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거기에 사천당가가 무가지보인 만월을 빼앗아 간 것이 혈교라 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만월루에 찾아가려고 했다.

    뭐, 겸사겸사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한빈의 의미심장한 웃음에, 당세령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이건 백 할의 확률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징조였다.

    칠음현에서도 저 미소 이후에 사건이 일어났다.

    영단산에서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때 한빈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이제 출발하죠.”

    그때였다.

    당세령이 다급하게 외쳤다.

    “당 공자님! 먼저 일꾼부터 구해야 하지 않나요?”

    “지금은 하오문이 먼저입니다.”

    말을 마친 한빈이 몸을 돌려 휘적휘적 걸어갔다.

    * * *

    만월루의 팔 층.

    어깨를 살짝 떨고 있는 것은 당세령뿐이 아니었다.

    만월루의 최상층인 팔 층에서 반쯤 누운 자세로 부채를 들고 있던 백미랑도 갑자기 등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그 모습에 그녀의 호위인 양하삼이 재빨리 달려왔다.

    0